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3
Ⅱ. 연구사 개괄 3
Ⅲ. 발해 관련 기사 5
Ⅳ. 발해와 일본의 외교 성격 8
Ⅴ. 맺음말 9
[참고문헌]
Ⅱ. 연구사 개괄 3
Ⅲ. 발해 관련 기사 5
Ⅳ. 발해와 일본의 외교 성격 8
Ⅴ. 맺음말 9
[참고문헌]
본문내용
것과 관련된 사실 25항목 기록
② 《일본후기(日本後紀)》
③ 《일본문덕천황실록(日本文德天皇實錄)》
: 이 책은 850-858년까지 8년간의 역사를 담고 있지만, 이 기간 동안 발해와 교류한 직접적인 사실은 없다. 다만 일본이 발해국으로 보내는 국서를 지음에 명망있는 사람을 선택하여 글을 쓴 내용을 담고 있어, 일본이 발해와의 교류를 매우 중시하였음을 표명하는데 의의가 있다.
④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實錄)》
:본서는 858-887년까지의 일본역사를 기록하였는데, 이 30년간 발해는 일본에 5차례정도 사신을 파겼하였다. 일본의 문인들과의 교류관계 등 70여건에 달하는 발해관련 기록들이 수록되어 있다.
Ⅳ. 발해와 일본의 외교 성격
발해와 고대 일본은 장기간에 걸쳐 극히 친밀한 외교관계를 지속했으며, 727년 이래 약 200년 동안 발해에서 34회, 일본으로부터는 13회의 사절 왕래가 확인된다. 여기서 주목하는 점은 발해와 일본 사이의 교류의 성격이다. 일반적으로 양국의 긴밀한 관계를 이해할 때 정치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을 따로 분리해서 생각해왔다고 본다.
그러나 발해와 일본의 관계의 배후에는 중국, 신라, 발해, 일본 간의 긴장된 국제관계가 형성되어있었다. 나당세력에 대치하여 발해와 일본은 그에 사정에 맞게 우호적 친선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타이밍이 작용했던 것이다.
① 일본에게 발해는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창이었고, 발해에게 일본은 신라를 견제할 수 있는 좋은 정치적, 군사적 파트너였다는 말이다. 발해 사신단이 남경,남해부를 떠나 일본도를 통해 일본에 도착하면 일본 정부에서는 영객사를 파견하여 수도로 안내했고, 천황은 태극전에서 손수 연회를 베풀고 일본의 고위관직을 사신에게 내리는 등 환대를 아끼지 않았다. 발해에서는 특산물과 중원의 정보를 제공했고, 문인들을 보내 문화 교류가 이루어졌으며, 발해의 음악을 일본에 전수하기도 했다.
② 발해도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일본과 교섭을 활발히 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초기에는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사실을 선언하고, 신라를 압박하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 발해가 동해를 건너 일본과 강력한 정치동맹을 맺는다면 신라를 가운데 둔 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 군사적으로도 위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 힘을 배경으로 당나라와 유리한 위치에서 교섭을 할 수 있었다.
③ 발해는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교섭도 충실했다. 그들은 배에다 호 랑이, 담비 곰 등 고급 모피를 싣고 가서 몇 개월간을 머물며 팔고, 돌아올 때에는 빈 배에 다 섬유제품 금 수은 등을 실은 채 귀국하였다. 이 무역으로 발해인들은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다. 황해를 장보고 선단이 장악했다면, 발해인들은 환동해무역권을 장악하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더구나 9세기에 이르러 일본이 신라, 당나라와 소원해지면서 발해선들의 역할 은 더욱 커졌다. 장보고가 죽은 이후에는 그 역할까지 이어받아 당나라의 남방(현재 절강성 지방)과 일본 그리고 발해와 북방을 잇는 환동아지중해(環東亞地中海)의 해양네트워크를 만 들어 그 주역이 되었다.
④ 발해의 해양능력에 대한 재고를 하게 되었다. 약 200여 년 동안에 공식적인 발해사신만 34회나 파견되었고, 1,100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대량 파견된 일도 있었다. 그 외에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비공식적인 민간교역은 헤아릴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현재 혼슈우 북방의 아끼다(秋田)에서 중간의 노토(能登)반도 가하(加賀), 쓰루가(若狹) 지역, 남쪽의 오끼(隱岐)제도, 이즈모(出雲)지역과 큐슈 지역 등 거의 전지역이었다. 이는 2세기에 걸친 발해와 일본의 관계도 막연히 경제적 관계라는 성격에 그치지 않고 발해 국가의 존립 그 자체와도 관련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Ⅴ. 맺음말
이상으로 《속일본기》를 중심으로 발해와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발해의 요청에 의해 시작된 양국의 관계가 물품의 교환으로 인한 이익과 더불어 문화, 예술 등 경제적 교역으로서 단순히 설명할 것이 아니라, 8세기 동아시아의 긴장관계에서 맺어진 소산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것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양국외교의 기저는 대외적 정당성을 확보하여 정권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는 정치적 측면과 교역을 통한 실익도모라는 경제적 측면이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발해와 일본이 밀접한 관계였다는 것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일본자료가 많이 남아있어서 놀랐다. 사실 일본교류보단 대당 교류가 훨씬 빈번하긴 했지만, 지리적 근접적을 고려하면 원거리에 있는 일본이 신라보다 발해와 긴밀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그리고 양국은 마치 동상이몽의 형태로 자신들의 이익 추구하는 선에서 타협 공존했다는 것이 현대의 정치관계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느꼈다.
처음 주제선정을 할 때 얕봤던 점을 이번 과제를 빌어 많이 반성한다. 한국에서는 근거 사료가 부족할뿐더러, 일본의 사료-속일본기-같은 경우 너무 방대해서 가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어려워서, 매 단락을 정리할 때 마다 난항에 부딪혀야만 했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책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과제를 하면서 사료의 이해, 비판은 단면적으로 드러난 기술 이면의 '맥락'을 충분히 이해할 때에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너무나도 부족한 점을 많이 느꼈다. 그렇지만 이번 과제를 통해 주제를 갖고 사료 정리, 해석을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굉장히 감회가 새롭다.
[참고문헌]
*학술지
구난희,1999,「8세기 후반 일본의 대외관계에 관한 고찰-발해와의 관계를 중심으로-」,일본역사연구
이근우,2000,「《속일본기》의 역사서술과 특징」,일본역사연구제 12집,일본사학회
이병로,1998,「《속일본기》에 나타난 한국고대사상-신라발해를 중심으로-」,한국고대사연구 제14권, 한국고대사학회
최재석,1991,「통일신라와 일본과의 관계」,정신문화연구 제14권,한국학중앙연구원
*단행본
고구려연구재단 저,2004,『발해사 자료집(상),(하)』,고구려연구재단
동북아역사재단 저,2007,『발해의 역사와 문화』,동북아역사재단
김부식 저/이병도 역,1996,『삼국사기(상),(하)』,을유문화사
② 《일본후기(日本後紀)》
③ 《일본문덕천황실록(日本文德天皇實錄)》
: 이 책은 850-858년까지 8년간의 역사를 담고 있지만, 이 기간 동안 발해와 교류한 직접적인 사실은 없다. 다만 일본이 발해국으로 보내는 국서를 지음에 명망있는 사람을 선택하여 글을 쓴 내용을 담고 있어, 일본이 발해와의 교류를 매우 중시하였음을 표명하는데 의의가 있다.
④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實錄)》
:본서는 858-887년까지의 일본역사를 기록하였는데, 이 30년간 발해는 일본에 5차례정도 사신을 파겼하였다. 일본의 문인들과의 교류관계 등 70여건에 달하는 발해관련 기록들이 수록되어 있다.
Ⅳ. 발해와 일본의 외교 성격
발해와 고대 일본은 장기간에 걸쳐 극히 친밀한 외교관계를 지속했으며, 727년 이래 약 200년 동안 발해에서 34회, 일본으로부터는 13회의 사절 왕래가 확인된다. 여기서 주목하는 점은 발해와 일본 사이의 교류의 성격이다. 일반적으로 양국의 긴밀한 관계를 이해할 때 정치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을 따로 분리해서 생각해왔다고 본다.
그러나 발해와 일본의 관계의 배후에는 중국, 신라, 발해, 일본 간의 긴장된 국제관계가 형성되어있었다. 나당세력에 대치하여 발해와 일본은 그에 사정에 맞게 우호적 친선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타이밍이 작용했던 것이다.
① 일본에게 발해는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창이었고, 발해에게 일본은 신라를 견제할 수 있는 좋은 정치적, 군사적 파트너였다는 말이다. 발해 사신단이 남경,남해부를 떠나 일본도를 통해 일본에 도착하면 일본 정부에서는 영객사를 파견하여 수도로 안내했고, 천황은 태극전에서 손수 연회를 베풀고 일본의 고위관직을 사신에게 내리는 등 환대를 아끼지 않았다. 발해에서는 특산물과 중원의 정보를 제공했고, 문인들을 보내 문화 교류가 이루어졌으며, 발해의 음악을 일본에 전수하기도 했다.
② 발해도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일본과 교섭을 활발히 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초기에는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사실을 선언하고, 신라를 압박하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 발해가 동해를 건너 일본과 강력한 정치동맹을 맺는다면 신라를 가운데 둔 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 군사적으로도 위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 힘을 배경으로 당나라와 유리한 위치에서 교섭을 할 수 있었다.
③ 발해는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교섭도 충실했다. 그들은 배에다 호 랑이, 담비 곰 등 고급 모피를 싣고 가서 몇 개월간을 머물며 팔고, 돌아올 때에는 빈 배에 다 섬유제품 금 수은 등을 실은 채 귀국하였다. 이 무역으로 발해인들은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다. 황해를 장보고 선단이 장악했다면, 발해인들은 환동해무역권을 장악하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더구나 9세기에 이르러 일본이 신라, 당나라와 소원해지면서 발해선들의 역할 은 더욱 커졌다. 장보고가 죽은 이후에는 그 역할까지 이어받아 당나라의 남방(현재 절강성 지방)과 일본 그리고 발해와 북방을 잇는 환동아지중해(環東亞地中海)의 해양네트워크를 만 들어 그 주역이 되었다.
④ 발해의 해양능력에 대한 재고를 하게 되었다. 약 200여 년 동안에 공식적인 발해사신만 34회나 파견되었고, 1,100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대량 파견된 일도 있었다. 그 외에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비공식적인 민간교역은 헤아릴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현재 혼슈우 북방의 아끼다(秋田)에서 중간의 노토(能登)반도 가하(加賀), 쓰루가(若狹) 지역, 남쪽의 오끼(隱岐)제도, 이즈모(出雲)지역과 큐슈 지역 등 거의 전지역이었다. 이는 2세기에 걸친 발해와 일본의 관계도 막연히 경제적 관계라는 성격에 그치지 않고 발해 국가의 존립 그 자체와도 관련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Ⅴ. 맺음말
이상으로 《속일본기》를 중심으로 발해와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발해의 요청에 의해 시작된 양국의 관계가 물품의 교환으로 인한 이익과 더불어 문화, 예술 등 경제적 교역으로서 단순히 설명할 것이 아니라, 8세기 동아시아의 긴장관계에서 맺어진 소산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것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양국외교의 기저는 대외적 정당성을 확보하여 정권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는 정치적 측면과 교역을 통한 실익도모라는 경제적 측면이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발해와 일본이 밀접한 관계였다는 것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일본자료가 많이 남아있어서 놀랐다. 사실 일본교류보단 대당 교류가 훨씬 빈번하긴 했지만, 지리적 근접적을 고려하면 원거리에 있는 일본이 신라보다 발해와 긴밀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그리고 양국은 마치 동상이몽의 형태로 자신들의 이익 추구하는 선에서 타협 공존했다는 것이 현대의 정치관계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느꼈다.
처음 주제선정을 할 때 얕봤던 점을 이번 과제를 빌어 많이 반성한다. 한국에서는 근거 사료가 부족할뿐더러, 일본의 사료-속일본기-같은 경우 너무 방대해서 가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어려워서, 매 단락을 정리할 때 마다 난항에 부딪혀야만 했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책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과제를 하면서 사료의 이해, 비판은 단면적으로 드러난 기술 이면의 '맥락'을 충분히 이해할 때에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너무나도 부족한 점을 많이 느꼈다. 그렇지만 이번 과제를 통해 주제를 갖고 사료 정리, 해석을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굉장히 감회가 새롭다.
[참고문헌]
*학술지
구난희,1999,「8세기 후반 일본의 대외관계에 관한 고찰-발해와의 관계를 중심으로-」,일본역사연구
이근우,2000,「《속일본기》의 역사서술과 특징」,일본역사연구제 12집,일본사학회
이병로,1998,「《속일본기》에 나타난 한국고대사상-신라발해를 중심으로-」,한국고대사연구 제14권, 한국고대사학회
최재석,1991,「통일신라와 일본과의 관계」,정신문화연구 제14권,한국학중앙연구원
*단행본
고구려연구재단 저,2004,『발해사 자료집(상),(하)』,고구려연구재단
동북아역사재단 저,2007,『발해의 역사와 문화』,동북아역사재단
김부식 저/이병도 역,1996,『삼국사기(상),(하)』,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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