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의 세계 = 설화에 나타난 민중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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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본론
◈ 온달설화와 서동설화 속 민중의식 비교 ◈

결론

본문내용

(富)를 누릴 수 있을 것이오.”라고 하자, 서동은 말하기를, “나는 어릴 때부터 마를 캐던 곳에 황금을 흙더미만큼 쌓아두었소.”라고 했다. 공주가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말하기를, “그것은 천하의 큰 보배이니, 그대가 그 금이 있는 곳을 안다면 그것을 우리 부모가 계신 궁전으로 보내는 것이 어떻겠소?”라고 하니, 서동도 좋다고 했다. 이에 금을 모아 산더미만큼 쌓아놓고 용화산(龍華山) 사자사(師子寺)의 지명법사(知命法師)에게 가서 금을 운반할 계획을 물으니 법사는 말하기를, “내가 신의 힘으로 보낼 것이니 금을 이 곳으로 가져오도록 하오.”라고 했다. 이에 공주가 편지를 써서 금과 함께 법사 앞에 갖다놓자, 법사는 신의 힘으로 하룻밤 사이에 신라 궁중으로 보내니, 진평왕은 그 신비스러운 일을 이상히 여겨 서동을 더욱 존경하여 항상 글을 보내서 안부를 물었다.
서동은 이로부터 인심을 얻어서 왕위에 올랐다. 어느 날 왕과 부인이 사자사에 가려고 용화산 아래 큰 못가에 이르니 미륵삼존(彌勒三尊)이 못 속에서 나타나므로 수레를 멈추고 공손한 마음으로 예를 했다. 부인이 왕에게 말하기를, “모름지기 여기에 큰 절을 짓는 것이 큰 소원입니다.”라고 하니, 왕은 이를 허락했다. 지명법사에게 가서 못을 메울 일을 묻자 법사는 신의 힘으로 하룻밤 사이에 산을 헐어다가 못을 메워서 평지를 만들었다. 여기에 미륵삼존의 상(像)을 세우고, 회전(會殿)과 탑(塔)과 낭무(廊)를 각각 세 곳에 세우고 이름을 미륵사(彌勒寺)라 했다. 진평왕도 백공(百工)을 보내 공사를 도왔으니 지금까지도 그 절이 있다.(≪三國史記≫, 武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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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1.07
  • 저작시기2006.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72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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