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고전 E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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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북의학의 내용

내용 설명

본문내용

학자라 불리는 사상가들 대부분의 주장이 같은 운명이었다.
박제가는 1801년에 청나라에 다녀 온 뒤, 신유사옥(辛酉邪獄)에 연루된 사돈 때문에 3년 동안 억울하게 유배 생활을 했고, 1805년에 유배에서 풀려 돌아왔으나 이듬해 10월에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난 연대에 대해서는 1815년이라는 설도 있으나, 그렇다 해도 유배에서 풀려 난 뒤에는 일체의 공식 활동을 접고 은둔에 가까운 여생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박제가가 <북학의>에서 전개한 여러 주장은 당시 지배층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혁신적이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시대를 앞선 주장이었다. 그가 양반의 서자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그러한 혁신성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비록 정조의 각별한 정책으로 서자 출신들도 제한적이나마 능력에 따라서 등용되기는 했으나, 그들이 실질적으로 국가 정책의 입안과 집행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한 좌절 속에서 서얼 출신 지식인들은 기존의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지닐 수 있었다. 기존의 체제에 안주하기만 하면 가문과 일신의 영달을 누릴 수 있었던 양반 고위 관료들에게 기존 체제의 개혁을 기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박제가는 실패한 사상가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모순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고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용기 있게 발언한 사람이라면, 비록 그의 발언이 현실화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결코 실패한 사상가가 아니다. 오히려 위대한 사상일수록, 어느 정도는 시대를 앞서 나가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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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10.06.15
  • 저작시기2003.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19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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