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서론
1. 양동마을의 형성배경
1)자연적 배경
2)인문적 배경
2. 양동마을의 역사
II. 본론
- 각 건물의 특성( 낙선당, 관가정, 무첨당, 서백당, 향단) -
1. 낙선당
2. 관가정
3. 무첨당
4. 서백당
5. 향단
III. 나의 생각
[사진]
1. 낙선당
2. 관가정
3. 무첨당
4. 서백당
5. 향단
1. 양동마을의 형성배경
1)자연적 배경
2)인문적 배경
2. 양동마을의 역사
II. 본론
- 각 건물의 특성( 낙선당, 관가정, 무첨당, 서백당, 향단) -
1. 낙선당
2. 관가정
3. 무첨당
4. 서백당
5. 향단
III. 나의 생각
[사진]
1. 낙선당
2. 관가정
3. 무첨당
4. 서백당
5. 향단
본문내용
요한 독립된 격자가 더 부가된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외형적으로는 확장의 가능성을 가지나 내부적으로는 완결된 형식을 가지고 할 수 있다.
한편 안마당은 전체 면적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능상으로는 동선 및 자연적인 조건만을 충족시키고 있을 뿐이다. 여백의 관념성, 공간감을 더 중요시 여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네모난 마당의 모서리를 비우는 방법으로 안마당의 공간감이 건물 내부로 확장되어 여백의 공간감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두 간 방과 두 간 사랑대청의 바닥면은 동일 하지만 대청 아래 기단을 안으로 접어놓아서 대청 아래로 기둥이 내려온다. 또 단지 두 개의 기둥을 노출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누각의 형태를 갖출 수 있었다.
대종가로서는 물론 사대부집의 규모에도 못 미치는 몇 간 안되는 단순한 구성이지만 모든 기능을 수행 할 수 있는 경제성으로 관가정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
3. 무첨당
조선조 성리학자이며 문신이었던 이언적선생 종가댁의 일부로 조선중기에 세운 건물이다.
ㄱ자형의 평면에 둥근 기둥과 네모 기둥을 세워 방과 마루를 배치하고 간단한 초익공계 양식으로 꾸며 소박하면서고 보아지나 파련대공 등에서 솜씨를 보여주고 있으며 별당건축의 기능에 충실하도록 하였다.
큰 사랑채는 성주산을 안대로 취하고 있으며 사당은 높은 축대 위에 설치함으로써 마을의 내룡에 막히지 않고 멀리 낙산을 바라보고 있다.
한편 사당은 대지의 중앙, 가장 높은 곳에 영역을 마련하고 살림채와 큰 사랑채 사이에 직선의 가파른 계단을 설치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당이 이 집의 중심인 동시에 대종가임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적절한 비례를 가진 형태와 날렵한 처마선 섬세하게 조각된 초익공과 화반대공을 갖는 등, 최고로 장식적인 건물이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안채와 사랑채로 이루어진 살림채는 소박하고 간결하여 대종가의 위세에 맞지 않다.
4. 서백당
경주 손씨 대종가로 입향조인 양민공 손소가 건립하였으며 그의 아들인 우재 손중돈과 그의 외손이며 동방 18현으로 문묘에 배향된 회재 이언적이 태어난 곳이다.
시기적으로도 오래된 집이기도 하지만 단정하게 절제된 형태와 간결한 구성과 일절 장식이 배제된 소박함 등으로 양반살림집의 원초성을 보여주는 원형적인 집이다.
口자형 살림집과 그 앞의 긴 행랑채 그리고 동쪽의 사당채가 전부로 평면만 본다면 간단한 구성이다.
살림채는 사랑채와 안채가 복합되어 있다. 안채는 4간반 대청을 중심으로 부엌, 안방, 대청, 건너방이 마치 서울 지방형의 안채와 같은 평면이다. 그리고 사랑대청은 口자형 살림채의 흙담이 경계를 표시하고 있다.
이 집을 구성하고 있는 건축물 중 사당이 이 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사당은 뒤편 멀리 높은 석축위에 올려져 있기 때문에 대문간에서는 보이지는 않지만 대문을 들어서면 무의식적으로 안채쪽 보다는 오른쪽 사당으로 향하게 된다. 사당으로 향하는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넓게 펼쳐진 마당이 나타나고 그 위 계단식 정원 위로 사당문이 나타난다.
5. 향단
마을을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물이다. 1540년 건립된 향단은 회재 이언적 선생이 외척이씨의 입지를 높이고자 지은 건물이다.
장애물 없이 외관 전체를 드러내고 있는 마을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건축물이다. 그리고 지붕위로 드러나 있는 세 개의 삼각형 박공면이 눈에 띈다.
사랑채는 ㅡ자형 몸체지만 工자형으로 만들어서 정면의 지붕에 두 개의 박공 뱃집 양편에 八자 모양으로 붙인 두꺼운 널.
면이 강하게 노출되어있고, 다시 말해서 사랑채는 박공이라는 형태조작을 통해 만들어 졌다.
집의 기둥을 빼고는 모두 사각 기둥을 썼고, 기둥 위에는 섬세하게 조작된 익공 기둥 위에 새날개처럼 뻗어 나온 첨차식(墅遮式) 장식으로 장식적인 효과가 있는 전통건축양식.
을 달았고 대들보 위에는 화려한 복화반과 포대공을 올렸다. 사랑채의 지붕도 부연을 단 겹처마로 모두 민간 살림집에서는 보기 드문 장식들이며 자기과시와 개성이 표현되는 형태들이다.
경사지를 두 개의 단으로 나누어 터를 닦았고 구성이 매우 복잡하며 모든 건물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복합적인 평면구조보다 동선체계는 더욱 복잡하고 단절적이다.
향단은 외적으로는 화려하고 웅장한 느낌을 주지만 내적으로는 폐쇠적인 느낌을 준다.
III. 나의 생각
양동마을을 방문했을 때 아직도 이런 전통적인 마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랍고 왠지 모르게 좀 기쁜 마음이 들었다. 과거 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도시, 지방 할 것 없이 현대화된 콘크리트 건물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 결과로 현재 우리는 우리의 전통양식보단 오히려 외국적인 양식을 더 익숙해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대를 만들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나라의 전통성에 대한 고찰이 요구되며 전통양식을 발전시켜 현대적인 것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우리 전통의 양식을 계승하는 동시에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양동마을의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전문적으로 건축을 배우는 학과가 아니기 때문에 이번 방문에서 양동마을의 각 건물에 대한 구조, 건축양식 등 전문적인 부분에서는 사실 많은 것을 느끼진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양동마을을 가서 전통가옥을 구경하고 그 가옥들 안에 서서 각각의 서로 조금씩 다른 느낌들을 몸으로 느낀 것만으로도 매우 큰 배움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양동마을을 방문하는 관광객들 중 대다수는 나와 비슷한 건축적 지식을 가진 일반인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관광객들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양동마을은 비록 건축적 지식이 별로 없다 해도 우리에게 전통양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왜 우리의 것을 지키고 계승해야 하는지 충분히 말해주고 있었다. 이것이 양동마을의 진정한 가치가 아닌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좋은 답사였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여유가 생겼을 때 좋은 사람들과 다시한번 양동마을을 방문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사진]
1. 낙선당
2. 관가정
3. 무첨당
4. 서백당
5. 향단
한편 안마당은 전체 면적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능상으로는 동선 및 자연적인 조건만을 충족시키고 있을 뿐이다. 여백의 관념성, 공간감을 더 중요시 여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네모난 마당의 모서리를 비우는 방법으로 안마당의 공간감이 건물 내부로 확장되어 여백의 공간감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두 간 방과 두 간 사랑대청의 바닥면은 동일 하지만 대청 아래 기단을 안으로 접어놓아서 대청 아래로 기둥이 내려온다. 또 단지 두 개의 기둥을 노출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누각의 형태를 갖출 수 있었다.
대종가로서는 물론 사대부집의 규모에도 못 미치는 몇 간 안되는 단순한 구성이지만 모든 기능을 수행 할 수 있는 경제성으로 관가정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
3. 무첨당
조선조 성리학자이며 문신이었던 이언적선생 종가댁의 일부로 조선중기에 세운 건물이다.
ㄱ자형의 평면에 둥근 기둥과 네모 기둥을 세워 방과 마루를 배치하고 간단한 초익공계 양식으로 꾸며 소박하면서고 보아지나 파련대공 등에서 솜씨를 보여주고 있으며 별당건축의 기능에 충실하도록 하였다.
큰 사랑채는 성주산을 안대로 취하고 있으며 사당은 높은 축대 위에 설치함으로써 마을의 내룡에 막히지 않고 멀리 낙산을 바라보고 있다.
한편 사당은 대지의 중앙, 가장 높은 곳에 영역을 마련하고 살림채와 큰 사랑채 사이에 직선의 가파른 계단을 설치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당이 이 집의 중심인 동시에 대종가임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적절한 비례를 가진 형태와 날렵한 처마선 섬세하게 조각된 초익공과 화반대공을 갖는 등, 최고로 장식적인 건물이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안채와 사랑채로 이루어진 살림채는 소박하고 간결하여 대종가의 위세에 맞지 않다.
4. 서백당
경주 손씨 대종가로 입향조인 양민공 손소가 건립하였으며 그의 아들인 우재 손중돈과 그의 외손이며 동방 18현으로 문묘에 배향된 회재 이언적이 태어난 곳이다.
시기적으로도 오래된 집이기도 하지만 단정하게 절제된 형태와 간결한 구성과 일절 장식이 배제된 소박함 등으로 양반살림집의 원초성을 보여주는 원형적인 집이다.
口자형 살림집과 그 앞의 긴 행랑채 그리고 동쪽의 사당채가 전부로 평면만 본다면 간단한 구성이다.
살림채는 사랑채와 안채가 복합되어 있다. 안채는 4간반 대청을 중심으로 부엌, 안방, 대청, 건너방이 마치 서울 지방형의 안채와 같은 평면이다. 그리고 사랑대청은 口자형 살림채의 흙담이 경계를 표시하고 있다.
이 집을 구성하고 있는 건축물 중 사당이 이 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사당은 뒤편 멀리 높은 석축위에 올려져 있기 때문에 대문간에서는 보이지는 않지만 대문을 들어서면 무의식적으로 안채쪽 보다는 오른쪽 사당으로 향하게 된다. 사당으로 향하는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넓게 펼쳐진 마당이 나타나고 그 위 계단식 정원 위로 사당문이 나타난다.
5. 향단
마을을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물이다. 1540년 건립된 향단은 회재 이언적 선생이 외척이씨의 입지를 높이고자 지은 건물이다.
장애물 없이 외관 전체를 드러내고 있는 마을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건축물이다. 그리고 지붕위로 드러나 있는 세 개의 삼각형 박공면이 눈에 띈다.
사랑채는 ㅡ자형 몸체지만 工자형으로 만들어서 정면의 지붕에 두 개의 박공 뱃집 양편에 八자 모양으로 붙인 두꺼운 널.
면이 강하게 노출되어있고, 다시 말해서 사랑채는 박공이라는 형태조작을 통해 만들어 졌다.
집의 기둥을 빼고는 모두 사각 기둥을 썼고, 기둥 위에는 섬세하게 조작된 익공 기둥 위에 새날개처럼 뻗어 나온 첨차식(墅遮式) 장식으로 장식적인 효과가 있는 전통건축양식.
을 달았고 대들보 위에는 화려한 복화반과 포대공을 올렸다. 사랑채의 지붕도 부연을 단 겹처마로 모두 민간 살림집에서는 보기 드문 장식들이며 자기과시와 개성이 표현되는 형태들이다.
경사지를 두 개의 단으로 나누어 터를 닦았고 구성이 매우 복잡하며 모든 건물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복합적인 평면구조보다 동선체계는 더욱 복잡하고 단절적이다.
향단은 외적으로는 화려하고 웅장한 느낌을 주지만 내적으로는 폐쇠적인 느낌을 준다.
III. 나의 생각
양동마을을 방문했을 때 아직도 이런 전통적인 마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랍고 왠지 모르게 좀 기쁜 마음이 들었다. 과거 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도시, 지방 할 것 없이 현대화된 콘크리트 건물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 결과로 현재 우리는 우리의 전통양식보단 오히려 외국적인 양식을 더 익숙해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대를 만들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나라의 전통성에 대한 고찰이 요구되며 전통양식을 발전시켜 현대적인 것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우리 전통의 양식을 계승하는 동시에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양동마을의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전문적으로 건축을 배우는 학과가 아니기 때문에 이번 방문에서 양동마을의 각 건물에 대한 구조, 건축양식 등 전문적인 부분에서는 사실 많은 것을 느끼진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양동마을을 가서 전통가옥을 구경하고 그 가옥들 안에 서서 각각의 서로 조금씩 다른 느낌들을 몸으로 느낀 것만으로도 매우 큰 배움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양동마을을 방문하는 관광객들 중 대다수는 나와 비슷한 건축적 지식을 가진 일반인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관광객들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양동마을은 비록 건축적 지식이 별로 없다 해도 우리에게 전통양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왜 우리의 것을 지키고 계승해야 하는지 충분히 말해주고 있었다. 이것이 양동마을의 진정한 가치가 아닌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좋은 답사였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여유가 생겼을 때 좋은 사람들과 다시한번 양동마을을 방문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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