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으로 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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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상으로 본 중국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문

Ⅰ. 중국 사상의 시작: 춘추·전국시대

Ⅱ. 아편전쟁 이전 시기: 경세치용의 실학과 공양학

Ⅲ. 근대 중국 사상의 시작: 아편전쟁(1840) 이후 중체서용

Ⅳ. 쑨원(1866~1925) 과 삼민주의

Ⅴ. 신문화운동(1910 ~ 1920) 과 5.4운동(1919년: 반제국주의·반봉건주의

Ⅵ. 중국 공산당의 창당: 중국에 싹트는 붉은 물결(1921 ~ 현재)

Ⅶ. 마오쩌둥(1920 ~ 1976) 사상

Ⅷ. 덩 샤오핑(1904 ~ 1997) 이론

Ⅸ. 장쩌민(1983 ~ 2003) : 삼개 대표론 사상

Ⅹ. 후진타오(2003 ~ 현재) : 과학적 발전관

Ⅺ. 공자: 다시 떠오는 유가사상

Ⅻ. 중화사상: 부활하는 중국

결론

본문내용

유학사상은 한나라 때부터 국가통치이념으로 확립되어, 공자는 중국에서 2천년 이상 절대적으로 군림해왔다. 하지만 공자의 지위가 흔들린 것은 19세기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의 침략부터이다. 또한 1910~20년대 신문화운동 세력은 중국이 서구 열강에게 무릎을 꿇게 한 주범으로 공자를 지목, '타도 공자'를 외쳤다. 공자를 지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강유위는 공자를 신격화하고 유교를 종교화하자고 하였다. 장제스의 국민당도 공자의 가르침에 충실한 신생활운동을 전개했지만, 역사의 물길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중국에 불어 닥친 근대화의 물결은 공자가 종래에 누리던 절대적 지위에서 끌어내렸던 것이다. 1949년 봉건체제의 타도를 내세운 중국공산당의 집권은 공자의 통치이념에 종언을 고했다. 1966년 벌어진 문화대혁명의 10년 광풍은 공자를 역사의 무대에 끌어내 난도질했다. 비림비공 운동은 공자 사상을 인민의 영혼을 좀먹는 식인 사상으로 규정하기도 했었다. 문혁의 소용돌이 속에 중국 전역에 산재한 문묘는 대부분 파괴되어 잿더미로 변하였다. 오늘날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밀려드는 자본주의 사상과 체제의 유입으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붕괴되었다. 중국정부는 사회주의를 대체할 통치이념으로 공자의 충효사상과 도덕정치에 주목하고 있다. 혁명의 시기에는 공자와 유가를 타도했지만, 건설과 평화의 시기에는 공자와 유가사상이 다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 중화사상: 부활하는 중국
중화사상은 한 무제 때 동중서에 의해 확립되었다고 알려진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오랫동안 전쟁에 시달린 백성들이 지쳐있자 당시 통치자들은 도가적 정치사상인 무위이치를 시행하였다. 이로 인해 북쪽 국경지대의 오랑캐 침입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무제는 동중서의 제안을 받아들여 '모든 사상을 박멸하고 오로지 유가사상만 추종한다'는 통치이념을 확립하게 된다. 유가 사상은 삼강오륜에서 보듯이 군신 부자 등 상하 간 예의를 중시한다. 예의를 모르는 이민족은 오랑캐라며 이민족에게 예의를 강요하는 수단으로 유가사상을 사용했던 것이다. 또한 중화사상은 중국이 약할 때는 회유책으로, 강할 때는 패권주의로 나타났다. 패권주의를 내세운 중국은 주변국에 정치적 상하관계를 강요하고 조공을 요구했다.
되살아나는 중화사상
공산국가 중국은 미국과 소련을 견제하고 제3세계 국가들과 연합하는 외교를 펴면서 이상 국가 건설에 나섰다. 그러나 체제 자체의 결함으로 식량 자급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상 사회 건설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권한 덩샤오핑 정권은 과감한 개혁 개방정책을 펴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1990년대 들어 장쩌민의 중국은 국제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강대국 중국의 역할을 모색하며 중화 민족주의를 공식적으로 내세우게 된다. 후진타오 현 지도부는 베트남 라오스 러시아 등과 영토 문제를 해결하는 등 평화의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티베트를 무력으로 점령하거나 지린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 등 동북 3성에서 발원한 민족의 역사를 모두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는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민족주의가 패권적 중화주의로 변질될지 모른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조선이 중화사상을 받아들인 것은 유교사상을 근거로 하는 덕치의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띠라서 중국의 민족주의가 배타적이거나 패권적 중화사상으로 부활되지 않을지 많은 국가가 우려하고 있다.
결론
중국 역사에서 사상은 광활한 대륙에 많은 국가들이 세워지는 분열의 시기 때 꽃을 피웠다. 하지만 많은 사상들 중에서 유가사상이 한 무제 때부터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아 2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중국사상을 대표하게 되었다. 개인이 이론을 성립해 사상을 만든 것이 주를 이루지만 중국은 특이하게도 중화사상이라는 게 존재한다. 중국이라는 땅은 내륙으로는 광활한 평야를 이루지만 외부로는 산과 사막과 같은 자연적인 지형물들이 많아 외부로의 접근이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국가 명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고 그들이 만든 사상은 최고이며 모든 국가가 그것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중체서용이 그렇고 삼민주의에서 민족주의로 나타나며, 마오쩌둥 사상과 덩샤오핑 이론에서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은 독창적이고 자신들에게 맞는 사상과 이론을 정립해 나갈 것이다. 또한 개인이 만든 사상과 중화사상이 어떻게 접목되어 중국외교정책에 나타날지도 한번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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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0.11.15
  • 저작시기2009.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39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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