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의 도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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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중세 유럽의 도시들

▲ 중세 시대의 베네치아 모습

▲ 중세시대 브뤼헤의 지도

▲ 1650년경의 파리 시가지 모습

▲ 둠즈데이북(Domesday Book)

▲ 중세 영국의 시장이 열리던 시골 마을의 유적

▲ 금세공인, Petrus Christus, 1449,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 중세 상점

▲ 영국 노위치(Norwich) 지도

▲ 특허장을 받는 중세 플랑드르 한 도시의 시민들

▲ 중세 리용 (Lyons) 시의 모습

▲ 중세 엑시터(Exeter)시의 모습

본문내용

t macht frei)는 것은 그래서 하는 소리이다.
아마 그런 때가 있었을 수는 있다. 14세기에 흑사병으로 많은 인구가 죽었을 때는 어디에서나 노동력이 필요했으니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특수한 예이지 일반적인 예라고 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도시생활은 엄격하게 통제되었으며 결코 자유로운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중세 엑시터(Exeter)시의 모습
우선 아무나 도시에 들어오면 시민권을 얻어 자유롭게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잉글랜드의 엑시터(Exeter)시에는 중세말의 자료가 남아 있는데 14세기 말의 인구는 약 3천 명 정도이다. 그런데 이 도시에서 시민권을 가진 자유인은 1377년의 경우 전체 가장(家長)의 19%로서 전체 인구의 3%에 불과했다. 가장의 1/5 정도만이 자유로운 신분을 가졌던 셈이다.
이것은 다른 도시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14세기 초 런던의 자유인은 4만 인구 가운데 2천명에 불과했다. 5% 정도인 것이다. 피렌체 시의 경우 1494년에 인구 9만 명 가운데 자유인은 3%가 조금 넘는 정도인 3천명에 불과했다.
베네치아도 2천-2천5백 명 정도만이 시민권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중세도시에서 시민권을 갖는 자유인은 일반적으로 인구의 고작 2-3%에 불과했다. 그러니 도시를 자유로운 공동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특권이 지배하는 사회였고 소수의 귀족적인 지배층이 다스리는 사회였다.
또 자유인들은 대개 그 신분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새로 시민권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도시에 들어와 상당히 오랜 기간을 경과해야 했다. 그것이 몇 대를 지날 수도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상당한 규모의 재산을 모아야 했고 도시 내 유력자들의 후원을 얻어야 했다. 아무나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제멋대로 도시로 들어 온 사람은 처벌을 받고 추방당했다. 그러니 농노라도 도시로 도망쳐 오면 자유를 얻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또 도시민은 여러 계급으로 구분되어 차별 대우를 받았다. 계급에 따라 사는 지역도 달랐다. 도시민이기는 하나 시민권이 없는 경우에는 성안에 살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또 계급에 따라 입는 옷, 심지어 착용하는 장신구까지 세세히 규정되어 있었다. 근대초인 1621년에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시는 도시민을 다섯 계급으로 나누는 법을 만들어 일상생활을 엄격하게 규제했다. 도시는 결코 평등한 곳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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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2.22
  • 저작시기2009.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69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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