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문학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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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요한의 문학>

<요한이 누구인가?>

<저작연대>

<장소>

<자작목적>

본문내용

.
이러한 문화적 불투과성의 원리로 말미암아 교회는 종종 만약 유유상종하지 않으면 복음화가 결코 성공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와 정반대로, 복음서는 근본적인 복음화가 오로지 이방인같은 작업으로 될 수 있을 때 성공함을 제시합니다. 흔히 유유상종의 메시지는 독백의 형태가 되어 버립니다: 청중들은 유쾌하고 만족하면서 듣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 자신의 말을 듣고 그들 자신만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어떤 복음화도 불가능합니다. 어떤 인물께서 청중에게 전례 없는 요구를 하는 소식을 가지고 외부에서 들어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이방인이셨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파송자들은 이방인들이어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고립 상태를 숨길려고 애쓰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제자들을 오로지 그들 자신의 민족에게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민족들에게도, 그들에게 전혀 낯설은 백성들에게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선교는 두 문화들의 만남이나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에로의 이행이 아닙니다. 선교는 어떤 문화를 넘어서는 지점 --아버지의 사랑 --에서 출발하여, 사람들과 함께 그 모든 방어 체계들과 어떤 문화를 넘어서서 완전히 무장 해제시켜 개방하며 서로서로 받아들이는 지점에 이르는 운동입니다. 문화의 구성 요인들은 복음화 과정을 도울 수 있지만, 종종 그것들은 그 과정을 돕기보다는 더욱 방해하기도 합니다. 선교를 믿는다는 것은 진정으로 인간이 될 가능성을 믿는 것이며 하나의 문화에 특별하지 않고 진정으로 그리고 보편적으로 인간적인 작업들을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동들과 존재 방식은 특별한 문화의 표현들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현실을 전해 줍니다. 또한 선교를 믿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근본적인 개방성, 그들의 문화와 모든 문화 외부로부터 들려 오는 메시지들을 받을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선교를 믿는다는 것은 인간이 그 자신 안에 감금되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존재의 전체를 받은 아버지와 연결되어, 자기 존재의 전체를 전해 준 세상과 연결되어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하나의 존재 양식 안에 두 배로 순종하고 신실하셨습니다: 아버지에게서 세상으로 나아가 아버지의 메시지를 전적으로 통과시키고 전달하는 섬김으로. 파송자들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보고 듣게 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하고 싶어함을 보고 듣습니다. 요한 복음에서 말해지는 사랑은 결코 윤회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진하는 흐름이며 교류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한 사람이 받은 것을 전해 주는 것이고; 원래부터 자기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준 것을 주는 것이며; 받은 것을 교류하는 것이므로, 아버지에게서 세상으로 나아가는 운동이 계속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10:30),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10:3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17:21). 이러한 합일은 동일성으로의 환원이 아닙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존재하는 합일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 보낸 자와 보내진 자 사이의 교류의 운동에서 생겨납니다; 그러한 존재의 두 가지 양식들은 상호 보완하며 역동적인 합일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와 똑같이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모든 사람들 간의, 아버지와 아들과 모든 사람들 간의 합일은 동일성이나 유사함이 아니라 신적 사랑의 윤회와 운동에서 생겨납니다.
제도권에서, 합일은 똑같은 구조에게 모두 순종하고, 관습으로 변형된 똑같은 태도들을 모두에게 강요한 결과로 생겨납니다; 제도권으로부터 권위가 파생되며, 지도자들은 마침내 제도권의 충복들로 전락해 버립니다. 공동체에서, 합일은 모든 구성원들의 이익을 수렴하거나 일치시킨 결과로 생겨나고, 권위는 공동 의지에서 파생합니다; 지도자들은 공동체 일원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합일은 아버지에게서 세상으로 나아가는 운동으로부터 파생됩니다. 모든 구성원들은 그러한 흐름 가운데 있는 연결 고리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습니다; 아들 안에서 드러난 아버지의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중재에 의해서 각자에게 전달됩니다.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체인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깊은 주의를 기울입니다. 이러한 합일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신실하게 받아들여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고자 바라는 바램에서 생겨납니다.
그리스도의 빛은 우리 자신의 사상들의 메아리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낯선 모습으로 다가와 전혀 다른 억양으로 말을 건네며,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비추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를 개방시키면서, 그것은 우리 자신들의 은폐물들을 치워버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아버지의 사랑에 관한 은유인 그리스도의 빛은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 자신들이 아니고 우리 자신들을 닮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하고, 그들이 영원히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고 비록 다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게 함으로써 합일을 창출합니다. 이러한 합일로 말미암아 경계들 --우리를 아버지의 뜻으로부터, 그리고 서로 서로로부터 분리시키는 경계들 --은 두 배로 폐기되며 아버지와 서로 서로에게 두 배로 신실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 바램이 아버지에게 있는 사랑을 전달한 결과로 산출된 합일이며, 인간 지도자들은 오로지 그 달성에 있어서 촉매제나 작인(作因), 혹은 안내자의 역할만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을 파송자로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 자신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이 사람들은 나에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나에게 주신 말씀을 이 사람들에게 전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 말씀을 받아 들였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을 참으로 깨달았으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었습니다”(요한 1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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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0.14
  • 저작시기1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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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56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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