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의 정의 및 화교 네트워크 그리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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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화교의 정의 및 화교 네트워크 그리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화교의 정의
2. 화교의 역사
3. 한국의 화교
4. 세계 각국의 화교
5. 화교 네트워크
6.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

본문내용

한껏 고양된 화교의 자신감, 구국활동을 통한 화교 간의 연대,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형성된 “중국인”이라는 화교 상호 간 동일한 자기인식은 향후 화교 네트워크 형성에 탄탄한 기초를 제공하였다.
③ 동화(同化)의 압력
세계각지에 흩어져 거주하고 있던 화교를 한데 묶어 “중국인”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에너지는 화교에 대한 중국의 러브 콜과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 출현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변모하였다. 화교를 자극하고 있던 외부의 에너지가 소멸된 것이다. 동남아에 일본이 물러나고 각지에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해당 원주민에 의한 새로운 국가가 건설되었다. 이미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던 화교는 동남아 현지에 성립된 국가로부터 새로운 국적을 부여받음으로써 동남아 모든 화교는 본의 아니게 이중국적자로 변모하였다. 새로운 국가건설을 추진하고 있던 동남아 신생국가에 있어 화교의 이중적 정치신분은 골칫거리일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일본의 패망으로 공동의 적이 사라지면서 중국의 태도도 변모하였다. 화교에 대한 중극의 러브 콜은 급속히 냉각되었다. 화교는 과거에 대한 향수에서 깨어나 현실의 삶으로 돌아왔다. 전체 화교 가운데 90%이상이 중국의 국적을 포기하였다. 이는 화교에게 있어 애국이나 충성의 대상이 중국이 아닌 현지 국가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중국에 대한 애국의 요구가 사라지자마자 현지에 동화 하라는 새로운 압력이 가해졌다.
많은 화교, 특히 현지에서 출생하였거나, 혼혈의 화교처럼 중국과 연대감이 상대적으로 희박했던 화교는 현지사회의 동화 요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어떤 화교는 스스로 한발 더 나서서 중국공산당과 연결되어 있는 현지 공산당의 축출에 힘쓰면서 현지 정부에 충성심을 내보였다.
하지만, 현지의 화교에 대한 동화의 압력이 거세질수록 화교의 현지에 대한 이화의 욕구 또한 강해졌다. 이 과정에서 종종 폭력을 수반하기도 하였다. 화교의 입장에서 중국을 포기하고 현지국가에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 서글픈 일이었다. 따라서 화교는 더욱 더 차이나타운으로 모여들었고 화교에게 강요되던 중국문화유전자의 포기는 이곳 차이나타운에서 회복되거나, 최소한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사회주의 중국의 모습은 화교를 크게 실망시켰다. 중국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대약진운동은 실패하였고, 문화대혁명이 촉발한 혼란은 무려 10년 동안 이어졌다. 새로운 조국의 건설을 위해 중국으로 돌아갔던 애국적 화교는 간첩으로 내몰렸고, 해외에 친척을 가지고 있는 가정은 잠재적 간첩으로 핍박당했다. 화교에게 중국은 더 이상 되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아니었다.
동화의 압박과 생존의 위협에 놓인 화교는 자신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를 위해 피신통로를 모색하였다. 홍문 등의 지하조직, 그리고 한 때 중국의 혁명을 지지하기 위해 마련되었던 화교조직 간의 국제적 협조는 모두 화교에게 효과적인 피신의 통로를 제공하였다.
화교 네트워크의 국제화
- 세계화상대회(世界華商大會)
세계 화교 상공인들 사이의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상호이해를 촉진할 목적으로 1991년 당시 싱가포르 리콴유[李光耀] 총리의 제안으로 싱가포르에서 처음 개최되었다. 이후 2년마다 한번씩 개최되고 있는데, 개최지는 싱가포르·타이·홍콩 3곳의 중화총상회(中華總商會)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한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화상들의 최대 모임으로, 세계 화상계의 대표적 인물들이 대거 참여해 경제·문화·사회 등 다양한 이슈를 다룬다.
제1회 대회 이후 참여하는 화상들의 수가 계속 늘고 있으며, 이 대회를 통해 세계 화상들 사이에 많은 실질적 교류가 가능하게 됨으로써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특히 세계 화상들의 경제력이 막대한 탓에 이 대회를 유치하기 위한 국가 간의 경쟁도 치열해 2005년 제8차 대회의 경우에는 서울과 일본의 고베[神戶], 마카오 등이 경합을 벌인 끝에 최종적으로 서울이 선정되었다.
1993년 홍콩, 1995년 타이의 방콕, 1997년 캐나다의 밴쿠버, 1999년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버른에서 제5회 대회까지 열렸고, 2001년 중국 난징[南京]에서 열린 제6회 대회 때에는 약 80개국에서 5,000여 명의 화상들이 참여하였다. 2003년 대회는 7월 27일부터 30일까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되었다. 2005년 제8차 대회는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되었다.
7.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
중국의 화교네트워크와 같이 우리도 이들 못지않은 ‘코리아 글로벌 네트워크’를 짤 수 있는 소중한 해외자산이 있다. 전 세계 170여 개국에 퍼져 있는 550여만 명의 해외동포가 그들이다. 이들을 연결시켜 주는 코리안 네트워크의 구축이야말로 21세기 무국경, 무한경쟁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우리나라의 해외교민 수는 전체 인구의 15%가량이나 돼 유대인 다음으로 해외교민의 비중이 크다고 한다. 만약 이들을 하나로 통합해 나간다면 아마도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본국기업과 연계가 가능한 업종이 섬유업 등의 극히 일부 업종에만 한정돼 있으나 코리안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본국 기업과 교민들이 함께 공통분모를 모색해 간다면 ‘전략적 코리안 네트워크’의 장래는 매우 낙관적일 수 있다.
이런 코리안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전 한발 앞서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첫째, 해외한인의 다름을 존중해야 한다. 해외한인은 자신이 뿌리내린 토양에 따라 그들 나름의 역사를 걸어왔고, 또 나름의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이는 한국과의 다름이고, 또한 그들 사이의 다름이다.
둘째, 해외한인의 삶에 대한 존중이다. 모든 해외한인은 각기 나름의 생존방식이 있다. 어떤 이는 적극적인 혼혈을 받아들이며 현지의 국민으로써 살아가고 있고, 또 어떤 이는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여전히 한국인으로써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생존방식은 모두 해외한인 각 개인의 삶이다.
◎ 참고자료
최승현, 「화교의 역사, 생존의 역사」, 화약고, 2007
정성호, 「화교」, 살림, 2004
스털링 시그레이브, 「중국 그리고 화교」, 프리미엄북스,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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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9.12.31
  • 저작시기2009.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70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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