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사상 및 인과 예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공자의 사상 및 인과 예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공자의 삶과 철학

2. 공자의 사상적 배경

3. 공자의 논어
(1) 신(信)
(2) 군자(君子)
(3) 학문(學問)
(4) 인애(仁愛)와 덕치(德治)

4. 공자의 사회사상
(1) 공자의 교육사상
(2) 공자의 정치사상
(3) 공자의 종교사상
(4) 공자의 덕치주의 사상
(5) 공자의 개혁주의 사상

5. 공자의 인과 예
(1) 인(仁)
(2) 예(禮)

6. 공자에 대한 역사적 평가

7. 참고자료

본문내용

제자 자로를 [떨어진 삼베조각으로 기운 옷을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칭찬한 일이 있었다. 맹자에 의하면, 공자는 자기가 옳지 않은 경우에는 가장 미천한 사람과 다투는 것조차 두려워하였으나, [자신을 돌이켜보아도 옳다고 느끼면 수천, 수만 명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도 밀고 나가겠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비슷한 의미에서 그는 군주의 명령보다 일개 대신의 양심 이 더 권위가 있다고 공언하기도 하였다. 그는 인간상호간의 차이가 발생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을 도덕으로 보았다. 도덕적으로 위대한 사람은 거의 없을지라도, 누구나 다 그렇게 될 가능성은 있으며,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가문이나 재산 또는 지위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자신의 행동 즉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5. 공자의 인과 예
자공이 “나는 부자(夫子)께서 옛 글에 대해 강론하신 것은 들을 수 있었으나 성(性)과 천도(天道)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논어,公治長)고 말한 바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공자의 제자들은 도덕의 구체적 실행보다도 도덕의 궁극적인 문제인 인간에게서의 도덕성과 천도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공자는 제자들이 ‘효’를 물어오더라도 구체적 실행방법을 가르쳤을 뿐 결코 일반적인 추상론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바로 공자사상의 특색이다. 이것은 공자의 시대가 윤리학시대의 전기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하겠다. 춘추시대 이전에도 ‘예’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종교의례, 특히 제사의례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의례의 실행은 개인적이기보다는 집단적이고 사회적이었다. 당연히 집단인·사회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것을 배워야 했다. 공자는 이러한 사회적 영향을 받았고, 때문에 그의 사상은 추상적이고 이론적이기보다는 구체적이고 효용적이었다.
(1) 인(仁)
공자는 인의 개념을 여러가지 윤리적인 덕의 기초가 되는 심적 상태라고 정의한다. 이를테면 논어에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것을 인이라고 한다.(克己復禮)”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다시 말하면 “자기의 사욕을 꾹 억누르고 예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 바로 인이다.”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인의 근본은 심적 상태를 말한 것이므로 인이 그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해주고 있다. 인(仁)의 의미는 ‘인(忍)’과 같으며 ‘인내(忍耐)’를 뜻한다. 여기서 ‘인’은 ‘자기 자신을 억제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즉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을 먼저 세우고 자신의 뜻을 이루고 싶으면 남의 뜻을 먼저 이루도록 해주는(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논어,雍也) 사람이 인한 사람인 것이다. 이런 사람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깊기 때문에 타인이 위태롭고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이런 것을 맹자는 ‘차마 못하는 사람의 마음(不忍人之心)’이라고 표현했고, 또 이것을 인이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인에는 양 측면 즉 자기에 대한 측면과 타인에 대한 측면이 있다. 이때 인은 자기에 대해서는 인(忍)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불인(不忍)할 것을 요구한다.
(2) 예(禮)
공자에게서 예 개념은 춘추시대 일반적인 예의 개념과 거의 비슷하다. 즉 두 가지 측면에서 예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논어팔일편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제사(祭祀)나 가옥의 건축양식을 신분에 걸맞지 않게 한 것이 봉건적 계급 구별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하여 이것을 예를 거스른 행위로 보았다. 당시 봉건사회는 계급적 차별 자체가 예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사회를 규제하는 규칙을 예라고 했던 것이다.좌전에서 보이는 ‘나라의 근본’으로서의 예란 바로 이런 경우의 예라 하겠다. 다른 하나는 논어향당(鄕黨)편에서 엿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 공자는 생활의 모든 면이 예에 의해 규정받아야 한다고 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예에 관한 두 가지의 경우를 가지고 이제 극기복례(克己復禮)라는 말에서의 인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그것은 다름 아닌 “자기를 억제하고 사회규범과 윤리규칙을 실천하는 것이 인이다.”라는 말로 결론내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시대와 사회를 막론하고 이런 의미에서의 인은 사회생활을 유지시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요구되는 것이며, 이는 사회협동생활의 존립을 위한 기본요건이 된다. 이와같은 공자의 가르침이 시대와 지역의 차이를 초월하여 어느 정도 보편성을 갖는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6. 공자에 대한 역사적 평가
공자는 한 개인의 지적 자질과 업적에 의하여 인류의 역사에 깊은 영향을 준 소수의 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공자는 후세에 마친 영향만큼이나 많은 전설과 일화가 그 이름을 아주 두텁게 감싸고 있는 까닭에 그에 대한 진실을 알기가 매우 어렵다. 진실의 왜곡과 수식은 두 가지의 전혀 다른 동기에서 발생한다. 한편으로는 독실한 추종자들이 공자를 추앙하고자 한 나머지 그에 대한 기록을 신성화 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자와 같은 혁명적인 사상가로 말미암아 자신의 이익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이 그들이 다져놓은 특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공자가 말하고자 하는 뜻을 왜곡시키고 거짓되게 기술한 것이다.
이러한 많은 난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빙성이 있는 자료를 토대로 공자의 진면목을 엿볼 수가 있다. 그에게는 일생을 통하여 거의 신비적, 기적적인 냄새가 없고, 따라서 그 향상의 도정에 있어서 하늘의 계시나 영감 따위에 의한 비약의 순간이 없었다. 결국 그는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일상생활에 충실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자기의 세계를 개척하여 넓혀갔다. 그리하여 어디까지나 현실에 입각하여 현세에서 이상을 구축하고, 그리고 그 이상이 초자연의 힘을 빌리는 일이 없이 인간 스스로의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서 실현 가능한 일임을 증명하려고 한 사림인 것이다. 공자의 사상이 현대에 그대로 재현될 수는 없을지라도 오랜 세월동안 불멸의 생명력을 가졌던 원동력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것은 현대의 찰라적이고 감각적인 쾌락을 탐닉하는 현대인에게 시사하여 주는 바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7. 참고자료
김학주, 공자의 생애와 사상, 명문당
채인후, 공자의 철학, 예문서원
김태길, 공자사상과 현대사회. 철학과 현실사
  • 가격1,2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9.08.12
  • 저작시기2009.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49137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