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한국 근대사-개항기 Matrix
<지배-피지배>
<정치 변동>
<사회 경제>
<생활 문화>
<사상 이념>
<대외관계 - 한국:외국>
<대외관계 - 외국:외국>
<지배-피지배>
<정치 변동>
<사회 경제>
<생활 문화>
<사상 이념>
<대외관계 - 한국:외국>
<대외관계 - 외국:외국>
본문내용
미국 등 서방 세계에 파견된 사절단.
1882년 조미 수호 조약의 체결로 1883년 주한 공사 푸트가 조선에 부임하였다. 이에 고종은 임오군란 이후 비대해진 청나라의 세력을 견제한다는 뜻에서 정사에 민영익, 부사에 홍영식, 그 외에 수행원들을 대동시킨 친선 사절단을 서방 세계에 파견하였다.
1884 조이수호통상조약 체결
▶ 조이수호통상조약 - 1884년(고종 21) 6월 26일 조선과 이탈리아 사이에 체결된 수호통상조약. 조약내용은 조미수호통상조약과 대동소이한 불평등조약이었다.
1884 조러수호통상조약 체결
1884 한성조약
▶ 한성조약 - 1884년(고종 21)의 갑신정변 뒤처리를 마무리 짓기 위하여 일본과 맺은 조약.
1885 영국, 거문도점령
▶ 거문도 사건 - 아프카니스탄에서 대립하고 있던 영국과 러시아의 긴장이 한반도로 확장되어 일어난 사건이다. 조러밀약설이 나돌자 영국은 블라디보스토크를 공격하여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견제하려고 동양함대를 보내 공격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하였다. 영국군은 거문도를 해밀턴항이라 명명하고 요새화 하였다. 1887년 청의 이홍자의 중재로 조선의 영토를 점령하지 않는다는 러시아의 약속을 받고 영국군이 철수함으로써 해결되었다.
1886 조불통상조약체결
1887 영국, 거문도에서철수
1888 조러육로통상장정
▶ 조러육로통상장정 - 경흥이 개방되어 러시아인의 두만강 자유항행이 인정되고 조선인이 노령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1889 함경도방곡령
▶ 함경도방곡령 - 방곡령은 조선에서 흉년이 들면 지방관의 직권으로 실시할 수 있었는데, 개항이후 곡물이 일본 유출이 늘어나면서 곡물 가격의 폭등 현상이 나타났고, 여기에 흉년까지 겹치게 되었다. 따라서 방곡령의 시행은 일본상인의 농촌시장 침투와 지나친 쌀, 콩 등의 곡물반출을 막기 위하여 내린 조치였다.
1890 함경도 방곡령 철폐
▶ 방곡령 철폐 - 일본 측의 강압으로 철폐.
1892 조오수호통상조약 체결
▶ 조오수호통상조약 - 1892년(고종 19) 6월 23일 조선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국교와 통상을 목적으로 체결한 조약.
내용은 우호관계의 유지, 최혜국 대우 등 조미수호통상조약과 비슷하다. 또, 부속통상장정은 선박의 출입수속, 하물의 양륙 ·적재 및 납세 등을 규정하였다.
1894 일본, 내정개혁요구
1894 잠정합동조관체결
1895 인아거일책 실시
▶ 인아거일책 -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 세력을 철저히 견제.
1895 친러내각 성립
▶ 친러내각의 성립 - 박영효가 일본교관에게 훈련을 받은 훈련대로 왕국 호위를 시도하였으나 국왕의 거부로 실패하고 국왕 왕비 암살 음모 혐의로 박영호 등 친일파가 음도불궤죄로 일본에 재차 망명하자 이범진 이윤용 이완용 등이 친러내각이 구성되었다(김홍집 박정양 제3차 연립내각, 1895.7.5).
1895.8 을미사변
▶ 을미사변 - 1895년(고종 32)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가 주동이 되어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일본세력 강화를 획책한 정변.
결국 을미사변은 항일의병활동의 원인과 아관파천의 계기가 되어, 한국은 러시아의 보호국과 같은 지위로 떨어졌고, 일본의 식민지화계획에 차질을 가져왔다.
<대외관계 - 외국:외국>
1860 베이징조약
▶ 베이징조약 - 베이징에서 청국이 외국과 체결한 10여 조약에 대한 통칭. 이 조약을 고비로 청나라에서는 보수배외파가 물러나고, 조약체결에 나선 공친왕을 중심으로 한 대외화친파가 득세하였다. 그를 장으로 하여 처음으로 외교 전문기관인 총리아문이 설립되었고,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기 위하여 영국·프랑스 등의 원조를 받으면서 이른바 ‘양무운동’이 권장되었다.
1868 메이지유신
▶ 메이지유신 - 일본 메이지 왕 때 막번체제를 무너뜨리고 왕정복고를 이룩한 변혁과정.
이 유신으로 일본의 근대적 통일국가가 형성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성립하였고, 정치적으로는 입헌정치가 개시되었으며, 사회 ·문화적으로는 근대화가 추진되었다. 또, 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 천황제적 절대주의를 국가구조의 전 분야에 실현시키게 되었다. 유신을 이룩한 일본은 구미에 대한 굴복적 태도와는 달리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해서는 강압적 ·침략적 태도로 나왔다. 1894년의 청일전쟁 도발, 1904년의 러일전쟁의 도발은 그 대표적인 예이며, 그 다음 단계가 무력으로 한국을 병합한 것이다.
1884 청불전쟁
▶ 청불전쟁 - 1884년에 프랑스가 베트남에 대한 종주권을 얻으려고 청나라에 대하여 일으킨 전쟁.
청불전쟁은 갑신정변에 영향을 끼쳤다. 청불전쟁으로 1500명에 달하는 청군이 철수하자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 인사들은 적기로 판단 갑신정변을 시도하였다.
1885 텐진조약
▶ 텐진조약 - 중국 톈진에서 청국과 여러 외국 간에 맺은 조약의 총칭. 최초의 톈진조약은 애로호사건에 관련하여 1858년 6월, 러시아·미국·영국·프랑스 등 각 4개국과 청국이 맺은 4개의 조약이다. 이 4개 조약은 모두가 편무적 최혜국조관이 삽입되어 있으므로 동일한 조약이라고도 할 수 있다.
1894 청일전쟁
▶ 청일전쟁 - 이홍장과 이등박문간에 시모노세키조약이 체결되어 일본은 요동반도와 대만을 할양받고 최혜국조관과 배상금 2억냥 지급을 청으로부터 약속받았다. 그리고 조선의 자주국 승인으로 청의 종주권이 완전 부인되었다.
1895.1下關 조약
▶ 하관조약 - 청 ·일전쟁의 전후처리를 위해 1895년 4월 17일 청국과 일본이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체결한 강화조약.
1895.4 三國干涉
▶ 삼국간섭 -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 삼국이 일본을 견제하여 일본은 요동반도를 반환하는 수모를 겪었고 러시아가 만주로 진출하자, 이후 일본은 러시아를 가상적국으로 생각하였다.
1896 러일 협상
▶ 러일 협상 - 청일전쟁 후 삼국간섭을 받았던 일본이 러시아와 맺은 협상. 삼국간섭 후 일본은 한국문제에 관하여 러시아와의 타협에 힘써 협상을 벌인 결과 러 일 양국은 한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을 것, 러시아는 한일 양국 간에 이루어지는 상공업관계의 발전을 방해하지 않을 것 등을 합의하였으나, 러시아가 동북방면에 대한 점령정책을 강행하자 러일전쟁이 일어났다.
1882년 조미 수호 조약의 체결로 1883년 주한 공사 푸트가 조선에 부임하였다. 이에 고종은 임오군란 이후 비대해진 청나라의 세력을 견제한다는 뜻에서 정사에 민영익, 부사에 홍영식, 그 외에 수행원들을 대동시킨 친선 사절단을 서방 세계에 파견하였다.
1884 조이수호통상조약 체결
▶ 조이수호통상조약 - 1884년(고종 21) 6월 26일 조선과 이탈리아 사이에 체결된 수호통상조약. 조약내용은 조미수호통상조약과 대동소이한 불평등조약이었다.
1884 조러수호통상조약 체결
1884 한성조약
▶ 한성조약 - 1884년(고종 21)의 갑신정변 뒤처리를 마무리 짓기 위하여 일본과 맺은 조약.
1885 영국, 거문도점령
▶ 거문도 사건 - 아프카니스탄에서 대립하고 있던 영국과 러시아의 긴장이 한반도로 확장되어 일어난 사건이다. 조러밀약설이 나돌자 영국은 블라디보스토크를 공격하여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견제하려고 동양함대를 보내 공격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하였다. 영국군은 거문도를 해밀턴항이라 명명하고 요새화 하였다. 1887년 청의 이홍자의 중재로 조선의 영토를 점령하지 않는다는 러시아의 약속을 받고 영국군이 철수함으로써 해결되었다.
1886 조불통상조약체결
1887 영국, 거문도에서철수
1888 조러육로통상장정
▶ 조러육로통상장정 - 경흥이 개방되어 러시아인의 두만강 자유항행이 인정되고 조선인이 노령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1889 함경도방곡령
▶ 함경도방곡령 - 방곡령은 조선에서 흉년이 들면 지방관의 직권으로 실시할 수 있었는데, 개항이후 곡물이 일본 유출이 늘어나면서 곡물 가격의 폭등 현상이 나타났고, 여기에 흉년까지 겹치게 되었다. 따라서 방곡령의 시행은 일본상인의 농촌시장 침투와 지나친 쌀, 콩 등의 곡물반출을 막기 위하여 내린 조치였다.
1890 함경도 방곡령 철폐
▶ 방곡령 철폐 - 일본 측의 강압으로 철폐.
1892 조오수호통상조약 체결
▶ 조오수호통상조약 - 1892년(고종 19) 6월 23일 조선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국교와 통상을 목적으로 체결한 조약.
내용은 우호관계의 유지, 최혜국 대우 등 조미수호통상조약과 비슷하다. 또, 부속통상장정은 선박의 출입수속, 하물의 양륙 ·적재 및 납세 등을 규정하였다.
1894 일본, 내정개혁요구
1894 잠정합동조관체결
1895 인아거일책 실시
▶ 인아거일책 -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 세력을 철저히 견제.
1895 친러내각 성립
▶ 친러내각의 성립 - 박영효가 일본교관에게 훈련을 받은 훈련대로 왕국 호위를 시도하였으나 국왕의 거부로 실패하고 국왕 왕비 암살 음모 혐의로 박영호 등 친일파가 음도불궤죄로 일본에 재차 망명하자 이범진 이윤용 이완용 등이 친러내각이 구성되었다(김홍집 박정양 제3차 연립내각, 1895.7.5).
1895.8 을미사변
▶ 을미사변 - 1895년(고종 32)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가 주동이 되어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일본세력 강화를 획책한 정변.
결국 을미사변은 항일의병활동의 원인과 아관파천의 계기가 되어, 한국은 러시아의 보호국과 같은 지위로 떨어졌고, 일본의 식민지화계획에 차질을 가져왔다.
<대외관계 - 외국:외국>
1860 베이징조약
▶ 베이징조약 - 베이징에서 청국이 외국과 체결한 10여 조약에 대한 통칭. 이 조약을 고비로 청나라에서는 보수배외파가 물러나고, 조약체결에 나선 공친왕을 중심으로 한 대외화친파가 득세하였다. 그를 장으로 하여 처음으로 외교 전문기관인 총리아문이 설립되었고,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기 위하여 영국·프랑스 등의 원조를 받으면서 이른바 ‘양무운동’이 권장되었다.
1868 메이지유신
▶ 메이지유신 - 일본 메이지 왕 때 막번체제를 무너뜨리고 왕정복고를 이룩한 변혁과정.
이 유신으로 일본의 근대적 통일국가가 형성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성립하였고, 정치적으로는 입헌정치가 개시되었으며, 사회 ·문화적으로는 근대화가 추진되었다. 또, 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 천황제적 절대주의를 국가구조의 전 분야에 실현시키게 되었다. 유신을 이룩한 일본은 구미에 대한 굴복적 태도와는 달리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해서는 강압적 ·침략적 태도로 나왔다. 1894년의 청일전쟁 도발, 1904년의 러일전쟁의 도발은 그 대표적인 예이며, 그 다음 단계가 무력으로 한국을 병합한 것이다.
1884 청불전쟁
▶ 청불전쟁 - 1884년에 프랑스가 베트남에 대한 종주권을 얻으려고 청나라에 대하여 일으킨 전쟁.
청불전쟁은 갑신정변에 영향을 끼쳤다. 청불전쟁으로 1500명에 달하는 청군이 철수하자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 인사들은 적기로 판단 갑신정변을 시도하였다.
1885 텐진조약
▶ 텐진조약 - 중국 톈진에서 청국과 여러 외국 간에 맺은 조약의 총칭. 최초의 톈진조약은 애로호사건에 관련하여 1858년 6월, 러시아·미국·영국·프랑스 등 각 4개국과 청국이 맺은 4개의 조약이다. 이 4개 조약은 모두가 편무적 최혜국조관이 삽입되어 있으므로 동일한 조약이라고도 할 수 있다.
1894 청일전쟁
▶ 청일전쟁 - 이홍장과 이등박문간에 시모노세키조약이 체결되어 일본은 요동반도와 대만을 할양받고 최혜국조관과 배상금 2억냥 지급을 청으로부터 약속받았다. 그리고 조선의 자주국 승인으로 청의 종주권이 완전 부인되었다.
1895.1下關 조약
▶ 하관조약 - 청 ·일전쟁의 전후처리를 위해 1895년 4월 17일 청국과 일본이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체결한 강화조약.
1895.4 三國干涉
▶ 삼국간섭 -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 삼국이 일본을 견제하여 일본은 요동반도를 반환하는 수모를 겪었고 러시아가 만주로 진출하자, 이후 일본은 러시아를 가상적국으로 생각하였다.
1896 러일 협상
▶ 러일 협상 - 청일전쟁 후 삼국간섭을 받았던 일본이 러시아와 맺은 협상. 삼국간섭 후 일본은 한국문제에 관하여 러시아와의 타협에 힘써 협상을 벌인 결과 러 일 양국은 한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을 것, 러시아는 한일 양국 간에 이루어지는 상공업관계의 발전을 방해하지 않을 것 등을 합의하였으나, 러시아가 동북방면에 대한 점령정책을 강행하자 러일전쟁이 일어났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