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春秋戰國時代의 社會
Ⅰ. 春秋列國의 構造와 政治
Ⅱ. 春秋 中期 以後의 諸變動
Ⅲ. 戰國 國家의 形成과 그 課題
Ⅳ. 變法과 齊民支配
맺음말
◎ 춘추·전국시대의 시대구분.
春秋시대
◎ 國의 구조, 영역범위.
◎ 國의 신분질서, 國人(士人)의 위치
◎ 國의 해체, 郡縣制(군현제) 출현.
戰國시대
◎ 영역국가의 발전, 군현체제의 확대.
◎ 변법과 齊民支配體制(제민지배체제)
◎ 역사전 의미.
◎ 참고도서
Ⅰ. 春秋列國의 構造와 政治
Ⅱ. 春秋 中期 以後의 諸變動
Ⅲ. 戰國 國家의 形成과 그 課題
Ⅳ. 變法과 齊民支配
맺음말
◎ 춘추·전국시대의 시대구분.
春秋시대
◎ 國의 구조, 영역범위.
◎ 國의 신분질서, 國人(士人)의 위치
◎ 國의 해체, 郡縣制(군현제) 출현.
戰國시대
◎ 영역국가의 발전, 군현체제의 확대.
◎ 변법과 齊民支配體制(제민지배체제)
◎ 역사전 의미.
◎ 참고도서
본문내용
조는 여전히 그 실체의 해명을 위한 연구의 심화를 기다리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 춘추·전국시대의 시대구분.
기원 전 770년에 수도를 호경에서 낙읍(낙양)으로 옮겼다. 그 이전 시대를 서주라 하고, 서주 이후 秦이 6國을 통일할 때까지 동주시대라고 한다. 그리고 동주시대를 다시 춘추와 전국시대로 구분한다.
春秋란 말은 孔子(공자)가 편찬한 『春秋』에서 유래.
전국시대의 명칭도 『戰國策(전국책)』에서 비롯.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구분은 晋이 韓(한)·魏(위)·趙(조)의 3국으로 분열되어 주왕실이 이를 공인하는 기원 전403년이 일반적이다.
春秋시대
◎ 國의 구조, 영역범위.
춘추시대까지 기본단위는 읍 혹은 城邑(성읍)으로 불리는 취락형태 =>성읍국가.
중앙(내성)의 영주(제후)의 궁전과 종묘, 국의 중요한 시설물.
郭곽(외성)안에는 취락과 田地(전지)가 있다.
=> 국인과 지배계급이 살고 있다.
성곽 밖 교외에는 鄙邑(비읍)이 있다.
=> 野人(야인)또는 鄙人(비인)이 살고 있다. 국과 국 사이의 野는 어는 국에 소속되지 않고 방치되어 후세에 분쟁의 대상이 된다. 이유. 이곳에 이탈한 소농민들이 개간하며 집단적인 취락을 형성하면서.
◎ 國의 신분질서, 國人(士人)의 위치.
公(諸侯)=國君(국군) - 국을 지배하나 정치적·군사전 권한은 강하지 않다. 다만 국의 정신적 지주로 제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제사의 의미는 조상신을 받드는 행사로 씨족공동체의 단결과 정치적·사회적 힘을 발휘
경·대구 - 권력집단을 구성하는 지배계층으로 제후로부터 분배받은 鄙 (비)의 采邑(채읍)을 경제적 기반으로 兵團(병단)을 구성하며 제우에 소속되어 전쟁에 참여할 의무를 가짐.
士(사)=국인 - 하위권력집단, 조상이 경·대부였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분족과 인구증가로 공·경과 혈연관계가 멀어지면서 하위지배층으로 전락, 田地(전지)를 소유, 전쟁에 참가하는 무사로 씨족집단으로서의 국의 기반을 이루는 구성요원이며 무사로서 국의 군대를 이루는 중요한 핵심이기 때문에 경·대부는 국인의 동향을 무시하고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기는 어려웠다.
지배계층 아래 농·공·상민과 천민으로서 노비가 존재.
◎ 國의 해체, 郡縣制(군현제) 출현.
覇者(패자)를 구심점으로 會盟的(회맹적)국제질서 - 씨족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국이 소국을 복속. 즉 맹을 통하고 대외적으로 尊王攘夷(존왕양이)의 대의명분을 내세워 소국을 복속시키는 방법을 취했다. 결맹의 조건으로 대국에게 병력의 제공을 賦(부)로 감당하였다.
=> 춘추 중기를 전후로 소국을 완전히 멸망시킨 후 그곳에 현을 설치하여 직접 통치하는 滅國置縣(멸국치현)의 지배방식을 취했다.
읍제국가의 지배형태 -> 군현제적 중앙집권국가
戰國시대
◎ 영역국가의 발전, 군현체제의 확대.
전국시대는 일반적으로 기원 전 5세기 말
晋(진)나라에서 신하인 韓(한)·魏(위)·趙(조)가 반란을 일으켜 晋을 멸망시키고 3국을 세우면서 시작된다.
晋의 멸망을 계기로 약육강신의 경쟁시대로 접어들게 되면서 종래의 읍제국가형태는 영역국가로 변천되어 나간다. 국가간의 田土(전토)와 인민을 쟁취하기 위해 滅國倂國(멸국병국)현상이 반복된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전국시대의 戰國7雄이 등장.
전국시대에는 변방의 개발로 군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넓은 군을 분할하여 현을 설치하게 되면서 군 아래 현을 두게 되었다.
군현제 출현은 왕(군주)을 정점으로 관료지배체제를 탄생시켰고, 중앙집권적 전제군주체제가 출현
공(제후)과 경·대부 사이의 會盟(회맹) => 主君(주군)과 家臣(가신)의 주종관계
군·신관계는 가부장적 관료체제로 정비되어 신하는 군주의 手足과 같이 활동하게 되면서 중국 관료제의 原型(원형)으로 정착되기 시작.
신하는 관료로서 현을 통치.
殷·周·春秋 시대 이래 지방조직의 시본단위이던 읍은 군현체제로 흡수되면서 해체.
은·주시대의 읍제국가체제는 군현체제로 바뀌고
씨족제적 봉건체제도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로 변화
따라서 제후는 종래의 侯(후)·君(군)의 칭호를 버리고 왕호를 사용하고 관제의 개편도 단행
관직의 세분화했는데 행정의 장관인 승상과 군사의 장관이 장군의 직책이 분리
중앙과 지방(군·현)의 관직체계가 정비
◎ 변법과 齊民支配體制(제민지배체제)
변법은 영역국가로 통화되어 나가면서 춘추5패, 전국7웅이 등장함으로써 국토의 확대와 씨족공동체와 봉건제가 해체되고 군현제와 관료제로 전환되는 변혁기에 종래의 읍제국가적 통치방식으로 하기 힘들어지자 자국책으로 변법과 제민지배체제이다.
변병의 내용을 보면 구 귀족세력의 일소, 법가주의적 중앙집권체제 및 齊民支配體制(제민지배체제)의 확립에 중점을 두었다.
그 중 궁극적인 지향점은 제민지배체제의 확립이다. 왜냐하면 소가족을 단위로 하는 人民을 국가가 효과적으로 지배하느냐 못하느냐가 부국강병의 첩경이기 때문이다.
제민지배체제란.
소농민에게 균등한 토지점유와 안정된 농업생산체제를 보장하면서 이들을 새로운 戶籍制(호적제)로 편성하여 국가가 직접 제민으로 지배하려는 것이다 => 국내체제를 안정시키고 군주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耕田(경전)의 민을 최대한으로 확보하여 열국간의 군사적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인민지배의 재편성체제이다.
◎ 역사전 의미.
정치적, 영역국가형태와 왕권이 강화되는 중앙집권적 관료국가체제
사회적, 실력이 우선되는 실력주의 시대이면서 布衣將相(포의장상)이 속출하고 부세도 귀족에서 국왕에게 돌아가게 된다.
민족적, 오랑캐인 戎狄(융적)은 모두 諸夏國(제하국)으로 통일되어 민족의 구성이 華(하)로 단일화 되었다. 변방의 楚(진)·秦(초)·燕(연)·越(월)등도 중원의 중화문화에 흡수 동화되면서 민족적 통일이 추진되어 중국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사회와 경제, 문화면에서 고대사회를 재편성하고 진·한의 통일제국을 형성하기 위한 거대한 변혁의 격동기이며 발전이 이룩된 시대이다.
◎ 참고도서
동양사개론(p54∼p89), 신채식 저자, 삼영사.
중국 고대사의 발전(p91∼p114), 이춘식 저자, 신서원.
이야기 중국사 제1권(p77∼p250), 김구진·김희명 편저, 청아출판사.
한권으로 정리한 이야기 중국사(p55∼p119), 조관희 엮음, 청아출판사.
◎ 춘추·전국시대의 시대구분.
기원 전 770년에 수도를 호경에서 낙읍(낙양)으로 옮겼다. 그 이전 시대를 서주라 하고, 서주 이후 秦이 6國을 통일할 때까지 동주시대라고 한다. 그리고 동주시대를 다시 춘추와 전국시대로 구분한다.
春秋란 말은 孔子(공자)가 편찬한 『春秋』에서 유래.
전국시대의 명칭도 『戰國策(전국책)』에서 비롯.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구분은 晋이 韓(한)·魏(위)·趙(조)의 3국으로 분열되어 주왕실이 이를 공인하는 기원 전403년이 일반적이다.
春秋시대
◎ 國의 구조, 영역범위.
춘추시대까지 기본단위는 읍 혹은 城邑(성읍)으로 불리는 취락형태 =>성읍국가.
중앙(내성)의 영주(제후)의 궁전과 종묘, 국의 중요한 시설물.
郭곽(외성)안에는 취락과 田地(전지)가 있다.
=> 국인과 지배계급이 살고 있다.
성곽 밖 교외에는 鄙邑(비읍)이 있다.
=> 野人(야인)또는 鄙人(비인)이 살고 있다. 국과 국 사이의 野는 어는 국에 소속되지 않고 방치되어 후세에 분쟁의 대상이 된다. 이유. 이곳에 이탈한 소농민들이 개간하며 집단적인 취락을 형성하면서.
◎ 國의 신분질서, 國人(士人)의 위치.
公(諸侯)=國君(국군) - 국을 지배하나 정치적·군사전 권한은 강하지 않다. 다만 국의 정신적 지주로 제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제사의 의미는 조상신을 받드는 행사로 씨족공동체의 단결과 정치적·사회적 힘을 발휘
경·대구 - 권력집단을 구성하는 지배계층으로 제후로부터 분배받은 鄙 (비)의 采邑(채읍)을 경제적 기반으로 兵團(병단)을 구성하며 제우에 소속되어 전쟁에 참여할 의무를 가짐.
士(사)=국인 - 하위권력집단, 조상이 경·대부였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분족과 인구증가로 공·경과 혈연관계가 멀어지면서 하위지배층으로 전락, 田地(전지)를 소유, 전쟁에 참가하는 무사로 씨족집단으로서의 국의 기반을 이루는 구성요원이며 무사로서 국의 군대를 이루는 중요한 핵심이기 때문에 경·대부는 국인의 동향을 무시하고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기는 어려웠다.
지배계층 아래 농·공·상민과 천민으로서 노비가 존재.
◎ 國의 해체, 郡縣制(군현제) 출현.
覇者(패자)를 구심점으로 會盟的(회맹적)국제질서 - 씨족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국이 소국을 복속. 즉 맹을 통하고 대외적으로 尊王攘夷(존왕양이)의 대의명분을 내세워 소국을 복속시키는 방법을 취했다. 결맹의 조건으로 대국에게 병력의 제공을 賦(부)로 감당하였다.
=> 춘추 중기를 전후로 소국을 완전히 멸망시킨 후 그곳에 현을 설치하여 직접 통치하는 滅國置縣(멸국치현)의 지배방식을 취했다.
읍제국가의 지배형태 -> 군현제적 중앙집권국가
戰國시대
◎ 영역국가의 발전, 군현체제의 확대.
전국시대는 일반적으로 기원 전 5세기 말
晋(진)나라에서 신하인 韓(한)·魏(위)·趙(조)가 반란을 일으켜 晋을 멸망시키고 3국을 세우면서 시작된다.
晋의 멸망을 계기로 약육강신의 경쟁시대로 접어들게 되면서 종래의 읍제국가형태는 영역국가로 변천되어 나간다. 국가간의 田土(전토)와 인민을 쟁취하기 위해 滅國倂國(멸국병국)현상이 반복된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전국시대의 戰國7雄이 등장.
전국시대에는 변방의 개발로 군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넓은 군을 분할하여 현을 설치하게 되면서 군 아래 현을 두게 되었다.
군현제 출현은 왕(군주)을 정점으로 관료지배체제를 탄생시켰고, 중앙집권적 전제군주체제가 출현
공(제후)과 경·대부 사이의 會盟(회맹) => 主君(주군)과 家臣(가신)의 주종관계
군·신관계는 가부장적 관료체제로 정비되어 신하는 군주의 手足과 같이 활동하게 되면서 중국 관료제의 原型(원형)으로 정착되기 시작.
신하는 관료로서 현을 통치.
殷·周·春秋 시대 이래 지방조직의 시본단위이던 읍은 군현체제로 흡수되면서 해체.
은·주시대의 읍제국가체제는 군현체제로 바뀌고
씨족제적 봉건체제도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로 변화
따라서 제후는 종래의 侯(후)·君(군)의 칭호를 버리고 왕호를 사용하고 관제의 개편도 단행
관직의 세분화했는데 행정의 장관인 승상과 군사의 장관이 장군의 직책이 분리
중앙과 지방(군·현)의 관직체계가 정비
◎ 변법과 齊民支配體制(제민지배체제)
변법은 영역국가로 통화되어 나가면서 춘추5패, 전국7웅이 등장함으로써 국토의 확대와 씨족공동체와 봉건제가 해체되고 군현제와 관료제로 전환되는 변혁기에 종래의 읍제국가적 통치방식으로 하기 힘들어지자 자국책으로 변법과 제민지배체제이다.
변병의 내용을 보면 구 귀족세력의 일소, 법가주의적 중앙집권체제 및 齊民支配體制(제민지배체제)의 확립에 중점을 두었다.
그 중 궁극적인 지향점은 제민지배체제의 확립이다. 왜냐하면 소가족을 단위로 하는 人民을 국가가 효과적으로 지배하느냐 못하느냐가 부국강병의 첩경이기 때문이다.
제민지배체제란.
소농민에게 균등한 토지점유와 안정된 농업생산체제를 보장하면서 이들을 새로운 戶籍制(호적제)로 편성하여 국가가 직접 제민으로 지배하려는 것이다 => 국내체제를 안정시키고 군주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耕田(경전)의 민을 최대한으로 확보하여 열국간의 군사적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인민지배의 재편성체제이다.
◎ 역사전 의미.
정치적, 영역국가형태와 왕권이 강화되는 중앙집권적 관료국가체제
사회적, 실력이 우선되는 실력주의 시대이면서 布衣將相(포의장상)이 속출하고 부세도 귀족에서 국왕에게 돌아가게 된다.
민족적, 오랑캐인 戎狄(융적)은 모두 諸夏國(제하국)으로 통일되어 민족의 구성이 華(하)로 단일화 되었다. 변방의 楚(진)·秦(초)·燕(연)·越(월)등도 중원의 중화문화에 흡수 동화되면서 민족적 통일이 추진되어 중국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사회와 경제, 문화면에서 고대사회를 재편성하고 진·한의 통일제국을 형성하기 위한 거대한 변혁의 격동기이며 발전이 이룩된 시대이다.
◎ 참고도서
동양사개론(p54∼p89), 신채식 저자, 삼영사.
중국 고대사의 발전(p91∼p114), 이춘식 저자, 신서원.
이야기 중국사 제1권(p77∼p250), 김구진·김희명 편저, 청아출판사.
한권으로 정리한 이야기 중국사(p55∼p119), 조관희 엮음, 청아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