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론][낭만주의][아도르노][프리드리히쉴러][와이츠][디키][김동인]낭만주의의 예술론, 아도르노의 예술론, 프리드리히 쉴러의 예술론, 와이츠의 예술론, 디키의 예술론, 김동인의 예술론 심층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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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예술론][낭만주의][아도르노][프리드리히쉴러][와이츠][디키][김동인]낭만주의의 예술론, 아도르노의 예술론, 프리드리히 쉴러의 예술론, 와이츠의 예술론, 디키의 예술론, 김동인의 예술론 심층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낭만주의의 예술론

Ⅲ. 아도르노의 예술론

Ⅳ. 프리드리히 쉴러의 예술론

Ⅴ. 와이츠의 예술론

Ⅵ. 디키의 예술론

Ⅶ. 김동인의 예술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러움의 영역에 도달하기 위한 투쟁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특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작가에게 미적 진리는 성스러움의 성스러움(Holy of Holies)이며 불멸의 불이다. 이를 탐색하기 위해 작가는 모든 그의 치장, 곧 모든 잘못된 경험적 자아의 은폐물을 벗어버려야만 한다. 예술의 제단에 희생당하기 위해 자아(the self)는 옷이 벗겨진다. 자아를 흔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아를 절멸하기 위해서 말이다. 죽음을 불사하는 글쓰기에 대한 이러한 과격한 언명은 카프카의 모더니티의 표상이면서 뚜렷하고 새로운 글쓰기 형식의 보증으로서 받아들여져 왔다. 한편, 옷에 대한 또 하나의 수사는 데카당, 심볼리즘, 예술을 위한 예술, 유겐트스타일과 같은 유럽 19세기의 세기말의 미학주의 운동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 옷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결국 상징적인 행위로서 예술 개념을 인식하는 것과 동일한 선상에 존재한다. 예술은 생에 대항한다. 예술만이 믿을 수 없는 종교를 대신할 수 있다. 보들레르를 비롯한 댄디들은 옷이라는 외관을 예술이라는 절대적 신념을 표상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김동인의 옷에 대한 지나친 결벽성은 바로 이 절대적 예술 개념이 내면화 된 것이다. 당대에 가장 철저하게 예술 절대주의 입장에 있었던 김동인이 두드러지게 데카단스의 표정을 지으려 했던 것은 예술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통해 자신을 타자로부터 분리하고자 했던 동일성의 욕망 때문이다.
김동인과 비슷한 관점에서 양주동은 옷과 구두, 모발이 신문학의 새로운 개념을 치환하던 사정을 소개하고 있다. 신문학에 대한 열정이 주로 일본에서 소개된 상징주의 문학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비롯되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양주동의 경우에도 그가 신문학을 처음 접한 것은 생전 모의 근대문학 16강이나 위천 백촌의 근대문학 10강등에서 읽었던 새로운 단어와 새로운 사조룰 통해서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생경하면서도 현란하게 마음을 동뜨게 했던 것은 바로 신과 영, 사람과 육, 영-육 일치, 상징과 같은 개념이었고 오스카와일드, 베를렌느, 보들레르 등의 상징주의 및 탐미주의계열의 시인, 소설가였다. 양주동의 고백은 근대문학의 개념 형성에 가장 적극적인 영향을 미친 문학의 기호는 바로 영, 육, 수성과 같은 육체와 영혼에 대한 주체적인 자각과 관계있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데카당과 탐미주의 문학의 심취가 옷에 대한 자각과 함께 병행된다는 점이다. 루바시까에 보헤미안넥타이를 매고 직접 고안한 구두를 신고 동경과 서울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은 신문학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의 차이 기호가 된다. 내가 그 책(근대문학 10강 등)에서 배운 새-말들은 어느것이나 내게 경이의 감을 주었지마는, 지금에도 특히 기억되는 것은 Fin du Secle(세기말). Tour d\'iviore(상아탑) 및 데카덩(decadent)이란 참으로 매력있는 세 프랑스語 단어였다. 나는 그 책을 읽고 나서 어쩐지 썩은 송장을 아름답다 노래한 악의 꽃의 작자 보오들레르가 좋았고, 일대의 소년 기재로 저 천재시 모음-의 작자 랭보와 그 동성 애인으로 압쌍트 통음자요 최고 음율 상징시 솬송 도톰(가을노래)의 작자 데카덩의 화신 베늘렌느가 좋았고, 자기가 손수 고안한 탐미복을 입고 런던의 거리를 유유히 만보하면서 아이들의 돌팔매를 태연히 무시하였다는 옥중기의 작자, 일대의 교아 오스카 와일드가 좋았다. 자칭 서구 문학의 신입생인 양주동은 신문학을 배우던 시기의 자신의 모습을 요동백시와 같았다고 적고 있다. 돼지를 치는 요동 사람이 흰돼지 새끼를 얻었다. 너무 신기하고 미물스러운 나머지 임금에게 바칠 요량으로 그 흰돼지새끼를 안고 서울로 가다가 중간에 요서땅에 닿았다. 놀랍게도 요서에는 돼지 색이 모두 흰색이었다. 그는 그만 흰돼지 새끼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고사. 데카덩이라는 새문자에의 탐닉은 자신만이 소유한 것으로서의 흰돼지의 절대 귀물과도 같은 대상에 대한 몰입이자 관심이었던 것이다. 김기진이나 박영희가 경향문학에로 관심을 돌리기까지, 그리고 김억, 주요한, 양주동 등이 시조나 민요 등 우리 전통으로 다시 관심을 돌리기까지 이 새문자에 대한 탐닉은 꾸준히 계속되고 있었다. 동인지 시대의 관념어나 개념어, 비애, 죽음, 퇴폐, 데카당의 열풍은 이 흰돼지새끼에 대한 관심과 몰입에 비견될 것이다. 보들리야르 식으로 말하면 어떤 차이나는 기호에 대한 인식이 이 같은 데카덩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었고 양주동에게는 그것은 한편으로는 예술의 차이(신문학)에 대한 표지로 다른 한편으로는 평범한 속인들로부터 자신을 뚜렷하게 구별해 주는 천재의 징표로서 이해되었다. 양주동은 춘원과의 철저와 중용에 대한 논쟁을 끝내고 난 뒤 아주 자랑스럽게 보헤미안 넥타이를 매고 루바시카를 입고 동경 거리를 활보했노라고 쓰고 있다. 그것은 춘원식 계몽주의에 대항하는 다른 계몽 의식의 드러냄이었다. 양주동의 이 옷에 대한 관심은 그가 <금성>을 창간하고 <백조>와 동렬에 올랐음을 선언하는 시기에도 똑같이 나타나 있다. 그의 예술 절대주의는 일종의 선민의식과 같았다. 기품과 운치와 음영을 중시하는 동양적 예술관과도 통해있다고 인식한 것은 당대 신문학을 섭렵하는 시기의 문인들에게는 거의 공통된 인식이었을 것이다. 그 기품이란 애당초 보들레르식의 사회에 대한 저항과는 그 질을 달리하는 것이었고 오히려 이들 근대문학 천재들을 타인들과 구별짓는 표지였다. 이장희를 추억하면서 양주동이 정관적 명상적 상징적의 의미는 사회적 현실적 비속화 경향과 대립된 의미라고 섰을 때 그들에게 예술은 하나의 절대적 가치가 된다. 그 절대적 가치로서의 예술관은 당대 예술과 예술가(문학인)의 동일성 욕망을 드러내는 주요한 계몽적 표지였다.
참고문헌
강미정(2000), 미학잡론, 논문
민주식(2002), 아름다움 그 사고와 논리, 영남대학교 출판부
오규원·임우기(1989), 예술의 이해, 서울예대출판부
에드워드·루시. 스미스(2002), 20세기 시각 예술, 예경
에른스트 피셔 외(1985), 예술의 새로운 시작, 지양사
윤일주, 예술이란 무엇인가, 을유문화사
H.리드(1991), 예술이란 무엇인가,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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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8.25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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