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로 ‘골계’라고도 하는데 익살을 의미한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풍자적 우스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남의 작품의 시구나 문체를 따와서 내용이 전혀 다른 것을 표현하여 외형과 내용의 부조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그저 남의 작품이나 말을 본 따 웃음을 지어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어떤 대상을 희화화 하여 날카롭게 풍자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 5부 : 언어는 존재의 집 >>
* 언어의 직공이 되라
성경 기자는 탁월한 언어의 장인이다. 그저 사상 개념을 전달하기 위한 중립적 전달의 용기로 언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소리의 기교나 테크닉을 이용하여 본문에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또한 특정한 주제를 부각시키며, 특정한 분위기를 창출할 줄 아는 능력의 소유자이다. 유사하거나 동일한 발음을 반복하여 새로운 유기적 질서를 구축하며 새로운 의미를 창출할 줄 아는 소리의 대가인 것이다. 여러 가지 언어 장치를 수사학적 도구로 사용한 성경 기자들은, 어쩌면 언어학과 철학의 발전이 있기 수 천년 전에 이미 언어 장치가 세계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인간의 사고 행동을 통제하는 인식과 행동의 도구라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흔히 사람들은 성경을 성경 기자가 어떤 신통력을 받아 일사천리로 단숨에 써 내려간 것으로 착각한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했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적지 않으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한 저자는 성경이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의 백성들과 시인,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 의해 전해져 내려오던 것을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성경 기자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결정화 시킨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제 독자들에게 말한다.
‘만일 성경 기자가 언어의 직공이었다면, 성경 해석자들도 언어의 직공이 되어야 한다.’
즉 성경 기자가 언어적 설득 장치들을 탁월하게 구사한 언어의 장인이라면 해석자는 그것을 찾아낼 줄 아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의 직공이 되는 방법을 몇 가지로 제시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경 기자가 탁월한 언어의 예술가였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두 번째는 성경 기자가 사용한 언어 장치들을 통해 그가 본 것을 볼 줄 아는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이 상상력은 성경 기자가 상상력을 동원해 만들어 놓은 상징과 이미지와 은유, 환유를 통해 그가 묘사하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를 볼 줄 아는 상상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셋째, 이런 상상력을 소유한 언어의 직공이 되기 위해서는 언어와의 치열한 싸움이 있어야 한다.
성경 언어의 성격과 특징, 성경의 신학적 내용과 역사적 자료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는지에 대해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 언어의 특성, 관례, 수사적 전략, 비유적 표현 등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
넷째,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있어야 한다. 성경 기자는 하나님 나라의 세계를 그리고자 애를 쓰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세계를 바라보며, 그 세계를 신뢰하고 그 안에 살기로 작정하는 삶에의 진지한 태도가 있어야 한다. 이런 세계를 경험해 본 사람만이 이런 세계를 언어로 표출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가지게 되며, 이 세계를 옳게 표현하기 위해 언어와 치열한 싸움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생 성경이라는 언어의 집에서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언어는 존재의 집임을 깨닫고,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긴장과 경계선의 자리에 서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성경 해석의 문제는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생명이냐, 죽음이냐, 선택을 요구하는 삶과 행위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언어의 직공이 되는 것은 삶의 직공이 되는 것이리라.”
<< 5부 : 언어는 존재의 집 >>
* 언어의 직공이 되라
성경 기자는 탁월한 언어의 장인이다. 그저 사상 개념을 전달하기 위한 중립적 전달의 용기로 언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소리의 기교나 테크닉을 이용하여 본문에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또한 특정한 주제를 부각시키며, 특정한 분위기를 창출할 줄 아는 능력의 소유자이다. 유사하거나 동일한 발음을 반복하여 새로운 유기적 질서를 구축하며 새로운 의미를 창출할 줄 아는 소리의 대가인 것이다. 여러 가지 언어 장치를 수사학적 도구로 사용한 성경 기자들은, 어쩌면 언어학과 철학의 발전이 있기 수 천년 전에 이미 언어 장치가 세계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인간의 사고 행동을 통제하는 인식과 행동의 도구라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흔히 사람들은 성경을 성경 기자가 어떤 신통력을 받아 일사천리로 단숨에 써 내려간 것으로 착각한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했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적지 않으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한 저자는 성경이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의 백성들과 시인,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 의해 전해져 내려오던 것을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성경 기자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결정화 시킨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제 독자들에게 말한다.
‘만일 성경 기자가 언어의 직공이었다면, 성경 해석자들도 언어의 직공이 되어야 한다.’
즉 성경 기자가 언어적 설득 장치들을 탁월하게 구사한 언어의 장인이라면 해석자는 그것을 찾아낼 줄 아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의 직공이 되는 방법을 몇 가지로 제시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경 기자가 탁월한 언어의 예술가였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두 번째는 성경 기자가 사용한 언어 장치들을 통해 그가 본 것을 볼 줄 아는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이 상상력은 성경 기자가 상상력을 동원해 만들어 놓은 상징과 이미지와 은유, 환유를 통해 그가 묘사하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를 볼 줄 아는 상상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셋째, 이런 상상력을 소유한 언어의 직공이 되기 위해서는 언어와의 치열한 싸움이 있어야 한다.
성경 언어의 성격과 특징, 성경의 신학적 내용과 역사적 자료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는지에 대해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 언어의 특성, 관례, 수사적 전략, 비유적 표현 등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
넷째,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있어야 한다. 성경 기자는 하나님 나라의 세계를 그리고자 애를 쓰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세계를 바라보며, 그 세계를 신뢰하고 그 안에 살기로 작정하는 삶에의 진지한 태도가 있어야 한다. 이런 세계를 경험해 본 사람만이 이런 세계를 언어로 표출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가지게 되며, 이 세계를 옳게 표현하기 위해 언어와 치열한 싸움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생 성경이라는 언어의 집에서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언어는 존재의 집임을 깨닫고,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긴장과 경계선의 자리에 서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성경 해석의 문제는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생명이냐, 죽음이냐, 선택을 요구하는 삶과 행위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언어의 직공이 되는 것은 삶의 직공이 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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