본문내용
고려와 조선시대를 지나면서 폐허가 된 임해전지에 오리와 기러기만이 노닌다고 해서 안압지(雁鴨池)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왼쪽의 사진은 안압지의 야경을 담은 2005년의 사진이고, 오른쪽은 이른 아침 비 온 후의 안압지의 현재 모습이다.
경주 답사의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황룡사지다. 경주국립박물관에 들리려
했더니 이른 아침이라 개관시각이 아
직 많이 남아 황룡사지로 향했다.
황룡사지는 왕명으로 553년(신라 진
흥왕 14)에 창건하기 시작하여 566년
에 주요 전당들이 완성되었다. 황룡사
는 신라 왕성인 월성(月城) 동쪽에
있었는데, 그 창건 기록에는 진흥왕이
신궁을 월성 동쪽 낮은 지대에 건립하려 했으나 그곳에서 황룡이 승천하는 모습을 보고, 왕이 신궁 조영을 중지하고 절로 만들게 하여 황룡사라는 사명(寺名)을 내렸다고 한다. 국가적인 사찰이었기 때문에 역대 국왕의 거둥이 잦았고 신라 국찰 중 제일의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신라 멸망 후에도 황룡사는 고려 왕조에 이어져 깊은 숭상과 보호를 받았으며 9층 목탑의 보수를 위해 목재까지 제공받았다. 그러나 1238년(고종 25) 몽골군의 침입으로 탑은 물론 일체의 건물이 불타버렸고, 황룡사 9층 목탑도 소실되고 말았다. 황룡사 9층 목탑이 남아 있었더라면 우리나라 최고의 국보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 광대하고 장엄한 풍경을 볼 수 없어서 안타깝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문화유산을 더 잘 보존하고 가꾸어야 한다. 남대문의 전소처럼 그런 안이하고 한심한 작태가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황룡사지 그 넓은 절터 의 황량함에 세월의 무상감만이 감돈다.
영천으로 향하는 버스 시간 관계로 경주 시내 인근의 유적들만 만나 볼 수 있었던 반쪽짜리 경주행이었지만 치열했고 또 순수했던, 슬픈 계산이 없었던 유년시절 속의 나를 만나 볼 수 있었기에, 지나간 나의 발자취를 뒤돌아 볼 수 있었던 좋은 계기였다. 경주의 유적들은 늘 보아왔지만 다채롭고 풍요롭다. 한 달을 꼬박 답사한대도 경주시와 그 일대의 산재한 유적들을 살펴보는 데는 시간이 부족할 정도인데, 하물며 세 시간 남짓의 시간에 경주를 답사한다는 겨우 경주를 맛보는 데에 불과하다. 이미 경주의 구석구석 많은 곳을 둘러보았지만 아직도 경주는 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다. 살아가는 동안 기회가 된다면 보물찾기 하는 마음으로 경주의 구석구석을 거닐고 싶다. 시간의 쫓긴 짧은 답사여행이었지만 참 행복한 발걸음이었다.
왼쪽의 사진은 안압지의 야경을 담은 2005년의 사진이고, 오른쪽은 이른 아침 비 온 후의 안압지의 현재 모습이다.
경주 답사의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황룡사지다. 경주국립박물관에 들리려
했더니 이른 아침이라 개관시각이 아
직 많이 남아 황룡사지로 향했다.
황룡사지는 왕명으로 553년(신라 진
흥왕 14)에 창건하기 시작하여 566년
에 주요 전당들이 완성되었다. 황룡사
는 신라 왕성인 월성(月城) 동쪽에
있었는데, 그 창건 기록에는 진흥왕이
신궁을 월성 동쪽 낮은 지대에 건립하려 했으나 그곳에서 황룡이 승천하는 모습을 보고, 왕이 신궁 조영을 중지하고 절로 만들게 하여 황룡사라는 사명(寺名)을 내렸다고 한다. 국가적인 사찰이었기 때문에 역대 국왕의 거둥이 잦았고 신라 국찰 중 제일의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신라 멸망 후에도 황룡사는 고려 왕조에 이어져 깊은 숭상과 보호를 받았으며 9층 목탑의 보수를 위해 목재까지 제공받았다. 그러나 1238년(고종 25) 몽골군의 침입으로 탑은 물론 일체의 건물이 불타버렸고, 황룡사 9층 목탑도 소실되고 말았다. 황룡사 9층 목탑이 남아 있었더라면 우리나라 최고의 국보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 광대하고 장엄한 풍경을 볼 수 없어서 안타깝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문화유산을 더 잘 보존하고 가꾸어야 한다. 남대문의 전소처럼 그런 안이하고 한심한 작태가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황룡사지 그 넓은 절터 의 황량함에 세월의 무상감만이 감돈다.
영천으로 향하는 버스 시간 관계로 경주 시내 인근의 유적들만 만나 볼 수 있었던 반쪽짜리 경주행이었지만 치열했고 또 순수했던, 슬픈 계산이 없었던 유년시절 속의 나를 만나 볼 수 있었기에, 지나간 나의 발자취를 뒤돌아 볼 수 있었던 좋은 계기였다. 경주의 유적들은 늘 보아왔지만 다채롭고 풍요롭다. 한 달을 꼬박 답사한대도 경주시와 그 일대의 산재한 유적들을 살펴보는 데는 시간이 부족할 정도인데, 하물며 세 시간 남짓의 시간에 경주를 답사한다는 겨우 경주를 맛보는 데에 불과하다. 이미 경주의 구석구석 많은 곳을 둘러보았지만 아직도 경주는 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다. 살아가는 동안 기회가 된다면 보물찾기 하는 마음으로 경주의 구석구석을 거닐고 싶다. 시간의 쫓긴 짧은 답사여행이었지만 참 행복한 발걸음이었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