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불타는 전도자 존웨슬리 part별 요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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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A+]불타는 전도자 존웨슬리 part별 요약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무조건 성공만 할 수는 없다. 그도 고난 혹은 실패를 경험한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웨슬리가 가는 곳마다 사람이 많이 모이고, 그것을 흉내 내는 신도회 들 을 알 수 있는데, 이 때 생각난 것이 있다. 교회에서 오래 전에 들었던 듯한 말인데, “거룩한 자에게는 거룩한 자들이 따른다.”이다. 다시 말해, 거룩한 사람은 그 주변을 거룩하게 한다. 나도 존 웨슬리 같은 정말로 거룩한 자가 되어서 내 주변 사람들뿐 아니라, 환경까지도 거룩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난 웨슬리가 신성클럽에서 깨닳은 세 가지가 인상 깊었다. 특히 세 번째 배움인 성공적으로 그의 개인적 성결과 사회적 활동 사이에 균형을 이룬 것은 내가 상당히 닮고 싶은 부분이다. 난 개인적 성결과 사회적 활동을 많이 갈등하고 균형 잡지 못하며 불안해한다. 그래서인지 둘을 별개로 보며, 신앙심 또한 깊어지지 않는 것 같다. 웨슬리는 신성클럽을 통하여 이 두 가지 요소들을 실습함으로 양 쪽의 극단적인 활동을 피하였다. 물론 개인의 극기와 성결을 위한 것과 교제의 능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난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하고 또 나한테 필요로 하다고 느낀다. 나도 교회에서 소모임을 짧게 나마하는데, 그 짧은 시간에서나마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충족시켜야 겠다.
10장없음;
11장의 내용을 한줄로 요약하자면, 그것은 ‘수단과 목적을 혼동해서는 안된다’이다. 발표 준비를 위해서 이지만, 몇번 이고 읽고 또 읽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11장에는 자신이 있다고 감히 말 할 수 있겠다. 이번장은 말그대로 웨슬리의 복음전도의 수단에 대하여 알아 보는것이다. 크게 분류하면 ‘제도적 수단’과 ‘권면적 수단’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 수단에서 또 각 각 3가지 씩 나뉘게 된다.
이처럼 웨슬리는 하나의 수단으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수단으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복음을 전하는 수단인 것이지, 그것이 목적이 되지는 않는다고 웨슬리는 계속 강조하고 있다. 그중에서 나는 훈련이라는 제도적 수단의 한 부분이 인상깊게 떠오른다. 훈련이란 하나님의 나라로 나아가기 위하여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훈련 역시 한 가지가 아니라 기도 성경연구 금식 및 대화 이렇게 4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한다.
오늘날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로 나아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에게 다시하번 되물어 보아야 한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많은 훈련을 하고있냐고... 웨슬리는 우리에게 다시한번 자신을 되돌아보는 반성의 시간을 주었고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로 나가아는 방법 또한 제시해 주었다.
웨슬리는 회심을 경험한 후 부터 곧바로 복음 전화에 몰두했고, 많은 사람들이 변화되어 구원의 확신을 간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간증은 의심과 반대를 불러일으켰고 웨슬리가 생애의 마감을 할때까지 50여 년 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웨슬리가 당한 반대는 이처럼 교회로부터만 온 것이 아니었다. 모라비안들의 정적주의와 많은 논쟁을 벌렸고 급기야는 헤어지기도 했다. 영국 사회에 창궐하던 이신론과 교계에 영향을 끼치는 칼뱅주의는 그의 복음전파에 지대한 장애로 작용하였다. 감리회의 창시라로서 웨슬리는 이런 모든 장애를 극복하기 위하여 어떤 때는 변명했고, 변명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열중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 변증에 깊이 개입한 이유가 있다. 복음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함이었다.
웨슬리는 강력한 증거들과 증인들을 가지고있었으나 그래도 그는 실제적인 목적, 곧 효과적인 복음전도를 위하여 이론적으로 변증을 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이신론, 율법폐기론, 영국국교회 및 칼뱅주의 이다.
이신론은 16-18세기에 번창한 일종의 자연종교로서 존 웨슬리의 시대를 풍미 하였다. 많은 이신론자들은 그들의 행동을 이성의 지배 밑에 둠으로 행복을 추구하려 했다. 이신론은 19세기에 들어와 서서히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신론의 가르침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지성인들에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복음전도에서 이신론이 미치는 나쁜 영향을 직시한 웨슬리는 반복적으로 이신론의 잘못된 점을 파헤쳤고, 동시에 따르는 자들을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두 번째로 그가 변증하며 복음을 수호하고 또 전도하기도 한 대상은 율법폐기론자들이었다. 말 그대로 그들은 율법이 필요 없다는 주장을 하였다. 무엇을 근거로 그들은 교리를 창출한것인가? 그 근거는 첫째, 잘못된 의인관 때문이었고, 둘째로 잘못된 율법관 때문이었다.
영국국교회에서 왜 웨슬리를 핍박하였는가. 국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와 예배를 가볍게 여겼고 첫째, 교회의 형식주의와 둘째 교인들의 부도덕 그리고 셋째,교회 지도자들의 도덕적 타락과 물질 지향적 자세 때문이었다.
웨슬리는 칼뱅주의가 주창하는 두 가지 교리 선택과 영벌을 다루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 조건적 선택이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논리적으로 칼뱅주의를 논박하였다.
웨슬리는 영원한 복음을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 주려고 문자 그대로 인생을 불태운 전도자였다. 그의 뜨거운 열정은 그로 하여금 그토록 오랜기간 동안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거룩한 전도자였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그리고 누구를 만나든지 성경적인 성결을 일으키기 위하여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러나 웨슬리는 그가 처해있는 정황에 대하여 무관심한 전도자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역사를 방해하는 이신론을 과감히 파헤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웨슬리의 모습은 가히 선지자를 방불체 하였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복음전도와 성결을 가로막는 율법폐기론자들과 칼뱅주의자들에 대한 그의 공박과 전도는 가히 예언자를 연상케 하였다. 무엇보다 그를 잡고있는 국교회를 향하여 회개와 갱신을 촉구한 것은 그를 개혁자로 만들고도 남았다.
웨슬리는 어디든지 불타는 설교 전도를 하였다. 동시에 그는 수없니 많은 이들과 대화하며 복음을 전하는 개인 전도자 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항상 소그룹의 정황에서 다른 사람들과 교재를 나누면서 틈만 나면 복음을 나누는 방식의 전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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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9.10.13
  • 저작시기2008.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56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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