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식인문화 풍습과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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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의 식인문화 풍습과 사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중국의 식인 풍습의 배경
2. 역사 속 식인 풍습의 사례
3. 식인풍습과 유교의 상관관계
4. 식인풍속이 중국인에게 미친 영향
5. 한국의 식인사례

본문내용

기려졌다.
노신은 그의 작품 ‘광인일기(狂人日記)’ 에 식인의 피해망상증에 걸린 광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식인 풍습이 만연한 사회상을 폭로했다. 광인일기에 나타나는 주인공의 과대망상증은 정신병자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의 실제상황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예로부터 수없이 사람을 먹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드나 확실치는 않다. 나는 역사를 완전히 뒤집어 보았다. 이 역사에는 연대가 없고 어느 페이지에나 인의도덕(仁義道德)이라는 글자가 줄줄이 써있다. 어차피 잠도 오지 않기 때문에 한밤중까지 열심히 찾아 보았다. 그러자 글자와 글자사이에서 겨우 글자가 나왔다. 책의 한면에 ‘식인’이라는 두글자가 써 있었다.
노신은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아Q정전(아Q正傳)’ 에서 다룬 노예근성과 함께 이 식인 풍습을 중국의 ‘2대악’으로 규정, 근절시키려고 노력했는데 당시 중국의 식인풍습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4. 식인풍습이 중국인들에게 미친 영향
대만의 사학자 ‘황문웅’은 중국의 식인문화가 수 천 년을 이어 면면히 지속되었고 이 식인문화를 알지 못하면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논할 수가 없으며 중국인의 보편적인 사고방식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인은 왜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를 믿지 않는지, 왜 돈을 그렇게 중시하는지, 왜 먹는 것에 그렇게 집착하는지, 눈앞에서 사람이 쓰러져 죽어가도 미동조차 않는 특유의 무관심은 어디서 나오는지, 왜 중국인은 3대뿐아니라 주변 친인척이 한집에 모여 사는지, 그 엄청난 인내심은 어디서 나오는지, 중국계 기업의 조직문화는 왜 친인척 위주인지 (그래서 중국계 기업의 수명은 다른 나라 기업에 비해 짧은 편이다.) 등등 모든 중국인의 일상문제를 살피고자 한다면 그 저변에 깔린 중국특유의 식인풍습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의 서로에 대한 불신은 식인문화에 기인한다. 노신은 ‘중국인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오랫동안의 식인풍습은 그의 말처럼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신의 그 자체를 없애 버렸다. 중국인들이 신의를 말할 때는 그들이 가장 위기에 몰렸을 때로 그때만 예나 도덕 따위의 단어가 나온다. 식인풍습, 즉 약육강식의 단순한 논리는 강자 앞에서는 토끼가 되고 약자 앞에선 무서운 맹수가 되어버리는 중국인 특유의 사고방식을 잘 설명해주는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춘추전국시대에 떠도는 말 중 하나가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성인(聖人)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식인 풍습이 발생하게 된 이유는 고대시대부터 식인이 형벌의 하나로 성문화 된 것, 막강한 황제권의 존재, 식인의 미화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큰 직접적 원인은 식량부족에 있었다. 그 당시 식량의 개념은 곧 목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농업기술 발달 이후 식량자체는 그 가치가 하락되었고 그 자리를 대신해 새로운 가치로 자리 잡은 것이 바로 ‘돈’이었다. 식인풍습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절박한 생존본능을 추구하게 만들었고 그 본능은 대대로 유전되었으며 세대가 지날수록 더욱 강렬해져 생명과도 같은 ‘돈’에 대한 집착을 낳았다는 것이다.
전쟁, 기근 등으로 식인이 대대적으로 시작되었을 때 잡아먹히는 인간의 종류와 순서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었다. 일단 유괴하기 쉬운 어린이를 시작으로 여행자, 독신자 및 독거노인 등으로 순서가 옮겨간다. 다음은 비교적 소규모의 가족단위를 이루는, 즉 처치하기 쉬운 가정이 다음차례가 되고, 비슷한 규모의 가족단위 간에는 관청에 줄이 있어 면벌이 쉬운 가정이 그렇지 못한 가정을 잡아먹는다. 마지막 단계에 가면 부모가 자식을, 남편이 아내를, 형이 동생을 잡아먹었다. 중국 특유의 대가족제도는 결국 식인 풍습으로부터 자기 자신과 가족을 지켜내려는 눈물겨운 제도이며 여러 명이 뭉쳐서 숫자적 우위를 바탕으로 잡아먹힐 확률을 낮추고 생존확률을 높이려는데 주목적이 있는 것이다. 잡아먹히는 순서로 봤을 때 머릿수가 많은 가정이 맨 나중에 속했기 때문이다.
임어당은 삼대 뿐 아니라 외삼촌가족, 숙부가족, 고모가족 등 거의 모든 구성원이 한 집에서 사는 중국의 대가족제도가 자연스럽게 중국인들의 인내력을 키웠다고 말했다. 식인풍습은 중국특유의 대가족제도를 만들어내고 그 대가족제도는 구성원에게 매우 큰 인내를 강요했다. 싫어도 자신의 속을 드러내지 않고 유들유들하게 넘어가는 처세 또한 좁은 공간에서 많은 수의 사람과 부딪혀야 하는 현실에 대처하기 위해 자연스레 몸에 익혔다는 것이다.
5. 한국 식인사례
(1)조선왕조실록 선조 09(1576년)년 6월26일
"배를 갈라 사람을 죽인 자를 체포하는 일을 해조로하여금 공사로 만들게 하라."하였는데,
이는 경연관의 아룀에 의한 것이다. 이 때 경외의 사람들이 인육(人肉, 사람의 고기)과 사람의 간담(肝膽, 간과 쓸개)를 창질(瘡疾, 매독)을 치료하는 약으로 쓰기 때문에 흉악한 무리들이 소아(小兒)를 사람이 없는 곳으로 유괴함은 물론이고 비록 장성한 남녀라도 혼자 길을 가는 경우에는 겁략하여 모두 배를 가르고 쓸개를 꺼내었는데, 이는 그 쓸개를 팔면 많은 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무에 묶여 배를 갈리운 자가 산골짝에 잇달아 있으므로 나무꾼들의 나무를 하러 갈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법을 만들어 현상금을 걸고 체포하게 한 것이다.
(2)징비록(조선 중기의 문신인 서애 유성룡(1542∼1607)이 임진왜란 때의 상황을 기록한 것이다.징비란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 중 한 소절에 따르면:
[심지어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러
길에는 죽은 사람들의 뼈가 잡초처럼 흩어져 있었다...] 라는 소절이 있었다.
※참고자료 및 참고사이트
3000년 중국역사의 어두운 그림자 신서원 김택민 2006년
중국문화의 여행 국학자료원 엄영옥 2005년
중국의 식인문화 (주)교문사 황문웅 1992년
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no=240927&page=3
http://sulme.x-y.net/conf_anti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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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8.11
  • 저작시기2009.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49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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