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구속경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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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하나님의 구속경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내주하심은 바로 믿는 자와 인격적으로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는 성령 충만의 개념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결국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말은 성령의 지배를 받으라는 말이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은 바로 죄악을 떠나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살아가려고 애쓰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다시 말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초대교회 당시의 사도들이나 성도들처럼 성령 충만 받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오순절 주의가 말하는 성령세례를 받기위해 애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든지 죄악에 물들거나 타락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따라서 성도는 늘 성령 충만 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은 기도하는 삶을 통해 구현될 수 있다.
우리에게 믿음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칼빈은 믿음이 진리의 지식과 성령의 인침으로 성립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역시 이러한 과정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동시에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러나 화란의 후기 종교개혁 시에 믿음과 성령으로 인침을 분리시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특히 장키우스에 의해 성령의 은사들을 믿음의 은사와 구분하기 시작하므로 이렇게 믿음과 성령으로 인침을 시기적으로 선후의 일로 치부하였다. 이것은 로마 카톨릭의 견신교리와 유사한 것으로써 시작하는 믿음과 확증된 믿음을 구분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결국 이후에 감리교와 오순절 운동을 촉발시키는 계기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것의 부작용은 매우 크다. 오순절 신학의 만연과 알미니안 신학의 가르침에 의해 자기의 구원과 확신을 의심하고 자기가 성령 받았음을 확증할 수가 없어서 매우 당황하고 불안해하는 성도들을 양산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성령을 받은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실제로 아버지라고 부른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이 신자들이 거룩해져서 하나님 앞에 스스로 의롭게 되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을 때부터 그렇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함을 얻는 자는 그때부터 성령에 의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자는 죄와의 투쟁을 하게 된다.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는 자는 안팎의 죄와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성령을 받은 자들은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전도가 이루어지면,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되어지고, 그 선포 속에 성령께서 역사하시게 된다. 더불어 성령의 목표는 바로 거룩한 백성을 만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자들에게 성령은 거룩함을 유지하며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며, 결국 종국에 성도가 하나님 앞에 견인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다. 성령께서는 전도를 통해 성도 안에 내주하시게 되고, 그 내주는 거룩한 그리스도의 백성의 출현을 위해 이루어진다. 오순절 주의자들에 의해 변질된 성령의 능력 개념은 사실 바로잡혀야 할 것이다. 기적과 신유 능력의 행사가 성령의 능력이 아니다. 물론 그러한 것들도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가능한 것이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성령의 능력은 바로 복음전도의 능력이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각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이는 복음의 선포와 사람들의 예수 믿음이 발생하지 않으며, 또한 죄를 이길 수도 없다. 옛 사람을 죽이고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 안에 살게 되면, 죄악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성령의 능력은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를 수반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한 진리의 성경이 계시하시는 내용들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성도들에게 허락하시는 것이다.
성령의 임재는 곧 그리스도의 임재이다. 그런데 성령의 능력을 받으려면 기도를 통해서이다. 이것은 엄밀히 말해 성령의 인치심과는 다른 문제이다. 이미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에 의해 내주하심의 은혜를 입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죽이는 기도를 할 때, 육적인 방탕을 끊어버릴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된다. 이것을 통해 성도는 성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성화와 인간적 노력을 통해 성령 세례를 받는다는 알미니안적, 오순절파적 개념과는 그 순서부터가 다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세례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입기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능력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시는 은혜이므로, 사용되면 소진한다. 기도를 쉬게 되면, 받은 능력은 상실된다. 그러므로 자기를 죽이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게 되면 능력이 회복될 것이다. 오순절 주의자들이 성령세례의 상징으로 말하는 방언과 관련하여서는, 사실 성령세례 받고 방언하지 못하는 사도행전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경우는 설명할 수 없는 오류를 가지고 있다. 결국 방언 현상은 초대교회 당시에 일어났던 계시 형태의 방언과는 거리가 있으며, 심리적, 언어 기관적으로 나타나는 신비스런 현상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언 현상을 갈구하는 움직임은 오늘날에 와서 급격한 퇴조를 맞이하게 되었다. 방언과 더불어 오순절 및 은사운동의 세 가지 기본 은사로 불리는 통역도 점차 쇠락하였다. 성경계시의 주권적 영역에 도전하는 위험성을 보여주는 예언행위도 이단적 요소가 강하여 배척되어야 한다. 신유는 오순절 주의자들의 모습에서처럼 특정 인물에게만 주어져 능력을 행할 수 있게 하는 은사의 성격을 가진 것이 아니라, 성도가 하나님께 질병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료를 해 주시는 것이다. 결국, 오순절파의 성령론은 근본부터가 잘못되어 이단적 요소가 강하고, 더불어 알미니안과의 결합체적 성격을 가진 문제점도 갖고 있다. 개혁주의 성령 신학의 관점에서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써 중생과 동시에 함께하시는 보혜사이시며 성도를 이끄시는 내주하신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되는 곳에, 성령께서 사람들 속에 역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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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6.03.14
  • 저작시기2006.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9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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