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는지 나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둘째, 리더십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다. 이스라엘 민족이 멸망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지도자들의 리더십의 부재가 컸음을 알 수 있었다. 하나님의 뜻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올바로 해석하지 못하는 지혜자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올바르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 이스라엘 왕들은 결국 이스라엘 공동체 전부를 멸망의 길로 이끌어 갔음을 책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앞에서 있는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할 때 그 목회자를 따르는 많은 영혼들까지 멸망으로 치닫는 것을 우리 주변에 있는 이단들을 통해 확실히 볼 수 있다. 이것은 비단 이단 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믿고,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기독교인들과 그들을 이끌어가는 목회자 역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고, 그것이 삶으로 드러나지 않는데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값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은 분명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도록 명령하시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신감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목회자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으로서 내가 똑바로 서 있지 못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보지 못하고 바로 전하지 못하고, 바로 결정하지 못한다면 수많은 영혼들까지도 함께 멸망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배움의 길에 서 있는 나를 더욱 채찍질함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셋째, 선지자로서의 예레미야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를 대입해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당시의 민족들의 귀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많은 고난을 받아야만 했던 예레미야를 생각하면서 나의 미래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 세상이 나에게 욕을 하고 핍박을 한다해도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선포할 수 있을까? 약간의 가난함과 궁핍함으로도 버거워하는 내가 과연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구원하실 것을 말씀해 주셨고 예레미야는 그것을 경험했지만, 과연 그 구원이 예레미야가 원했던 수준의 구원이었을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예레미야는 경험했지만 그의 삶이 고단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유다의 멸망을 보며, 자신의 삶을 동일화 했던 것은 자신의 고단했던 삶에 대한 스스로의 위로도 함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목회자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선지자의 삶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 길을 걸어갔는데 스스로를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렇기에 나의 삶이 고단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점검해 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둘째, 리더십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다. 이스라엘 민족이 멸망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지도자들의 리더십의 부재가 컸음을 알 수 있었다. 하나님의 뜻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올바로 해석하지 못하는 지혜자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올바르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 이스라엘 왕들은 결국 이스라엘 공동체 전부를 멸망의 길로 이끌어 갔음을 책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앞에서 있는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할 때 그 목회자를 따르는 많은 영혼들까지 멸망으로 치닫는 것을 우리 주변에 있는 이단들을 통해 확실히 볼 수 있다. 이것은 비단 이단 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믿고,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기독교인들과 그들을 이끌어가는 목회자 역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고, 그것이 삶으로 드러나지 않는데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값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은 분명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도록 명령하시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신감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목회자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으로서 내가 똑바로 서 있지 못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보지 못하고 바로 전하지 못하고, 바로 결정하지 못한다면 수많은 영혼들까지도 함께 멸망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배움의 길에 서 있는 나를 더욱 채찍질함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셋째, 선지자로서의 예레미야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를 대입해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당시의 민족들의 귀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많은 고난을 받아야만 했던 예레미야를 생각하면서 나의 미래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 세상이 나에게 욕을 하고 핍박을 한다해도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선포할 수 있을까? 약간의 가난함과 궁핍함으로도 버거워하는 내가 과연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구원하실 것을 말씀해 주셨고 예레미야는 그것을 경험했지만, 과연 그 구원이 예레미야가 원했던 수준의 구원이었을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예레미야는 경험했지만 그의 삶이 고단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유다의 멸망을 보며, 자신의 삶을 동일화 했던 것은 자신의 고단했던 삶에 대한 스스로의 위로도 함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목회자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선지자의 삶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 길을 걸어갔는데 스스로를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렇기에 나의 삶이 고단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점검해 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