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콜롬비아 국가소개
1. 국가전반소개
2. 콜롬비아 주요 역사
3. 정치동향
4. 사회동향
5. 시장특성
Ⅱ. 콜롬비아 마약문제
1. 마약카르텔
2. 마약문제의 원인
3. 마약에서 파생되는 문제점
Ⅲ. 마약문제에 대한 미국의 개입
1. 레이건 행정부
2. 부시 행정부
3. 클린턴, 부시 행정부
참고문헌
1. 국가전반소개
2. 콜롬비아 주요 역사
3. 정치동향
4. 사회동향
5. 시장특성
Ⅱ. 콜롬비아 마약문제
1. 마약카르텔
2. 마약문제의 원인
3. 마약에서 파생되는 문제점
Ⅲ. 마약문제에 대한 미국의 개입
1. 레이건 행정부
2. 부시 행정부
3. 클린턴, 부시 행정부
참고문헌
본문내용
의 대부분이 남부 푸투마요와 카케타 지역에 있는 3개의 마약퇴치대대(1개 대대는 900명 단위로 총 2,700명 규모이다)의 훈련비용과 고가의 장비 구매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푸투마요는 FARC가 코카 재배 농민을 보호하는 지역일 뿐 아니라, 코카인 정제공장과 소형비행기 세스나가 이착륙을 하는 비행장도 많은 곳이었다. 고엽제 살포를 지원할 3개 마약 퇴치 대대가 이용할 고가의 헬리콥터 구매에 배정된 자금만 3억 5천만 달러였다. 대대들은 이 헬기들을 이용하여 기동력을 향상시키고, 또 고엽제 공중살포를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임무를 떠맡았다.
둘째, 이전 원조와 달리 수혜 집단은 국립경찰이 아니라, 군부였다. 군부의 역할은 약화되어가는 국가의 새로운 건설자로 재규정되었다. 하지만 군사원조 자체가 군부와 FARC의 투쟁을 격하시키고, 나아가 ‘콜롬비아의 군사화’를 강화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게 되었다.
셋째, 클린턴 행정부는 원조기금을 수혜한 마약퇴치 단위들의 작전은 직접적으로 마약 통제에 연계되어 사용되어야 한다고 꼬리표를 달았다. 명시적으로 마약퇴치(anti-narcotics)와 봉기진압(anti-subversive)을 구분했다고 하지만, 양자의 경계는 압도적인 군사적 성격의 원조로 인해 사라지게 되었다.
넷째, 미국인들의 참여 비중을 줄이기 위해 고엽제 살포나 경계활동에 민간 기업을 참여시키는 형식을 취했다. 플랜콜롬비아에 직접 동원된 미국인의 숫자는 160-180명 수준이라고 하나, 비 미국인을 포함하면 민간인의 숫자는 300명을 상회한다. 민감한 대외 지원 활동을 민간 기업이 담당할 수 있느냐는 신뢰성의 문제나 인권침해 논란을 일으켰다.
다섯째, 과거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군부의 인권침해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클린턴 행정부는 마약퇴치 대대의 활동을 모니터링하고 아울러 군부나 경찰이 민간우익 민병대 그룹과 관계를 끊었다는 인증 절차를 밟도록 했다. 콜롬비아의 반대를 무릅쓰고 패트릭 리하이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은 군부의 인권침해를 차단하기 위해 마약퇴치에 투입된 대대들을 모니터링 하도록 했고, 매년 이를 인증하는 의무를 다음해의 원조와 연계시켰다.
푸투마요를 비롯한 남부 지역은 코카의 2/3가 생산되는 지역이자, 또 게릴라 FARC가 코카 농민들을 보호하는 일종의 안전지대이기도 했다. 곧 이 지역에 대한 제초제의 대량살포가 행해졌고, 게릴라와 정규군의 충돌이 빈번해졌다. 1999년에 4만 헥타르의 코카 밭에 제초제가 뿌려졌지만, 2000년에는 그 대상이 8만 헥타르로 늘어났다.
하지만 코카 생산량은 줄지 않았다. 코카 밭은 다른 지역으로, 국경을 넘어서 또 이동하고 있었다. FARC는 플랜 콜롬비아를 “은폐된 전쟁선언”이라고 주장했다. 이 게릴라 단체는 미국의 외부개입에 맞서 투쟁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곧 이들은 인프라에 대한 공격, 암살과 납치, 농민의 대중적 동원에 힘을 쓰기 시작했고, 콜롬비아 정국은 다시 폭력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성형, 2005, 미국의 對콜롬비아 마약 전쟁 : 현실주의 외교 논리의 문제점,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
부시행정부는 안보정책의 방향을 마약 테러리즘 근절로 수정하였는데, 이로써 미국의 마약정책은 반 테러리즘 이라는 성격도 띄게 된다. ‘플랜 콜롬비아’로 미국의 적극적인 대 게릴라 지원에 힘입어 콜롬비아 정부는 미국 원조 13억 달러를 포함한 총 75억 달러를 투자하여 국내안보를 위협하는 마약 조직과 게릴라 소탕을 통한 정치, 사회, 군사 문제를 해결한다는, 게릴라와 마약 조직에 대한 강력한 대응책을 실시했다. 차경미, 2009, 콜롬비아 우리베 정권의 국가안보정책의 한계, 국제지역연구 제13권 제2호.
참고문헌
Bagley, Bruce M. and Juan G. Tokatlian (1992), “Dopd and Dogma: Explaining the Failure of U.S.-Latin American Drug Policies," in Jonathan Hartlyn, Lars Schoulz and August Varas(des.), The United States and Latin America in the 1990s. Beyond the Cold Wr, Chapel Hill: Th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Berry, R. Albert. & Mauricio Solaun. “Notes toward an Interpretation of the National Front”. In Politics of Compromise edited by R. Albert Berry et al. Transaction Books, 1980.
Ron Chepesiuk, Hard Target: The United States War against International Drug trafficking, 1982-1007(Jefferson, NC: McFarland & Company, Inc., 1999).
KOTRA 국가정보 : 콜롬비아.
위키피디아 : 콜롬비아 플랜,
http://en.wikipedia.org/wiki/Plan_Colombia, 2010년 11월 25일 검색.
위키피디아 : 콜롬비아 불법 마약,
http://en.wikipedia.org/wiki/Illegal_drug_trade_in_Colombia, 11월 25일 검색.
박태견, 1994, 세계를 움직이는 127대 파워, 길벗.
이성형, 2005, 미국의 對콜롬비아 마약 전쟁 : 현실주의 외교 논리의 문제점,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
조성권, 2010, 마약밀매와 환경안보: 콜롬비아의 사례연구, 한성대학교.
조성권, 2005, 마약테러리즘(narco-terrorism)에 대한 미국의 외교정책: 변화와 의도, 한성대학교.
조성권, 1997, 부패의 정치경제학, 한국부패학회보.
조성권, 1998, 콜롬비아 마약밀매의 원인: 정부의 마약정책을 중심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연구센터.
주콜롬비아대사관 연표.
차경미, 2009, 콜롬비아 우리베 정권의 국가안보정책의 한계, 국제지역연구 제13권 제2호.
둘째, 이전 원조와 달리 수혜 집단은 국립경찰이 아니라, 군부였다. 군부의 역할은 약화되어가는 국가의 새로운 건설자로 재규정되었다. 하지만 군사원조 자체가 군부와 FARC의 투쟁을 격하시키고, 나아가 ‘콜롬비아의 군사화’를 강화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게 되었다.
셋째, 클린턴 행정부는 원조기금을 수혜한 마약퇴치 단위들의 작전은 직접적으로 마약 통제에 연계되어 사용되어야 한다고 꼬리표를 달았다. 명시적으로 마약퇴치(anti-narcotics)와 봉기진압(anti-subversive)을 구분했다고 하지만, 양자의 경계는 압도적인 군사적 성격의 원조로 인해 사라지게 되었다.
넷째, 미국인들의 참여 비중을 줄이기 위해 고엽제 살포나 경계활동에 민간 기업을 참여시키는 형식을 취했다. 플랜콜롬비아에 직접 동원된 미국인의 숫자는 160-180명 수준이라고 하나, 비 미국인을 포함하면 민간인의 숫자는 300명을 상회한다. 민감한 대외 지원 활동을 민간 기업이 담당할 수 있느냐는 신뢰성의 문제나 인권침해 논란을 일으켰다.
다섯째, 과거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군부의 인권침해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클린턴 행정부는 마약퇴치 대대의 활동을 모니터링하고 아울러 군부나 경찰이 민간우익 민병대 그룹과 관계를 끊었다는 인증 절차를 밟도록 했다. 콜롬비아의 반대를 무릅쓰고 패트릭 리하이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은 군부의 인권침해를 차단하기 위해 마약퇴치에 투입된 대대들을 모니터링 하도록 했고, 매년 이를 인증하는 의무를 다음해의 원조와 연계시켰다.
푸투마요를 비롯한 남부 지역은 코카의 2/3가 생산되는 지역이자, 또 게릴라 FARC가 코카 농민들을 보호하는 일종의 안전지대이기도 했다. 곧 이 지역에 대한 제초제의 대량살포가 행해졌고, 게릴라와 정규군의 충돌이 빈번해졌다. 1999년에 4만 헥타르의 코카 밭에 제초제가 뿌려졌지만, 2000년에는 그 대상이 8만 헥타르로 늘어났다.
하지만 코카 생산량은 줄지 않았다. 코카 밭은 다른 지역으로, 국경을 넘어서 또 이동하고 있었다. FARC는 플랜 콜롬비아를 “은폐된 전쟁선언”이라고 주장했다. 이 게릴라 단체는 미국의 외부개입에 맞서 투쟁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곧 이들은 인프라에 대한 공격, 암살과 납치, 농민의 대중적 동원에 힘을 쓰기 시작했고, 콜롬비아 정국은 다시 폭력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성형, 2005, 미국의 對콜롬비아 마약 전쟁 : 현실주의 외교 논리의 문제점,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
부시행정부는 안보정책의 방향을 마약 테러리즘 근절로 수정하였는데, 이로써 미국의 마약정책은 반 테러리즘 이라는 성격도 띄게 된다. ‘플랜 콜롬비아’로 미국의 적극적인 대 게릴라 지원에 힘입어 콜롬비아 정부는 미국 원조 13억 달러를 포함한 총 75억 달러를 투자하여 국내안보를 위협하는 마약 조직과 게릴라 소탕을 통한 정치, 사회, 군사 문제를 해결한다는, 게릴라와 마약 조직에 대한 강력한 대응책을 실시했다. 차경미, 2009, 콜롬비아 우리베 정권의 국가안보정책의 한계, 국제지역연구 제13권 제2호.
참고문헌
Bagley, Bruce M. and Juan G. Tokatlian (1992), “Dopd and Dogma: Explaining the Failure of U.S.-Latin American Drug Policies," in Jonathan Hartlyn, Lars Schoulz and August Varas(des.), The United States and Latin America in the 1990s. Beyond the Cold Wr, Chapel Hill: Th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Berry, R. Albert. & Mauricio Solaun. “Notes toward an Interpretation of the National Front”. In Politics of Compromise edited by R. Albert Berry et al. Transaction Books, 1980.
Ron Chepesiuk, Hard Target: The United States War against International Drug trafficking, 1982-1007(Jefferson, NC: McFarland & Company, Inc., 1999).
KOTRA 국가정보 : 콜롬비아.
위키피디아 : 콜롬비아 플랜,
http://en.wikipedia.org/wiki/Plan_Colombia, 2010년 11월 25일 검색.
위키피디아 : 콜롬비아 불법 마약,
http://en.wikipedia.org/wiki/Illegal_drug_trade_in_Colombia, 11월 25일 검색.
박태견, 1994, 세계를 움직이는 127대 파워, 길벗.
이성형, 2005, 미국의 對콜롬비아 마약 전쟁 : 현실주의 외교 논리의 문제점,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
조성권, 2010, 마약밀매와 환경안보: 콜롬비아의 사례연구, 한성대학교.
조성권, 2005, 마약테러리즘(narco-terrorism)에 대한 미국의 외교정책: 변화와 의도, 한성대학교.
조성권, 1997, 부패의 정치경제학, 한국부패학회보.
조성권, 1998, 콜롬비아 마약밀매의 원인: 정부의 마약정책을 중심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연구센터.
주콜롬비아대사관 연표.
차경미, 2009, 콜롬비아 우리베 정권의 국가안보정책의 한계, 국제지역연구 제13권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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