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영화변천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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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본론
1. 러시아 영화의 시작
2. 혁명 이전의 러시아 영화
3. 혁명 이후의 소비에트 영화
○ 혁명 직후
1) 1920년대 소비에트 영화
2) 1930-1940년대의 소비에트 영화
3) 1950-1960년대 소비에트 영화
4) 1960년대이후의 소비에트영화
5) 개혁. 개방기의 러시아 영화
4. 소비에트 몽타주기법
* 에이젠쉬쩨인의 다섯가지 체계화된 몽타주
5. 러시아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들
1)안드레이 따르꼬프스키
2)에이젠 쉬쩨인
*에이젠쉬쩨인의 대표작 전함포템킨..
3)비탈리 까네프스키

결론
러시아 영화의 현재와 미래

본문내용

필름으로 재생될 정도로, 전세계 영화평론가들에 의해서 항상 가장 위대한 영화로 손꼽혀 오는 고전 최고의 명작이다. <전함 포템킨>은 구조면에서 5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무성영화의 특성상 의미전달의 한계라는 특성을 극복하는데 크나큰 도움을 준다. 막의 구조를 가짐으로써 줄거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주제의식을 높이는데 도움을 얻는 것이다. 이영화가 무성영화이고 흑백영화이면서도 아직도 세계 최고의 위치를 누릴 수 있는 까닭은 몽타쥬라 불리우는 편집기법과 화면 자체의 그래픽이 지니고 있는 놀라운 힘 때문이며, 여기에다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뛰어난 촬영 기법과 픽션이 훌륭하게 어우러져 역사를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3)비탈리 까네프스키
따르꼬프스키 이후 러시아 영화의 신념을 지키고 있는 감독으로 꼽을수 있는사람이 바로 비탈리 까네프스키이다.
그는 1935년 시베리아의 스찬에서 태어났다. 비탈리 까네브스키는 소꾸로프와 함께 따르코프스키 이후의 러시아영화를 지키는 첫번째 세대의 감독이자 구 소련의 기억을 이야기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의 감독일 것이다. 그는 1960년에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 연출과에 입학했으나 1966년 강간 혐의를 뒤집어쓰고 수감되어 8년 반을 감옥에서 보냈다. 출감후 41세가 되던 1977년에서야 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졸업 직후인 1977년 비엘로루스필름에서 단편영화 <네번째 비밀>을 찍었고, 1981년에 렌필름에서 단편 <시골 이야기>를 만들었지만 사상성과 대중동원력에 있어서 쓸모 없는 감독으로 낙인찍혀 소련 영화계에서 배척당하고 실직상태로 몇 년을 지냈다. 그러던 중 시나리오 작가 에두아르드 볼로다스키가 그의 자전적 시나리오를 읽은 후 주선에 나서게 되었고, 그의 재능을 인정했던 렌필름의 프로듀서 알렉세이 게르만의 지원을 받게 된 까네브스키는 거리의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자신의 유년기와 비슷한 모습을 한 파벨 나자로프라는 비행소년을 카메라 앞에 세우고, 렌필름의 흑백 재고필름을 배급받아 자신처럼 무능하기로 소문나 있던 촬영감독 블라디미르를 데려온 까네브스키는 제작비 30만 루블로 석달 반만에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꺼야>를 완성했다. 그러나 제작사인 렌필름의 트로츠키 스튜디오는 이 우울한 영화는 돈을 벌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하고, 소벡스포르트 영화사에 40만 루블을 받고 팔아버렸다. 그러나 알란 파커의 적극적 지원으로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꺼야>는 깐느에 소개되었고, 까네브스키는 53세의 나이로 깐느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아 영화역사상 최고령 신인감독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그후 그는 7개 마을 60여곳의 촬영지를 돌며 광활한 시베리아 설원을 시각적 언어로 형상화 시킨 작품 <눈오는날의 왈츠>를 발표하고 92년 깐느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게된다. 그리고 1994년에는 다큐멘트리영화 <우리, 20세기 아이들>을 발표하게된다.
시적인 영상과 세심한 화면구도가 돋보이는 그의 영화는 소련의 사회문제를 과격하지 않은 방법, 우울한 시적 영상으로 묘사하여 새로운 리얼리즘을 제시하며 21세기의 러시아 영화를 정화할 신념을 가진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결론
러시아 영화의 현재와 미래
90년대 말의 러시아 영화는 외관상 새로운 중흥기를 맞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타이타닉’의 기록을 경신한 <시베리아 이발사>-국내에서는 '러브 오브 시베리아‘ 라는제목으로 개봉함.-를 위시하여 헐리웃 블록버스터와 흥행대결에서 낙승하는 이른바 민중영화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칸,베를린,로카르노 등의 굵직한 국제영화제에서 전해오는 러시아영화의 수상 소식이 이제는 월례 행사로 느껴질 만큼 러시아영화는 해외에서 인정 받고 있다. 즉 영화가 가지게 되는 양면성(예술로서의 영화와 산업으로서의 영화)에서 러시아 영화는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영화의 성공을 영화가 지니는 문화적속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러시아 영화에는 현재 커다란 위험성이 내포되어있다.
지구촌 모든 국가에는 자국의 고유문화가 존재한다. 예술은 문화의 일부분으로서 문화 속에서 생성되고 존재하는 것인데, 가령 타국에서 생성된 새로운 예술 장르라도 특정지역의 문화권에 소개되면 그 지역의 고유문화에 흡수되어 재창조되고 소비되는 것이다. 영화도 예외는 아니어서, 서구에서 탄생한 이 움직이는 사진은 지구촌 곳곳에 퍼져 각나라의 고유문화에 흡수되고 재창조되어 다양성과 끊임없는 자기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과거 꿀레쇼프, 에이젠쉬쩨인,뿌도프킨에 의해 연구되어진 몽타주는 혁명 후에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사회속에서 탄생한 러시아 무성영화의 고유한 특징이었으며, 스탈린사후 해빙기시절에 만들어진 박애주의 영화들은 60-70년대 러시아영화의 특징을 대변해주고 있다. 러시아 영화에는 슬라브민족의 전통문화와 고유사상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러시아영화에서 자국영화의 전통과 맞닿아 있는 영화를 발견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모스크바에서 제작된 영화들은 이야기의 구성과 전개에서 급속도로 헐리웃 영화를 닮아가고 있으며, 서유럽 자본에 의존하여 제작된 대다수의 뻬쩨르부르그 영화들은 자신의 세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감독들의 성향으로 인해 현실과의 소통불능에 빠져버렸다. 영화 형식에 대한 왕성한 실험정신과 박애주의 구현의 전통, 그리고 이른바 러시아 리얼리즘으로 불리웠던 현실에 대한 집요한 관찰과 가감없는 묘사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추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알렉세이 게르만’, ‘꼰스딴찐 로뿌샨스키’, ‘소꾸로프’등에 의해 힘겹게 유지되고 있는 러시아 영화의 미학적 전통은 예술에서 산업으로 탈바꿈되어 양적 팽창 일변도를 걷고 있는 러시아 영화에서 존재의 의미를 잃어가게 될 것이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앞으로 러시아 영화는 자국의 정체성을 상실할 것이다. 이런 결과를 초래하지 않기위해서는 자국영화의 정체성 유지와 스크린쿼터유지를 통한 자국영화의 생존권사수가 급선무이다. 앞으로 러시아 영화계가 이런문제들을 잘 해결해 나간다면 과거 러시아 영화계의 황금기는 잊혀져가는 옛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 두 번째 세 번째의 황금기가 올 수도 있는 미래이야기가 될 것이다.

키워드

러시아,   영화,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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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1.15
  • 저작시기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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