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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다. 칸트는 이렇게 인간에게 자유의지까지 확보함으로써 도덕의 격(格)을 한껏 끌어올린다.
자유로운 인간이, 그 자유로운 의지로써 단연코 택해야할 명령으로서의 선의지, 이것은 인간이 리(利)만을 염두에 두고 이것을 주판 두들기는 영국인들의 사고에 비해 얼마나 격조 있는 것인가? 옳음이 이익에 자리를 빼앗기는 영국식 윤리규범에 비해 인류의 품격이 얼마나 상승된 것인가? 물론 칸트에 대해 이렇게 호의를 보이는 본인의 태도는, 그 아둔함도 큰 몫을 차지한 것이겠지만,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 속에서 여전히 빛나는 공자(孔子)의 가르침이 가슴 속에 반짝이는 별처럼 광휘를 뿜고 있기 때문인 듯도 하다.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땅을 생각하며, 군자는 법을 생각하고, 소인은 은혜만 바란다“(子曰, 君子懷德, 小人懷土, 君子懷刑, 小人懷蕙)는 공자의 메아리가 여전히 귓가에 생생한 본인으로서는 아무래도 칸트식의 규범을 좇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비단 본인의 저와 같은 태도뿐 아니라 자본주의의 천박한 병폐가 나날이 기승을 부리며, 인간은 삶의 목적조차 잡지 못한 채 오직 이익에만 휩쓸려 광기의 홍수에 휩쓸려 가는 이 시대에 있어, 우리는 공리주의자들을 답습하여 이익을 다투고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도덕의 권위를 부활시켜 인간의 목적이 이익이 아닌 “참된 인간”의 실현에 있음을 자각해야 하는가? 프로이센의 이 현인 앞에서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칸트의 지적이 바로 오늘날 이 땅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데 있으며, 인간의 지상이 목적이 왕국이 되는 그 때까지 항상 동시에 숙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이, 그 자유로운 의지로써 단연코 택해야할 명령으로서의 선의지, 이것은 인간이 리(利)만을 염두에 두고 이것을 주판 두들기는 영국인들의 사고에 비해 얼마나 격조 있는 것인가? 옳음이 이익에 자리를 빼앗기는 영국식 윤리규범에 비해 인류의 품격이 얼마나 상승된 것인가? 물론 칸트에 대해 이렇게 호의를 보이는 본인의 태도는, 그 아둔함도 큰 몫을 차지한 것이겠지만,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 속에서 여전히 빛나는 공자(孔子)의 가르침이 가슴 속에 반짝이는 별처럼 광휘를 뿜고 있기 때문인 듯도 하다.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땅을 생각하며, 군자는 법을 생각하고, 소인은 은혜만 바란다“(子曰, 君子懷德, 小人懷土, 君子懷刑, 小人懷蕙)는 공자의 메아리가 여전히 귓가에 생생한 본인으로서는 아무래도 칸트식의 규범을 좇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비단 본인의 저와 같은 태도뿐 아니라 자본주의의 천박한 병폐가 나날이 기승을 부리며, 인간은 삶의 목적조차 잡지 못한 채 오직 이익에만 휩쓸려 광기의 홍수에 휩쓸려 가는 이 시대에 있어, 우리는 공리주의자들을 답습하여 이익을 다투고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도덕의 권위를 부활시켜 인간의 목적이 이익이 아닌 “참된 인간”의 실현에 있음을 자각해야 하는가? 프로이센의 이 현인 앞에서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칸트의 지적이 바로 오늘날 이 땅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데 있으며, 인간의 지상이 목적이 왕국이 되는 그 때까지 항상 동시에 숙제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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