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줄거리 + 감상
본문내용
인하거나 미묘한 차이를 밝히는 (다시 말해서, 전통적 의미로, 설명하는) 일에 그치지 말고, 특별한 정보를 가져와야 하고, 이렇게 해서 예술활동의 산물로 나타나는 자료를 무시하지 않는 몸의 역사에 이바지해야 한다. 몸을 표현하는 그림을 가지고 연구하는 몸의 역사는 다른 형태의 역사 분석과 대립해서는 안 된다. 몸의 역사를 구축할 수 있도록 다른 형태의 자료를 생산한 주역들이 바로 이 그림들을 생산하고 이용했는데,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림은 형상화된 표상으로서 그 나름의 역할과 관심을 담고 있다. 그림이 비록 말을 할 수 없다 해도 무엇인가 진술하는 방식, 그것의 다양한 기능(추억, 계몽, 쾌락 따위), 그리고 그것이 (공적, 사적, 내밀한 형태로) 수용되는 영역은 존재하는 상황과 관행을 반영하는 증거로만 그치지 않는다. 그림은 본보기나 반대 본보기를 이용하고, 또 무엇인가 제안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제안은 우리에게 실천을 통하여 적응하도록 요구한다. 또 이 제안은 다른 형태의 문서에서 자취를 찾을 수 없는 관심의 투사와 집중을 허락해준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는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이러한 표상들의 역사를 살펴보려 한다. 그 역사는 예술품에 담긴 심상들이 정치, 사회, 또는 문화적으로 특별한 역할, 집단이나 개인이 맡은 특별한 역할의 매개물이라고 여긴다.”
아라스는 미술사도 여느 역사처럼 비공시성이 공존하는 영역이므로 일직선의 발전으로 인식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편리한 범위 안에서 몸의 표상의 직선적 역사를 구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몸의 표상은 라파엘의 우아함(grazia)과 미켈란젤로의 끔찍함(terribilita)이 대조를 보이는 고전시대의 형상에서, 일관성을 가진 바로크 양식의 다양한 표현을 거쳐, 결국 다비드와 고야가 대립하는 시대까지 발전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역사는 몸의 심상을 표현하는 “양식”이 이념이나 사회적 맥락에 밀접하게 연결되는 사례를 보여준다. 그러나 직선적인 연대기를 추적하기보다는, 장기지속의 시간 속에서 몇 가지 연속적인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해서, 몸이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사람들이 어느 날 미술이라 부를 체계 안에서 중심에 서는 때부터 몸의 시각적 표현이 일어나는 중요한 장소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말한다.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아라스는 “몸의 영광”을 표현하는 인체의 비율과 살의 효과를 분석하고, “몸의 통제”를 위한 해부학, 몸의 예절과 수사법의 발전을 살핀다. 그는 문헌과 그림들은 몸을 물리적 기계로 표현하는 새로운 과학적 체계와 나란히,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몸을 사회관계의 받침대로 표현하는 새로운 문화적 체계를 보여주었고, 이제 “예절”의 교범이 나타나고 늘어나는 시대가 열렸다고 말한다.
아라스는 18세기에 관상학이 적용의 분야를 바꾸었으며, 그것은 아주 뜻깊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18세기는 얼굴에 고정된 특성을 해독함으로써 사람의 기질을 알아내려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소우주인 인간이 자연이라는 대우주와 연결되었음을 보여주는) 표시를 해독함으로써, 종족이나 사회에 속한 개인의 특징을 표시(signalement)하고자 노력했다. 그리하여 얼굴에서 두개골의 비율에 관심을 가지고 비교하는 “골상측정술”(cranometrie)이 발달했다. 그 시대에 가장 유명한 주창자로서 해부학자가 되기 전에 화가였던 페트루스 캄페르(Petrus Camper)는 인종주의적 결론을 이끌어 내면서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다. 요한 프리드리히 블루멘바크(Johann Friedrich Blumenbach)는 머리뼈의 기본 형태를 (코카서스, 몽고, 에티오피아, 아메리카, 말레이시아의) 다섯 가지로 분류하도록 동물계통학의 원리를 인간에게 적용했으며, 관상학 전통을 “근대적”으로 표현한 요한 카스파 라바터(Johann Kaspar Lavater)는 머리뼈가 몸의 뼈구조의 “기초이며 축소판”이라고 생각하면서, 얼굴이 “인간 형태의 축소판이며 결과”라고 보았다. 아라스는 르네상스 시대에 기형과 이형에 매료되는 분위기, 18세기에는 해부용인형을 정교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분석했다.
지금까지 몸의 역사 1권의 내용을 훑어보았다. 이 책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먼저 아날 학파의 역사적 성공을 짚을 수 있다. 1974년 역사하기(Faire de l'histoire) 3권 “새로운 대상”(Nouveaux objets, sous la direction de Jacques Le Goff et Pierre Nora, Editions Gallimard)에서 공식 주제로 등록된 “몸”은 사실상 역사의 바깥에서 먼저 관심을 가진 주제였다. 의사는 병든 몸, 법률가는 고문당한 몸, 시몬 드 보부아르 같은 철학자는 여성의 몸에 눈길을 주었다. 학문 가운데 가장 전통 깊은 역사학은 20세기초부터 사회사 분야를 개척하고, 그 뒤 언어학, 인류학, 사회학 같은 새로운 분야의 도전을 받으면, 그 분야의 방법론을 전유하여 새롭게 태어나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렇게 해서, 몸이라는 주제도 역사학의 새로운 연구 주제가 되었다. 전체사가 아니라 조각난 역사이긴 해도, 몸의 역사는 그 나름대로 문화 전반의 주제를 담는다. 사고방식과 상징, 예절, 의학, 미술, 종교의 중심에 몸이 있다. 그리고 그 연구는 아직도 진행중이며, 강의주제로도 등장했다. 예를 들어, 몸의 역사 1권의 책임편집자 조르주 비가렐로와 필자 라파엘 만드레시, 그리고 티에리 피용 세 사람은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2007년 11월 15일부터 2008년 5월 29일까지 “몸의 역사, 대상, 방법론”(Histoire du corps, objets, methodes)을 강의했다. 강의 목적에서 말하듯이, “역사가는 오랫동안 몸을 잊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과학은 그 중요성과 깊이를 밝혔다. 몸의 독창적인 위치는 개인과 사회적 경험이 만나는 데 있다는 사실로 알 수 있다.” 이렇게 역사학은 오랫동안 잊었던 몸을 깨웠고, 그 풍부한 역사를 파헤쳤다. 몸의 역사는 몸을 중심으로 발달한 상징, 표상, 기호, 물질문명의 풍부한 문화사로 들어가는 입구다.
아라스는 미술사도 여느 역사처럼 비공시성이 공존하는 영역이므로 일직선의 발전으로 인식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편리한 범위 안에서 몸의 표상의 직선적 역사를 구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몸의 표상은 라파엘의 우아함(grazia)과 미켈란젤로의 끔찍함(terribilita)이 대조를 보이는 고전시대의 형상에서, 일관성을 가진 바로크 양식의 다양한 표현을 거쳐, 결국 다비드와 고야가 대립하는 시대까지 발전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역사는 몸의 심상을 표현하는 “양식”이 이념이나 사회적 맥락에 밀접하게 연결되는 사례를 보여준다. 그러나 직선적인 연대기를 추적하기보다는, 장기지속의 시간 속에서 몇 가지 연속적인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해서, 몸이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사람들이 어느 날 미술이라 부를 체계 안에서 중심에 서는 때부터 몸의 시각적 표현이 일어나는 중요한 장소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말한다.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아라스는 “몸의 영광”을 표현하는 인체의 비율과 살의 효과를 분석하고, “몸의 통제”를 위한 해부학, 몸의 예절과 수사법의 발전을 살핀다. 그는 문헌과 그림들은 몸을 물리적 기계로 표현하는 새로운 과학적 체계와 나란히,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몸을 사회관계의 받침대로 표현하는 새로운 문화적 체계를 보여주었고, 이제 “예절”의 교범이 나타나고 늘어나는 시대가 열렸다고 말한다.
아라스는 18세기에 관상학이 적용의 분야를 바꾸었으며, 그것은 아주 뜻깊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18세기는 얼굴에 고정된 특성을 해독함으로써 사람의 기질을 알아내려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소우주인 인간이 자연이라는 대우주와 연결되었음을 보여주는) 표시를 해독함으로써, 종족이나 사회에 속한 개인의 특징을 표시(signalement)하고자 노력했다. 그리하여 얼굴에서 두개골의 비율에 관심을 가지고 비교하는 “골상측정술”(cranometrie)이 발달했다. 그 시대에 가장 유명한 주창자로서 해부학자가 되기 전에 화가였던 페트루스 캄페르(Petrus Camper)는 인종주의적 결론을 이끌어 내면서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다. 요한 프리드리히 블루멘바크(Johann Friedrich Blumenbach)는 머리뼈의 기본 형태를 (코카서스, 몽고, 에티오피아, 아메리카, 말레이시아의) 다섯 가지로 분류하도록 동물계통학의 원리를 인간에게 적용했으며, 관상학 전통을 “근대적”으로 표현한 요한 카스파 라바터(Johann Kaspar Lavater)는 머리뼈가 몸의 뼈구조의 “기초이며 축소판”이라고 생각하면서, 얼굴이 “인간 형태의 축소판이며 결과”라고 보았다. 아라스는 르네상스 시대에 기형과 이형에 매료되는 분위기, 18세기에는 해부용인형을 정교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분석했다.
지금까지 몸의 역사 1권의 내용을 훑어보았다. 이 책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먼저 아날 학파의 역사적 성공을 짚을 수 있다. 1974년 역사하기(Faire de l'histoire) 3권 “새로운 대상”(Nouveaux objets, sous la direction de Jacques Le Goff et Pierre Nora, Editions Gallimard)에서 공식 주제로 등록된 “몸”은 사실상 역사의 바깥에서 먼저 관심을 가진 주제였다. 의사는 병든 몸, 법률가는 고문당한 몸, 시몬 드 보부아르 같은 철학자는 여성의 몸에 눈길을 주었다. 학문 가운데 가장 전통 깊은 역사학은 20세기초부터 사회사 분야를 개척하고, 그 뒤 언어학, 인류학, 사회학 같은 새로운 분야의 도전을 받으면, 그 분야의 방법론을 전유하여 새롭게 태어나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렇게 해서, 몸이라는 주제도 역사학의 새로운 연구 주제가 되었다. 전체사가 아니라 조각난 역사이긴 해도, 몸의 역사는 그 나름대로 문화 전반의 주제를 담는다. 사고방식과 상징, 예절, 의학, 미술, 종교의 중심에 몸이 있다. 그리고 그 연구는 아직도 진행중이며, 강의주제로도 등장했다. 예를 들어, 몸의 역사 1권의 책임편집자 조르주 비가렐로와 필자 라파엘 만드레시, 그리고 티에리 피용 세 사람은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2007년 11월 15일부터 2008년 5월 29일까지 “몸의 역사, 대상, 방법론”(Histoire du corps, objets, methodes)을 강의했다. 강의 목적에서 말하듯이, “역사가는 오랫동안 몸을 잊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과학은 그 중요성과 깊이를 밝혔다. 몸의 독창적인 위치는 개인과 사회적 경험이 만나는 데 있다는 사실로 알 수 있다.” 이렇게 역사학은 오랫동안 잊었던 몸을 깨웠고, 그 풍부한 역사를 파헤쳤다. 몸의 역사는 몸을 중심으로 발달한 상징, 표상, 기호, 물질문명의 풍부한 문화사로 들어가는 입구다.
추천자료
'인물로 보는 친일파 역사'독후감
몸값 경제학 서평/독후감/감상문
윤영상 교수님 경제학 역사에 관한 책 독후감 자료입니다. (죽은 경제학자들의 살아있는 아이...
서머싯 몸의 '면도날'에 대한 독후감(A+서평)
20세기 성의 역사를 읽고 독후감
항공우주역사[독후감]
고려역사-광종과 황제의 나라를 읽고 독후감
[서평/독후감] 역사를 움직이는 진정한 힘 -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의 <전쟁과 ...
[동양의 역사와 문화 독후감] 『중국인도 다시 읽는 중국사람 이야기』
[중국근대사 독후감]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투쟁하는 혁명가들 - 조너선 D.스펜스의 《천안문...
상품의 역사 [서평, 독후감] _ 리사 지단 저
포용의 정복자 이슬람 (저자 김승철) [제목:이슬람 역사를 통해 본 우리 역사와 사회] 독후감...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