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부르는 것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그분께 자신을 드리면 드릴수록 그만큼 더 우리는 진정자기다워진다. 그리스도 없이 나 자신이 되려고 아무리 노력해봐야 소용없는 것이다. 진정한 인격은 오직 그 안에만 있으므로 우리의 자아를 그에게 바치기 전까지 진정한 자아를 가질 수 없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아를 통째로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찾으면 결국 미움과 외로움과 절망과 분노와 파멸과 쇠퇴만 보게 된다. 그리스도를 찾으면 그를 만날 것이며 그와 함께 모든 것을 얻을 것이다.
책을 읽고
감동이 되는 글을 형광펜으로 그으며....
정말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흔적이 존재할까라는 의문을 품은 적이 있다. 모태신앙이지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믿음으로 오랜 기간 신앙생활을 해왔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가면을 쓰며 어쩌면 위선적으로 보일만큼 제 자아를 죽이고 살아왔다고 느꼈다. 그것 또한 교만한 마음이었다. 낮은 자를 섬기고 겸손히 행동하겠다고 하지만 어쩌면 선을 행함으로 내 자존감을 올라가게 함이다. 말씀을 들으면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회의 소그룹 모임에 내가 알고 있는 신학으로 그들의 말을 귀 기울이지 않은 교만한 마음을 고백해 본다.
‘사람의 자아가 깨끗하고 밝지 못하면 하나님의 모습 또한 더러운 망원경 렌즈로 보는 달처럼 흐려 보일 수박에 없다.’는 글이 있다. 죄에 가려 하나님의 흔적을 볼 수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음은 회계를 통해 죄를 고백하고 언제가 변화할 것이라는 자만 때문이다. 최소한 믿지 않는 자, 회계하지 않는 자들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느꼈다. 그 달콤함과 추악함을 알면서 순환하는 죄의 유혹을 받아드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 유혹을 받아드리기 위해 어떻게든 스스로 내 감성적 행동에 이성을 합리화 시켰다. 하나님께선 분명 우리를 온전히 바꾸기 원하신다. 하나님 앞에 온전해지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이지만 그것을 막는 것 또한 자신인 것이다.
또한 누구나 내 죄나 타인으로 인해 과거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 상처를 건들이면 가슴 깊숙히 있던 마음의 상처가 터져 나와 토해낸다. 어쩌면 구정물과 같이 보기에는 잔잔하지만 흔들면 더러운 이물질과 함께 금방 검게 되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도 지금이다. 하나님께서는 현재의 상처뿐만 아니라 구정물과 같은 과거의 아픔도 치유하기 원하신다. 다만 우리가 고백하고 진정으로 치유되길 원한다면 말이다.
어떠한 의미에서 우리는 각각 하나님 앞에 홀로 서 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을 통해 거룩함을 얻게 된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답게 살지 못하는 자들이 참 많다. 나 또한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노력을 잘하지 못해 신앙생활에서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고 죄인 줄 알면서도 아직 끊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죄를 짓고 나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인격에 흠이 있으면 그분의 사랑은 방해받고 위축될 수박에 없다. 그러나 죄를 지었다고 우리의 삶이 거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의 거룩함을 삶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칭하셨기 때문에 거룩해진 것이다. 성화는 점진적인 과정으로 점차 발전해가는 것이다. 앞으로의 내 삶이 죄로 인해 낮은 자존감과 죄책감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가는 날까지 그 분을 닮아가는 삶을 살기 원한다. 그리고 이런 사건(?)을 원한다.
내 앞엔 한시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으셨던 그 분이 계시다. 수고했다 칭찬하시고 잘했다 안아주시다.
책을 읽고
감동이 되는 글을 형광펜으로 그으며....
정말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흔적이 존재할까라는 의문을 품은 적이 있다. 모태신앙이지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믿음으로 오랜 기간 신앙생활을 해왔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가면을 쓰며 어쩌면 위선적으로 보일만큼 제 자아를 죽이고 살아왔다고 느꼈다. 그것 또한 교만한 마음이었다. 낮은 자를 섬기고 겸손히 행동하겠다고 하지만 어쩌면 선을 행함으로 내 자존감을 올라가게 함이다. 말씀을 들으면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회의 소그룹 모임에 내가 알고 있는 신학으로 그들의 말을 귀 기울이지 않은 교만한 마음을 고백해 본다.
‘사람의 자아가 깨끗하고 밝지 못하면 하나님의 모습 또한 더러운 망원경 렌즈로 보는 달처럼 흐려 보일 수박에 없다.’는 글이 있다. 죄에 가려 하나님의 흔적을 볼 수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음은 회계를 통해 죄를 고백하고 언제가 변화할 것이라는 자만 때문이다. 최소한 믿지 않는 자, 회계하지 않는 자들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느꼈다. 그 달콤함과 추악함을 알면서 순환하는 죄의 유혹을 받아드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 유혹을 받아드리기 위해 어떻게든 스스로 내 감성적 행동에 이성을 합리화 시켰다. 하나님께선 분명 우리를 온전히 바꾸기 원하신다. 하나님 앞에 온전해지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이지만 그것을 막는 것 또한 자신인 것이다.
또한 누구나 내 죄나 타인으로 인해 과거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 상처를 건들이면 가슴 깊숙히 있던 마음의 상처가 터져 나와 토해낸다. 어쩌면 구정물과 같이 보기에는 잔잔하지만 흔들면 더러운 이물질과 함께 금방 검게 되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도 지금이다. 하나님께서는 현재의 상처뿐만 아니라 구정물과 같은 과거의 아픔도 치유하기 원하신다. 다만 우리가 고백하고 진정으로 치유되길 원한다면 말이다.
어떠한 의미에서 우리는 각각 하나님 앞에 홀로 서 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을 통해 거룩함을 얻게 된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답게 살지 못하는 자들이 참 많다. 나 또한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노력을 잘하지 못해 신앙생활에서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고 죄인 줄 알면서도 아직 끊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죄를 짓고 나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인격에 흠이 있으면 그분의 사랑은 방해받고 위축될 수박에 없다. 그러나 죄를 지었다고 우리의 삶이 거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의 거룩함을 삶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칭하셨기 때문에 거룩해진 것이다. 성화는 점진적인 과정으로 점차 발전해가는 것이다. 앞으로의 내 삶이 죄로 인해 낮은 자존감과 죄책감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가는 날까지 그 분을 닮아가는 삶을 살기 원한다. 그리고 이런 사건(?)을 원한다.
내 앞엔 한시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으셨던 그 분이 계시다. 수고했다 칭찬하시고 잘했다 안아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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