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2:21~30) 그리고 ‘바깥문’ 에 해당하는 ‘솨아르()’ 는 안문과 대조되는 개인의 집에 있는 바깥문을 일컫는 것이 아니고 한 마을이나 도시의 입구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본문이 말하는 것은 자기의 개인적인 생활 공간에서든지 혹은 도시 공동체 안에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라는 의미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더 나아가 집을 출입하거나 또는 멀리 다른 지역이나 타국으로 떠나거나 돌아올 때라도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이 거하는 삶의 현장에서 언제나 하나님 말씀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Ⅴ. 신학적 관점
1. 유일신론
모세는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과 언약 갱신을 하면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4절)’ 이라고 선언한다. ‘하나인 여호와’ 라는 표현은 기독교의 ‘유일신론’ 의 근거가 된다. ‘유일신론’ 은 무신론과 구별되고 다신론과도 구별된다. 더 나아가서 이것은 일신론, 단일신론과도 구별된다. 성경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유일신론’자였는지 ‘일신론자’였는지 명백히 밝히고 있지 않다.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과 투쟁할 때에 ‘유일신론’ 의 교리를 천명하고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왕상 18:24). ‘유일신론’ 은 성경계시가 진행되면서 좀 더 확실해졌지만 백성들의 수준에서는 다신론 사상이 포로 후 시대까지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진리를 차례차례 나타내시기로 결정하신 점진적인 계시의 원리와 일치하는 것이다.(히 1:1) ‘유일신론’ 은 삼위 일체 교리에 의해 부인되거나 왜곡되지 않는다. 사도들은 하나님께서 서우, 성자, 성령의 세 인격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구약이 말하는 교리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도들은 구약에 나오는 ‘주님의 사자’와 ‘주님의 영’ 이라는 구절들이 삼위 일체 교리를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역사 초기에 유일신론적으로 나타난 삼위 일체 계시가 점진적으로 발전되면서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에 의해 완성되는 것을 알 수 있다.
2. 신조
신명기 6:4,5는 이스라엘의 “신조(Creed)", 또는 이 신조의 첫 단어를 따서 말하자면 ”쉐마(Shema)" 이다 - 이 “쉐마” 는 유대인들이 이 신조를 지칭 할 때 부르는 이름이다. 윌리엄 S. 라솔,『구약개관』, 박철현 옮김,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77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 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말씀은 유대인들의 가슴에 새겨져야 했으며, 또 그들의 자손들에게 부지런히 전수되어야 했다. 이 말씀은 “기호”로서 손목에 채워야 했으며 “표” 로서 눈썹 사이에 착용되어야 했다. 이것들은 집의 문기둥과 문 위에 기록해야 했다. 이 쉐마에 바로 뒤이어 나오는 지침들은 유대인들이 일상적인 종교적인 의식들의 이루가 되었다. 예수님은 5절의 말씀들이 첫째 되고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2:37). 이 신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가 한 분이심과 독특하심을 그와 그의 백성간에 확립된 관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결론
이스라엘은 아니 모든 사람들은 한 분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온 인격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만이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표준이고 지표가 된다. 따라서 부모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본을 보이며 자녀들을 가르쳐야 한다. 말씀을 가르치는 방법은 틈만 나면 가르칠 기회를 만들어 언제든지 가르칠 것이며 ‘쉐마‘ 를 문과 문설주, 이마와 손목에 매어 가르쳐야 한다. 하남의 말씀이 자녀들 머리에, 마음에, 육신에 지울 수 없이 새겨지도록 가르치고 또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쉐마’ 이고 이스라엘 신앙 교육의 원리며, 삶의 원리이다.
오늘날 우리는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어떻게 시키고 있는가? 방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느새 가정안에서의 신앙교육은 사라지고 아이들은 세상교육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 중심 사상은 온데 간데 없어 지고 말았다.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도록 하여야 한다. 뿐 만 아니라 성도들은 누구나 다 주의 말씀의 책인 성경을 항상 가까이 두고 모든 것을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사람들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그 분의 뜻만이 절대적인 삶의 기준이 된다. 성도가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또 공부해야 할 이유가 이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 말씀으로 교육받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단 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심각한 여러 가지 문제들로 가득한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들의 생각으로 삶의 기준을 삼고 또 그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부패하고 타락하여 생각하는 것이 다 악하고 거짓 될 뿐이다. 그러니 그러한 사람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사회가 어찌 문제가 없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여 그 말씀을 들으며 그대로 행해야 한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사회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듣고 순종할 때 흔들림없이 바르게 세워질 수 있다.
이스라엘의 쉐마 교육을 통해 알아본 바와 같이 우리 자녀들을 교회 성도들을 가르침에 있어 성경적 가르침의 중요성을 깨닫고 신앙교육, 성경 교육에 더욱 힘을 다해 가르치고 선포해야 하겠다.
참고문헌
강병도 ,『신명기(호크마 종합주석5)』, 기독 지혜사, 1989
강병도, 『신명기』(카리스종합주석 제 18권)』, 기독지혜사, 2005
목양서원 편,『신명기(트리니티 말씀대전 전30권)』, 목양서원, 1991
제자원 편,『신명기(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 성서교재주식회사, 1999
윌리엄 S. 라솔,『구약개관』, 박철현 옮김,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9
레이몬드 딜러드 외,『최신구약개관』박철현 옮김,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7
최종진,『구약성서 개론』, 소망사, 2000
강병도,『위즈덤 종합 강해』기독지혜사, 1995
레이먼드 브라운,『신명기 강해』, 정옥배 옮김, IVP, 1997
Ⅴ. 신학적 관점
1. 유일신론
모세는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과 언약 갱신을 하면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4절)’ 이라고 선언한다. ‘하나인 여호와’ 라는 표현은 기독교의 ‘유일신론’ 의 근거가 된다. ‘유일신론’ 은 무신론과 구별되고 다신론과도 구별된다. 더 나아가서 이것은 일신론, 단일신론과도 구별된다. 성경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유일신론’자였는지 ‘일신론자’였는지 명백히 밝히고 있지 않다.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과 투쟁할 때에 ‘유일신론’ 의 교리를 천명하고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왕상 18:24). ‘유일신론’ 은 성경계시가 진행되면서 좀 더 확실해졌지만 백성들의 수준에서는 다신론 사상이 포로 후 시대까지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진리를 차례차례 나타내시기로 결정하신 점진적인 계시의 원리와 일치하는 것이다.(히 1:1) ‘유일신론’ 은 삼위 일체 교리에 의해 부인되거나 왜곡되지 않는다. 사도들은 하나님께서 서우, 성자, 성령의 세 인격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구약이 말하는 교리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도들은 구약에 나오는 ‘주님의 사자’와 ‘주님의 영’ 이라는 구절들이 삼위 일체 교리를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역사 초기에 유일신론적으로 나타난 삼위 일체 계시가 점진적으로 발전되면서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에 의해 완성되는 것을 알 수 있다.
2. 신조
신명기 6:4,5는 이스라엘의 “신조(Creed)", 또는 이 신조의 첫 단어를 따서 말하자면 ”쉐마(Shema)" 이다 - 이 “쉐마” 는 유대인들이 이 신조를 지칭 할 때 부르는 이름이다. 윌리엄 S. 라솔,『구약개관』, 박철현 옮김,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77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 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말씀은 유대인들의 가슴에 새겨져야 했으며, 또 그들의 자손들에게 부지런히 전수되어야 했다. 이 말씀은 “기호”로서 손목에 채워야 했으며 “표” 로서 눈썹 사이에 착용되어야 했다. 이것들은 집의 문기둥과 문 위에 기록해야 했다. 이 쉐마에 바로 뒤이어 나오는 지침들은 유대인들이 일상적인 종교적인 의식들의 이루가 되었다. 예수님은 5절의 말씀들이 첫째 되고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2:37). 이 신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가 한 분이심과 독특하심을 그와 그의 백성간에 확립된 관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결론
이스라엘은 아니 모든 사람들은 한 분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온 인격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만이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표준이고 지표가 된다. 따라서 부모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본을 보이며 자녀들을 가르쳐야 한다. 말씀을 가르치는 방법은 틈만 나면 가르칠 기회를 만들어 언제든지 가르칠 것이며 ‘쉐마‘ 를 문과 문설주, 이마와 손목에 매어 가르쳐야 한다. 하남의 말씀이 자녀들 머리에, 마음에, 육신에 지울 수 없이 새겨지도록 가르치고 또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쉐마’ 이고 이스라엘 신앙 교육의 원리며, 삶의 원리이다.
오늘날 우리는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어떻게 시키고 있는가? 방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느새 가정안에서의 신앙교육은 사라지고 아이들은 세상교육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 중심 사상은 온데 간데 없어 지고 말았다.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도록 하여야 한다. 뿐 만 아니라 성도들은 누구나 다 주의 말씀의 책인 성경을 항상 가까이 두고 모든 것을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사람들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그 분의 뜻만이 절대적인 삶의 기준이 된다. 성도가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또 공부해야 할 이유가 이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 말씀으로 교육받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단 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심각한 여러 가지 문제들로 가득한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들의 생각으로 삶의 기준을 삼고 또 그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부패하고 타락하여 생각하는 것이 다 악하고 거짓 될 뿐이다. 그러니 그러한 사람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사회가 어찌 문제가 없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여 그 말씀을 들으며 그대로 행해야 한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사회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듣고 순종할 때 흔들림없이 바르게 세워질 수 있다.
이스라엘의 쉐마 교육을 통해 알아본 바와 같이 우리 자녀들을 교회 성도들을 가르침에 있어 성경적 가르침의 중요성을 깨닫고 신앙교육, 성경 교육에 더욱 힘을 다해 가르치고 선포해야 하겠다.
참고문헌
강병도 ,『신명기(호크마 종합주석5)』, 기독 지혜사, 1989
강병도, 『신명기』(카리스종합주석 제 18권)』, 기독지혜사, 2005
목양서원 편,『신명기(트리니티 말씀대전 전30권)』, 목양서원, 1991
제자원 편,『신명기(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 성서교재주식회사, 1999
윌리엄 S. 라솔,『구약개관』, 박철현 옮김,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9
레이몬드 딜러드 외,『최신구약개관』박철현 옮김,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7
최종진,『구약성서 개론』, 소망사, 2000
강병도,『위즈덤 종합 강해』기독지혜사, 1995
레이먼드 브라운,『신명기 강해』, 정옥배 옮김, IVP,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