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Prologue
Ⅱ. 통치 스타일의 이념 형태
Ⅲ. 김정일의 통치 스타일
Ⅳ. 김정일 리더십의 실체
ⅰ) 강제기구의 장악
ⅱ) 김정일의 업무성과
Ⅱ. 통치 스타일의 이념 형태
Ⅲ. 김정일의 통치 스타일
Ⅳ. 김정일 리더십의 실체
ⅰ) 강제기구의 장악
ⅱ) 김정일의 업무성과
본문내용
당·정·군관료들의 장악에 착수 하였다.
이러한 논리에서 김정일이 북한의 강제기구인 군부 국가 안전 보위부 인민보안성 호 위사령부등을 통제하는 당 조직지도부를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은 리더쉽 발휘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ⅱ) 김정일의 업무성과
김정일은 다양한 부문에서 리더쉽을 발휘하여 정치 통합을 이루고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첫째, 김정일은 실사구시적 정책 선택에도 불구하고 주체사상을 당 및 국가의 중심가치체계(central value system)로 유지하고 있다. ‘현존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사회주의 이념은 사실상 사라졌으나 사회주의 이념을 근간으로 한 주체사상은 북한 내에서 여전히 김정일·관료·인민의 사고를 규정하는 규범이 되고 있다. 수령을 사회 정치적 생명체의 뇌수로 규정하고 있는 ‘혁명적수령관’은 수령 사망 이후에도 수령 후계자에게로 전수되었다.
둘째, 김정일은 당의 위상을 확고히 유지하고 있다. 노동당은 경제난과 ‘선군정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를 이끌어가는 막강한 조직이다. 노동당은 수령 김일성과 수령 후계자 김정일의 노선을 충실히 집행하는 전위 집단이다. 분명한 것은 노동당이 인민의 이익보다는 김정일의 의사를 보다 중시 하기 때문에 김정일의 어떤 지시든 충실히 이행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노동 당원들은 일반 인민들과는 달리 개인 상업을 거부 하고 주체사상에 대한 충실성을 발휘하는 등 ‘以身作則’ 함으로써 아사하는 경우가 더 많다. 희생이 큰 만큼 주민들의 당원들에 대한 비판은 커지지 못하고 있다. 물론황장엽씨의 망명에서 관히의 ‘무능’ 최용해의 ‘부패’ 등 고위 당 관료들의 일탈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노동당과 당원들은 김정일에 대한 충실성을 보이고 있고 주민들과 애환을 함께 함으로써 국가 보위의 첨병이 되고 있다. 따라서 ‘군우선정책’에도 불구 하고 ‘당우위체제’는 지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통해 군을 위무하는 한편, 각종 감시 기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있다. 사회주의권 붕괴 및 경제난 심화 이후 북한군의 역할은 국방 이외에 경제건설사회 치안유지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경제난으로 인해 주민들의 노동 강도가 저하 됨으로써 급하고 중요한 건설 현장에 군 돌격대는 물론 일반 병사들까지 투입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김정일은 “(경의선 착공 날짜가 합의만 되면 우리는 38선 3분계선 2개 2사단 3만천명을 빼내 즉시 착공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여 군의 경제적 역할을 확인함과 함께 군통제의 자신감을 과시 하였다. 아울러 경제 난으로 인한 주민 이동이 심화되면서 인민 보안성 만으로는 치안유지가 어려워지자 중요 기업소나 협동 농장, 국경이나 도로등에 대한 경비를 군이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군의 역할 증대가 김정일은 물론 노동당의 영도 체계를 훼손시키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군의 역할은 노동당의 영도를 더욱 잘보존하는 데로 모아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북한군은 ‘수령과 당의 군대’이고 군 장교들은 모두 군인이기 전에 당원이다. 그들은 당과 군대중 하나를 택하라면 당을 택할 것이다. 김정일이 자신의 권력기반은 ‘군력’이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북한군은 軍한당위원회 군 총치국 군보위 사령부 등을 통해 철저히 감시 당하고 있음으로 인해 일체의 일탈행위가 봉쇄 당하고 있다.
넷째, 김정일은 다른 분야와는 달리 경제난 해결에는 역량을 발휘 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에는 식량난을 비롯한 에너지난, 원자재난, 외화난, 생필품난 등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비록 1996~97년 기간동안 ‘고난의행군’을 통한 내핍과 외부원조를 통해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각 경제주체들은 제몫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모든 경제난의 원인은 외화난에서 비롯된다. 내부자원이 고갈된 상태에서의 활로는 외화를 주고 식량 원자재 원유등을 구입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북한 외화사정은 ‘주석폰드fund: 자금’ 외에는 완전 고갈상태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일반 노동자, 농민, 하급간부 등에 대한 식량 중앙공급은 1995년 이후 거의 중지된 상태이고 식량이 공급된다 할지라도 며칠 분만 배급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반 인민들은 물론 하급 전사들까지 식량자급에 나서고 있다. 정부 차원의 식량난 해결 노력은 감자 농사 장려, 토지 정리 사업확대, 연합 기업소 해체, 외부 원조 확보 등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금년에도 약 137만여톤의 식량부족이 예상되고 있다. 또한 공장 가동률은 20%를 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고 가동 중인 공장도 전력난으로 인해 수시로 가동이 중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김정일의 최대 관심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석탄이나 수자원 확보로 모아지고 있다.
다섯째, 김정일은 경제 난으로 인한 아사자 발생을 저지하지 못하고 있다. 아사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으나 1995년 이후 연 인원 최소한 수 백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아사자에는 순수 아사자와 합병증 사망자로 나뉘어 질 수 있다. 아사자 발생은 주민들의 정부 불신과 개인 차원의 물품 매매 필요성을 제고시켰다. 주민들은 관료들을 비판하고 생존을 위해 각종 물품이나 공장 기자재를 판매하기 시작 하였다. 물론 개인적 차원이기는 하지만 김정일에 대한 비판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김정일은 2001년에 들어서 경제난 해결을 위해 1월4일‘새로운 관점’을 강조 하고 1월15일1부터는 중국의 대표적인 개방지구인 상하이 푸둥 (浦東)지구를 방문함으로써 관료들의 의식 전환을 시도하는 한편 자본주의 교육을 위해 400여4명 이상의 중견 간부들을 해외에 파견하였다.
참고 문헌
http://www.unikorea.go.kr/ 통일부
http://ifes.kyungnam.ac.kr/kor/PUB/PUB_0106V.aspx?code=PRI110126_0002
한반도 리포트 2010/2011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http://hanstory.org/upload/13029188001.pdf 현대북한연구, 13권3호(2010), 2010 북1한대학원대학교, pp.83~119.
http://www.kinu.or.kr 통일연구원
이러한 논리에서 김정일이 북한의 강제기구인 군부 국가 안전 보위부 인민보안성 호 위사령부등을 통제하는 당 조직지도부를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은 리더쉽 발휘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ⅱ) 김정일의 업무성과
김정일은 다양한 부문에서 리더쉽을 발휘하여 정치 통합을 이루고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첫째, 김정일은 실사구시적 정책 선택에도 불구하고 주체사상을 당 및 국가의 중심가치체계(central value system)로 유지하고 있다. ‘현존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사회주의 이념은 사실상 사라졌으나 사회주의 이념을 근간으로 한 주체사상은 북한 내에서 여전히 김정일·관료·인민의 사고를 규정하는 규범이 되고 있다. 수령을 사회 정치적 생명체의 뇌수로 규정하고 있는 ‘혁명적수령관’은 수령 사망 이후에도 수령 후계자에게로 전수되었다.
둘째, 김정일은 당의 위상을 확고히 유지하고 있다. 노동당은 경제난과 ‘선군정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를 이끌어가는 막강한 조직이다. 노동당은 수령 김일성과 수령 후계자 김정일의 노선을 충실히 집행하는 전위 집단이다. 분명한 것은 노동당이 인민의 이익보다는 김정일의 의사를 보다 중시 하기 때문에 김정일의 어떤 지시든 충실히 이행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노동 당원들은 일반 인민들과는 달리 개인 상업을 거부 하고 주체사상에 대한 충실성을 발휘하는 등 ‘以身作則’ 함으로써 아사하는 경우가 더 많다. 희생이 큰 만큼 주민들의 당원들에 대한 비판은 커지지 못하고 있다. 물론황장엽씨의 망명에서 관히의 ‘무능’ 최용해의 ‘부패’ 등 고위 당 관료들의 일탈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노동당과 당원들은 김정일에 대한 충실성을 보이고 있고 주민들과 애환을 함께 함으로써 국가 보위의 첨병이 되고 있다. 따라서 ‘군우선정책’에도 불구 하고 ‘당우위체제’는 지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통해 군을 위무하는 한편, 각종 감시 기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있다. 사회주의권 붕괴 및 경제난 심화 이후 북한군의 역할은 국방 이외에 경제건설사회 치안유지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경제난으로 인해 주민들의 노동 강도가 저하 됨으로써 급하고 중요한 건설 현장에 군 돌격대는 물론 일반 병사들까지 투입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김정일은 “(경의선 착공 날짜가 합의만 되면 우리는 38선 3분계선 2개 2사단 3만천명을 빼내 즉시 착공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여 군의 경제적 역할을 확인함과 함께 군통제의 자신감을 과시 하였다. 아울러 경제 난으로 인한 주민 이동이 심화되면서 인민 보안성 만으로는 치안유지가 어려워지자 중요 기업소나 협동 농장, 국경이나 도로등에 대한 경비를 군이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군의 역할 증대가 김정일은 물론 노동당의 영도 체계를 훼손시키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군의 역할은 노동당의 영도를 더욱 잘보존하는 데로 모아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북한군은 ‘수령과 당의 군대’이고 군 장교들은 모두 군인이기 전에 당원이다. 그들은 당과 군대중 하나를 택하라면 당을 택할 것이다. 김정일이 자신의 권력기반은 ‘군력’이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북한군은 軍한당위원회 군 총치국 군보위 사령부 등을 통해 철저히 감시 당하고 있음으로 인해 일체의 일탈행위가 봉쇄 당하고 있다.
넷째, 김정일은 다른 분야와는 달리 경제난 해결에는 역량을 발휘 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에는 식량난을 비롯한 에너지난, 원자재난, 외화난, 생필품난 등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비록 1996~97년 기간동안 ‘고난의행군’을 통한 내핍과 외부원조를 통해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각 경제주체들은 제몫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모든 경제난의 원인은 외화난에서 비롯된다. 내부자원이 고갈된 상태에서의 활로는 외화를 주고 식량 원자재 원유등을 구입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북한 외화사정은 ‘주석폰드fund: 자금’ 외에는 완전 고갈상태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일반 노동자, 농민, 하급간부 등에 대한 식량 중앙공급은 1995년 이후 거의 중지된 상태이고 식량이 공급된다 할지라도 며칠 분만 배급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반 인민들은 물론 하급 전사들까지 식량자급에 나서고 있다. 정부 차원의 식량난 해결 노력은 감자 농사 장려, 토지 정리 사업확대, 연합 기업소 해체, 외부 원조 확보 등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금년에도 약 137만여톤의 식량부족이 예상되고 있다. 또한 공장 가동률은 20%를 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고 가동 중인 공장도 전력난으로 인해 수시로 가동이 중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김정일의 최대 관심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석탄이나 수자원 확보로 모아지고 있다.
다섯째, 김정일은 경제 난으로 인한 아사자 발생을 저지하지 못하고 있다. 아사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으나 1995년 이후 연 인원 최소한 수 백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아사자에는 순수 아사자와 합병증 사망자로 나뉘어 질 수 있다. 아사자 발생은 주민들의 정부 불신과 개인 차원의 물품 매매 필요성을 제고시켰다. 주민들은 관료들을 비판하고 생존을 위해 각종 물품이나 공장 기자재를 판매하기 시작 하였다. 물론 개인적 차원이기는 하지만 김정일에 대한 비판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김정일은 2001년에 들어서 경제난 해결을 위해 1월4일‘새로운 관점’을 강조 하고 1월15일1부터는 중국의 대표적인 개방지구인 상하이 푸둥 (浦東)지구를 방문함으로써 관료들의 의식 전환을 시도하는 한편 자본주의 교육을 위해 400여4명 이상의 중견 간부들을 해외에 파견하였다.
참고 문헌
http://www.unikorea.go.kr/ 통일부
http://ifes.kyungnam.ac.kr/kor/PUB/PUB_0106V.aspx?code=PRI110126_0002
한반도 리포트 2010/2011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http://hanstory.org/upload/13029188001.pdf 현대북한연구, 13권3호(2010), 2010 북1한대학원대학교, pp.83~119.
http://www.kinu.or.kr 통일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