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본론
Ⅰ. 개화기 문학 - 전환기에서의 저항과 창조
Ⅱ. 1910~1920년대 문학 - 현대 문학의 태동기(1908~1919)
Ⅲ. 현대문학(現代文學)의 모색기(1919~920년대 말)
Ⅳ. 1930~1945년대 문학
Ⅴ. 1930년대 말~1945년(일제 암흑기)의 문학
Ⅵ. 8.15직후의 문학
결론
참고문헌
본론
Ⅰ. 개화기 문학 - 전환기에서의 저항과 창조
Ⅱ. 1910~1920년대 문학 - 현대 문학의 태동기(1908~1919)
Ⅲ. 현대문학(現代文學)의 모색기(1919~920년대 말)
Ⅳ. 1930~1945년대 문학
Ⅴ. 1930년대 말~1945년(일제 암흑기)의 문학
Ⅵ. 8.15직후의 문학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것이 햇빛을 본 것은 8 15 이후다.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北)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 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
- 이육사, \'꽃\'에서
윤동주는 식민지하의 지식인의 정신적 고뇌와 아픔을 \'참회록(懺悔錄)\', \'십자가(十字架)\' 등을 통하여 표현하였고, \'서시(序詩)\'를 통하여 도덕적 순결성을 노래하였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어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주리자.
---- 만 이십 사 년(滿二十四年) 일 개월(一個月)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든가.
- 윤동주, \'참회록(懺悔錄\'에서
이 두 시인은 시와 행동이 일치했다는 점에서 시정신에 투철한 시인들이다.
★1940년대 시의 특징
1930년대 후반과 40년대의 초반 오륙 년이란 시기는 우리의 현대 문학사에 있어서 가장 불행한 문학적 \'암흑기\'로 평가된다. 중일 전쟁<1937>과 태평양 전쟁<1941>등 침략 전쟁을 도발함으로써 세계를 전화속에 몰아놓은 일제가, 전쟁의 수행을 위해서 식민 통치의 철저한 통제화 탄압을 더욱 가중시켰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일제는, 한국어의 사용을 금지<1939>, 창씨 개명을 강제함은 물론, 민족 언론지인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폐간<1940> 시키고, 작품 발표의 매개인 문예지 \'문장\'과 \'인문평론\'마저 폐간 또는 개제시키는 등, 문학 활동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한편, 전시동원의 명목으로 \'국민 총력 연맹\'이란 조직 단체를 결성<1940>, 한국 사람에 대한 이른바 황국 신민화운동을 전개하고, 신사 참배와 궁성 요배를 강제하였으며, 징병제의 실시<1943>와 학병제의 시행<1944> 등으로 무고한 한국 사람의 인명과 재산을 모조리 바칠 것을 강요했던 것이다.
이런 무단 정치의 강압적인 통치 체제 아래서 건실한 문학의 생성은 거의 불가능할 수 밖에 없었다. 강요에 못이긴 일부 문인들이 \'조선 문인 협회<1939>\'와 \'조선 문인 보국회<1943>\'란 친일적인 어용 문학 단체의 이름 아래 치욕스런 문화적 용병 노릇을 한 경우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문인들은 붓을 꺽는 문화적인 정적의 길을 택했으며, 시인 이육사와 윤동주는 체포되어 끝내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이육사는 시인이요 항일 투사로서, 웅혼한 남성적 기상과 의지를 담은 \'광야\', \'청포도\', \'절정\'과 같은 시를 남겼으며, 윤동주는 양심과 고뇌를 짊어진 자아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노래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남겼다. 이들은 다 같이 혼몽한 역사의 어둠 속에서도 밝아 올 새벽을 예감하고 기원했던 시인들이며, 암흑기에 있어서 불멸의 시혼을 대표한다.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짝거려
제비 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
<이육사의 \'꽃\'에서>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 소리 들려 올 게외다.
<윤동주의 \'새벽이 올 때까지\'에서>
1945년 8월 15일의 광복은 국권 회복이라는 의미와 함께 우리의 현대 문학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그것은 국어의 회복이며, 현대 문학의 생성 이래 줄곧 식민지 통치의 제약과 검열 아래 시달리던 문학적 상황이 이와 더불어 비로소 자유의 넓은 지평을 열어 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좌우익의 대립으로 인한 사회적인 혼란이 거듭됨으로써 문단과 문학 역시 창작의 성과보다는 좌우익의 상반하는 이념의 대치 현상을 빚게 되었으며, 이런 현상은 1948년의 정부 수립을 계기로 어느 정도 정리 되었다.
이 기간에 있어서의 우리 시문학의 성과는, 주로 \'문장\' 등의 폐간으로 정체되었던 자연파나 생명파의 시적인 서정과 정조가 회복된 점에 있다. 특히,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등의 이른바 \'청록파\'의 등장은 해방 문단에 있어서 가장 주목되는 사실이었다. \'문장\'의 마지막 세대로서 공동 시집 \'청록집<1946>으로 새로운 시단에 나타난 이들은, 서로의 시 세계의 차이, 즉 고전적 풍류, 향토색의 서경, 갈망과 기도 등을 각각 보이면서도, 한결같이 시가 자칫하면 이념의 수단으로 전락하기 쉬운 시대적 상황에 맞서 시의 독자성을 지킨 시인들이다. 이들의 시는 자연을 서정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 관계를 가지고 있다.
또, 생명파 시인으로 불리는 서정주와 유치환은 이 무렵 시집 \'귀촉도<1948>\'와 \'생명의 서<1947>\'를 각각 내놓았다. 유랑과 관능의 열기 및 몸부림으로 일관하던 서정주는, 여기에서 마침내 동양적 내지는 한국적인 서정의 세계에로 돌아오는 의의를 가지게 되었으며, 유치환은 삶의 앙양과 확산에의 의지와 극기의 모습을 더욱 심화했다. 이밖에도 박남수, 김현승의 특이한 시 세계가 이 시대를 전후해서 나타나게 되었다
8 15 광복을 계기로 그 동안 붓을 꺾었던 시인들이 다시 우리말로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시단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기에는 좌익(左翼)과 우익(右翼)의 갈등 속에서 순수 문학과 프로 문학 사이의 대립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가 얼마 가지 않아 분단이 되고, 남쪽에서는 시단이 재편성되면서 순수 문학을 제창한 시인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40년대 말에 와서 우리의 시는 두 경향으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생명파와 청록파에 의하여 대표되는 전통시의 재건을 꾀하는 시풍이고, 또 다른 하나는 30년대의 주지시를 계승하고자 하는 시풍이다.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이 3인 공동 시집 \'청록집(靑鹿集)\'(1946)을 발간한 것을 비롯하여, 유치환은 \'생명(生命)의 서(書)\'(1947)를, 서정주는 \'귀촉도(歸蜀道)\'(1948)를 내놓았다. 이로써 전통시는 한층 발전된 모습으로 계승되는 계기가 되었다.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흰 옷깃 염여 염여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어 줄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北)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 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
- 이육사, \'꽃\'에서
윤동주는 식민지하의 지식인의 정신적 고뇌와 아픔을 \'참회록(懺悔錄)\', \'십자가(十字架)\' 등을 통하여 표현하였고, \'서시(序詩)\'를 통하여 도덕적 순결성을 노래하였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어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주리자.
---- 만 이십 사 년(滿二十四年) 일 개월(一個月)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든가.
- 윤동주, \'참회록(懺悔錄\'에서
이 두 시인은 시와 행동이 일치했다는 점에서 시정신에 투철한 시인들이다.
★1940년대 시의 특징
1930년대 후반과 40년대의 초반 오륙 년이란 시기는 우리의 현대 문학사에 있어서 가장 불행한 문학적 \'암흑기\'로 평가된다. 중일 전쟁<1937>과 태평양 전쟁<1941>등 침략 전쟁을 도발함으로써 세계를 전화속에 몰아놓은 일제가, 전쟁의 수행을 위해서 식민 통치의 철저한 통제화 탄압을 더욱 가중시켰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일제는, 한국어의 사용을 금지<1939>, 창씨 개명을 강제함은 물론, 민족 언론지인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폐간<1940> 시키고, 작품 발표의 매개인 문예지 \'문장\'과 \'인문평론\'마저 폐간 또는 개제시키는 등, 문학 활동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한편, 전시동원의 명목으로 \'국민 총력 연맹\'이란 조직 단체를 결성<1940>, 한국 사람에 대한 이른바 황국 신민화운동을 전개하고, 신사 참배와 궁성 요배를 강제하였으며, 징병제의 실시<1943>와 학병제의 시행<1944> 등으로 무고한 한국 사람의 인명과 재산을 모조리 바칠 것을 강요했던 것이다.
이런 무단 정치의 강압적인 통치 체제 아래서 건실한 문학의 생성은 거의 불가능할 수 밖에 없었다. 강요에 못이긴 일부 문인들이 \'조선 문인 협회<1939>\'와 \'조선 문인 보국회<1943>\'란 친일적인 어용 문학 단체의 이름 아래 치욕스런 문화적 용병 노릇을 한 경우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문인들은 붓을 꺽는 문화적인 정적의 길을 택했으며, 시인 이육사와 윤동주는 체포되어 끝내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이육사는 시인이요 항일 투사로서, 웅혼한 남성적 기상과 의지를 담은 \'광야\', \'청포도\', \'절정\'과 같은 시를 남겼으며, 윤동주는 양심과 고뇌를 짊어진 자아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노래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남겼다. 이들은 다 같이 혼몽한 역사의 어둠 속에서도 밝아 올 새벽을 예감하고 기원했던 시인들이며, 암흑기에 있어서 불멸의 시혼을 대표한다.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짝거려
제비 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
<이육사의 \'꽃\'에서>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 소리 들려 올 게외다.
<윤동주의 \'새벽이 올 때까지\'에서>
1945년 8월 15일의 광복은 국권 회복이라는 의미와 함께 우리의 현대 문학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그것은 국어의 회복이며, 현대 문학의 생성 이래 줄곧 식민지 통치의 제약과 검열 아래 시달리던 문학적 상황이 이와 더불어 비로소 자유의 넓은 지평을 열어 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좌우익의 대립으로 인한 사회적인 혼란이 거듭됨으로써 문단과 문학 역시 창작의 성과보다는 좌우익의 상반하는 이념의 대치 현상을 빚게 되었으며, 이런 현상은 1948년의 정부 수립을 계기로 어느 정도 정리 되었다.
이 기간에 있어서의 우리 시문학의 성과는, 주로 \'문장\' 등의 폐간으로 정체되었던 자연파나 생명파의 시적인 서정과 정조가 회복된 점에 있다. 특히,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등의 이른바 \'청록파\'의 등장은 해방 문단에 있어서 가장 주목되는 사실이었다. \'문장\'의 마지막 세대로서 공동 시집 \'청록집<1946>으로 새로운 시단에 나타난 이들은, 서로의 시 세계의 차이, 즉 고전적 풍류, 향토색의 서경, 갈망과 기도 등을 각각 보이면서도, 한결같이 시가 자칫하면 이념의 수단으로 전락하기 쉬운 시대적 상황에 맞서 시의 독자성을 지킨 시인들이다. 이들의 시는 자연을 서정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 관계를 가지고 있다.
또, 생명파 시인으로 불리는 서정주와 유치환은 이 무렵 시집 \'귀촉도<1948>\'와 \'생명의 서<1947>\'를 각각 내놓았다. 유랑과 관능의 열기 및 몸부림으로 일관하던 서정주는, 여기에서 마침내 동양적 내지는 한국적인 서정의 세계에로 돌아오는 의의를 가지게 되었으며, 유치환은 삶의 앙양과 확산에의 의지와 극기의 모습을 더욱 심화했다. 이밖에도 박남수, 김현승의 특이한 시 세계가 이 시대를 전후해서 나타나게 되었다
8 15 광복을 계기로 그 동안 붓을 꺾었던 시인들이 다시 우리말로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시단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기에는 좌익(左翼)과 우익(右翼)의 갈등 속에서 순수 문학과 프로 문학 사이의 대립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가 얼마 가지 않아 분단이 되고, 남쪽에서는 시단이 재편성되면서 순수 문학을 제창한 시인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40년대 말에 와서 우리의 시는 두 경향으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생명파와 청록파에 의하여 대표되는 전통시의 재건을 꾀하는 시풍이고, 또 다른 하나는 30년대의 주지시를 계승하고자 하는 시풍이다.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이 3인 공동 시집 \'청록집(靑鹿集)\'(1946)을 발간한 것을 비롯하여, 유치환은 \'생명(生命)의 서(書)\'(1947)를, 서정주는 \'귀촉도(歸蜀道)\'(1948)를 내놓았다. 이로써 전통시는 한층 발전된 모습으로 계승되는 계기가 되었다.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흰 옷깃 염여 염여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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