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유럽 : 지배와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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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계와 유럽 : 지배와 저항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5장 세계와 유럽 : 지배와 저항

1. 서론

2. 본론

아메리카 : 최대의 경품

아메리카의 광대함 : 불리하면서도 유리한 조건

지방시장과 전국시장

연속적인 여러 종류의 예속

유럽에 봉사하는 아메리카

유럽에 대항하는 아메리카

산업상의 투쟁

영국의 식민지들이 자유를 찾다

상업상의 도전과 경쟁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 경영

스페인 령 아메리카에 대한 재고

스페인 제국의 대응

최고의 보물

봉건제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닌가?

블랙 아프리카 : 외부로부터 지배당한 것만은 아니다

서부 아프리카

고립된 그러나 접근할 수 있는 대륙

연안으로부터 내륙으로

삼각 무역과 교역조건

노예제의 종식

3. 결론

본문내용

를 게을리하고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는 블랙 아프리카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물론 블랙 아프리카의 변두리 지역에 모습을 드러낸 침략자들은 아주 매력적인 상품들을 가지고 왔다. 이것은 사람들의 욕심을 자극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팔았다. 그리고 여기에 전문화한 상인들이 많이 있어서 이들이 사람들을 속여 노예상인들에게 넘겨버렸다. 아프리카에서 인신매매 교역이 이루어진 것은 유럽이 그것을 원하고 그래서 그것을 강요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유럽 인들이 도착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슬람 권, 지중해, 인도양 지역 등으로 노예무역을 수행하던 나쁜 관행이 사전에 존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노예제는 풍토병적인 것이었고 일상의 구조였다.
아메리카로부터의 수요 아래 엄청나게 발달한 노예무역은 검은 대륙 전체를 뒤흔들어놓았다. 노예무역은 내륙과 연안 사이에 이중의 역할을 했다.: 한편으로는 모노모타파나 콩고 같은 대국을 약화, 쇠퇴시켰지만 이와 달리 연안 가까이에서는 유럽 상인들에게 흑인들과 상품을 공급해주는 일종의 중개국가 역할을 하는 소국들을 발전시켰다.
연안으로부터 내륙으로
이런 과정을 거쳐서 블랙 아프리카는 이전에 역사가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층적으로 예속적이 되었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이 거액의 비용을 들여가며 유지한 노예무역을 하는 지점들이나 요새들은 흑인들이나 유럽의 경쟁세력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해주었다. 같은 종류의 상업활동을 하고 있던 백인들은 많은 경우에 상호 대립하며 서로 상대방의 요새를 빼앗으려고 했고 단지 공동의 적이 있을 때에만 이들간의 화해가 가능했다.
연안지역으로부터 강을 거슬러 올라가 상류의 기착지나 정기시에서 교역을 하는 데에는 노를 사용하는 작은 배를 이용했다. 이런 곳에서 유럽 인들의 상업은 카라반 대상과 만났다. 그러다가 영국인들과 프랑스 인들이 스스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내륙지역에 정착하려고 했다. 18세기 후반에 영국의 왕립회사가 그들의 활동을 대부분 포기하고 감비아 강의 하구를 방기했을 때 유럽의 상업은 다시 이전에 하던 대로 현지인들을 이용했다. 이런 발전은 이상하게도 예전에 포르투갈 인들이 아프리카나 극동지방에서 처음 교역을 시작하던 당시의 발전을 재현했다. 최초의 모험가들은 포르투갈 인들이었다. 그러다 사정이 잘 풀리면 자잘한 일들은 아프리카 출신의 중개인이나 대리인들이 맡아서 하게 되었다. 특히 폼베이로라고 불린 혼혈인이나 흑인인 조력자 또는 보조인들은 자신을 고용한 주인이 누구이든 상관없이 백인들보다 더 잔인하게 같은 피부색의 동료들을 착취했다.
삼각 무역과 교역조건
아프리카 해안에서 닻을 올려 삼각 무역을 하는 배는 포루투갈,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 어느 국적이든 간에 똑같았다. 영국 선박이라면 자메이카에서 노예를 팔고 설탕, 커피, 인디고, 면화를 싣고 영국으로 귀환한 다음 다시 아프리카로 향할 것이다. 이 도식은 모든 노예무역 선박에 다 해당되는 방식이다. 리버풀이나 낭트에서 떠날 때 싣는 상품은 변함이 없다. 언제나 무수히 많은 종류의 직물이 적재되는데 그중에는 인도의 면직물, 줄무늬 타프타 천, 주석 접시와 그릇들, 화약, 피스톨, “무역용”장총 그리고 무엇보다도 증류주들……이 포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이 교역이 크게 증가해갔던 유럽의 수요에 조응하기 위해서는 유럽 상품의 공급 증가에 대하여 아프리카 시장이 어느 정도의 탄력성을 보여야만 했다. 즉 수송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활발히 이루어진 교역,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시장과 정기시, 잉여에 대한 요구가 아주 강한 여러 활력에 넘친 도시들 그리고 원시적이면서도 훌륭하게 교환의 도구 역할을 하고 있는 화폐 등이 그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럽 상품의 수용도 선택적으로 이루어졌다.
필립 커틴은 가격과 교역조건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그의 명제를 증명했다. “화폐”의 성격이 원시적이라고는 해도 그것으로도 가격이나 교역조건 등의 문제를 훌륭히 소화해냈다. 더 많은 금과 노예, 상아를 얻기 위해서 유럽 인들이 그들의 상품의 공급을 늘리고 가격을 낮추어야만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블랙 아프리카는 신대륙의 플랜테이션, 사금채취장, 도시들의 요구에 응해서 점차 더 많은 노예들을 공급했다. 유럽의 수요에 따라서 세네감비아는 상업적으로 전문화하기에 이르렀다. 즉 매번 한 가지 상품이 주도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17세기 초에는 가죽, 19세기까지는 노예, 더 뒷시기에는 고무 그리고 그보다 더 후에는 땅콩이 주도적인 상품이었다.
노예제의 종식
1815년 빈 회의에서 영국의 제안에 의해서 노예무역이 공식적으로 폐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중단되지는 않았다는 것은 일단 그와 같은 교역의 힘이 생기면 지속적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영국의 노예무역의 후퇴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구매수준과 가격이 떨어지는 것으로부터 이익을 취한 것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었다. 이 두 나라 사람들은 노예 가격의 하락으로 “설탕과 커피만이 아니라 그 외의 모든 열대상품들을 영국보다 더 유리하게 외국 시장에서 팔 수 있는 수단을” 가지게 되었다.
3. 결론
이제까지 유럽이 어떻게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성공을 거두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아마도 이것은 유럽의 응집력과 효율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프랑스만 해도 자신의 크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영국에 비해서 불리해졌다는 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막 탄생했던 아메리카, 인구가 부족한 아프리카와 작지만 고전압 상태에 있던 유럽.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공간이 넓었기 때문에 굳이 외부로눈을 돌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반면, 그 당시 유럽은 이미 과밀 지역이었다. 유럽 특히, 영국에게 자기 국민들이 건너간 아메리카는 놓칠 수 없는 굴러들어온 호박이었다.(물론 나중에는 아메리카가 독립하지만) 아프리카는 풍부한 노동력을 싼 값에 구할 수 있는 원료산지로서 중요했다.
여기다가 또다른 장점인, 더 광대한 자본주의적 축적을 장려하는 특별한 사회구조들이 있었다. 더구나 자본의 축적이 국가에 의해서 보호를 받음으로써 상대적으로 우위를 지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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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1.02
  • 저작시기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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