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민족운동가들의 탄압과 전향운동의 전개
2. 일제와 변절자들의 내선일체 논리의 차이
3. 민족주의자들의 성향과 변절
4. 민족말살기 민족운동계의 동향과 전향
5. 개량주의 민족주의자들의 최후 동우회와 흥업구락부의 전향
6. 종교적 믿음마저 배신한 종교계의 전향
7. 변절자들의 학력 및 민족운동경력과 부일경력
8. 끝으로
2. 일제와 변절자들의 내선일체 논리의 차이
3. 민족주의자들의 성향과 변절
4. 민족말살기 민족운동계의 동향과 전향
5. 개량주의 민족주의자들의 최후 동우회와 흥업구락부의 전향
6. 종교적 믿음마저 배신한 종교계의 전향
7. 변절자들의 학력 및 민족운동경력과 부일경력
8. 끝으로
본문내용
테리의 패배의식과 시세 편승, 기회주의에 다름아니다.
이는 흥업구락부사건으로 체포된 신흥우의 신문조서를 통해 그 면모를 보게 된다. '조선기독교의 진영은 민족주의자의 온상이었는데 시대의 변천과 민심의 추이는 어느 때까지나 그런 어리석음을 허용하지 않게 됩니다. 즉 종래의 구미숭배의 미몽으로부터 깨어 구미주의적 기독교로부터 벗어나고 일본정신에 입각한 일본적 기독교로 갱생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여 변절의 변을 말하더니 「동양지광』 1939년 2월호에서는 '조선기독교의 국가적 사명'이라는 논설에서 "……조선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일본제국을 사랑하는 것이며 또한 일본제국의 충실한 신민으로서만 가능한 일이다. 금일의 우리들은 종교인이기 전에, 조선인이기 전에, 우선 첫째로 일본인이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된다……천황페하의 충성스러운 적자로 오직 일본을 사랑하라! 그리고 일본을 사랑하기 때문에 제국에 충실히 순응, 협력, 돌진하라. 이것이 우리들 조선 기독교에게 주어진 신의 명령이다. 나는 감히 이렇게 확신하는 바이다."라고 하여 완벽한 전향의 변을 토로하였다.
7. 끝으로
앞서 살펴보았듯이 민족주의자들의 변절 요인은 내적,외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외적 요인이란 일제의 탄압과 회유이지만 내적 요인은 그러한 외적 요인에 대해 쉽게 변절한 민족주의자들의 속성이다.
민족주의자로서 변절했던 자들의 공통점은 대개가 일본 및 미국의 해외유학파들이며 기독교인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여하한 사정이 있겠지만 당시로는 사회적 특혜를 누리고 있었던 계층으로 선교사를 통한 근대교육을 통하여, 또는 유학생활 중에 앞선 근대서구문화와 문명에 접하면서 그 우수성을 체험하고 근대화지상주의에 입각한 문명개화론을 주장한 자들이다. 이들은 일면 후진된 조국을 근대사회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변혁사상을 품고 절대 독립을 주장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한 이들도 있으나 서구문명사회로의 무조건적인 동경은 비주체적 근대화와 서구화의 주장을 낳게 됨으로써 한때 민족운동에 종사하기도 하였지만 그들의 내부에서는 이미 민족적 자부심과 자아를 상실하고 자기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불신과 조국의 현실과 민족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 입장을 갖고 열등감에 빠져버렸다. 그들은 처참한 조국의 현실을 애써 외면하거나 현실순응적이며 기회주의적인 속성을 보여주더니 자신들의 지식정도에 걸맞는 사회의 지도적 위치를 점하는 부르조아층으로 자리를 잡으면서는 제국주의 가치관에 매몰되어 갔고 종속되어 결국은 민족을 부정하고 민족말살을 획책하는 일제의 매판적 주구가 되었던 것이다.
민족주의자들 중에는 인테리 지식분자들은 한 때 민족운동을 전개하여 일제의 탄압을 받은 경험이 있는 자들이거나 민족운동에 종사하여 일제의 끊임없는 감시를 받고 있던 자들이다. 그들은 인테리층을 사회개조의 원동력으로 보고 일반 대중은 계몽의 대상으로만 파악하여 사회구조적 모순을 타파하기 보다는 대중의 도덕성,위생,봉건성에 대한 개조를 현실문제로 보았고 이에 대한 운동만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고통을 수반하는 비타협의 길을 택하기 보다는 식민지 통치를 현실로 받아들였으며 실력양성, 혹은 준비론,자치론을 주장하였다. 이들의 주장은 해외에서 활약하던 실력양론자들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해외파들은 민족의 독립을 목표로 하였지만 국내 개량주의적 실력양성론자들은 일제의 민족개량운동과 차별성이 없이 결국 민족분열책에 이용되거나 일제의 관제운동에 흡수되어 민족운동계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그 결과 운동성을 잃고 민족주의에서 이탈하게 되었으며 일제의 파시즘이 강화되자 외적 조건에 쉽게 좌절되어 갔던 것이다. 그리고 민족 부르조아 계층의 자기 출세주의와 개인주의, 영리추구의 성향은 민족의 현실 외면은 물론 민족주의계열간의 파당을 조성하여 합치된 단결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일제에 이용당하였다. 특히 기독교, 불교, 천도교 등의 종교계에서는 반일성향을 갖고는 절대로 종교지도자가 될 수 없도록 하자 경쟁적으로 일제에 협력하여 황민화,전쟁동원에 협력하여 교권을 장악하고 아울러 개인적 영위를 추구하였다.
민족말살기에 민족주의자들 중에 과잉적으로 일제에 충성했던 자들이 많았던 것은 공산주의자들에 비해 민족주의자들은 특별한 사상체계나 조직적 구속력이 적었으며 심정적으로 민족적 양심은 살아있다해도 이미 일제에 정신적으로 굴복한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향자들은 완전한 친일분자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정신적 고뇌가 컸겠지만 그들은 반일감정보다는 열등감에 시달렸고 전향 후에는 일본인들이 자신을 계속 의심하고 적대시하지 않을까 전전긍긍 하면서 이로부터 탈출의 길은 일제에 맹목적 충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확신하였다. 그들의 지식정도로 보아 수탈당하는 식민지민과 배를 채우는 제국주의의 관계를 몰랐다고 볼 수 없다. 다만 힘의 논리에 의하여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식민지민의 질곡에서 해방되는 길은 완전한 종속과 민족의 말살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자위하였다. 그들은 민족을 배신한 댓가로 각 방면의 최고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고 이러한 일제의 배려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하여 더욱 경쟁적으로 충성하였으며 일제는 전향이라는 단어를 광용하여 변절을 시세에 따른, 민족을 위한 올바른 선택인양 호도하여 변절자들의 민족적 양심을 잠재웠다.
의문이 남는 것은 그들의 변절이 과연 강압과 위협에 굴복하여 신념과는 관계없이 자신은 물론 민족을 배신한 것인가, 아니면 일제에 굴복하였다 해도 내선일체의 이상을 믿으며 신념을 갖고 선택한 전향인가 하는 점이다.
- 끝 -
<참고문헌>
한상범 《우리사회의 일제잔재를 본다》 서울 : 푸른세상, 2001
신용하 《일제강점기하의 사회와 사상》 서울 : 신원문화사, 1991.
김삼웅 《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을까 : 일제 잔학사 70년의 기록》서울 : 사람과사람, 1998
『일제식민지정책 연구논문집』 서울 : 광복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한국학술진흥재단, 1995
『한국사, 13』, 《식민지시기의 사회경제 1》서울 : 한길사, 1994
서울대 교수 한영우 《다시찾은 우리역사》 경세원
강만길 《고쳐쓴 한국현대사》 창작과 비평사 2001. 9. 10
이는 흥업구락부사건으로 체포된 신흥우의 신문조서를 통해 그 면모를 보게 된다. '조선기독교의 진영은 민족주의자의 온상이었는데 시대의 변천과 민심의 추이는 어느 때까지나 그런 어리석음을 허용하지 않게 됩니다. 즉 종래의 구미숭배의 미몽으로부터 깨어 구미주의적 기독교로부터 벗어나고 일본정신에 입각한 일본적 기독교로 갱생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여 변절의 변을 말하더니 「동양지광』 1939년 2월호에서는 '조선기독교의 국가적 사명'이라는 논설에서 "……조선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일본제국을 사랑하는 것이며 또한 일본제국의 충실한 신민으로서만 가능한 일이다. 금일의 우리들은 종교인이기 전에, 조선인이기 전에, 우선 첫째로 일본인이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된다……천황페하의 충성스러운 적자로 오직 일본을 사랑하라! 그리고 일본을 사랑하기 때문에 제국에 충실히 순응, 협력, 돌진하라. 이것이 우리들 조선 기독교에게 주어진 신의 명령이다. 나는 감히 이렇게 확신하는 바이다."라고 하여 완벽한 전향의 변을 토로하였다.
7. 끝으로
앞서 살펴보았듯이 민족주의자들의 변절 요인은 내적,외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외적 요인이란 일제의 탄압과 회유이지만 내적 요인은 그러한 외적 요인에 대해 쉽게 변절한 민족주의자들의 속성이다.
민족주의자로서 변절했던 자들의 공통점은 대개가 일본 및 미국의 해외유학파들이며 기독교인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여하한 사정이 있겠지만 당시로는 사회적 특혜를 누리고 있었던 계층으로 선교사를 통한 근대교육을 통하여, 또는 유학생활 중에 앞선 근대서구문화와 문명에 접하면서 그 우수성을 체험하고 근대화지상주의에 입각한 문명개화론을 주장한 자들이다. 이들은 일면 후진된 조국을 근대사회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변혁사상을 품고 절대 독립을 주장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한 이들도 있으나 서구문명사회로의 무조건적인 동경은 비주체적 근대화와 서구화의 주장을 낳게 됨으로써 한때 민족운동에 종사하기도 하였지만 그들의 내부에서는 이미 민족적 자부심과 자아를 상실하고 자기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불신과 조국의 현실과 민족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 입장을 갖고 열등감에 빠져버렸다. 그들은 처참한 조국의 현실을 애써 외면하거나 현실순응적이며 기회주의적인 속성을 보여주더니 자신들의 지식정도에 걸맞는 사회의 지도적 위치를 점하는 부르조아층으로 자리를 잡으면서는 제국주의 가치관에 매몰되어 갔고 종속되어 결국은 민족을 부정하고 민족말살을 획책하는 일제의 매판적 주구가 되었던 것이다.
민족주의자들 중에는 인테리 지식분자들은 한 때 민족운동을 전개하여 일제의 탄압을 받은 경험이 있는 자들이거나 민족운동에 종사하여 일제의 끊임없는 감시를 받고 있던 자들이다. 그들은 인테리층을 사회개조의 원동력으로 보고 일반 대중은 계몽의 대상으로만 파악하여 사회구조적 모순을 타파하기 보다는 대중의 도덕성,위생,봉건성에 대한 개조를 현실문제로 보았고 이에 대한 운동만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고통을 수반하는 비타협의 길을 택하기 보다는 식민지 통치를 현실로 받아들였으며 실력양성, 혹은 준비론,자치론을 주장하였다. 이들의 주장은 해외에서 활약하던 실력양론자들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해외파들은 민족의 독립을 목표로 하였지만 국내 개량주의적 실력양성론자들은 일제의 민족개량운동과 차별성이 없이 결국 민족분열책에 이용되거나 일제의 관제운동에 흡수되어 민족운동계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그 결과 운동성을 잃고 민족주의에서 이탈하게 되었으며 일제의 파시즘이 강화되자 외적 조건에 쉽게 좌절되어 갔던 것이다. 그리고 민족 부르조아 계층의 자기 출세주의와 개인주의, 영리추구의 성향은 민족의 현실 외면은 물론 민족주의계열간의 파당을 조성하여 합치된 단결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일제에 이용당하였다. 특히 기독교, 불교, 천도교 등의 종교계에서는 반일성향을 갖고는 절대로 종교지도자가 될 수 없도록 하자 경쟁적으로 일제에 협력하여 황민화,전쟁동원에 협력하여 교권을 장악하고 아울러 개인적 영위를 추구하였다.
민족말살기에 민족주의자들 중에 과잉적으로 일제에 충성했던 자들이 많았던 것은 공산주의자들에 비해 민족주의자들은 특별한 사상체계나 조직적 구속력이 적었으며 심정적으로 민족적 양심은 살아있다해도 이미 일제에 정신적으로 굴복한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향자들은 완전한 친일분자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정신적 고뇌가 컸겠지만 그들은 반일감정보다는 열등감에 시달렸고 전향 후에는 일본인들이 자신을 계속 의심하고 적대시하지 않을까 전전긍긍 하면서 이로부터 탈출의 길은 일제에 맹목적 충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확신하였다. 그들의 지식정도로 보아 수탈당하는 식민지민과 배를 채우는 제국주의의 관계를 몰랐다고 볼 수 없다. 다만 힘의 논리에 의하여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식민지민의 질곡에서 해방되는 길은 완전한 종속과 민족의 말살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자위하였다. 그들은 민족을 배신한 댓가로 각 방면의 최고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고 이러한 일제의 배려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하여 더욱 경쟁적으로 충성하였으며 일제는 전향이라는 단어를 광용하여 변절을 시세에 따른, 민족을 위한 올바른 선택인양 호도하여 변절자들의 민족적 양심을 잠재웠다.
의문이 남는 것은 그들의 변절이 과연 강압과 위협에 굴복하여 신념과는 관계없이 자신은 물론 민족을 배신한 것인가, 아니면 일제에 굴복하였다 해도 내선일체의 이상을 믿으며 신념을 갖고 선택한 전향인가 하는 점이다.
- 끝 -
<참고문헌>
한상범 《우리사회의 일제잔재를 본다》 서울 : 푸른세상, 2001
신용하 《일제강점기하의 사회와 사상》 서울 : 신원문화사, 1991.
김삼웅 《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을까 : 일제 잔학사 70년의 기록》서울 : 사람과사람, 1998
『일제식민지정책 연구논문집』 서울 : 광복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한국학술진흥재단, 1995
『한국사, 13』, 《식민지시기의 사회경제 1》서울 : 한길사, 1994
서울대 교수 한영우 《다시찾은 우리역사》 경세원
강만길 《고쳐쓴 한국현대사》 창작과 비평사 2001.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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