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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로마의 성립과 발전

Ⅲ. 로마의 법

Ⅳ. 로마의 건축
1. 로마 건축의 형성요인
2. 건축의 특색
1) 에트러스컨 건축(Etruscan architecture)
2) 로마 건축(B.C 146 ~ A.D 365)

Ⅴ. 로마의 대표적인 건축물
1. 판테온 신전
2. 공중목욕탕

Ⅵ. 로마의 서커스 문화

Ⅶ. 로마의 목욕 문화

Ⅷ. 로마의 멸망
1. 우발적인 사건의 연속과 야만족들의 침입(부수적인 요인)
2. 로마제국의 지리적인 구조
3. 인력의 부족
4. 경제적인 취약성
5. 고대의 저급한 과학기술
6. 불안정하고 부패한 정치문화

참고문헌

본문내용

. 대표적인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갑작스럽게 죽었고 그를 계승한 콤모두스가 마르쿠스의 원대한게르만 정복사업을 단행하지 않도록 결심한 것, 황제 발렌스가 378년 아드리아노플의 전투를 앞두고 증원군을 기다리지 않기로 판단한 것, 테오도시우스가 제국을 두명의 남자상속자에게 분할함으로 제국을 항구적으로 분열시키는데 기여한 것, 서고트족을 진압할 충분한 능력이 있던 스틸리코가 살해된 것 등이 있다. 이와 같은 사건들이 모두 로마제국에 안좋은 쪽으로 결정되었고 여기에 야만족의 침입이 겹쳐 로마제국 의 붕괴가 촉진되었다는 것이다. 이 설명은 나름대로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예로 들은 사건들 중의 어느 한 가지만이라도 다른 쪽으로 결정이 났더라면 로마제국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로마제국의 멸망에는 이것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존재한다.
2. 로마제국의 지리적인 구조
로마제국은 중간에 지중해를 둔 도우넛 모양의 지리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지중해는 로마제국에 있어서 큰 자산이었다. 왜냐하면 지중해는 고대 세계에 있어서 가장 유용한 해상수송이라는 가장 유용한 운송수단을 제공했고 지중해 연안 전역을 단일 제국으로 묶어 둘 수 있게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육지의 국경선이 사람이 거주 가능한 면적에 비하여 지나치게 길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따라서 국경지대에 심각한 위협이 있을 때 그것들을 방어하는데 막대한 인원과 자원이 소모되었고 군사 이외의 다른 중요한 활동들에는 보다 적은 인력과 자원을 할애하는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국경선 방어의 난점은 동방보다는 서방의 제국에서 더욱 극심하였고 이 때문에 서로마제국이 먼저 멸망한 것이다. 서로마제국은 약 2400km의 국경선을 방어하여야 하였고 더욱 동로마를 침입한 이민족이 콘스탄티노플이라는 철벽에 가로막혀 서로마로 방향을 돌리는 일도 비일비재 하였다. 이에 비하여 동방의 제국은 잘 정비된 군대와 관료조직이 존재하고 있었고 국경도 서방보다는 안전하였다. 동쪽에 사산조 페르시아라는 초거대 위협세력이 존재하였지만 문명국이었던 관계로 외교적인 협상을 통해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인력의 부족
방어해야 하는 국경선은 넓고 극심해져 가는 야만족의 침입은 많은 인력수요를 유발하였지만 이에 비하여 로마제국의 인구는 정체됨으로 극심한 인력의 부족이라는 문제점을 유발하였다. 왜 인구가 증가하지 않았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낮은 의료수준과 (로마에는 특이하게 군단기지를 제외하면 전문적인 종합병원이 거의 없었다.) 제국이 부유해져 감에 따라 출산율의 저하라는 문제점이 나타났던 것이다.
4. 경제적인 취약성
실상 제국의 크기에 비하여 로마제국의 경제는 매우 취약했다. 과거에는 제국의 번영이 정복전쟁을 통한 전리품의 유입으로 유지되었지만 아우구스투스 이후 로마의 정복전쟁이 중지되고 정복전쟁이 없어짐에 따라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나게 된다. (물론 아우구스투스 황제 이후에도 쳐들어갈 곳은 있었다. 게르만과 사산조 페르시아. 하지만 게르만은 쳐들어가봤자 남는 것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고 사산조는 매우 부유했지만 공격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강력했다) 로마의 경제는 기본적으로 농업과 사치품의 교역이었는데 농업은 뻔한 사람과 가축의 노동력 공급에 의존했기 때문에 노력에 비하여 부가가치의 생산이 너무 적었고 사치품의 교역도 더 이상 정복전쟁으로 확보할 수 없게 된 귀금속들을 고갈시켰던 것이다. 귀금속의 고갈이라는 문제점은 더욱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는데 고대는 아시디시피 화폐와 재정체계가 액면상의 무게와 가치를 지는 귀금속주화(주로 금, 은)에 의존하는 체계였고 역대 로마의 황제들은 귀금속주화의 순도를 계속 떨어뜨리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금과 은대신 비슷한 금속을 섞어치기 하는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로마황제들의 악화의 남발은 필연적으로 화폐가치의 하락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고 이후 치명적인 인플레이션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또한 국방상의 이유로 재정상의 필요가 폭증하게 됨에 따라 로마의 후기로 가면 갈수록 농민들에 대한 세금은 점점 무거워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자영농의 몰락과 농민의 소작농화 현상이 점점 더 심해져갔던 것이다(자영농의 몰락은 필연적으로 국방상의 질 저하라는 문제점으로 나타났다.)
5. 고대의 저급한 과학기술
로마제국의 고질적인 인력부족과 경제적 취약성이라는 이면에는 좀더 고질적인 문제가 한 가지 깔려 있었는데 그것은 고대의 과학기술이 극히 저조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이다. 역동적인 과학기술의 부재는 바로 경제성장의 부재를 의미하였다. 왜냐하면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않는 한 뻔한 노동력만으로는 생산성을 향상시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6. 불안정하고 부패한 정치문화
로마제국 멸망의 또 다른 근본적인 원인의 하나는 바로 제국의 불안정하고 부패한 정치문화였다. 야만족이 쳐들어오는 긴급한 상황에서조차도 후기 로마인들은 제위를 계승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고 관리들은 착복, 뇌물수수에 몰두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인력자원이 파괴적인 제위 쟁탈전에서 소모되었고 이러한 권력투쟁은 국경의 방어를 약화시켰던 것이다. 제국의 관리들은 끊임없이 부정부패를 저질렀고 부자나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부와 권력을 이용하여 그들에게 부과되는 세금과 같은 재정적인 부담은 모두 피하였다. 이러한 부담은 모두 중하층 농민이나 상인들에게로 전가되었고 농민들이 고통을 당하게 됨에 따라 그렇지 않아도 약한 경제를 더욱 취약화 시켰다.
참고문헌
- 김주한(1998), 서양의 역사 : 갈등의 2천년, 역사교양사
- 도널드 R·더들리(1997), 로마 문명사, 현대 지성사
- 박상진(2005), 지중해 문명의 바다를 가다, 히스토리아
- 안드로 몬텔리, 김정하 역(2001), 로마 제국사, 까치출판사
- 이주천(1996), 로마의 대카르타고 정책과 한국의 대북정책, 채문연구소
- 조규창(1983), 고려대학교 법학논집, 로마법상의 선의취득
- 하웅용(2004), 로마검투사경기의 사회사적 해석, 한국체육학회지 4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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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3.19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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