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비잔틴 제국의 역사
1. 비잔틴 제국의 발전
2. 6c 전성기 : 유스티니아누스의 활약
3. 7c 이후 비잔틴 제국의 쇠퇴기
4. 8c -10c 동로마의 재전성기
Ⅱ. 시대구분 및 시대별 경제 및 문화특징
1. 제 1기
2. 제 2기
3. 제 3기
4. 비잔틴 제국의 황제
5. 비잔틴의 국가 통제 경제
6. 비잔틴의 문화
7. 비잔틴의 종교
8. 비잔틴의 정치
1. 비잔틴 제국의 발전
2. 6c 전성기 : 유스티니아누스의 활약
3. 7c 이후 비잔틴 제국의 쇠퇴기
4. 8c -10c 동로마의 재전성기
Ⅱ. 시대구분 및 시대별 경제 및 문화특징
1. 제 1기
2. 제 2기
3. 제 3기
4. 비잔틴 제국의 황제
5. 비잔틴의 국가 통제 경제
6. 비잔틴의 문화
7. 비잔틴의 종교
8. 비잔틴의 정치
본문내용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12세기부터는 서유럽이나 중동에서도 농업 기술이 개선되면서, 제국의 농업 기술이 눈에 띄게 낙후되었다.
6. 비잔틴의 문화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동방과 서방의 요충지에 위치하여 세계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했는데, 이러한 상공업의 발달로 축적된 경제력은 비잔틴의 문화에 극도의 화려함을 부여했습니다. 한편, 8세기 이래 화상 숭배를 둘러싼 동서 교회의 대립은 11세기 중기에 결정적으로 분열하여 로마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로 분리되었는데, 그 후 비잔틴 제국은 모든 종교적 사항을 황제의 통제 아래 두어 교회를 국가 교회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종교는 비잔틴 문화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비잔틴 제국은 제도 일반에서는 로마적이지만 주민·언어·문화면에서는 그리스적이었고 콘스탄티노플은 일찍이 로마 제국이 완수한 적이 없었던 전략상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것이 그리스를 중심으로 소아시아와 이탈리아 해안의 여러 섬들을 포함하여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 조직을 갖추고 그리스도교와 동방적 색채를 포함한 군주국가로서 완전히 성립된 것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의 과도기를 거쳐 헤라클리우스 황제(610~641 재위) 때였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은 행정과 학문에서 새로운 중심이 되었고 제국의 문화는 고전적 전통 및 중세 가톨릭 유럽과 소아시아의 이교문화의 교차 지점으로서의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비잔틴 미술가들은 그리스 고전 미술의 전통 위에 동방의 요소를 혼합하여 찬란하고 사치스러운 비잔틴 예술의 특징을 만들어냈습니다. 비잔틴 건축은 초기 로마의 양식을 사용하여 아치와 돔을 광범위하게 사용했는데, 내부 장식에 있어서는 동방 지역의 특징을 살려 풍부한 색채가 넘치도록 했습니다. 이 비잔틴 건축을 대표하는 것이 성 소피아 성당(정사각형의 벽 위에 원형의 돔을 올려놓은 장대한 건축물로, 내부에는 성인들의 모습을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했음. 흔히 비잔틴 건축 양식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고 있음.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었음)인데, 이 성당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만든 것으로, 웅장하고 화려하여 종교적 위엄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비잔틴 문명은 그리스, 로마, 동방, 이슬람 등의 영향을 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방 문화권에 끼친 영향도 매우 컸습니다. 무엇보다 비잔틴 제국에서는 6세기에 그리스어가 공용어로 채택되어 고대 그리스 사상과 학문이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비잔틴 학자들은 그리스의 고전 연구에 몰두하여 주석을 붙여 후세에 전달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의 고전 특히,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은 아라비아의 손을 통해 서유럽에 전해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보존된 그리스 고전 문화는 12세기 서유럽에 그리스 문화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서유럽과 이슬람의 학문과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15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비잔틴 문화와 그리스 정교는 북쪽 슬라브 민족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그리스 정교(동로마 제국의 국교로서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발전한 기독교의 한 교파. 1054년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 교회와 분리되었는데, 로마 교황을 승인하지 아니하며 교의 및 의식을 중시하고 상징적·신비적 경향이 강함.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성함. ≒그리스교 · 그리스 교회 · 그리스 정교 · 동교東敎 · 동방 교회 · 동방 정교 · 동방 정교회 · 비잔틴 교회 · 정교正敎 · 정교회 · 희랍교 · 희랍 교회·희랍 정교 · 희랍 정교회)로 개종하고 비잔틴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는데,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그 전통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슬라브 여러 민족에게 계승되었습니다. 그리스 정교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그리스 문자를 토대로 슬라브 문자가 만들어진 것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7. 비잔틴의 종교
본래 그리스도교는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으나, 게르만족을 교화하고 개종시키는 데 있어서 성상 숭배가 매우 큰 힘을 발휘하였기 때문에, 로마 교회에서는 성상숭배를 교리로 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로마에서는 성상숭배가 신성모독이라 하여 이를 반대하였다. 726년 비잔틴(동로마) 황제 레오 3세가 성상 파괴 명령을 내린 이후, 정치적, 종교적으로 분쟁이 발생하였다. 교회의 우두머리인 교황이 세속의 우두머리 역할까지 하는 교황지상주의를 제창한 로마 가톨릭과는 달리, 세속의 우두머리인 황제가 교회의 우두머리 역할까지 겸하는 황제교황주의(casaropapismus)가 발달한 동방 정교회를 국교(國敎)로 믿었다. 동방 정교회는 황제의 지배 하에 있어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영향력은 그리 대단치 않았으며, 각 나라별로 교회의 자립화가 이루어져 있다. 황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행자이자, 교회의 수호자로 믿어져 왔다. 비잔티움 제국의 활발한 선교로 대부분의 동유럽권(세르비아, 불가리아, 러시아 등 슬라브 민족)과 일부 중동권에 기독교 문화가 형성되었고 비잔티움 제국은 자연스레 정교회의 본산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슬라브 민족은 동방 정교회와 함께 키릴 문자와 동방정교회의 교회헌법을 수용했다. 비잔티움 사회에서는 교회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세례, 결혼, 장례 등 개개인 생활의 중요한 순간에 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신학, 예술, 경제, 정치, 외교 등 국가와 사회의 모든 부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8. 비잔틴의 정치
비잔티움 제국은 고대 로마 제국의 수준 높은 이념과 제도를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거기에 종교적 권위와 오리엔트적인 전제 정치를 더하여 매우 엄격한 전제군주적 황제권과 관료 정치를 시행하였다.
비잔티움의 황제 는 원로원, 시민, 군대에 의해 추대되어 지상을 책임지는 신의 대리자이고 제국은 천국의 예표이며, 최후의 심판이 올 때까지 정통 기독교 신앙을 지키도록 하느님이 임명한 단 하나의 후견인으로서 사도들과 대등한 종교적 권위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황제는 정치·군사·종교 등에 대해 무한적인 절대 권력을 휘둘러왔으며, 제국의 백성들은 스스로 황제의 노예임을 자청하며 오로지 그의 은혜만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였다.
6. 비잔틴의 문화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동방과 서방의 요충지에 위치하여 세계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했는데, 이러한 상공업의 발달로 축적된 경제력은 비잔틴의 문화에 극도의 화려함을 부여했습니다. 한편, 8세기 이래 화상 숭배를 둘러싼 동서 교회의 대립은 11세기 중기에 결정적으로 분열하여 로마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로 분리되었는데, 그 후 비잔틴 제국은 모든 종교적 사항을 황제의 통제 아래 두어 교회를 국가 교회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종교는 비잔틴 문화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비잔틴 제국은 제도 일반에서는 로마적이지만 주민·언어·문화면에서는 그리스적이었고 콘스탄티노플은 일찍이 로마 제국이 완수한 적이 없었던 전략상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것이 그리스를 중심으로 소아시아와 이탈리아 해안의 여러 섬들을 포함하여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 조직을 갖추고 그리스도교와 동방적 색채를 포함한 군주국가로서 완전히 성립된 것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의 과도기를 거쳐 헤라클리우스 황제(610~641 재위) 때였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은 행정과 학문에서 새로운 중심이 되었고 제국의 문화는 고전적 전통 및 중세 가톨릭 유럽과 소아시아의 이교문화의 교차 지점으로서의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비잔틴 미술가들은 그리스 고전 미술의 전통 위에 동방의 요소를 혼합하여 찬란하고 사치스러운 비잔틴 예술의 특징을 만들어냈습니다. 비잔틴 건축은 초기 로마의 양식을 사용하여 아치와 돔을 광범위하게 사용했는데, 내부 장식에 있어서는 동방 지역의 특징을 살려 풍부한 색채가 넘치도록 했습니다. 이 비잔틴 건축을 대표하는 것이 성 소피아 성당(정사각형의 벽 위에 원형의 돔을 올려놓은 장대한 건축물로, 내부에는 성인들의 모습을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했음. 흔히 비잔틴 건축 양식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고 있음.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었음)인데, 이 성당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만든 것으로, 웅장하고 화려하여 종교적 위엄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비잔틴 문명은 그리스, 로마, 동방, 이슬람 등의 영향을 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방 문화권에 끼친 영향도 매우 컸습니다. 무엇보다 비잔틴 제국에서는 6세기에 그리스어가 공용어로 채택되어 고대 그리스 사상과 학문이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비잔틴 학자들은 그리스의 고전 연구에 몰두하여 주석을 붙여 후세에 전달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의 고전 특히,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은 아라비아의 손을 통해 서유럽에 전해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보존된 그리스 고전 문화는 12세기 서유럽에 그리스 문화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서유럽과 이슬람의 학문과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15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비잔틴 문화와 그리스 정교는 북쪽 슬라브 민족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그리스 정교(동로마 제국의 국교로서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발전한 기독교의 한 교파. 1054년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 교회와 분리되었는데, 로마 교황을 승인하지 아니하며 교의 및 의식을 중시하고 상징적·신비적 경향이 강함.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성함. ≒그리스교 · 그리스 교회 · 그리스 정교 · 동교東敎 · 동방 교회 · 동방 정교 · 동방 정교회 · 비잔틴 교회 · 정교正敎 · 정교회 · 희랍교 · 희랍 교회·희랍 정교 · 희랍 정교회)로 개종하고 비잔틴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는데,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그 전통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슬라브 여러 민족에게 계승되었습니다. 그리스 정교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그리스 문자를 토대로 슬라브 문자가 만들어진 것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7. 비잔틴의 종교
본래 그리스도교는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으나, 게르만족을 교화하고 개종시키는 데 있어서 성상 숭배가 매우 큰 힘을 발휘하였기 때문에, 로마 교회에서는 성상숭배를 교리로 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로마에서는 성상숭배가 신성모독이라 하여 이를 반대하였다. 726년 비잔틴(동로마) 황제 레오 3세가 성상 파괴 명령을 내린 이후, 정치적, 종교적으로 분쟁이 발생하였다. 교회의 우두머리인 교황이 세속의 우두머리 역할까지 하는 교황지상주의를 제창한 로마 가톨릭과는 달리, 세속의 우두머리인 황제가 교회의 우두머리 역할까지 겸하는 황제교황주의(casaropapismus)가 발달한 동방 정교회를 국교(國敎)로 믿었다. 동방 정교회는 황제의 지배 하에 있어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영향력은 그리 대단치 않았으며, 각 나라별로 교회의 자립화가 이루어져 있다. 황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행자이자, 교회의 수호자로 믿어져 왔다. 비잔티움 제국의 활발한 선교로 대부분의 동유럽권(세르비아, 불가리아, 러시아 등 슬라브 민족)과 일부 중동권에 기독교 문화가 형성되었고 비잔티움 제국은 자연스레 정교회의 본산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슬라브 민족은 동방 정교회와 함께 키릴 문자와 동방정교회의 교회헌법을 수용했다. 비잔티움 사회에서는 교회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세례, 결혼, 장례 등 개개인 생활의 중요한 순간에 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신학, 예술, 경제, 정치, 외교 등 국가와 사회의 모든 부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8. 비잔틴의 정치
비잔티움 제국은 고대 로마 제국의 수준 높은 이념과 제도를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거기에 종교적 권위와 오리엔트적인 전제 정치를 더하여 매우 엄격한 전제군주적 황제권과 관료 정치를 시행하였다.
비잔티움의 황제 는 원로원, 시민, 군대에 의해 추대되어 지상을 책임지는 신의 대리자이고 제국은 천국의 예표이며, 최후의 심판이 올 때까지 정통 기독교 신앙을 지키도록 하느님이 임명한 단 하나의 후견인으로서 사도들과 대등한 종교적 권위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황제는 정치·군사·종교 등에 대해 무한적인 절대 권력을 휘둘러왔으며, 제국의 백성들은 스스로 황제의 노예임을 자청하며 오로지 그의 은혜만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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