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교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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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 그 입으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하나님의 자녀 되는)일을 통하여 최상의 영광을 받으신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모이기에 힘써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부터 교회의 모임을 마련하셨다. 창세기 3장 8, 9절에 의하면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사람들과 만나시고 말씀하시기를 원하셨다. 히브리서 10장 19∼39절에 같은 뜻이 나타난다. 어떤 사람처럼 함께 모이는 습관을 포기하지 말고 대신에 그들은 더 함께 모이기 위하여 격려했다(25절). 여기서 모임은 하나님의 존재와 권위를 인정하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복주시는 교제를 위함일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인간들은 은총을 받는 거룩한 모임이다. 믿는 백성의 조상이 되기 위해 부름받았던 아브라함과 같이, 우리들도 하나님의 존전에 부름을 받았다(벧전 2:9). 하나님의 부르심은 "에클레시아"라는 의미로서 신약성경에서 자주 교회를 지칭하는 말로 쓰여졌다.
예수께서는 사역 초기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오라(come into me) 누구든지 오라"고 하셨다. 일단 교회는 모여드는 곳이어야 한. 믿는 자도, 믿지 않는 자도 모이는 곳이 되어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고 저들의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초대교회는 환경적인 박해가 있었음에도 날마다 성전이든지 집에서든지 모이기에 힘썼다. 그리고 그 모임의 성격은 우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 공동체로서의 모임이었다. 하나님이 세상 가운데서 교회를 불러내신 것은 바로 자신의 이름을 위하고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하신 일이었다(행15:14). 그러므로 교회는 우선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다같이 찬 몸을 이루어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그들 자신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롬 12:2) 예배 공동체가 가장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든 교회는 예배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중요성보다는 프로그램이나 사역을 더 강조하는 듯한 인상을 갖게 한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이런 저런 일로 분주한 마르다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앞에 예배자로 있는 마리아를 칭찬한 것만 보더라도 예배와 사역은 다같이 중요하나 우선적으로 우리가 예배자가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신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교육이나 봉사, 전도사역을 통하여 교회를 성장시키려는 노력조차도 교회 모임의 최우선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의 교회 속에서 먼저 자신이 예배자인가를 살피는 동시에 우리 모든 지체들이 공동체로 존재하고 있는가를 확인하여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배에 실패하면서도 사역을 계속해나가기 시작하면 당장은 신바람나게 흥이 나서 해나갈 수 있지만 우리 자신의 영적인 깊은 부분이 금새 메말라버리는 상태를 맛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교회의 필요와 욕구를 추구하기 이전에 항상 먼저 주님 앞에 예배하는 공동체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우선 순위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할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 공동체로 교회가 존재할 때, 하나님은 그 예배 공동체에게 찬송도 주시고, 기도도 주시고, 간증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예배 공동체로서의 하나된 교회(하나님×예배자들)는 또한 각 지체의 은사들을 서로 나누어야(그리스도인÷은사)한다. 즉 나눔 공동체로서 교회의 모습이 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몸의 각 지체들처럼 서로 돕는 유기적인 조화를 이를 수 있기를 원하고 계신다. 따라서 교회는 서로 받은 말씀과 기도의 제목과 간증과 찬송을 나누는 교제가 필요하며, 서로의 은사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봉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서로 배우며 가르치는 양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가르치는 자와 양육자를 따로 떼어 생각하는데 실은우리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나눌 때 양육이 되어진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자도 실질적으로는 주님으로부터 배우는 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역자나 평신도 사역자가 주장하는 형태가 아니라 우리 주님이 주장하시는 나눔 공동체인 것이다.
교회는 몸된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의 지체들이 서로 합하여 건강한 몸을 이루도록 지체(성도)들이 양육되고 성숙되어 나가야 한다. 예컨데 입은 음식물을 위에다 공급하고 코는 허파에 공기를, 허파는 심장에 산소를, 심장은 피를 각 마디 지체에 나누어줌으로써 온전한 몸을 이룬다. 이와 같이 교회는 가르치는 은사, 섬기는 은사 등 그 가진 각양의 은사대로 서로를 세워주는, 주고 또 나누는 (Giving and Sharing) 관계가 되어져야만 한다. 세상의 공동체는 주고받는 원리 (Gvie and Take)이지만 교회는 서로 가진 은사를 주고 나누는 나눔 공동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라는 주님의 허락하신 유기적인 몸의 지체로서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만일 교회가 더불어 사는 나눔 공동체로서의 삶에 실패하게 되면 교회는 기형적인 신체 불구자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역은 교회 속에서 주님이 주신 각양의 은사를 서로 주고 나누고 교제하는 가운데서 시작되지만 실질적으로 가정과 사회와 땅끝까지 파송되면서 그 효력이 나타난다. 이렇게 예배공동체로서, 나눔 공동체로서 성공한 교회는 선교 공동체로 나아가게 되는데, 그 목적 역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와 나눔 공동체의 모습을 확대하면서 가정과 사회, 땅끝까지 나아갈 때, 하나님의 분명한 역사의 손길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다 보냄을 받은 선교 공동체이다. 우리는 먼저 가정에 하나님의 교회로부터 보냄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에서 교회에서처럼 예배하며, 나누며 섬기기 시작할 때 선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회와 직장, 그리고 땅끝까지 파송된 선교 공동체의 일원들도 마찬가지다. 거리와 문화, 그리고 그 범위와 약간의 상황 차이가 있을 뿐 모두 다 선교 공동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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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6.02
  • 저작시기2005.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38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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