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김춘수의 시 꽃
Ⅲ. 김춘수의 시 꽃을 위한 서시
Ⅳ. 김춘수의 시 인동 잎
Ⅴ. 김춘수의 시 이중섭 8
Ⅵ. 김춘수의 시 나이지리아
Ⅶ. 김춘수의 시 처용
참고문헌
Ⅱ. 김춘수의 시 꽃
Ⅲ. 김춘수의 시 꽃을 위한 서시
Ⅳ. 김춘수의 시 인동 잎
Ⅴ. 김춘수의 시 이중섭 8
Ⅵ. 김춘수의 시 나이지리아
Ⅶ. 김춘수의 시 처용
참고문헌
본문내용
하여 익명의 정조를 환기하는 것이다. 주체를 타자로부터 분리시키고 마침내 시적 주체마저 분리하는 이러한 실험은 시적 결백성에 가깝다. 다 같은 서술적 이미지라도 타자로부터 탈주하는 이미지에는 주체의 믿음이 있는 반면 주체로부터 탈주하는 이미지는 그러한 순수한 주체마저 의심한다. 그러므로 나이지리아는 고립적 이데올로기와 그것의 해제라는 이중적 속성을 가진다. 이 탈주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 반복되는 리듬이다.
첫 행과 마지막 행에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를 반복되는 리듬은 상자처럼 시 전체를 둘러싸고 있어 내부의 ‘바람소리’와 ‘승냥이 울음’을 공명하게 한다. 그래서 ‘바다’의 시각적 이미지마저 ‘바람소리’와 ‘승냥이 울음’에 충돌하면서 청각적 이미지로 변한다. 이 변화는 전반부 “바람이 불면 승냥이가 울고/ 바다가 거멓게 살아서/ 어머님 곁으로 가고 있었다”는 슬픔의 정조가 서서히 고조되는 것으로 쉽게 확인된다. 슬픔의 정조는 후반부 “승냥이가 울면 바람이 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빛나던 이빨/ 이빨은 부러지고 승냥이도 죽고”에서 전반부의 ‘바람’과 ‘승냥이’의 자리가 바뀌면서 공명이 더 높아진다. 고조된 정조를 다시 가라앉히는 장치가 “바람 소리”에 거친 “승냥이 울음소리”를 생략한 것이다. 이 시에서 슬픔의 정조가 있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어떤 이미지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하고 부르는 리듬에 공명할 뿐이다. 이러한 공명에 의하여 이 시는 주문으로 변한다. 주문은 차츰 고조되었다가 다시 가라앉지만 공명틀이라 할 수 있는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라는 울림에 의하여 우리의 영혼은 계속하여 전율하게 된다. 이 주문에서 기표의 울림 이상의 기의적인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Ⅶ. 김춘수의 시 처용
인간들 속에서
인간들에게 밟히며
잠을 깬다.
숲속에서 바다가 잠을 깨듯이
젊고 튼튼한 상수리나무가
서 있는 것을 본다.
남의 속도 모르는 새들이
금빛 깃을 치고 있다.
처용 전문
이 작품과 처용가와의 연관성은 처용의 아내를 급탈한 역신의 폭력성과 김춘수가 겪은 역사적 폭력성이 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악된다. “인간들 속에서 인간들에게 밟히며 잠을” 깨는 처용은 이 초기 처용 연작시편의 시의식을 핵심을 보여준다. 그는 외부 세계의 폭력으로부터 비롯된 자의 소외의식을 견뎌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흡사 역신과 자기 처의 사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신라 처용의 그것과도 같다. 화자는 고통과 슬픔을 이겨내고 있으며 이러한 인고의 정신이야말로 “젊고 튼튼한 상수리나무”를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된다. 그러나 갖은 모욕을 인고의 정신으로 무화시키는 작업은 당사자의 가슴에 상처의 흔적을 남긴다. “남의 속도 모르는 새들”이란 영웅적 행위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이들이다. 이들의 행위는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 처용의 상처는 생각하지 않고 “금빛 깃”이라는 허망한 수식만을 선사할 뿐이다. 김춘수는 처용을 통해서 처용이 행한 성자적 자기 완성을 말하려 하지 않으며 그 이면에 존재한 슬픔과 방황의 세계에 대한 강조에 초점을 맞춘다.
참고문헌
김현, 김춘수와 시적 변용, 김춘수시 연구, 학문사, 1989
김혜숙, 김춘수의 처용 시편에 나타난 세계관 연구, 부산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2
박윤우, 김춘수의 시론과 현대적 서정시학형성, 한국현대시론사, 모음사, 1992
신동근, 김춘수 시 연구, 공주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5
원형갑, 김춘수의 무의미의 의미구조, 김춘수화갑기념논문집, 1982
이창민, 김춘수 시 연구, 고려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9
이승훈, 김춘수론 시적 인식의 문제, 현대시학, 1977
첫 행과 마지막 행에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를 반복되는 리듬은 상자처럼 시 전체를 둘러싸고 있어 내부의 ‘바람소리’와 ‘승냥이 울음’을 공명하게 한다. 그래서 ‘바다’의 시각적 이미지마저 ‘바람소리’와 ‘승냥이 울음’에 충돌하면서 청각적 이미지로 변한다. 이 변화는 전반부 “바람이 불면 승냥이가 울고/ 바다가 거멓게 살아서/ 어머님 곁으로 가고 있었다”는 슬픔의 정조가 서서히 고조되는 것으로 쉽게 확인된다. 슬픔의 정조는 후반부 “승냥이가 울면 바람이 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빛나던 이빨/ 이빨은 부러지고 승냥이도 죽고”에서 전반부의 ‘바람’과 ‘승냥이’의 자리가 바뀌면서 공명이 더 높아진다. 고조된 정조를 다시 가라앉히는 장치가 “바람 소리”에 거친 “승냥이 울음소리”를 생략한 것이다. 이 시에서 슬픔의 정조가 있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어떤 이미지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하고 부르는 리듬에 공명할 뿐이다. 이러한 공명에 의하여 이 시는 주문으로 변한다. 주문은 차츰 고조되었다가 다시 가라앉지만 공명틀이라 할 수 있는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라는 울림에 의하여 우리의 영혼은 계속하여 전율하게 된다. 이 주문에서 기표의 울림 이상의 기의적인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Ⅶ. 김춘수의 시 처용
인간들 속에서
인간들에게 밟히며
잠을 깬다.
숲속에서 바다가 잠을 깨듯이
젊고 튼튼한 상수리나무가
서 있는 것을 본다.
남의 속도 모르는 새들이
금빛 깃을 치고 있다.
처용 전문
이 작품과 처용가와의 연관성은 처용의 아내를 급탈한 역신의 폭력성과 김춘수가 겪은 역사적 폭력성이 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악된다. “인간들 속에서 인간들에게 밟히며 잠을” 깨는 처용은 이 초기 처용 연작시편의 시의식을 핵심을 보여준다. 그는 외부 세계의 폭력으로부터 비롯된 자의 소외의식을 견뎌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흡사 역신과 자기 처의 사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신라 처용의 그것과도 같다. 화자는 고통과 슬픔을 이겨내고 있으며 이러한 인고의 정신이야말로 “젊고 튼튼한 상수리나무”를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된다. 그러나 갖은 모욕을 인고의 정신으로 무화시키는 작업은 당사자의 가슴에 상처의 흔적을 남긴다. “남의 속도 모르는 새들”이란 영웅적 행위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이들이다. 이들의 행위는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 처용의 상처는 생각하지 않고 “금빛 깃”이라는 허망한 수식만을 선사할 뿐이다. 김춘수는 처용을 통해서 처용이 행한 성자적 자기 완성을 말하려 하지 않으며 그 이면에 존재한 슬픔과 방황의 세계에 대한 강조에 초점을 맞춘다.
참고문헌
김현, 김춘수와 시적 변용, 김춘수시 연구, 학문사, 1989
김혜숙, 김춘수의 처용 시편에 나타난 세계관 연구, 부산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2
박윤우, 김춘수의 시론과 현대적 서정시학형성, 한국현대시론사, 모음사, 1992
신동근, 김춘수 시 연구, 공주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5
원형갑, 김춘수의 무의미의 의미구조, 김춘수화갑기념논문집, 1982
이창민, 김춘수 시 연구, 고려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9
이승훈, 김춘수론 시적 인식의 문제, 현대시학, 1977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