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지역 마한 주거지의 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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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박순발, 2005, 「土器相으로 본 湖南地域 原三國時代 編年」, 『호남고고학보』21, 호남고고학회.

김승옥, 2000, 「호남지역 마한 주거지의 편년」, 『호남고고학보』11, 호남고고학회.

본문내용

견되지만 유공광구소호는 전북서해안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중구연호는 서해안일대의 주구묘에서 주로 발견되지만 유공광구소호는 영산강유역의 3~5세기 대형옹관묘에서 주로 나타나는 점으로 보아 이중구연호는 유공광구소호에 선행하는 기종이다. 양이부호는 섬진강상류와 보성강유역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기종이고, 거치문이 시문된 대형호와 옹들도 마한의 특징적인 토기로써 시기와 지역에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기종이다. 마지막으로 원저단경호는 전 지역에서 발견되는 기형이지만 평저호는 섬진강 상류의 세전리유적에서만 확인된다.
마한주거지는 먼저 입지가 구릉상부→하부→평지로 내려오게 되고, 시기가 내려옴에 따라 주거지가 전반적으로 대형화되고 노지의 위치가 다양화되면서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서해안의 취락에서는 벽구시설이 일반화되고, 원형계통이 거의 보이지 않는 반면에 섬진강, 보성강, 남해안 일대의 취락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원형주거지들이 발견된다. 전북 서해안의 취락들은 단시일내에 점유되었고 모든 주거지가 4세기 중반을 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전남지역의 마한 주거지들은 중복관계가 훨씬 심하고 출토유물도 5~6세기까지 떨어지는 주거지들이 많아 백제에 의한 마한의 병합을 4세기 중후반으로 보고 있다. 묘제의 변천에 있어서도 전북 서해안의 주구묘는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등장하고 백제의 성장에 따라 일찍 소멸하지만 영산강유역의 대형옹관묘사회는 5~6세기까지 떨어져 마한 고유의 문화적 전통이 이 시기까지 유지되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호남의 동부 산악지대의 문화는 소위 ‘문화적 점이지대’로, 최소한 섬진강상류 일대가 전북 서해안의 취락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까지 마한의 문화적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며, 마한의 중심세력이 서해안 일대에 위치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 질문
1. 본 논문은 박순발이 ‘경질무문토기 단순기’를 상정하면서 제시한 경질무문토기 출토 주거지들에 대하여 당시 점유자가 소유했던 모든 유물이 주거지에 남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경질무문토기 단순기’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경질무문토기는 남아있는지, 그것이 선택적으로 어떤 토기는 취하고 어떤 토기는 버리고 갔기 때문인지 궁금하다.
2. 마한주거지를 각 지역별로 묶어서 그 중 대표되는 유적을 살펴보아 편년과 토기의 전개양상을 살펴보았는데, 이 밖에 다른 유적들도 이에 부합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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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1.01.21
  • 저작시기2008.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49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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