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 미술사와 한국 누드화, 한국 조각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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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근대 미술사와 한국 누드화, 한국 조각의 흐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930년대의 전위 그룹전 연구
1.우리나라 근대 미술사 연구
2.우리나라 유학생과 일본화단의 구조
3.우리나라 화가들의 전위 그룹전 활동과 작품들

한국 근대의 누드화
1.한국 근대 누드화의 시작
2.동아시아에서의 누드화의 시작
3.우리나라 근대 미술의 누드화
4.해방후의 누드화
5.한국적 누드화

한국 근대조각의 흐름과 성격
1.한국 조각의 초기 흐름
2.일제시대의 조각
3.해방이후부터 1960년대까지의 조각
4.근대화 현대조각의 시대 구분

본문내용

누드는 서양미술의 가장 전통적인 소재이지만 얼 굴이나 표정에서 동양적 성격이 나타남
②서진달<왼손을 입에 댄 나부>
- 기법면에서는 세잔느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지만 서양의 이상적 자 세비례가 적용되지 않는 튼튼하고 건강한 한국의 토속적 여인상 묘사
5)구본웅 <여인>
- 우리나라 근대 누드작품 가운데 가장 성적으로 표현된 작품.
원색적 색채와 대담한 형체의 왜곡
6)이쾌대
- 위의 누드 작품은 습작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지만. 이쾌대의 작품은 아니였다. 1948년 제작한 누드 군상은 누드를 하나하나 따로 습작한 후 마지막에 하나의 완성 작품으로 조합하는 전통적이 서양미술의 제 작방법을 채택하여 박진감 넘치는 인체들의 운동감과 집중력을 나타 내었다 대부분의 다른 화가들이 주로 정적인 여성 누드를 그린 데 비 해 이쾌대는 우람한 남성 누드의 군상들로 영웅적인 인간형을 표현하 였고 이러한 누드 군상이 일본의 근대미술에서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 에서 그가 일본을 통해 서양화를 배웠다기보다는 직접 서양미술 공부 하였음을 알수있다.
4.해방 후의 누드화
1)해방 후의 대표적인 누드화가 김흥수와 최영림
①1950년대 이후 한국 서양화가 일본미술의 영향에서 멀어져 유럽과 미 국 화단과의 관계로 옮겨짐. 추상적인 표현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짐.
해방전후의 누드화의 뚜렷한 차이점은 이전의 사질주의적 성격에서 벗
어나 화가의 독자적인 해석이나 양식으로 자유롭게 발전한 점이다.
②김흥수
- 추상과 구상을 공존시키려함. 자신의 작품을 하모니즘이라고 말하며 상반되는 양식인 추상과 구상을 양과 음같이 상호공존시킴.
그는 구상의 여성 누드는 양이며 추상은 음이라고 설명하였다. 그에 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붉은 계열의 따뜻한 색채의 발색 효과와 더 불어 단순한 배경과 대비되는 여성 누드의 실루엣의 선묘이다.
③최영림(1916~85)
- 평양 출신의 화가인 최영림은 일제시대 때 평양박물관에 와있던 일 본인 화가 오노 다다아키의 소개로 1938년 일본에 가 오노의 동향인 이자 친구였던 무나카타 시코에게서 그림을 배움.
그의 작품에서 무나카타의 영향이 나타나는 것은 누드화를 본격적으 로 그리면서이다. 무나카타의 인체 형태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 하나 그의 작품에는 여성들의 꿈을 듯한 동화적 느낌이 강한데 벌거 벗은 인체는 가식이 없는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의 의미를 가지고 있 으며 이것은 무나카타의 누드화에서 발산되는 건강한 에로티시즘과 는 차이가 많다.
5. 한국적 누드화
- 서양미술의 도입과 함께 그려지기 시작한 누드의 형태가 유럽과 일본 미 술의 영향을 동시에 받으면서 한국적 누드로 정착되었다. 우리나라에 서 양화의 여러 재료와 사조가 한꺼번에 들어오면서 미술가들이 내용보다는 형태적인 모방에 더 치중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20세기 전반의 미술은 추상미술이 압도적이었고 고전주의 를 이어주는 대표적 형태로서의 누드는 미술의 주요 소재에서 벗어나 버 렸다고 할 수 있고 최근에 포스터 모더니즘과 더불어 다시 구상적 누드 가등장하고 있으나 이전과 같이 인산의 고귀함을 다루기보다는 비인간화 시키고 왜곡시켜 현대를 사는 인간의 고통과 좌절을 표현하는 경향이 더 많이 있다.
누드라는 이색적인 소재가 소개된 지 80년이 지난 지금 누드는 페미니즘 미술학자들에 의해 심미적 관조의 대상으로가 아닌 가부장적 사회문화의 남성 이데올로기의 반영으로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 근대조각의 흐름과 성격
1. 한국 조각의 초기 흐름
1)불교조각
①삼국시대, 통일신라 및 고려시대 때까지 우수한 불교조각이 성행
②조선시대에 와서 그 맥이 끊어짐
③능묘나 궁전의 석물조각 등으로 근근이 지속되어 왔으며 이 밖에
민속적인 조각물이 일부 남아 있음
2)20세기
①서양미술이 소개되기 시작
②인체 위주의 서양 조각의 개념이나 취향, 또 대개 점토를 빚어 석고로 완성시키는 방법은 우리의 전통 조각과 매우 다름
③회화의 경우 풍경화나 정물화와 같이 이미 우리나라 전통회화에 있었 던 소재에 유화기법이 도입되었던 것에 비해 조각은 서양조각의 ABC 를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과 같음
3)우리나라 근대 조각
①우리나라 근대 조각가
- 김복진(최최의 근대조각가), 문석오, 조규봉, 윤승욱, 김경승, 김 종영, 김두일, 김정수, 이국전 등이 있음, 이들은 동경미술학교의 조각과와 목조과 출신
②조각계가 사회적 굴곡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근대 조각에 대한 연구 역시 지지부진하다. 우선 기분적으로 연구될 작 품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이다. 동경유학생들의 조각작품들 역 시 동경예술대학의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졸업작품 사진첩과 일본의 관전도록을 참조한 것으로 실물은 현존하지 않는다.
2.일제시대의 조각
1)동경미술대학 조각과
①교육과정- 우리나라 근대조각 작품들은 대개 사실적 묘사에 바탕을 둔 두상, 누드 또는 착의의 인물상으로 근대조각의 선구자들 대 부분이 수학했던 동경 미술학교 조각과의 교육과정이 강조
②수업내용- 주로 점토와 석고를 가지고 처음에는 두상, 그 다음 반신상, 그리고 등신대로 옮겨가는 인체 모델 제작 위주. 교수들은 철저한 기본기를 익히기 위해여 사실적인 기법 이외에 다른 것은 금지시킴
2)일본 조각의 선구자들
①유럽유학
- 19세기 후반 일본의 1세대 조각가들이 유럽으로 많이 유학을 감.
그 당시 유럽에서는 인상주의 화가들이나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이 모 더니즘을 추구하면서 주제나 양식에 많은 변화가 일어남 반면 유럽의 조각가들은 고전주의를 고집했고, 이러한 고전주의는 오귀스트 로댕, 아리스티드 마이욜, 앙트완드 부르델과 같은 거장들에 의해 눈부신 성 장을 함
②유럽 당대의 대가들에서 사사하면서 석고보다 점토를 빚어 청동으로 주조하는 방법을 배웠고 귀국 후 이런 양식을 일본에 퍼뜨림
③태평양 전쟁이 끝나기까지 일본 조각의 주류는 사실주의적 구상 조각
3)근대 조각가와 작품 경향
①동경미술학교의 졸업작품 사진첩을 보면 동경미술학교 조각과 출신들 의 졸업작품이 김두일의 두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 누드상이었다
②김복진
- 졸업작품 <女>가 양손으로 가슴을 움켜 안은 로댕의 <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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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5.24
  • 저작시기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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