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마지막 유랑예인 - 남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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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남사당패의 발생(發生), 구분(構分)

2. 남사당패의 구성(區成)

3. 남사당패의 운영(運營)

4. 남사당패의 놀이

본문내용

덜미를 쥐고", "몽둥이를 쥐고" 놀린다는 장두인형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줄거리는 보면 (1) 지배층의 구조와 그 횡포에 대한 저항, (2) 파계승의 풍자를 통한 외래 종교에 대한 비판, 93) 서민들의 우직한 염원 등의 희화화 되어 있는 것으로 40여 개의 인형과 10여 개의 소도구에 의하여 각기 독립 연관된 2마당 7거리를 보는 것이다. 그 2마당 7거리는 다음과 같다.
(1) 박첨지 마당
첫째- 박첨지 유람거리
둘째- 피조리(처녀) 거리
셋째- 꼭두각시 거리
넷째- 이시미 거리
(2) 평안감사 마당
첫째- 매사냥 거리
둘째- 상여거리
셋째- 절 짓고 허는 거리
출처: 심정우- 남사당패 놀이 』
- 일단 이 놀이는 박첨지 일가를 들어 가부장적인 봉건제도를 비판하고, 이시미를 통하여 민중과는 대립되는 대상들을 희화적으로 분석하는 적극성을 보여준다. 또한 벌거벗은 홍동지를 등장시켜 봉건지배층을 매도하며 끝거리에서 절을 짓고 축원을 올려 불교에의 귀의를 뜻하지만 결국은 다시 완전히 헐어냄으로서 역시 외래종교를 부정하고 있다.
대부분 우스개 소리를 넣어 재미있게 만들기는 했지만 저항이라는 명목을 통한 자기학대적 요소가 조금씩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 역시 그들 스스로가 근대화에 의해 땅을 잃고 천민 취급을 받는 유랑 연예인으로 전락한 것에 대한 스트레스와 자기비하를 우울하게 털어놓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놀이의 내용을 살펴보면 봉건제도를 비판하고 매도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맨 하층에 있는 사람들의 강한 개혁의지를 보는 것만 같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놀이나 연희를 그저 하나의 여흥 수단으로 넘겨 버리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예술을 그저 관념의 소산으로 아는 인습이 조선왕조의 폐쇄적인 사상 등으로 더욱 고질화 된 것 같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민중의 생활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다분히 통치권력의 지배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향락적 예술형태와는 달리, 오히려 이들과 대립 관계에 서면서 이 땅의 원초적 민주평등사상을 바탕으로 한 민중예술 (民衆藝術)로 부각되어 나타난 것을 나는 남사당 놀이로 보고 싶다.
남사당패는 우리의 오랜 역사에서 민중 속에서 스스로 형성, 연희되었던 유랑예인집단을 일컫는 것으로 그 배경은 말할 것도 없이 민중적 지향을 예술로써 승화하여 온 진보적 구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유랑하는 놀이패의 더욱 적극적인 개혁의지가 놀라울 뿐이라고 하겠다. 그 시대에도 남사당패같이 민중 속에서 생겨나 철저히 민중의 의지를 대변하는 집단이 존재했던 것이다. 당시의 근대적 상황에서 어찌보면 나름대로 부정적인 요소가 개입되어 있는 남사당패의 발생은( 땅을 잃은 농부들이 유리걸식을 하다 기예를 배워 남사당패를 이루었다는 가설을 맞다고 친다면은 ) 그 시대 속에서 방황하던 민중의 모습과 그 당시의 민중의 염원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목차
1. 남사당패의 발생(發生), 구분(構分)
2. 남사당패의 구성(區成)
3. 남사당패의 운영(運營)
4. 남사당패의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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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9.01.02
  • 저작시기2008.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12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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