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김춘수의 시 세계
1. 존재 탐구의 시
2. 무의미 시
Ⅲ. 김춘수시의 담론구성체
1. 동일화의 두 양상
1) 재현적 은유
2) 절대적 은유
2. 반동일화의 두 양상
1) 이미지의 절대화
2) 리듬의 절대화
Ⅳ. 김춘수 무의미시의 자아인식과 시간의식
1. 자아와 대상의 소멸
2. 주체 파멸과 주체 현존의 변증법
3. 명상의 시간성과 영원성에의 지향
Ⅴ. 김춘수 무의미시의 색채
1. 유년회귀의 퇴행적 시제
2. 관념의 거부와 평화
3. 이미지의 변용과 무의미의 의미
Ⅵ. 김춘수 처용연작의 시 의식
1. 내성적 자아와 소외의식
2. 유폐적 자아와 한의 내면화
3. 탈전기적 자아와 비극 극복 의지
참고문헌
Ⅱ. 김춘수의 시 세계
1. 존재 탐구의 시
2. 무의미 시
Ⅲ. 김춘수시의 담론구성체
1. 동일화의 두 양상
1) 재현적 은유
2) 절대적 은유
2. 반동일화의 두 양상
1) 이미지의 절대화
2) 리듬의 절대화
Ⅳ. 김춘수 무의미시의 자아인식과 시간의식
1. 자아와 대상의 소멸
2. 주체 파멸과 주체 현존의 변증법
3. 명상의 시간성과 영원성에의 지향
Ⅴ. 김춘수 무의미시의 색채
1. 유년회귀의 퇴행적 시제
2. 관념의 거부와 평화
3. 이미지의 변용과 무의미의 의미
Ⅵ. 김춘수 처용연작의 시 의식
1. 내성적 자아와 소외의식
2. 유폐적 자아와 한의 내면화
3. 탈전기적 자아와 비극 극복 의지
참고문헌
본문내용
리에
군함이 한 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
여름에 본 물새는
죽어 있었다.
물새는 죽은 다음에도 울고 있었다.
한결 어른이 된 소리로 울고 있었다.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가 가라앉고
바다가 없는 해안선을
한 사나이가 이리로 오고 있었다.
한쪽 손에 죽은 바다를 들고 있었다.
처용단장 I-4 전문
우울한 분위기를 제시하고 있는 위의 시에서도 바다의 심상이 중요한 의미를 이룬다. “겨울의 비”, “군함”, “죽은 물새”는 바다의 원형성을 훼손하는 데 기능하는 소재들이다. 아름답고 맑은 바다의 이미지를 희구하였던 시인에게 바다의 부정성은 존재의 근간을 위태롭게 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으로 발전한다. 김춘수의 시에서 “눈”은 주로 순수와 순결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겨울에 눈이 아닌 비가 내리고 있는 겨울 바다는 존재의 원형성을 회복하기에 더욱 멀리 있는 것 같다. 순수와 순결을 상징하는 “눈”의 상징성이 소거되면서 비 내리는 겨울 바다는 비극적 분위기를 강화한다. 다시 겨울 바다가 사라진 자리에 “군함”이 닻을 내리고 있다는 진술이 나온다. “군함”은 전쟁을 치르기 위한 커다란 배이므로 바다의 풍요로운 원형성을 회복시키지 못한 채 오히려 세계에 폭력을 휘두르는 존재가 된다. 그런데 화자는 이 세계의 폭력성에 대하여 저항하는 태도를 지향하지 않은 채 그것을 내면화하게 된다. 다만 공포만이 존재한다. 이러한 공포스러운 분위기 앞에서 물새는 죽을 수밖에 없다. 여기 물은 새가 살 수 없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물새는 여름의 시간 동안 아름다웠던 바다를 기억한다. 물새가 죽어서도 울고 있는 것은 사라진 바다에 대한 미련과 동경 때문이다. 죽은 물새는 “한결 어른이 된 소리”의 울음을 통해서 더 깊은 죽음의 세계로 치닫는다.
3. 탈전기적 자아와 비극 극복 의지
돌려다오.
불이 앗아 간 것, 하늘이 앗아 간 것, 개미와 말똥이 앗아 간 것,
여자가 앗아 가고 남자가 앗아 간 것,
앗아간 것을 돌려다오.
불을 돌려다오. 하늘을 돌려다오. 개미와 말똥을 돌려다오,
여자를 돌려주고 남자를 돌려다오.
쟁반 위의 별을 돌려다오.
돌려다오.
처용단장 II-1 전문
“이 시는 의식의 상태를 서술적 표·상과 무의미한 리듬으로 구축하고 있을지라도 의미를 형성하는 술어가 두드러져 의미의 해체가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라고 한 지적 역시 이러한 서술어의 반복성에 대한 통찰이겠다. 아홉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돌려다오”와 여섯 번 반복되고 있는 “앗아간 것”으로 인하여 특이한 운율을 형성하는 이 시의 화자는 신라 처용이 행한 체념과 인고의 자세와는 달리 강한 어조로써 자신이 잃은 것을 회복하려고 한다. “앗아간 것”이라는 어휘보다 “돌려다오”가 더 많이 반복되는 것을 보아도 화자의 적극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두 어휘의 의미만을 고려하더라도 신라 처용가와의 상관성은 어느 정도 드러난다. 한편 시인은 또 다른 이면적인 맥락을 통하여 작품의 구조를 역동적으로 심층화시킨다. 2, 3행과 5, 6행을 자세히 살펴보면 언어와 실제,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관계가 전복되고 있다. 2행에서 앗아간 것의 주어가 5행에서는 앗아간 것의 목적어로 나타난다. 이는 역신이 처용 아내를 겁탈했다는 처용가의 화소가, 언어가 실제를 배제하고 시니피앙이 시니피에를 회피한다는 의미로 치환되었기 때문이다. 배제와 회피 또한 폭력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하지 않고는 실제의 세계에 다다를 수 없다.
그러나 언어는 인간과 실제의 완전한 만남을 허락하지 않는다. 인간과 실제 사이에 가로놓인 언어는 인간과 시니피에, 인간과 의미의 만남을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드는 폭력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언어가 지닌 의미적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인간은 온전한 실존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런데 언어의 의미적 한계를 초월하는 일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언어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만 언어의 의미를 무화하는 과정만을 일삼을 수 있을 뿐이다. 의미가 제거된 언어만을 남기는 일, 시니피에를 상실한 시피니앙만을 남기는 일을 통하여 김춘수는 언어로부터의 해방을 꿈꾸었다. 그는 실재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언어의 폭력성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언어의 무의미화를 추구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김춘수의 “무의미시”다. 그것은 완전한 의미의 해체가 아니었다.
살려다오.
북 치는 어린 곰을 살려다오.
북을 살려다오.
오늘 하루만이라도 살려다오.
눈이 멎을 때까지라도 살려다오.
눈이 멎은 뒤에 죽여다오.
북 치는 어린 곰을 살려다오.
북을 살려다오.
처용단장 II-3 전문
이 시 역시 “살려다오”가 일곱 번 반복되면서 운율적 기교가 전면에 부각된다. “살려다오”는 앞의 시에 나온 “돌려다오”와 같은 의미망을 형성한다. 죽어가고 있으면서도 북을 두드려야 하는 “어린 곰”은 역신에게 급탈당한 후 그 순결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처용의 아내와 연결된다. 여인에게 순결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거기에는 인격이 손상되고 존재가 위협받는 경험을 하고 있는 처용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의 화자 역시 처용 자신 혹은 시인 자신으로 보아야 한다. 이 “살려다오”의 발화 주체가 처용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상처받은 자신에 대한 구원 욕망이며 또한 그 아내에 대한 순결 회복 의지일 것이다. 이 문제는 시인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요컨대 이 시는 완전한 의미의 소멸을 이루었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비유적 의미나 지시적 의미를 의도적으로 제외시키려고 노력했고 또한 그것을 통하여 시인의 전기적 삶에 대한 투영을 자제하는 한편, 운율적 요소를 작품의 전면에 부각시켰을 따름이다.
참고문헌
◈ 김춘수, 김춘수 전집, 민음사, 1994
◈ 김종태, 한국현대시와 전통성, 하늘연못, 1999
◈ 김두한, 김춘수의 시세계, 문창사, 1992
◈ 김두한, 김춘수 시 연구, 효성여대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991
◈ 이남호, 김춘수 문학앨범, 웅진출판, 1995
◈ 이은정, 김춘수와 김수영 시학의 대비적 연구, 이화여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2
◈ 오세영, 20세기 한국시의 연구, 새문사, 1989
군함이 한 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
여름에 본 물새는
죽어 있었다.
물새는 죽은 다음에도 울고 있었다.
한결 어른이 된 소리로 울고 있었다.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가 가라앉고
바다가 없는 해안선을
한 사나이가 이리로 오고 있었다.
한쪽 손에 죽은 바다를 들고 있었다.
처용단장 I-4 전문
우울한 분위기를 제시하고 있는 위의 시에서도 바다의 심상이 중요한 의미를 이룬다. “겨울의 비”, “군함”, “죽은 물새”는 바다의 원형성을 훼손하는 데 기능하는 소재들이다. 아름답고 맑은 바다의 이미지를 희구하였던 시인에게 바다의 부정성은 존재의 근간을 위태롭게 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으로 발전한다. 김춘수의 시에서 “눈”은 주로 순수와 순결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겨울에 눈이 아닌 비가 내리고 있는 겨울 바다는 존재의 원형성을 회복하기에 더욱 멀리 있는 것 같다. 순수와 순결을 상징하는 “눈”의 상징성이 소거되면서 비 내리는 겨울 바다는 비극적 분위기를 강화한다. 다시 겨울 바다가 사라진 자리에 “군함”이 닻을 내리고 있다는 진술이 나온다. “군함”은 전쟁을 치르기 위한 커다란 배이므로 바다의 풍요로운 원형성을 회복시키지 못한 채 오히려 세계에 폭력을 휘두르는 존재가 된다. 그런데 화자는 이 세계의 폭력성에 대하여 저항하는 태도를 지향하지 않은 채 그것을 내면화하게 된다. 다만 공포만이 존재한다. 이러한 공포스러운 분위기 앞에서 물새는 죽을 수밖에 없다. 여기 물은 새가 살 수 없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물새는 여름의 시간 동안 아름다웠던 바다를 기억한다. 물새가 죽어서도 울고 있는 것은 사라진 바다에 대한 미련과 동경 때문이다. 죽은 물새는 “한결 어른이 된 소리”의 울음을 통해서 더 깊은 죽음의 세계로 치닫는다.
3. 탈전기적 자아와 비극 극복 의지
돌려다오.
불이 앗아 간 것, 하늘이 앗아 간 것, 개미와 말똥이 앗아 간 것,
여자가 앗아 가고 남자가 앗아 간 것,
앗아간 것을 돌려다오.
불을 돌려다오. 하늘을 돌려다오. 개미와 말똥을 돌려다오,
여자를 돌려주고 남자를 돌려다오.
쟁반 위의 별을 돌려다오.
돌려다오.
처용단장 II-1 전문
“이 시는 의식의 상태를 서술적 표·상과 무의미한 리듬으로 구축하고 있을지라도 의미를 형성하는 술어가 두드러져 의미의 해체가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라고 한 지적 역시 이러한 서술어의 반복성에 대한 통찰이겠다. 아홉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돌려다오”와 여섯 번 반복되고 있는 “앗아간 것”으로 인하여 특이한 운율을 형성하는 이 시의 화자는 신라 처용이 행한 체념과 인고의 자세와는 달리 강한 어조로써 자신이 잃은 것을 회복하려고 한다. “앗아간 것”이라는 어휘보다 “돌려다오”가 더 많이 반복되는 것을 보아도 화자의 적극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두 어휘의 의미만을 고려하더라도 신라 처용가와의 상관성은 어느 정도 드러난다. 한편 시인은 또 다른 이면적인 맥락을 통하여 작품의 구조를 역동적으로 심층화시킨다. 2, 3행과 5, 6행을 자세히 살펴보면 언어와 실제,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관계가 전복되고 있다. 2행에서 앗아간 것의 주어가 5행에서는 앗아간 것의 목적어로 나타난다. 이는 역신이 처용 아내를 겁탈했다는 처용가의 화소가, 언어가 실제를 배제하고 시니피앙이 시니피에를 회피한다는 의미로 치환되었기 때문이다. 배제와 회피 또한 폭력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하지 않고는 실제의 세계에 다다를 수 없다.
그러나 언어는 인간과 실제의 완전한 만남을 허락하지 않는다. 인간과 실제 사이에 가로놓인 언어는 인간과 시니피에, 인간과 의미의 만남을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드는 폭력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언어가 지닌 의미적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인간은 온전한 실존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런데 언어의 의미적 한계를 초월하는 일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언어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만 언어의 의미를 무화하는 과정만을 일삼을 수 있을 뿐이다. 의미가 제거된 언어만을 남기는 일, 시니피에를 상실한 시피니앙만을 남기는 일을 통하여 김춘수는 언어로부터의 해방을 꿈꾸었다. 그는 실재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언어의 폭력성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언어의 무의미화를 추구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김춘수의 “무의미시”다. 그것은 완전한 의미의 해체가 아니었다.
살려다오.
북 치는 어린 곰을 살려다오.
북을 살려다오.
오늘 하루만이라도 살려다오.
눈이 멎을 때까지라도 살려다오.
눈이 멎은 뒤에 죽여다오.
북 치는 어린 곰을 살려다오.
북을 살려다오.
처용단장 II-3 전문
이 시 역시 “살려다오”가 일곱 번 반복되면서 운율적 기교가 전면에 부각된다. “살려다오”는 앞의 시에 나온 “돌려다오”와 같은 의미망을 형성한다. 죽어가고 있으면서도 북을 두드려야 하는 “어린 곰”은 역신에게 급탈당한 후 그 순결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처용의 아내와 연결된다. 여인에게 순결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거기에는 인격이 손상되고 존재가 위협받는 경험을 하고 있는 처용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의 화자 역시 처용 자신 혹은 시인 자신으로 보아야 한다. 이 “살려다오”의 발화 주체가 처용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상처받은 자신에 대한 구원 욕망이며 또한 그 아내에 대한 순결 회복 의지일 것이다. 이 문제는 시인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요컨대 이 시는 완전한 의미의 소멸을 이루었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비유적 의미나 지시적 의미를 의도적으로 제외시키려고 노력했고 또한 그것을 통하여 시인의 전기적 삶에 대한 투영을 자제하는 한편, 운율적 요소를 작품의 전면에 부각시켰을 따름이다.
참고문헌
◈ 김춘수, 김춘수 전집, 민음사, 1994
◈ 김종태, 한국현대시와 전통성, 하늘연못, 1999
◈ 김두한, 김춘수의 시세계, 문창사, 1992
◈ 김두한, 김춘수 시 연구, 효성여대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991
◈ 이남호, 김춘수 문학앨범, 웅진출판, 1995
◈ 이은정, 김춘수와 김수영 시학의 대비적 연구, 이화여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2
◈ 오세영, 20세기 한국시의 연구, 새문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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