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위민의식과 정책반영
(1) 전혀 거부된 토지제도개혁론
(2) 변칙적으로 수용된 군혁개혁론
(3) 부분적으로 수용된 노비제도개혁론
II.실학의 근대적 전회
(1) 전회의 인적 계보
(2) 전회의 논리적 연관
(3) 전회의 계기
(1) 전혀 거부된 토지제도개혁론
(2) 변칙적으로 수용된 군혁개혁론
(3) 부분적으로 수용된 노비제도개혁론
II.실학의 근대적 전회
(1) 전회의 인적 계보
(2) 전회의 논리적 연관
(3) 전회의 계기
본문내용
고 단계적인 무역론 내지 단계적인 개국론을 내세웠다. 최한기는 쇄국정책을 비판하고 마땅히 문호를 개방하여 서양으로부터 배우고 이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기술도입사상이 그대로 김옥균, 박영효, 김윤식, 유길준 등 개화사상가들의 기술도입론으로 연결되고 있다.
다섯째, 실학에 있어서의 영업의 자유론이 개화사상에 의하여 계승 발전되었다.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모든 사람이 모두 자유롭게 상업에 종사할 수 있어야만 하고 양반도 정부에서 밑천을 마련해 주거나 가게를 설치해 주어서 권장토록 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영업의 자유론이 개화파에 계승되어 민중들과 함께 중세적 독점을 규탄하고 도매혁파론을 폈다.
여섯째, 토지문제에 대한 실학자의 개혁적인 구상이 개화사상가에 의하여 계승 발전되고 있다. 개화사상가들은 실학의 전제개혁론을 수정 계승하여 현실에 맞는 개혁방안을 모색하면서 하나의 타협적인 돌파구로 특히 실학자의 조세 금납화론을 적극 수용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3) 전회의 계기
실학사상이 근대사상으로 내재적인 전회를 하는 데 있어서 일종의 계기가 되는 몇 가지의 현상이 있다. 그것은 우선 사회적인 측면에서 실학사상과 개화사상의 중간에 중인을 비롯한 평민층의 대두와 그 역할이 크다는 사실이요, 다음으로 이념적인 측면에서 보아 실학이 개화사상으로 내적 전회를 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과거지향적인 시관이 점차 현재지향적인 시관으로, 다시 미래지향적인 시관으로 바뀌어간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실학사상의 이상을 현실화할 때 생기는 타협적인 수정론의 문제 또한 주목되는 현상이다.
첫째로 양반적인 실학에서 평민적인 실학으로 전환되는 현상이 일정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정다산은 그의 문하에 양반귀족의 자제를 두지 않았다. 그의 아들 정학유가 농민의 노래로서 '농가월령가'를 지었다는 것도 이와 관련되는 현상으로 보여진다. 실학자나 개화사상가들의 문하에도 많은 중인들이 출입하였고 실학서적이 부녀층에게도 전파되었다.
둘째로, 실학의 상고적인 시관이 미래지향적인 발전형 시관으로 바뀌면서 개화사상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산은 기술이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이라고 보고 그 기술은 시간이 가고 연구를 거듭함에 따라 날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며 성인의 생각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논의한 것이 훨씬 좋다고 하여 과거보다는 현재, 현재보다는 미래에 더욱 발전해 가리라는 진보관을 갖게 된다. 우리는 유길준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더욱 철저해서 미래의 발전을 가속적인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제까지 미약하나마 근대자본주의형성의 사상적 연계가 실학에서 내재적으로 주어지고 있었다는 점을 살펴볼 수가 있었다. 우리는 한말의 사회경제사상을 갈등과 긴장관계 속에서 재검토해 볼 필요를 느낀다. 앞으로 주체적인 발전의 가능성을 재검토하는 일에 못지 않게 그 가능성이 왜 실패로 끝나고 말았는가를 검토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 문제는 실학이 근대사상에로의 전회를 하는데 실패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주기도 한다.
-참고문헌-
이을호 '실학논총' 1975년 전남대 출판부
다섯째, 실학에 있어서의 영업의 자유론이 개화사상에 의하여 계승 발전되었다.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모든 사람이 모두 자유롭게 상업에 종사할 수 있어야만 하고 양반도 정부에서 밑천을 마련해 주거나 가게를 설치해 주어서 권장토록 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영업의 자유론이 개화파에 계승되어 민중들과 함께 중세적 독점을 규탄하고 도매혁파론을 폈다.
여섯째, 토지문제에 대한 실학자의 개혁적인 구상이 개화사상가에 의하여 계승 발전되고 있다. 개화사상가들은 실학의 전제개혁론을 수정 계승하여 현실에 맞는 개혁방안을 모색하면서 하나의 타협적인 돌파구로 특히 실학자의 조세 금납화론을 적극 수용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3) 전회의 계기
실학사상이 근대사상으로 내재적인 전회를 하는 데 있어서 일종의 계기가 되는 몇 가지의 현상이 있다. 그것은 우선 사회적인 측면에서 실학사상과 개화사상의 중간에 중인을 비롯한 평민층의 대두와 그 역할이 크다는 사실이요, 다음으로 이념적인 측면에서 보아 실학이 개화사상으로 내적 전회를 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과거지향적인 시관이 점차 현재지향적인 시관으로, 다시 미래지향적인 시관으로 바뀌어간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실학사상의 이상을 현실화할 때 생기는 타협적인 수정론의 문제 또한 주목되는 현상이다.
첫째로 양반적인 실학에서 평민적인 실학으로 전환되는 현상이 일정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정다산은 그의 문하에 양반귀족의 자제를 두지 않았다. 그의 아들 정학유가 농민의 노래로서 '농가월령가'를 지었다는 것도 이와 관련되는 현상으로 보여진다. 실학자나 개화사상가들의 문하에도 많은 중인들이 출입하였고 실학서적이 부녀층에게도 전파되었다.
둘째로, 실학의 상고적인 시관이 미래지향적인 발전형 시관으로 바뀌면서 개화사상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산은 기술이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이라고 보고 그 기술은 시간이 가고 연구를 거듭함에 따라 날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며 성인의 생각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논의한 것이 훨씬 좋다고 하여 과거보다는 현재, 현재보다는 미래에 더욱 발전해 가리라는 진보관을 갖게 된다. 우리는 유길준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더욱 철저해서 미래의 발전을 가속적인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제까지 미약하나마 근대자본주의형성의 사상적 연계가 실학에서 내재적으로 주어지고 있었다는 점을 살펴볼 수가 있었다. 우리는 한말의 사회경제사상을 갈등과 긴장관계 속에서 재검토해 볼 필요를 느낀다. 앞으로 주체적인 발전의 가능성을 재검토하는 일에 못지 않게 그 가능성이 왜 실패로 끝나고 말았는가를 검토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 문제는 실학이 근대사상에로의 전회를 하는데 실패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주기도 한다.
-참고문헌-
이을호 '실학논총' 1975년 전남대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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