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다산의 생애
2. 다산의 사상 및 철학
3. 다산의 저술활동
4. 다산 정약용에 관한 소고
2. 다산의 사상 및 철학
3. 다산의 저술활동
4. 다산 정약용에 관한 소고
본문내용
상기에는 변함이 없으므로 두예(杜預)의 설은 준수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일곱째, <논어>에는 <논어고금주>40권이 있다. <논어>는 다른 경전에 비하여 이의가 너무나도 많다. 총520여장중 170여장의 이의를 하나로 묶어서 <원의총괄>이라 하였다. 그중의 한 예를 들자면, 효제가 곧 인(仁)이니 인이란 총체적으로 붙인 이름이요 효제란 부목으로서 주자의 심덕, 애리(愛理)의 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여덟째, <맹자>에는 <맹자요의>9권이 있다. 성(性)이란 기호(嗜好)인데 형구(形鷗)의 기호와 영지(靈知)의기호가 있다고 한다. 본연지성은 본래 불가의 책에서 나왔으며 우리유가의 천명지성과는 서로 빙탄(氷炭)과도 같아서 상호간의 비교할 길이 없다고 하였다. 아홉째, <중용>에는 <중용자잠(中庸自箴)>3권, <중용강의보>6권이 있다. 용(庸)이란 항상 끊임없이 오래감을 의미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요 들리지 않는 것은 내 눈에 들리지 않는 것이니 그 것은 곧 하늘의 모습이요 하늘의 소리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열째, <대학>에는 <대학공의(大學公議)> 3권, <희정답대학강의> 1권, <소학보전> 1권 <심경밀험> 1권이 있다. 명덕이란 효, 제, 자 삼덕으로서 사람의 영명(靈明)이 아니다. 격물의 물은 물유본말(物有本末)의 물(物)이요 치지(致知)의 지는 지소선후(知所善後)의 지다. 다음으로 1표 2서의 대강을 살펴보면, 첫째<경세유표> 48권이 있으나 미완본이다. 관제, 군현제도, 전제,부역, 공시, 창저(倉儲), 군제, 과제, 해세(海稅), 마정(馬政), 선법(船法) 등 국가 경영을 위한 제도론으로서 현실적 실용여부는 불구하고 기강의 대경대법을 서술하여 구방(舊邦)을 유신하고자 하였다. 둘째, <목민심서> 48권이 있다. 현재의 법도로 인민을 다스리고자 한 것이니 율기, 봉공, 애민을 3기(紀)로 삼았고 거기에다가 이, 호, 예, 병, 형, 공을 6전(典)으로 삼았으며 진황(賑荒)을 끝으로 하였다. 부정행위를 적발하여 목민관을 깨우치게 함으로서 그 혜택이 백성들에게 돌아가도로 하였다. 셋째, <흠흠신서> 30권이 있다. 인명에 관한 옥사를 다스리는 책이 적었기 때문에 경사(經史)에 근본하였거나 공안(公案)에 증거가 있는 것들을 모아 옥리들로 하여금 참고하게 함으로써 원한의 소지를 없애도록 하였다. 이로서 6경 4서로써 수기하고 1표 2서로써 치인하게 하여 수기치인의 본말을 갖추도록 하였다. 다음으로 시문잡저를 살펴보면, 시문집 18권을 간추려도 6권은 되고 잡문은 전편이 16권, 후편이 24편이다. 또한, 잡찬목록을 보면<아방비억고>30권(미완성)이 있고<아방강역고> 10권, <전례고> 2권 <대동수경> 2권, <소학주관> 3권, <아언각비> 3권 <마과회통> 12권, <의령> 1권 등이 있다.
4. 다산 정약용에 관한 소고
다산 정약용은 정치적으로 불우했던 위정가이자 척박한 땅에서 신음하는 민중과 함께 살다간 민중 민권론자이며 파당 파재의 회로리 속에서 옥고와 유배를 당하면서 학문하는 자세를 버리지 않은 선비정신으로 한자가 생긴 이래 세계적으로 방대한 500여권에 이르는 저술을 남긴 대철학자요 사상가이며 과학자 예술인이기도 하며 2천5백 여수의 유시를 남긴 세계적 대문호의 일인이기도 하다. 선생의 위대함은 이러한 저술업적과 學의 다면 다양성에만 있지 않고 선생의 저술이 愛民愛族 정신의 발로였다는 것을 주지할 때 더욱 위대한 것이다. 다산 선생을 조선 실학의 집대성자라 부름은 조선 실학의 성격을 경세치용, 이용후생, 시사구시 등의 개념으로 설명되지만 선생은 장치,경제,사회,과학,의학,철학,천문,지리,역사,종교,윤리,음악,서화 등등 제분야에 걸쳐 미치지 않은 분야가 없이 탁월하였고 광범위한 저술을 통해 고통스러웠던 유배생활을 승화시켰던 선생의 높은 이상과 탁월한 학식 실학자로서의 합리적 사고와 생활신조 그리고 선각자다운 사회정의 의식을 저서에 뚜렷이 나타내고 있다. 또한 부패로 얼룩진 어두운 봉건시대에 실낱같은 한줄기 민중적 삶의 의지로 핍박받는 백성들의 편에 서길 자처해 정치, 경제, 사회적 제도를 백성을 위한 제도로 혁명적 개선을 주장했던 점이다.
가난에 찌들어 굶어 죽어가는 이웃의 아픔을 견디다 못해「농부로 하여금 전답을 얻게 하고농사를 짓지 않는 자는 얻지 못하게 하면 좋을 것이다」라 했고 「백성은 땅을 밭으로 삼아 농사짓는데 관리는 백성을 밭으로 삼아 착취하는구나」했다. 부정부패 탐관오리의 와중에서 착취만 일삼는 관리들을 어떻게 해야 올바른 생각으로 돌아서게 할 수 있을까 해서 관리들의 지침서인 목민심서도 저술했고 하다못해 시를 통해서라도 백성을 일깨우고자 많은 시를 읊어 보기도 했다. 선생의 시는 한갖 음풍영월이 아니고 애국단성과 택국 염원이 담겨 있는 시로써 나라를 근심하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라고까지 할 정도로 백성들에게 혜택을 베풀려는 마음이 없는 자는 시를 지을 수 없다고 했다. 때문에 구한말 국학자 현채는 다산을 가리켜 선생의 백세 대업은 참으로 위대하다며, 조선왕조 오백년 이래 제일 경제가 라고 찬양, 후학이 선생의 뜻을 계승하지 못해 나라의 형세가 이지경에 이르렀으니 금인이 죄인이라고 찬양했다. 조선 양명학의 최후 거성이었던 이진방은 정다산을 불란서의 룻소나 몽테스큐와 같은 위대한 민권사상가라 했으며 위당 정인보는 “선생 일인에 대한 고구는 곧 조선사의 연구요, 조선 근세사상의 연구요, 조선 심혼의 명예 내지 전조선성쇠존멸에 대한 연구다.”라고 하여 많은 학자들도 다산을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자임을 평하였다. 다산을 압제하여 현실적으로 파멸시킨 어용적 지식인들은 자신들만의 권력유지를 원했기에 그들은 영원히 죽어갔으나 권력에 영원히 추방된 다산은 역사와 함께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음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다산은 학문과 사상 그리고 선생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愛國愛民思想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다산 실학의 산실인 다산초당을 찾아 선생의 발자취를 체험적으로 더듬으면서 위대한 선각자 다산의 체취를 한껏 느껴보는 것은 더욱 의미가 있고 마음깊이 남을 것이다.
4. 다산 정약용에 관한 소고
다산 정약용은 정치적으로 불우했던 위정가이자 척박한 땅에서 신음하는 민중과 함께 살다간 민중 민권론자이며 파당 파재의 회로리 속에서 옥고와 유배를 당하면서 학문하는 자세를 버리지 않은 선비정신으로 한자가 생긴 이래 세계적으로 방대한 500여권에 이르는 저술을 남긴 대철학자요 사상가이며 과학자 예술인이기도 하며 2천5백 여수의 유시를 남긴 세계적 대문호의 일인이기도 하다. 선생의 위대함은 이러한 저술업적과 學의 다면 다양성에만 있지 않고 선생의 저술이 愛民愛族 정신의 발로였다는 것을 주지할 때 더욱 위대한 것이다. 다산 선생을 조선 실학의 집대성자라 부름은 조선 실학의 성격을 경세치용, 이용후생, 시사구시 등의 개념으로 설명되지만 선생은 장치,경제,사회,과학,의학,철학,천문,지리,역사,종교,윤리,음악,서화 등등 제분야에 걸쳐 미치지 않은 분야가 없이 탁월하였고 광범위한 저술을 통해 고통스러웠던 유배생활을 승화시켰던 선생의 높은 이상과 탁월한 학식 실학자로서의 합리적 사고와 생활신조 그리고 선각자다운 사회정의 의식을 저서에 뚜렷이 나타내고 있다. 또한 부패로 얼룩진 어두운 봉건시대에 실낱같은 한줄기 민중적 삶의 의지로 핍박받는 백성들의 편에 서길 자처해 정치, 경제, 사회적 제도를 백성을 위한 제도로 혁명적 개선을 주장했던 점이다.
가난에 찌들어 굶어 죽어가는 이웃의 아픔을 견디다 못해「농부로 하여금 전답을 얻게 하고농사를 짓지 않는 자는 얻지 못하게 하면 좋을 것이다」라 했고 「백성은 땅을 밭으로 삼아 농사짓는데 관리는 백성을 밭으로 삼아 착취하는구나」했다. 부정부패 탐관오리의 와중에서 착취만 일삼는 관리들을 어떻게 해야 올바른 생각으로 돌아서게 할 수 있을까 해서 관리들의 지침서인 목민심서도 저술했고 하다못해 시를 통해서라도 백성을 일깨우고자 많은 시를 읊어 보기도 했다. 선생의 시는 한갖 음풍영월이 아니고 애국단성과 택국 염원이 담겨 있는 시로써 나라를 근심하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라고까지 할 정도로 백성들에게 혜택을 베풀려는 마음이 없는 자는 시를 지을 수 없다고 했다. 때문에 구한말 국학자 현채는 다산을 가리켜 선생의 백세 대업은 참으로 위대하다며, 조선왕조 오백년 이래 제일 경제가 라고 찬양, 후학이 선생의 뜻을 계승하지 못해 나라의 형세가 이지경에 이르렀으니 금인이 죄인이라고 찬양했다. 조선 양명학의 최후 거성이었던 이진방은 정다산을 불란서의 룻소나 몽테스큐와 같은 위대한 민권사상가라 했으며 위당 정인보는 “선생 일인에 대한 고구는 곧 조선사의 연구요, 조선 근세사상의 연구요, 조선 심혼의 명예 내지 전조선성쇠존멸에 대한 연구다.”라고 하여 많은 학자들도 다산을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자임을 평하였다. 다산을 압제하여 현실적으로 파멸시킨 어용적 지식인들은 자신들만의 권력유지를 원했기에 그들은 영원히 죽어갔으나 권력에 영원히 추방된 다산은 역사와 함께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음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다산은 학문과 사상 그리고 선생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愛國愛民思想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다산 실학의 산실인 다산초당을 찾아 선생의 발자취를 체험적으로 더듬으면서 위대한 선각자 다산의 체취를 한껏 느껴보는 것은 더욱 의미가 있고 마음깊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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