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발생(發生), 구분(構分)
2. 구성(區成)
3.운영(運營)
4.연희(演戱)
[풍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
5 현황(現況)
[개다리패] (일명 바우덕이[김암덕(金岩德)패])
[安城 복만이패]
[원육덕패]
[오명선(吳明善)패]
[심선옥(沈善玉)패]
[이원보패]
[기타 남사당 관련자료들...]
2. 구성(區成)
3.운영(運營)
4.연희(演戱)
[풍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
5 현황(現況)
[개다리패] (일명 바우덕이[김암덕(金岩德)패])
[安城 복만이패]
[원육덕패]
[오명선(吳明善)패]
[심선옥(沈善玉)패]
[이원보패]
[기타 남사당 관련자료들...]
본문내용
이나 행사성에 관계 없이 그때그때 지역민의 갈구와 흥취에 영합하였던 것이다. 춤보다는 재담과 동작부분이 우세한 풍자극으로 다분히 양반과 상놈의 갈등을 상놈의 편에서 의식적인 저항의 형태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4마당으로 구성된 순서를 보면 마당씻이, 옴탈잡이, 샌님잡이, 먹중잡이로 짜여져 있는데 먼저 첫 마당에서 놀이판을 확보하고 둘째 마당에서 외세를 잡고, 셋째 마당에서는 내부의 모순을 불식하고 끝마당에서 외래문화[종교]를 배격하는 내용이다.
[덜미]
남사당놀이의 마지막 순서이며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민속인형극 꼭두각시 놀음을 남사당패 연희자들은 덜미라 부르고 있는데 "목덜미를 쥐고", "몽둥이를 쥐고" 놀린다는 장두인형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실제로 장두괴뢰가 주이긴 하지만 현사괴뢰(懸絲傀儡), 주선괴뢰(走線傀儡),포대괴뢰(布袋傀儡)등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5 현황(現況)
[개다리패] (일명 바우덕이[김암덕(金岩德)패])
김암덕은 경기도 안성군 서운면 소재 청룡사를 거점으로 한 능력있던 사당이었던 바 남사당패의 말기로 볼 수 있는 1900년대 초에 안성 개다리패의 유지에 공헌한 사람이다. 개다리패의 꼭두쇠로서는 개다리라 불리던 사람이 따로 있었지만 이 패거리는 김암덕으로부터 힘입은 바가 커서 바우덕이패로 통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경우가 바로 남사당패와 사당패, 또는 걸립패간의 혼성을 보이는 대목이다. 이 패거리에 직접 가담했던 생존자는 한 사람도 없고 개다리패의 뒤를 이은 안성 복만이패 를 거쳐 그 후대인 원육덕패로 이어지게 된다.
[安城 복만이패]
안성 개다리패의 후대로 꼭두쇠는 안성 출신 김복만이었다. 경기 이북을 주로 순연한 패거리이다.
[원육덕패]
안성 복만이패의 후대로, 꼭두쇠 원육덕은 경기도 여주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안성 복만이패에 가담했던 사람들로 재규합된 패거리로 1939년에 만주 북간도에까지 들어갔다가 그 곳에서 해산하고 말았다.
[오명선(吳明善)패]
꼭두각시놀음의 대잡이인 남형우옹이 12,3세부터 2년간 소속했던 패거리로 꼭두쇠 오명선은 특히 대잡이로 유명하였으며 그들은 황해도 일원을 주로 순연하였다 한다. 오명선은 황해도 안악 출신이라는 설도 있으나 은율 출신이란 사람도 있다.
[심선옥(沈善玉)패]
1900년대 초에 있었던 진위(振威)남사당의 후대에 알려져 있으며, 꼭두쇠는 오산 출신 심선옥이었다.지금의 평택, 오산이 주거점이었고 주로 전라도와 충청도 지방을 순연하였다 한다. 김문학(金文學)이 있던패.
[이원보패]
주로 서울의 변두리 지역과 경기도 일원의 소도시를 순연한 패거리로, 꼭두쇠 이원보의 출신은 경기도 안성으로 전한다. 앞서 다섯패거리가 모두 없어진 후에도 끝까지 남았던 패거리로 현존하는 생존자들은 대부분 여기에 몸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기타 남사당 관련자료들...]
경기안성 풍물놀이
경기평택 풍물놀이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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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미]
남사당놀이의 마지막 순서이며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민속인형극 꼭두각시 놀음을 남사당패 연희자들은 덜미라 부르고 있는데 "목덜미를 쥐고", "몽둥이를 쥐고" 놀린다는 장두인형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실제로 장두괴뢰가 주이긴 하지만 현사괴뢰(懸絲傀儡), 주선괴뢰(走線傀儡),포대괴뢰(布袋傀儡)등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5 현황(現況)
[개다리패] (일명 바우덕이[김암덕(金岩德)패])
김암덕은 경기도 안성군 서운면 소재 청룡사를 거점으로 한 능력있던 사당이었던 바 남사당패의 말기로 볼 수 있는 1900년대 초에 안성 개다리패의 유지에 공헌한 사람이다. 개다리패의 꼭두쇠로서는 개다리라 불리던 사람이 따로 있었지만 이 패거리는 김암덕으로부터 힘입은 바가 커서 바우덕이패로 통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경우가 바로 남사당패와 사당패, 또는 걸립패간의 혼성을 보이는 대목이다. 이 패거리에 직접 가담했던 생존자는 한 사람도 없고 개다리패의 뒤를 이은 안성 복만이패 를 거쳐 그 후대인 원육덕패로 이어지게 된다.
[安城 복만이패]
안성 개다리패의 후대로 꼭두쇠는 안성 출신 김복만이었다. 경기 이북을 주로 순연한 패거리이다.
[원육덕패]
안성 복만이패의 후대로, 꼭두쇠 원육덕은 경기도 여주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안성 복만이패에 가담했던 사람들로 재규합된 패거리로 1939년에 만주 북간도에까지 들어갔다가 그 곳에서 해산하고 말았다.
[오명선(吳明善)패]
꼭두각시놀음의 대잡이인 남형우옹이 12,3세부터 2년간 소속했던 패거리로 꼭두쇠 오명선은 특히 대잡이로 유명하였으며 그들은 황해도 일원을 주로 순연하였다 한다. 오명선은 황해도 안악 출신이라는 설도 있으나 은율 출신이란 사람도 있다.
[심선옥(沈善玉)패]
1900년대 초에 있었던 진위(振威)남사당의 후대에 알려져 있으며, 꼭두쇠는 오산 출신 심선옥이었다.지금의 평택, 오산이 주거점이었고 주로 전라도와 충청도 지방을 순연하였다 한다. 김문학(金文學)이 있던패.
[이원보패]
주로 서울의 변두리 지역과 경기도 일원의 소도시를 순연한 패거리로, 꼭두쇠 이원보의 출신은 경기도 안성으로 전한다. 앞서 다섯패거리가 모두 없어진 후에도 끝까지 남았던 패거리로 현존하는 생존자들은 대부분 여기에 몸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기타 남사당 관련자료들...]
경기안성 풍물놀이
경기평택 풍물놀이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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