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없음
본문내용
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위정척사사상과 운동이 근대 민족주의로 연결된다거나 보수반동적 역할을 했다는 일면의 지나친 주장은 이 사상과 운동에 내포된 이중적 성격을 잘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정척사운동은 대외적으로 반외세투쟁의 성격이 매우 강하였으나, 그 가운데서도 병인양요 때는 반불, 제너럴 셔먼호 사건, 신미양요, 신사척사운동에서는 반미, 개항 당시에는 반일 투쟁의 성격이 농후하였다. 그 뒤 조선이 일제 식민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자 의병투쟁으로 변모하여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한편 대내적으로는 19세기에 몇몇 특정 가문에 의한 정치권력의 편중으로 유림의 위정척사운동이 정치적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었고, 이 때문에 유림 내부에서도 운동노선을 놓고 때로는 갈등이 드러나기도 하였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