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며..
2. 『대륙의 딸들』의 줄거리
3. 『대륙의 딸들』의 역사적 배경
1) 북양군벌과 북경정부
2) 만주국
3) 중․일 전쟁
4) 국공내전
5)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6) 숙청 작업
7) 대약진운동과 대기근
8) 문화대혁명
4. 나가며..
▶ 참고자료
2. 『대륙의 딸들』의 줄거리
3. 『대륙의 딸들』의 역사적 배경
1) 북양군벌과 북경정부
2) 만주국
3) 중․일 전쟁
4) 국공내전
5)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6) 숙청 작업
7) 대약진운동과 대기근
8) 문화대혁명
4. 나가며..
▶ 참고자료
본문내용
인 사회주의 중국에서 살고 있으며 자본주의 세계는 지옥이라는 말을 들어 왔고 그것을 믿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곳이 천국이라면 지옥은 어떤 곳일까? 나는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곳이 정말 있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 처음으로 나는 내가 그 안에 살고 있는 정권을 증오하고 다른 선택을 갈망하는 것을 깨달았다.
1973년 주은래의 추천으로 등소평이 권력에 복귀한 후부터, 문화대혁명의 정신은 여러 측면에서 공격받기 시작하였다. 모택동을 지지하는 세력은 이데올로기계급투쟁평등주의배외주의를 강조한 반면, 주은래와 등소평을 지지 세력은 경제성장교육개혁실용주의 외교노선을 주장했다.
모는 다수의 복직을 허락했는데 그것은 그가 마침내 제정신으로 돌아와서가 아니라 임표의 죽음과 그의 측근에 대한 필연적인 숙청으로 군대를 통솔할 인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문화혁명을 반대하는 다른 원수들을 모두 제거하고 실제적으로 소외되었으므로 거의 임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중략) 임이 사라지자 모는 아직 군인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는 숙청된 지도자들에게 돌아섰고 그 중에는 곧 다시 부각될 인물인 등소평도 포함되어 있었다. 제일 먼저 모가 양보한 것은 고발당한 관리들 대부분을 다시 불러들이는 일이었다. 또한 모는 자신의 권력이 경제의 활성화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혁명위원회는 구제할 길 없이 분열되고 격하되어서 나라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는 실각한 옛 관리들에게 다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경제가 부활되면서 공장에서는 새로 노동자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동기유발제도의 일환으로 그들은 지방으로 추방되었던 종업원의 자녀들에게 우선권을 주었다.
③ 문화혁명의 종언
1976년 9월 모택동이 사망하고, 화국봉에 의해 모택동의 추종자인 4인방(四人幇:왕홍문장춘교강청요문원) 세력이 축출됨으로써 실질적으로 종결되었다.
중국인들은 성실하게 모를 애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눈물이 얼마만큼 진실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중략) 그가 중은 지 1개월이 채 못 돼서 모의 부인은 다른 사인방의 일원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군대경찰, 심지어 자신들의 경호원에게조차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모뿐이었다. 실지로 사인방은 오인방이었을 때만 권세를 휘두를 수 있었다. (중략) 마지막 남은 문화 혁명의 폭군들이 마침내 사라졌다. (중략) 새로운 지도부는 모가 선택한 계승자이며, 내가 생각하기에는 일개 범인에 지나지 않는 화국봉이 이끌고 있었다.
4인방 타도 후 화국봉은 모택동의 정통후계자로 스스로를 위치시키고 모택동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의 계속혁명]이론을 전면적으로 긍정하였다. 그는 혁명정신을 고양시켜 사회주의의 방향을 견지해 나가며 생산력의 급속한 발정에 의한 현대화를 추진하는 것을 이 이론의 본질로 삼고, 4인방이 생산력발전의 측면을 무시하고 생산을 파괴한 것을 극우노선으로서 비판하며 그들을 타도한 것을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 또 하나의 위대한 승리로 규정하였다. 경제정책 측면에서 화국봉 정권은 1977년에 열린 일련의 회의에서 인민공사의 기본단위를 생산대로 부터 생산대대로 옮겨 1980년대까지 거의 전국의 농업기계화를 실현할 것, 이에 의하여 20세기 말까지 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의 4대 현대화를 실현시켜 세계의 가장 전열에 나선다는 대약진 계획을 내걸었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의 제2차 대약진은 이전의 대약진기 만큼 대규모는 아니었으나 또다시 중공업, 경공업, 교통, 운수, 농업의 균형상실을 초래하고 말았다. 1977년 8월에 개최된 당 제11회 전국대표대회에서 화국봉은 그 정치보고 속에 제1차 문화대혁명의 종결을 선언하고 당 내외와 국내외의 모든 적극적 요소를 동원하여 모든 단결될 수 있는 힘을 단결시킴으로써 금세기 안에 중국을 위대한 사회주의 강국으로 건설할 것을 주장하였다.
4. 나가며..
처음 『대륙의 딸들』을 접했을 때는 내가 과연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400쪽 정도의 책을 한권도 아니고 두 권이나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가면서 어느새 이 책속에 빠져들고 있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역사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하여 3대에 걸친 이야기이다 보니 중국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서 1석2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군벌들이 활동하던 혼란스러운 시기에 살아오셨던 할머니와 일본 제국주의 하에서 성장하고 국민당과 공산당의 치열한 투쟁 속에서 철저한 공산당이 되고자 했던 어머니, 그리고 문화혁명 시기의 참담함을 지켜보며 자라온 작가.. 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이 소설로 하여금 나는 중국의 역사가 마치 우리나라의 역사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친근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역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점과 북한의 생활이 공산당을 중심으로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고 있다는 점 때문인듯하다. 2학년 때 교양 수업으로 ‘북한이해’라는 수업을 들었었는데, 그때 배운 북한의 상황이 중국에서도 비슷하게 이루어져 있어 북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기서 나는 너무나 비극적이었던 20세기의 중국을 살펴보면서 중국인들의 모습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당을 믿고 따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가족보다는 당을 우선시하는 맹목적인 모습을 보면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따위는 밀어버릴 만큼 당이 중요하였는가하여 밉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소설을 계속 읽어갈수록 아버지가 겪는 무구한 상황을 지켜 볼 수 있었고, 후에 아버지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면서 처음 가졌던 그 미움이 수그러들었다.
무엇이 모택동으로 하여금 이렇게 혼란한 상황을 만들도록 하였을까?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모택동의 정치사상에 대해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써 또 한번 우리나라가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이나 중국의 상황이 아닌게 참으로 다행이라 느낄 수 있었다.
▶ 참고자료
신성곤윤혜영 공저 『중국통사』 한국방송대학교출판부
윤휘탁 『일제하 만주국 연구』 일조각
신하승 『중국사』 대한교과서
차이나인코리아 http://www.chinainkorea.co.kr/
1973년 주은래의 추천으로 등소평이 권력에 복귀한 후부터, 문화대혁명의 정신은 여러 측면에서 공격받기 시작하였다. 모택동을 지지하는 세력은 이데올로기계급투쟁평등주의배외주의를 강조한 반면, 주은래와 등소평을 지지 세력은 경제성장교육개혁실용주의 외교노선을 주장했다.
모는 다수의 복직을 허락했는데 그것은 그가 마침내 제정신으로 돌아와서가 아니라 임표의 죽음과 그의 측근에 대한 필연적인 숙청으로 군대를 통솔할 인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문화혁명을 반대하는 다른 원수들을 모두 제거하고 실제적으로 소외되었으므로 거의 임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중략) 임이 사라지자 모는 아직 군인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는 숙청된 지도자들에게 돌아섰고 그 중에는 곧 다시 부각될 인물인 등소평도 포함되어 있었다. 제일 먼저 모가 양보한 것은 고발당한 관리들 대부분을 다시 불러들이는 일이었다. 또한 모는 자신의 권력이 경제의 활성화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혁명위원회는 구제할 길 없이 분열되고 격하되어서 나라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는 실각한 옛 관리들에게 다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경제가 부활되면서 공장에서는 새로 노동자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동기유발제도의 일환으로 그들은 지방으로 추방되었던 종업원의 자녀들에게 우선권을 주었다.
③ 문화혁명의 종언
1976년 9월 모택동이 사망하고, 화국봉에 의해 모택동의 추종자인 4인방(四人幇:왕홍문장춘교강청요문원) 세력이 축출됨으로써 실질적으로 종결되었다.
중국인들은 성실하게 모를 애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눈물이 얼마만큼 진실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중략) 그가 중은 지 1개월이 채 못 돼서 모의 부인은 다른 사인방의 일원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군대경찰, 심지어 자신들의 경호원에게조차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모뿐이었다. 실지로 사인방은 오인방이었을 때만 권세를 휘두를 수 있었다. (중략) 마지막 남은 문화 혁명의 폭군들이 마침내 사라졌다. (중략) 새로운 지도부는 모가 선택한 계승자이며, 내가 생각하기에는 일개 범인에 지나지 않는 화국봉이 이끌고 있었다.
4인방 타도 후 화국봉은 모택동의 정통후계자로 스스로를 위치시키고 모택동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의 계속혁명]이론을 전면적으로 긍정하였다. 그는 혁명정신을 고양시켜 사회주의의 방향을 견지해 나가며 생산력의 급속한 발정에 의한 현대화를 추진하는 것을 이 이론의 본질로 삼고, 4인방이 생산력발전의 측면을 무시하고 생산을 파괴한 것을 극우노선으로서 비판하며 그들을 타도한 것을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 또 하나의 위대한 승리로 규정하였다. 경제정책 측면에서 화국봉 정권은 1977년에 열린 일련의 회의에서 인민공사의 기본단위를 생산대로 부터 생산대대로 옮겨 1980년대까지 거의 전국의 농업기계화를 실현할 것, 이에 의하여 20세기 말까지 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의 4대 현대화를 실현시켜 세계의 가장 전열에 나선다는 대약진 계획을 내걸었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의 제2차 대약진은 이전의 대약진기 만큼 대규모는 아니었으나 또다시 중공업, 경공업, 교통, 운수, 농업의 균형상실을 초래하고 말았다. 1977년 8월에 개최된 당 제11회 전국대표대회에서 화국봉은 그 정치보고 속에 제1차 문화대혁명의 종결을 선언하고 당 내외와 국내외의 모든 적극적 요소를 동원하여 모든 단결될 수 있는 힘을 단결시킴으로써 금세기 안에 중국을 위대한 사회주의 강국으로 건설할 것을 주장하였다.
4. 나가며..
처음 『대륙의 딸들』을 접했을 때는 내가 과연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400쪽 정도의 책을 한권도 아니고 두 권이나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가면서 어느새 이 책속에 빠져들고 있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역사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하여 3대에 걸친 이야기이다 보니 중국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서 1석2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군벌들이 활동하던 혼란스러운 시기에 살아오셨던 할머니와 일본 제국주의 하에서 성장하고 국민당과 공산당의 치열한 투쟁 속에서 철저한 공산당이 되고자 했던 어머니, 그리고 문화혁명 시기의 참담함을 지켜보며 자라온 작가.. 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이 소설로 하여금 나는 중국의 역사가 마치 우리나라의 역사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친근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역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점과 북한의 생활이 공산당을 중심으로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고 있다는 점 때문인듯하다. 2학년 때 교양 수업으로 ‘북한이해’라는 수업을 들었었는데, 그때 배운 북한의 상황이 중국에서도 비슷하게 이루어져 있어 북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기서 나는 너무나 비극적이었던 20세기의 중국을 살펴보면서 중국인들의 모습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당을 믿고 따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가족보다는 당을 우선시하는 맹목적인 모습을 보면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따위는 밀어버릴 만큼 당이 중요하였는가하여 밉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소설을 계속 읽어갈수록 아버지가 겪는 무구한 상황을 지켜 볼 수 있었고, 후에 아버지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면서 처음 가졌던 그 미움이 수그러들었다.
무엇이 모택동으로 하여금 이렇게 혼란한 상황을 만들도록 하였을까?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모택동의 정치사상에 대해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써 또 한번 우리나라가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이나 중국의 상황이 아닌게 참으로 다행이라 느낄 수 있었다.
▶ 참고자료
신성곤윤혜영 공저 『중국통사』 한국방송대학교출판부
윤휘탁 『일제하 만주국 연구』 일조각
신하승 『중국사』 대한교과서
차이나인코리아 http://www.chinain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