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로마의 장군, 카이사르
Ⅱ. 카이사르의 갈리아전기
제1권 (BC . 58년)
제2권 (BC. 57년)
제3권 (BC. 57 - 56년)
제4권 (BC. 55년)
제5권 (BC. 54년)
제6권 (BC. 53년)
제7권 (BC. 52년)
제8권 (BC. 51년)
Ⅱ. 카이사르의 갈리아전기
제1권 (BC . 58년)
제2권 (BC. 57년)
제3권 (BC. 57 - 56년)
제4권 (BC. 55년)
제5권 (BC. 54년)
제6권 (BC. 53년)
제7권 (BC. 52년)
제8권 (BC. 51년)
본문내용
개시하였다. 전투는 곳곳에서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이 전투는 카이사르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고 갈리인들은 카이사르에게 베르킹게토릭스와 무기를 인도하고 항복사절을 보내왔다. 이후 카이사르는 하이두이족의 영지로 진격하여 그 부족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라비에누스는 2개 군단을 이끌고 세콰니족의 영지로 향했고 카이사르는 비브락테에서 동영하기로 하였다. 이 해의 일이 카이사르의 편지에 의해 로마에 알려지자 20일간의 감사제가 결의되었다.
제8권 (BC. 51년)
아울루스 히르티우스의 기록
카이사르의 정복이 있은 뒤 갈리아인들은 완전히 위축되어 있었는데 이때 일시에 적대감을 다진 몇몇 부족이 연합을 구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비투리게스족은 갈리아에서도 유력한 부족이었는데 그 지역에 주둔한 1개 군단으로서는 그들의 호전적인 전쟁준비를 막을 수 없었다. 이에 카이사르는 기습을 감행했는데 이에 비투리게스족의 음모는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카이사르는 군단을 돌려 비브락테로 돌아왔는데 카르누데스족의 영지를 비투리게스족이 침공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동영지에 머문 지 18일만에 카르누데스족의 영지로 향하였다. 이에 카르누데스족은 겁을 먹고 뿔뿔히 흩어졌고 카이사르는 폭풍에서 병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케나붐에 진지를 구축하였다. 그리고는 적이 출몰한다는 곳으로 기병을 보내 약탈케 하였다.
이에 레미족은 사절을 보내 벨로바키족의 코레우스와 아트레바테스족의 콤미우스가 군대를 이끌고 수에시오네스 지역의 침공을 기도하고 있다고 알렸다. 이에 카이사르는 파비우스에게 진격하도록 명하였다. 이런식으로 카이사르는 각 군단이 고루 돌아가면서 전투를 하게 하였다. 벨로바키족의 영지로 진격한 로마군은 적의 대군에 놀랐지만 곧 싸우기로 결심하고 계곡 사이에 진을 견고하게 치고 참호를 파고 탑도 몇개 건조하였다. 적은 게르마니인의 기병 500을 충원받고 사기가 충전해 있었다. 적의 진지 또한 매우 견고해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는 쉽게 공략할수 없었다. 이에 카이사르는 12군단을 급히 부르고 트레보니우스의 3개 군단도 급히 오라고 명하였다. 레미족이 적의 계략에 빠져 베르티스쿠스가 전사하자 적의 사기는 더욱 충천하였다. 적은 로마군의 원군이 온다는 소식에 또 포위될것을 염려하여 군수물자와 노약자를 도시밖으로 빼돌렸다. 벨로바키인들은 수송대의 앞길에 불을 놓아 로마군의 시야를 가리고 도주하였다. 로마군은 곧 추격하였으나 적은 강력히 저항하여 10마일 뒤쪽에 진을 쳤다.
얼마 후 카이사르는 적 포로에 의해 벨로바키인이 로마군이 마초와 곡물을 수집이 예상되는 지역에 정예군을 매복시키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이에 카이사르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군단을 동원하여 마초와 곡물의 수집에 나섰다. 이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벨로바키인은 예정대로 정예군을 매복시켰고 성급하게 기습하다가 로마군에 의해 격퇴 당하였다. 이후 벨로바키인들은 로마군의 기병에 의해 패주하였고 로마군에 항복하였다. 그러나 콤미우스만이 도망쳐 게르마니인에게로 피신하였다.
가장 호전적인 벨로바키인들을 정복한 카이사르는 각 지역으로 군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 파비우스에게 25개의 보병대를 주어 갈리아의 가장 깊숙한 지역으로 파견하였는데, 그곳의 부족이 이미 무장하고 반기를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카이사르는 파비우스와 12군단으로 하여금 진압을 명하고 자신은 암비오릭스의 군대를 섬멸키 위해 출정하였다. 카이사르는 암비오릭스 세력내의 도시와 촌락을 초토화시키고 주민을 살상했다. 그 뒤 라비에누스에게 병력을 주어 트레베리족에게로 보냈다.
파비우스의 접근소식을 들은 둠나쿠스는 겁을 먹고 그 지역에서 후퇴하였다. 파비우스는 도주하는 적을 쫓아 전리품을 취하고 격렬한 전투를 벌여 1만2000의 적을 살상하고 군수물자를 노획하였다. 파비우스는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카르누테스족의 진지로 향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진해서 복속을 원하였고 인질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들에 영향받던 아르모이카이족으로부터도 항복을 받아내었다. 그러나 둠나쿠스는 자기 영토에서 쫓겨나 이리저리 도망하다가 갈리아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피신하였다.
한편 카이사르는 안토니우스를 벨로바키족의 영지에 15개 보병대와 함께 잔류시켜 벨가이인의 음모를 저지하였으며 카니니우스의 편지를 통해 드라페스와 루테니우스에 의해 저질러진 일을 알았다. 이에 카이사르는 병력을 이끌고 카니니우스에게로 진격하였다. 올셸로두놈에 도착한 그는 진지를 구축하고 적이 물을 구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에 적은 로마군의 진지에 불붙은 물통을 굴려 불을 내게 하고 그 틈에 로마군을 공격하였으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얼마 후 샘이 말라 물을 구하지 못하게 된 적들은 위축되어 결국 항복하였다. 카이사르는 이들이 다시는 모반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잔혹하게 다루었다. 드라페스는 며칠 간의 단식끝에 결국 사망하였다. 이 사이 라비에누스도 트레베리족의 영지에서 기병전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
그 뒤 카이사르는 벨가인의 영지에서 겨울을 났는데 콤미우스가 로마의 기병을 기습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안토니우스는 쿠아드라투스를 기병대장으로 임명하고 콤미우스를 뒤쫓도록 하였는데 그는 도리어 콤미우스의 계략에 빠져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콤미우스는 안토니우스에게 사절을 보내 그가 지시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하여 안토니우스는 이를 받아들이고 인질을 건네받았다. 카이사르가 벨가이인의 영지에서 겨울을 난것은 그들이 서로 우호관계를 맺어 반란을 음모치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카이사르는 벨가인들의 유력자에게 많은 선물을 주고 이탈리아로 향했는데 가는 도중 카이사르는 자신이 복점관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자유시와 속주를 방문하는일을 빠뜨리지 않았다. 여기서 카이사르는 극진한 환영과 대접을 받았다. 이후 카이사르는 전군을 트레베리족의 영지로 불러 열병하였다.
이후 원로원에서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에게 각각 일개군단씩을 파르티아 전쟁에 파견하라는 안이 통과되었다. 카이사르는 정적의 속셈을 전부 알고 있었지만 무력으로 해결하지 않고 정당한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해 원로원의 결의를 쫓아 군단을 새롭게 배치하고 자신은 이탈리아로 향하였다.
제8권 (BC. 51년)
아울루스 히르티우스의 기록
카이사르의 정복이 있은 뒤 갈리아인들은 완전히 위축되어 있었는데 이때 일시에 적대감을 다진 몇몇 부족이 연합을 구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비투리게스족은 갈리아에서도 유력한 부족이었는데 그 지역에 주둔한 1개 군단으로서는 그들의 호전적인 전쟁준비를 막을 수 없었다. 이에 카이사르는 기습을 감행했는데 이에 비투리게스족의 음모는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카이사르는 군단을 돌려 비브락테로 돌아왔는데 카르누데스족의 영지를 비투리게스족이 침공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동영지에 머문 지 18일만에 카르누데스족의 영지로 향하였다. 이에 카르누데스족은 겁을 먹고 뿔뿔히 흩어졌고 카이사르는 폭풍에서 병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케나붐에 진지를 구축하였다. 그리고는 적이 출몰한다는 곳으로 기병을 보내 약탈케 하였다.
이에 레미족은 사절을 보내 벨로바키족의 코레우스와 아트레바테스족의 콤미우스가 군대를 이끌고 수에시오네스 지역의 침공을 기도하고 있다고 알렸다. 이에 카이사르는 파비우스에게 진격하도록 명하였다. 이런식으로 카이사르는 각 군단이 고루 돌아가면서 전투를 하게 하였다. 벨로바키족의 영지로 진격한 로마군은 적의 대군에 놀랐지만 곧 싸우기로 결심하고 계곡 사이에 진을 견고하게 치고 참호를 파고 탑도 몇개 건조하였다. 적은 게르마니인의 기병 500을 충원받고 사기가 충전해 있었다. 적의 진지 또한 매우 견고해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는 쉽게 공략할수 없었다. 이에 카이사르는 12군단을 급히 부르고 트레보니우스의 3개 군단도 급히 오라고 명하였다. 레미족이 적의 계략에 빠져 베르티스쿠스가 전사하자 적의 사기는 더욱 충천하였다. 적은 로마군의 원군이 온다는 소식에 또 포위될것을 염려하여 군수물자와 노약자를 도시밖으로 빼돌렸다. 벨로바키인들은 수송대의 앞길에 불을 놓아 로마군의 시야를 가리고 도주하였다. 로마군은 곧 추격하였으나 적은 강력히 저항하여 10마일 뒤쪽에 진을 쳤다.
얼마 후 카이사르는 적 포로에 의해 벨로바키인이 로마군이 마초와 곡물을 수집이 예상되는 지역에 정예군을 매복시키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이에 카이사르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군단을 동원하여 마초와 곡물의 수집에 나섰다. 이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벨로바키인은 예정대로 정예군을 매복시켰고 성급하게 기습하다가 로마군에 의해 격퇴 당하였다. 이후 벨로바키인들은 로마군의 기병에 의해 패주하였고 로마군에 항복하였다. 그러나 콤미우스만이 도망쳐 게르마니인에게로 피신하였다.
가장 호전적인 벨로바키인들을 정복한 카이사르는 각 지역으로 군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 파비우스에게 25개의 보병대를 주어 갈리아의 가장 깊숙한 지역으로 파견하였는데, 그곳의 부족이 이미 무장하고 반기를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카이사르는 파비우스와 12군단으로 하여금 진압을 명하고 자신은 암비오릭스의 군대를 섬멸키 위해 출정하였다. 카이사르는 암비오릭스 세력내의 도시와 촌락을 초토화시키고 주민을 살상했다. 그 뒤 라비에누스에게 병력을 주어 트레베리족에게로 보냈다.
파비우스의 접근소식을 들은 둠나쿠스는 겁을 먹고 그 지역에서 후퇴하였다. 파비우스는 도주하는 적을 쫓아 전리품을 취하고 격렬한 전투를 벌여 1만2000의 적을 살상하고 군수물자를 노획하였다. 파비우스는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카르누테스족의 진지로 향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진해서 복속을 원하였고 인질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들에 영향받던 아르모이카이족으로부터도 항복을 받아내었다. 그러나 둠나쿠스는 자기 영토에서 쫓겨나 이리저리 도망하다가 갈리아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피신하였다.
한편 카이사르는 안토니우스를 벨로바키족의 영지에 15개 보병대와 함께 잔류시켜 벨가이인의 음모를 저지하였으며 카니니우스의 편지를 통해 드라페스와 루테니우스에 의해 저질러진 일을 알았다. 이에 카이사르는 병력을 이끌고 카니니우스에게로 진격하였다. 올셸로두놈에 도착한 그는 진지를 구축하고 적이 물을 구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에 적은 로마군의 진지에 불붙은 물통을 굴려 불을 내게 하고 그 틈에 로마군을 공격하였으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얼마 후 샘이 말라 물을 구하지 못하게 된 적들은 위축되어 결국 항복하였다. 카이사르는 이들이 다시는 모반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잔혹하게 다루었다. 드라페스는 며칠 간의 단식끝에 결국 사망하였다. 이 사이 라비에누스도 트레베리족의 영지에서 기병전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
그 뒤 카이사르는 벨가인의 영지에서 겨울을 났는데 콤미우스가 로마의 기병을 기습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안토니우스는 쿠아드라투스를 기병대장으로 임명하고 콤미우스를 뒤쫓도록 하였는데 그는 도리어 콤미우스의 계략에 빠져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콤미우스는 안토니우스에게 사절을 보내 그가 지시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하여 안토니우스는 이를 받아들이고 인질을 건네받았다. 카이사르가 벨가이인의 영지에서 겨울을 난것은 그들이 서로 우호관계를 맺어 반란을 음모치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카이사르는 벨가인들의 유력자에게 많은 선물을 주고 이탈리아로 향했는데 가는 도중 카이사르는 자신이 복점관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자유시와 속주를 방문하는일을 빠뜨리지 않았다. 여기서 카이사르는 극진한 환영과 대접을 받았다. 이후 카이사르는 전군을 트레베리족의 영지로 불러 열병하였다.
이후 원로원에서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에게 각각 일개군단씩을 파르티아 전쟁에 파견하라는 안이 통과되었다. 카이사르는 정적의 속셈을 전부 알고 있었지만 무력으로 해결하지 않고 정당한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해 원로원의 결의를 쫓아 군단을 새롭게 배치하고 자신은 이탈리아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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