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와 유용성 사례분석

목차

1 자연과 인간의 삶

2 진리와 유용성

3 과학과 종교

4 다원주의적 전망

본문내용

특정한 하나의 종교적 믿음이 다른 종교적 믿음들에 비해 우월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실제로 관찰될 수 있는 그 믿음의 실제적 결과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본다. 즉 제임스는 특정한 종교가 주장하는 절대자의 존재를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그 믿음들이 우리의 실제적 삶에서 미치는 영향을 인정하고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가상의 절대자 X가 존재한다고 믿는다고 가정해 보자. 이들은 이 X가 이 세계의 근원이며, 동시에 자신들의 삶을 이끌어 가는 이념의 원천이라고 믿을 수 있다. 그것이 비록 가상의 존재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이러한 믿음을 통해 실제로 마음의 안정을 얻거나 삶의 희망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절대자의 존재를 믿기 시작한 뒤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신경통이나 우울증에 차도를 보였다고 가정해 보자. 실용주의자는 그것을 모두 실제적 사실 또는 실제적 효과라는 것을 인정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실이 그 절대자의 존재를 경험적으로 입증한 것이라고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즉 그 절대자가 존재한다는 믿음의 실제적 효과는 사람들이 신경통이 차도를 보였다는 사실 또는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뿐이다.
실용주의의 관점에서 과학과 종교는 대립적 영역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각각 다른 방식으로 기여하는 독특한 경험의 영역들이다. 물리적 세계의 구조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과학적 탐구는 다른 유형의 탐구들에 비해 명백한 우선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탐구가 인간의 근원적 가치와 희망을 모두 충족시켜 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과학과 종교는 매우 다른 종류의 목적과 의도를 가진 활동들이며, 그것들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역할을 갖는다. 실용주의는 이 두 갈래의 설명 중 하나를 옳은 것으로 선택함으로써 다른 것을 그른 것으로 배척하려는 배타적 태도를 버리고, 그 두 갈래의 설명이 갖는 각각의 역할을 구분하고 인정하려고 한다. 이것은 우리의 경험이 드러내는 다양한 중층성에 대한 실용주의적 이해에 근거한 것이며, 이러한 측면에서 실용주의는 기본적으로 다원주의적(pluralistic)이다.
4 다원주의적 전망
실용주의는 우리가 관습적으로나 전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믿음들의 근거에 대해 새로운 물음을 묻게 한다. 우리의 믿음은 매우 간단한 물리적인 것들로부터 매우 정교한 추상적인 것들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게 형성된다. 그리고 그 믿음들은 모두 우리의 삶에 나름대로의 역할을 한다. 우리는 흔히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특정한 이론을 따라 특정한 유형의 믿음들만을 선택적으로 중시하거나 신봉하게 된다. 그 결과 정신적인 것만을 중시하는 유심론적 태도에 기울게 되거나 아니면 관찰 가능한 물리적인 것만을 신봉하는 유물론적 태도에 기울게 된다. 실용주의는 그 어떤 극단도 경계한다. 그러한 편향적 태도는 우리의 삶의 정당한 한 부분을 억압하거나 무시하는 독단적 태도로 이어질 위험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실용주의는 우리의 지적이든 도덕적이든 모든 믿음들에 대한 평가의 척도가 우리의 실제적 삶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몸을 가진 유기체로서 우리 자신의 기본적 조건을 망각하고 지나친 철학적 이상에 빠져드는 것은 위험한 독단을 낳을 수 있다. 그러한 전형적인 시도가 바로 하나의 절대적 진리에 대한 추구다. 우리의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조건을 넘어서는 중립적이고 절대적인 진리가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은 그 자체로 무해하거나, 나아가 바람직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위험성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그러한 절대적 진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누구에게나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그것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대부분 권력의 억압적 도구로 쉽사리 변질되었다. 여기에서 실용주의는 자연주의적 시각을 통해 우리 자신이 절대적 진리에 부합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로티는 절대적 진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 그것이 주어졌을 때 우리가 그것을 확신하기 힘들다고 말한다.9) 이러한 시각에 따르면 지적이든 도덕적이든 인간의 삶에는 완결된 하나의 답은 없다. 우리의 삶은 열려 있는 가능성 속에서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더 나은 것’을 선택해 가는 과정일 뿐이다.
이러한 실용주의적 태도는 진리가 우리의 다양한 삶의 조건에 따라 변화한다는 다원주의적 주장을 담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는 완결된 하나의 답이 부정되는 대신에 다수의 대안적 진리들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실용주의의 이러한 다원주의적 시각은 급속한 경제 성장과 함께 분출되는 다양한 욕구들의 충돌을 겪고 있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복합성을 해명하는 데 어떤 이론들보다도 훨씬 더 적절한 관점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실용주의를 정형화된 철학적 체계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과거의 철학적 개념들과 이론들에 의해 생겨났던 사고의 혼동을 해소시켜 주고, 그로 인한 정신적 짐들을 덜어 주는 치유적 시각으로 받아들임으로서 훨씬 더 큰 현실적 유용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생각해볼 문제들
1. 인간의 삶에 대한 실용주의적 견해의 장점은 무엇인가?
2. 실용주의의 진리 개념이 갖는 장점과 단점을 우리 사회의 구체적인 현실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검토해 보자.
3.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실용주의적 견해는 오늘날 어떤 문제들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답이 될 수 있는가?
4. 실용주의적 시각에서 오늘날 한국사회가 드러내고 있는 다양한 가치 문제들은 어떤 방식으로 해명될 수 있는가?
참고 문헌
김동식. 프래그머티즘. 서울: 아카넷, 2003.
노양진. 로티의 듀이 해석. 철학연구, 제54집 (1995 봄): 205-229.
로티, 리처드. 철학 그리고 자연의 거울. 박지수 역. 서울: 까치, 1998.
메난드, 루이스. 프래그머티즘의 길잡이. 김동식 외 역. 서울: 철학과 현실사, 2001.
번스타인, R. J. 존 듀이 철학 입문. 정순복 역. 서울: 예전사, 1995.
에임즈, S. M. 실용주의. 조성술노양진 역. 광주: 전남대학교 출판부, 1999.
제임스, 윌리엄.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김재영 역. 서울: 한길사, 2000.

키워드

자연과 인간,   삶,   진리와 유용성,   과학과 종교,   다원주의적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