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PART 01 -새로운 역사를 쓰는 여성, 힐러리 로댐 클린턴
001 -세계인들은 왜 힐러리에게 주목하는가
002 -수퍼 리더 힐러리의 삶과 선택
PART 02 -힐러리를 수퍼 리더로 만든 여덟가지 키워드
001 -승부욕
002 -인간관계
003 -페미니즘
004 -카리스마
005 -위기관리
006 -내면탐구
007 -비주얼
008 -타고난 자질
PART 03 -힐러리의 수퍼 리더십
001 -수퍼 리더십이 지닌 아홉가지 법칙
002 -수퍼 리더 힐러리의 자기 계발법
PART 04 -수퍼리더를 꿈꾸는 부모님들께
001 -수퍼 리더 기초 다지기
002 -수퍼 리더 파워 기르기
001 -세계인들은 왜 힐러리에게 주목하는가
002 -수퍼 리더 힐러리의 삶과 선택
PART 02 -힐러리를 수퍼 리더로 만든 여덟가지 키워드
001 -승부욕
002 -인간관계
003 -페미니즘
004 -카리스마
005 -위기관리
006 -내면탐구
007 -비주얼
008 -타고난 자질
PART 03 -힐러리의 수퍼 리더십
001 -수퍼 리더십이 지닌 아홉가지 법칙
002 -수퍼 리더 힐러리의 자기 계발법
PART 04 -수퍼리더를 꿈꾸는 부모님들께
001 -수퍼 리더 기초 다지기
002 -수퍼 리더 파워 기르기
본문내용
힐러리는 아버지와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다. 그러나 존스 목사의 생각과 이념은 이들과 완전히 상충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힐러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정치관과 종교관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고, 자신이 알고 있던 것들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이렇게 힐러리가 갈팡질팡 할 수 있었던 시기에도 한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지지를 보낸 사람은 바로 깊고 넓은 사고를 갖게 한 어머니 도로시 였다. 이 후 힐러리는 엄청난 가치관의 변화를 겪게 되고, 그러면서 그 동안 힐러리가 가지고 있던 통념과 정치적 견해는 거의 대부분 아버지의 생각을 앵무새처럼 흉내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힐러리가 존스의 사람과 신앙을 아무런 비판 없이 무작정 받아 들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점은 그 것이다. 힐러리는 돈 존스 목사와 선생님 폴 칼슨의 대립을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작으로 바라 봤다. 이것이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스킬이 아닌가 싶다.
힐러리의 자서전에서 돈 존스 목사와 폴 칼슨 선생님의 갈등이 지난 40년 동안 미국전역에 생겨난 문화적, 정치적, 종교적, 단층을 보여주는 초기의 지표라 생각한다고 말했었다. 힐러리 그녀는 두 사람을 모두 존경했으며 그들의 신념임을 인정한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힐러리의 수퍼 리더십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진정한 수퍼 리더는 자신의 신념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넓은 마음과 시각으로 포용한다. 어린 시절 이었지만 힐러리는 자기 자신의 신념을 타인의 신념 속에서 올바르게 세우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리더십이란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그런 자신만의 기술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람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지 밖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힐러리가 성장기를 거쳐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변함없이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지휘해 갈 수 있었던 것은 힐러리가 그 만큼 내면의 힘을 길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내면의 힘은 유전적 성향이나 가족배경, 학교 교육과 훈련, 일반적인 사회적 환경 등의 영향을 골고루 받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영향을 바탕으로 자신이 자신을 관리하는 방법을 터득 하느냐이다.
힐러리 그녀는 수퍼 리더십을 갖추기 위한 기초단계인 셀프 리더십을 스스로 완성 시켰다. 그녀 자신은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 할 줄 아는 용기나 부모에게서의 의존에서 벗어나 점점 더 독립적인 존재로 변모한 사실을 보면 확실해 진다.
다른 사람들에게 리더로서 리더십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리드 할 수 있는 셀프 리더가 되어야 한다. 셀프 리더가 되면 자연히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의 리더십을 모범으로 삼게 되고, 그 모범적 기준에 비추어 자신의 행동을 평가하게 된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성장기의 힐러리의 모습은 그녀의 주변 친구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여러 사람에게 모델이 되었다. 즉, 성장기 시절 그녀는 진정한 셀프 리더였다. 그것이 훗날 힐러리가 수퍼 리더십을 발휘하는데 좋은 경험이 되었던 것이다.
힐러리가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을 때다. 힐러리는 동부의 7대 명문여대 중 하나인 웰즐리 대학에 진학했다. 힐러리의 웰즐리 생활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아니다. 하지만 힐러리는 자신만의 특유의 투지와 열정을 발휘하여 자신을 위해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 후로 힐러리는 웰즐리에서 국가 정세, 문화, 정치, 성 관념의 변화를 통해 그녀만의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외로운 학자‘ 라고 명하고, 친구들에게 휩쓸리지 않으며 혼자만의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다. 모두들 화창한 대학생활을 기대하면서 즐거운 대학생활에 부풀어 생활 할 때 힐러리는 혼자서 혼자만의 연구에 몰두를 했다는 점은 정말이지 같은 대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을 때는 그 누구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힐러리 그녀는 자신의 든든한 지원자인 돈 존스 목사가 곁에 있었기에 해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나날들이 지속되고, 그녀에게 무관심하던 힐러리의 친구들도 힐러리의 개혁적인 성향과 당당함 그리고 그녀가 가진 천성적인 따뜻함과 유머감각에 점차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 무렵 1960년대에는 정치와 여성운동의 영향으로 대학 캠퍼스에까지 엄청난 변화가 밀려들고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여대생들의 목표는 하버드 또는 예일대의 남학생을 만나 결혼하여 상류층으로 진입하는 것이었다. 똑똑한 아이를 낳아 키우고, 명문가에서 적당한 교양과 매너를 가지고 남편을 잘 보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 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있었다. 힐러리는 어떠한 고정관념이나 장애물에도 위협 받지도 억압당하지도 않았다.
힐러리는 웰즐리의 젊은 공화당 클럽의 리더가 되었으며 2학기 말에는 회장으로 선출 되었다. 그 사이 인권 문제와 베트남 전쟁에 대한 당의 정책에 의문을 갖게 되었고, 그녀는 공화당 내에서도 진보주의 성향으로 점점 옮겨가기 시작했다. 대학교 2학년 때는 대통령 예비선거에서 존슨 대통령에게 도전하고 있던 미네소타 출신 민주당 상원의원 메카시의 반전 운동을 지지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잠깐 개인적인 생각을 떠올려 보게 되면,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상 시켜 보게 된다. 힐러리는 이미 대학시절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신념과 가치관을 확실하게 세워 놓고 있었다. 끊임없는 학업을 통해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과 가치관을 쌓는 동시에 인간관계 또한 끊임없이 넓혀 나갔다. 어디 그뿐 인가 많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 예리한 지성을 쌓아 나갔으며 자신의 야망과 분노를 표출하면서 열정적인 삶을 주도 해 나갔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진화시켜 나간 것이다. 이때의 대학생활 4년은 이후 힐러리의 미래를 짊어지는 단단한 초석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비교하자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 대부분의 학생들은 중, 고등학교, 심지어 초등학교 시절에 까지 집과 학교, 학원을 오가며 꼭두각시 인형처럼 입시준비를 한다. 그렇다보니 대학에 들어가서는 더 가관일 수밖에 없다. 수강신청 조차 부모님들이
이렇게 힐러리가 갈팡질팡 할 수 있었던 시기에도 한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지지를 보낸 사람은 바로 깊고 넓은 사고를 갖게 한 어머니 도로시 였다. 이 후 힐러리는 엄청난 가치관의 변화를 겪게 되고, 그러면서 그 동안 힐러리가 가지고 있던 통념과 정치적 견해는 거의 대부분 아버지의 생각을 앵무새처럼 흉내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힐러리가 존스의 사람과 신앙을 아무런 비판 없이 무작정 받아 들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점은 그 것이다. 힐러리는 돈 존스 목사와 선생님 폴 칼슨의 대립을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작으로 바라 봤다. 이것이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스킬이 아닌가 싶다.
힐러리의 자서전에서 돈 존스 목사와 폴 칼슨 선생님의 갈등이 지난 40년 동안 미국전역에 생겨난 문화적, 정치적, 종교적, 단층을 보여주는 초기의 지표라 생각한다고 말했었다. 힐러리 그녀는 두 사람을 모두 존경했으며 그들의 신념임을 인정한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힐러리의 수퍼 리더십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진정한 수퍼 리더는 자신의 신념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넓은 마음과 시각으로 포용한다. 어린 시절 이었지만 힐러리는 자기 자신의 신념을 타인의 신념 속에서 올바르게 세우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리더십이란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그런 자신만의 기술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람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지 밖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힐러리가 성장기를 거쳐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변함없이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지휘해 갈 수 있었던 것은 힐러리가 그 만큼 내면의 힘을 길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내면의 힘은 유전적 성향이나 가족배경, 학교 교육과 훈련, 일반적인 사회적 환경 등의 영향을 골고루 받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영향을 바탕으로 자신이 자신을 관리하는 방법을 터득 하느냐이다.
힐러리 그녀는 수퍼 리더십을 갖추기 위한 기초단계인 셀프 리더십을 스스로 완성 시켰다. 그녀 자신은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 할 줄 아는 용기나 부모에게서의 의존에서 벗어나 점점 더 독립적인 존재로 변모한 사실을 보면 확실해 진다.
다른 사람들에게 리더로서 리더십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리드 할 수 있는 셀프 리더가 되어야 한다. 셀프 리더가 되면 자연히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의 리더십을 모범으로 삼게 되고, 그 모범적 기준에 비추어 자신의 행동을 평가하게 된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성장기의 힐러리의 모습은 그녀의 주변 친구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여러 사람에게 모델이 되었다. 즉, 성장기 시절 그녀는 진정한 셀프 리더였다. 그것이 훗날 힐러리가 수퍼 리더십을 발휘하는데 좋은 경험이 되었던 것이다.
힐러리가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을 때다. 힐러리는 동부의 7대 명문여대 중 하나인 웰즐리 대학에 진학했다. 힐러리의 웰즐리 생활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아니다. 하지만 힐러리는 자신만의 특유의 투지와 열정을 발휘하여 자신을 위해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 후로 힐러리는 웰즐리에서 국가 정세, 문화, 정치, 성 관념의 변화를 통해 그녀만의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외로운 학자‘ 라고 명하고, 친구들에게 휩쓸리지 않으며 혼자만의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다. 모두들 화창한 대학생활을 기대하면서 즐거운 대학생활에 부풀어 생활 할 때 힐러리는 혼자서 혼자만의 연구에 몰두를 했다는 점은 정말이지 같은 대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을 때는 그 누구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힐러리 그녀는 자신의 든든한 지원자인 돈 존스 목사가 곁에 있었기에 해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나날들이 지속되고, 그녀에게 무관심하던 힐러리의 친구들도 힐러리의 개혁적인 성향과 당당함 그리고 그녀가 가진 천성적인 따뜻함과 유머감각에 점차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 무렵 1960년대에는 정치와 여성운동의 영향으로 대학 캠퍼스에까지 엄청난 변화가 밀려들고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여대생들의 목표는 하버드 또는 예일대의 남학생을 만나 결혼하여 상류층으로 진입하는 것이었다. 똑똑한 아이를 낳아 키우고, 명문가에서 적당한 교양과 매너를 가지고 남편을 잘 보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 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있었다. 힐러리는 어떠한 고정관념이나 장애물에도 위협 받지도 억압당하지도 않았다.
힐러리는 웰즐리의 젊은 공화당 클럽의 리더가 되었으며 2학기 말에는 회장으로 선출 되었다. 그 사이 인권 문제와 베트남 전쟁에 대한 당의 정책에 의문을 갖게 되었고, 그녀는 공화당 내에서도 진보주의 성향으로 점점 옮겨가기 시작했다. 대학교 2학년 때는 대통령 예비선거에서 존슨 대통령에게 도전하고 있던 미네소타 출신 민주당 상원의원 메카시의 반전 운동을 지지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잠깐 개인적인 생각을 떠올려 보게 되면,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상 시켜 보게 된다. 힐러리는 이미 대학시절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신념과 가치관을 확실하게 세워 놓고 있었다. 끊임없는 학업을 통해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과 가치관을 쌓는 동시에 인간관계 또한 끊임없이 넓혀 나갔다. 어디 그뿐 인가 많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 예리한 지성을 쌓아 나갔으며 자신의 야망과 분노를 표출하면서 열정적인 삶을 주도 해 나갔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진화시켜 나간 것이다. 이때의 대학생활 4년은 이후 힐러리의 미래를 짊어지는 단단한 초석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비교하자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 대부분의 학생들은 중, 고등학교, 심지어 초등학교 시절에 까지 집과 학교, 학원을 오가며 꼭두각시 인형처럼 입시준비를 한다. 그렇다보니 대학에 들어가서는 더 가관일 수밖에 없다. 수강신청 조차 부모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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