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주제 선정 동기
2. 서태후에 대하여..
3. 소감
2. 서태후에 대하여..
3. 소감
본문내용
석림 초입에는 곤명의 대표적인 소수민족인 이족 처녀들이 안내를 맡는다. 이족 여인들은 머리에 부리달린 모자를 썼다. 부리가 2개면 처녀,1개면 결혼을 앞둔 신부,부리가 없으면 아줌마다. 부리를 함부로 건드렸다면 큰 코 다칠 일. 이들에게 부리를 건드리는 행위는 '청혼'을 의미한다.
석림의 감동은 구향동굴의 웅대함으로 이어진다. 곤명에서 석림으로 향하는 길목. 의량현으로 비포장도로를 1시간 달리면 구향동굴이 몰래 숨어 있다. 7년 전 땅꾼 할아버지가 발견한 구향동굴은 '헤비급' 규모다. 동굴안에 시냇물이 흐르고 거대한 폭포까지 형성됐다. 동굴을 가로지르는 데만 2㎞. 구향동굴 인근에만 7,8개의 대규모 동굴이 미개발 상태로 숨죽이고 있다. 동굴 구경은 일단 나룻배를 타고 협곡을 관람하는 데서 시작된다. 동굴 입구까지 냇물을 따라 스산한 절경을 즐기면 본격적인 동굴탐사 스타트. 운동장 만한 동굴터에 세계 최대 규모의 계단식 밭까지 2시간 코스 내내 눈이 현란하다. 구향동굴은 아직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여행지. 탐사의 마지막은 리프트를 타고 동굴 전체를 조망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중국 동남부에 자리잡은 곤명은 이곳 명승지를 어우르는 시발점이다. '꽃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해발 1,895m에 자리잡아 늘 봄기온을 유지하며 사계절 끊이지 않고 꽃이 핀다. 99년에는 국제꽃박람회가 열렸다. 따뜻한 봄의 도시를 떠나기 싫어하는 곤명주민에게 '집안에 갇힌 바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50도 짜리 독한 고량주를 마셔도 술이 금방 깰 정도로 공기가 맑고 깨끗하다. 마라톤 스타 황영조는 고산지대 곤명에서 폐활량을 늘렸다. 중국 월드컵 대표팀도 지난달 한국과의 경기 전 곤명에서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었다.
곤명에는 26개의 소수민족이 뒤섞여 공존한다. 이족 여인들이 부리 달린 모자를 쓰고 애타게 청혼을 기다리는 것과 달리 운남 서쪽에 거주하는 묘소이족 여인들은 거칠다. 여자들이 남자를 받아들이고 내쫓을 권한이 있다. 한때 대만 관광객들은 묘소이족 여인들에게 즉석 연애용 타깃이 되기도 했다. 흰옷을 입고 흰집에 거주하는 백족은 뱀뼈를 이용한 건축물을 짓고 살았다. 라우족,와족은 원시민족들. 라우족은 호랑이를 사냥하고,대문에 물소 해골을 달아놓는 와족은 테크노댄스를 추듯 헤드 웨이빙을 풍습으로 즐긴다. 곤명에서 남쪽으로 6㎞ 떨어진 운남민족촌은 중국 최대의 민족촌. 20여개 소수민족들의 삶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곤명의 땅이 철분 때문에 붉은 것과 달리 중국에서 6번 째로 큰 호수인 곤명호는 푸른빛을 띤다. 바다같다. 이 지역의 경관은 곤명호 때문에 더욱 눈부시다.
돌바위 동굴 호수 소수민족이 어우러진 곤명은 중국의 자연과 민족을 한꺼번에 담 고 있는 '보물창고'다. 그곳에는 신비를 갈망하는 발길을 유혹하는 묘한 매력이 녹아 있다
Behind Story....
1841년 추운 겨울 밤..여관비 낼 돈이 없어 거리에 내몰린 가난한 모녀가 있었으니 바로 서태후이다.
만주 가난한 귀족의 딸로 태어나 잦은 전란으로 인해 떠돌이 생활을 해야만 하던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유엔치"는 어느날 우체부로부터 금화 20냥을 전해받게 된다. 그러나 그 금화는 그녀의 어머니이름과 비슷한 어떤 사람에게 전해져야 할 돈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잘못 배달된 금화 20냥으로 추운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그녀의 나이 17세때 그녀에겐 기병부대 대장이었던 영록이란 약혼자가 있었다. 그러나 약혼자가 전쟁에 나가 있는 동안 빼어난 외모로 인해 함풍황제의 궁녀로 선발된다.
이때부터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이 시작된다.
노래를 잘 부르던 그녀는 신들에게 돈을 주어 황제를 자기가 있는 곳으로 유인하여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고 황제의 총애를 받는 황비가 된다.
그러던 어느날..그녀의 약혼자 영록이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자금성 근위대장으로 오게 된 것이다.
영록은 그녀를 보자 황제에게 말씀드려 자기에게로 돌아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의 야심은 상당했던 것이다.
황제는 영록의 공이 크니 황실에 있다는 그의 약혼자를 돌려주겠다고 말하지만 그는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에 그녀의 이름과 모든 것을 잊었다고 고한다. 그리고 그녀의 왕궁친구로 남아 죽는 그날까지 그녀를 지켜주게 된다.
그녀는 고마움의 표시로 영록과 그의 아내 사이에 태어난 아들에게 '부의'란 이름을 지어보내고 이가 중국의 마지막 황제 "부의황제"이다.
1881년 그녀가 수렴청정한지 20년되던날 오래된 죄수들을 심사하여 사면하기로 한다.
한 죄수에게 죄를 묻자 대답하기를 "전 그저 이름을 잘못 알았던 죄밖에 없습니다."라고 한다. 그렇다. 바로 40년전 서태후의 어머니에게 이름을 오인하여 금화20냥을 전해준 그 우체부였던 것이다.
결국 그는 돈을 횡령한 것이라 오인받아 40년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이에 깜짝 놀란 서태후는 자신이 바로 그 금화를 전해받은 아이라고 밝힌다.
그 금화로 따뜻한 신발을 사신을 수 있었다며 자신의 황금신발을 벗어주게 된다.
그 신발은 몇십년 후 한 경매장에서 14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에 팔렸다고 한다.
소감
이번 과제를 하면서 서태후란 여장부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반세기를 호령한 서태후..
그녀의 어머니이름 덕분에 어린 시절 굶어 죽을 고비를 넘겼고 그녀의 노래 솜씨로 황제의 마음을 사로 잡았으며, 그녀의 약혼자의 배려로 황태후 자리까지 올라 자신의 이름이 적힌 밀서를 자안황후의 마음을 녹여 없앰으로써 48년간이나 수렴청정할 수 있었다.
이런 그녀의 인생을 살펴보았을때 사람에겐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강한 운명이란게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녀 스스로 개척하기도 하였지만 말이다.
그런 그녀의 강하고 질긴 운명이 중국 역사의 한 획을 그을수 있었던게 아닐까...
그 오랜 옛날 중국 역사에 그런 여걸이 존재하였다는 것이 여자로서 자부심을 일깨워 주었다.
물론, 그녀의 야심은 대단하여 폭정을 이끌었고 사치 또한 심하였지만 그녀의 그런 성격이 중국 역사와 문화를 만들지 않았는가?
이상 아시아의 여걸 서태후에 대해 이모저모 살펴보았다.
두서없고 서툴지만 나름대로 의미있고 흥미로운 계기가 되었다.
석림의 감동은 구향동굴의 웅대함으로 이어진다. 곤명에서 석림으로 향하는 길목. 의량현으로 비포장도로를 1시간 달리면 구향동굴이 몰래 숨어 있다. 7년 전 땅꾼 할아버지가 발견한 구향동굴은 '헤비급' 규모다. 동굴안에 시냇물이 흐르고 거대한 폭포까지 형성됐다. 동굴을 가로지르는 데만 2㎞. 구향동굴 인근에만 7,8개의 대규모 동굴이 미개발 상태로 숨죽이고 있다. 동굴 구경은 일단 나룻배를 타고 협곡을 관람하는 데서 시작된다. 동굴 입구까지 냇물을 따라 스산한 절경을 즐기면 본격적인 동굴탐사 스타트. 운동장 만한 동굴터에 세계 최대 규모의 계단식 밭까지 2시간 코스 내내 눈이 현란하다. 구향동굴은 아직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여행지. 탐사의 마지막은 리프트를 타고 동굴 전체를 조망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중국 동남부에 자리잡은 곤명은 이곳 명승지를 어우르는 시발점이다. '꽃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해발 1,895m에 자리잡아 늘 봄기온을 유지하며 사계절 끊이지 않고 꽃이 핀다. 99년에는 국제꽃박람회가 열렸다. 따뜻한 봄의 도시를 떠나기 싫어하는 곤명주민에게 '집안에 갇힌 바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50도 짜리 독한 고량주를 마셔도 술이 금방 깰 정도로 공기가 맑고 깨끗하다. 마라톤 스타 황영조는 고산지대 곤명에서 폐활량을 늘렸다. 중국 월드컵 대표팀도 지난달 한국과의 경기 전 곤명에서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었다.
곤명에는 26개의 소수민족이 뒤섞여 공존한다. 이족 여인들이 부리 달린 모자를 쓰고 애타게 청혼을 기다리는 것과 달리 운남 서쪽에 거주하는 묘소이족 여인들은 거칠다. 여자들이 남자를 받아들이고 내쫓을 권한이 있다. 한때 대만 관광객들은 묘소이족 여인들에게 즉석 연애용 타깃이 되기도 했다. 흰옷을 입고 흰집에 거주하는 백족은 뱀뼈를 이용한 건축물을 짓고 살았다. 라우족,와족은 원시민족들. 라우족은 호랑이를 사냥하고,대문에 물소 해골을 달아놓는 와족은 테크노댄스를 추듯 헤드 웨이빙을 풍습으로 즐긴다. 곤명에서 남쪽으로 6㎞ 떨어진 운남민족촌은 중국 최대의 민족촌. 20여개 소수민족들의 삶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곤명의 땅이 철분 때문에 붉은 것과 달리 중국에서 6번 째로 큰 호수인 곤명호는 푸른빛을 띤다. 바다같다. 이 지역의 경관은 곤명호 때문에 더욱 눈부시다.
돌바위 동굴 호수 소수민족이 어우러진 곤명은 중국의 자연과 민족을 한꺼번에 담 고 있는 '보물창고'다. 그곳에는 신비를 갈망하는 발길을 유혹하는 묘한 매력이 녹아 있다
Behind Story....
1841년 추운 겨울 밤..여관비 낼 돈이 없어 거리에 내몰린 가난한 모녀가 있었으니 바로 서태후이다.
만주 가난한 귀족의 딸로 태어나 잦은 전란으로 인해 떠돌이 생활을 해야만 하던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유엔치"는 어느날 우체부로부터 금화 20냥을 전해받게 된다. 그러나 그 금화는 그녀의 어머니이름과 비슷한 어떤 사람에게 전해져야 할 돈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잘못 배달된 금화 20냥으로 추운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그녀의 나이 17세때 그녀에겐 기병부대 대장이었던 영록이란 약혼자가 있었다. 그러나 약혼자가 전쟁에 나가 있는 동안 빼어난 외모로 인해 함풍황제의 궁녀로 선발된다.
이때부터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이 시작된다.
노래를 잘 부르던 그녀는 신들에게 돈을 주어 황제를 자기가 있는 곳으로 유인하여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고 황제의 총애를 받는 황비가 된다.
그러던 어느날..그녀의 약혼자 영록이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자금성 근위대장으로 오게 된 것이다.
영록은 그녀를 보자 황제에게 말씀드려 자기에게로 돌아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의 야심은 상당했던 것이다.
황제는 영록의 공이 크니 황실에 있다는 그의 약혼자를 돌려주겠다고 말하지만 그는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에 그녀의 이름과 모든 것을 잊었다고 고한다. 그리고 그녀의 왕궁친구로 남아 죽는 그날까지 그녀를 지켜주게 된다.
그녀는 고마움의 표시로 영록과 그의 아내 사이에 태어난 아들에게 '부의'란 이름을 지어보내고 이가 중국의 마지막 황제 "부의황제"이다.
1881년 그녀가 수렴청정한지 20년되던날 오래된 죄수들을 심사하여 사면하기로 한다.
한 죄수에게 죄를 묻자 대답하기를 "전 그저 이름을 잘못 알았던 죄밖에 없습니다."라고 한다. 그렇다. 바로 40년전 서태후의 어머니에게 이름을 오인하여 금화20냥을 전해준 그 우체부였던 것이다.
결국 그는 돈을 횡령한 것이라 오인받아 40년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이에 깜짝 놀란 서태후는 자신이 바로 그 금화를 전해받은 아이라고 밝힌다.
그 금화로 따뜻한 신발을 사신을 수 있었다며 자신의 황금신발을 벗어주게 된다.
그 신발은 몇십년 후 한 경매장에서 14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에 팔렸다고 한다.
소감
이번 과제를 하면서 서태후란 여장부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반세기를 호령한 서태후..
그녀의 어머니이름 덕분에 어린 시절 굶어 죽을 고비를 넘겼고 그녀의 노래 솜씨로 황제의 마음을 사로 잡았으며, 그녀의 약혼자의 배려로 황태후 자리까지 올라 자신의 이름이 적힌 밀서를 자안황후의 마음을 녹여 없앰으로써 48년간이나 수렴청정할 수 있었다.
이런 그녀의 인생을 살펴보았을때 사람에겐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강한 운명이란게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녀 스스로 개척하기도 하였지만 말이다.
그런 그녀의 강하고 질긴 운명이 중국 역사의 한 획을 그을수 있었던게 아닐까...
그 오랜 옛날 중국 역사에 그런 여걸이 존재하였다는 것이 여자로서 자부심을 일깨워 주었다.
물론, 그녀의 야심은 대단하여 폭정을 이끌었고 사치 또한 심하였지만 그녀의 그런 성격이 중국 역사와 문화를 만들지 않았는가?
이상 아시아의 여걸 서태후에 대해 이모저모 살펴보았다.
두서없고 서툴지만 나름대로 의미있고 흥미로운 계기가 되었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