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 생애와 산문문학의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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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박지원의 생애와 처지

1. 박지원의 생애
2. 열하일기와 문체반정
3. 교우관계

Ⅲ. 박지원의 문장론과 수사적 양상

1. 문장론 - 법고창신
2. 산문의 수사적 양상

Ⅳ. 연암의 대표적 작품분석 과 문학사상

1. 양반전
(1) 사회배경과 박지원의 태도
(2) <양반전>의 내용과 주제

2. 연암의 문학사상

Ⅴ. 결론

Ⅵ. 작가연보

Ⅶ. 참고문헌

본문내용

없는 인격을 그려 양반이나 서민이나 인간은 똑같다는 것을 강조하고 권모술수가 판을 치던 당시의 양반사회를 은근히 풍자한 <광문자전>, 왕의 품위와 슬기로 비유된 호랑이를 등장시키고, 그 앞에 북곽선생으로 대표되는 양반계급의 거짓 학문과 비굴한 위선을 신랄하게 야유하면서, 동리자로 대표되는 정절부인의 가식적인 행위를 폭로하고, 성을 달리하는 다섯 아들을 둔 동리자와 그 여자와 사통하는 북곽선생의 행위는 당대 지배층의 이념이 얼마나 허위의식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호질>이 있다.
<열녀함양박씨전>은 과부가 된 박씨 부인이 남편을 따라 순절한 것에 대해 박씨에 대한 칭송보다는 연민의 감정이 우세하다. 이것은 연암이 이 작품을 통해서 조선 봉건 사회가 ‘열녀불경이부’라는 윤리 규범을 내세우고, 벼슬길에 적서(嫡庶)를 차별함으로써 암암리에 여성에게 강요되고 있는 개가금지의 사회적 폐단을 비판하려 한 것이었다. 연암이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 동기는 물론 그가 안의 현감 시절에 경험했던 함양 박씨의 순절사건이었지만, 그 근본을 따져보면 연암이 젊은 시절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여성의 인간성 긍정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처럼 연암의 작품을 통해서 본 연암의 문학사상은 비판과 풍자를 바탕으로 한 개혁에 있다. 사회를 볼 때, 그 사회가 나타내고 있는 사실적인 모습을 소설에 차용하여 이면에 담긴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실학사상과 이용후생 사상을 바탕으로 현실인식에 적극적이었던 연암은 그러한 사상적 성격을 소설에도 여과 없이 반영하였다.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바라보고 잘못된 인간상을 부정하며 인간다운 인간을 긍정하는 것이 바로 연암 박지원의 문학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Ⅴ. 결론
지금까지 연암 박지원의 생애와 대표작인 <양반전>에 대해서 알아보고, 박지원 산문에 나타난 수사적 양상과 다양한 작품 안에서 나타난 문학사상을 알아보았다. 연암은 언제나 앞서나가는 문인 이었다. 한곳에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라는 것이다. 연암의 사상적 측면도 다른 문인들과 달랐지만 연암이 산문에서 사용하는 자신의 수사적 양식에서도 다른 문인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독창성을 보여주었다. 연암의 작품과 사상을 분석해보면 그의 개방적이고 유동적인 사상을 짐작 할 수 있다. 사실적인 사회상을 반영하는 리얼리즘의 성격을 엿볼 수 있고, 당시 문인들의 사상을 따라가지 않고 외부압력에도 꿋꿋이 맞선 그 자체가 지금까지 연암의 작품과 연암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현실과 이상의 기로에서 과감히 현실을 등질 줄 알고, 부조리한 현실에 순응 하였을 때, 고뇌하는 모습이 진정한 문인의 자세인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중국의 사상을 개방적으로 받아들인 그 자체에서도 연암의 실천주의 또한 현대에서 이야기 될 만한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측면에서 자신의 다양한 재능과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연암 박지원. 그의 근대성과 사실주의는 어쩌면 현대에도 충분히 이야기될 수 있는 살아있는 문인일 것이다.
Ⅵ. 작가연보
1737년 반남 박씨 박사유와 함평 이씨 사이 2남 2녀 중 막내로 한양 서쪽 반송방(盤松坊) 야동(冶洞)에서 2월 5일 축시에 출생.
1752년(16세) 관례를 올리고 유안재 이보천의 딸과 혼인. 장인 유안재에게 《맹자》를 배 우고, 처숙인 홍문관 교리 이양천에게 문장 짓는 법을 배움.
1754년(18세) 우울증으로 고생함. ‘민옹전’에 나오는 민유신을 만난 것도 이 무렵임. 거지 광문의 이야기로 ‘광문자전’을 지음.
1756년(20세) 김이소, 황승원, 홍문영, 이희천, 한문홍 들과 북한산 봉원사 등을 찾아다니며 공부했다. 봉원사에서 윤영을 만나서 허생의 이야기를 전해 들음 이 무렵 <마장전>과 <예덕선생전>을 지음.
1757년(21세) 시정의 기이한 인물이나 사건을 듣고 ‘방경각외전’을 지음.
1759년(23세) 어머니 함평 이씨가 59세의 나이로 별세.
1760년(24세) 할아버지 박필균이 76세의 나이로 별세.
1765년(29세) 삼일포, 사선정 등 금강산 일대를 두루 돌아보고, ‘총석정 해돋이〔叢石亭觀 日出〕’를 지음
1766년(30세) 장남 종의 출생.
1767년(31세) 아버지 박사유가 65세의 나이로 별세. <우상전>, <역학대도전>, <봉산학자 전>을 지음.
1772년(36세) 박제가의 문집 《초정집(楚亭集)》에 법고창신의 문학론을 담아 서문을 씀.
1777년(41세) 장인 이보천이 64세의 나이로 별세.
1778년(42세) 다시 연암골로 돌아옴.
1780년(44세) 삼종형인 금성도위 박명원을 따라 북경으로 감. 5월에 떠나 6월에 압록강을 건넜고, 8월에 북경에 들어갔다가 열하에 들러 다시 북경으로 돌아와 10월 에 귀국. 돌아오자마자 《열하일기》를 쓰기 시작. 둘째 아들 종채 출생. <허생전>, <호질>을 지음.
1781년(45세)《북학의서北學議序》지음.
1783년(47세) 벗이었던 담헌 홍대용이 53세로 별세.
1786년(50세) 7월 유언호가 천거하여 선공감역에 임명.
1787년(51세) 부인 전주 이씨가 51세로 별세.
1789년(53세) 평시서주부로 승진.
1790년(54세) 말단 벼슬아치로 유유자적 지내는 모습을 ‘재거齋居’란 시로 씀.
1791년(55세) 한성부판관에 임명.
1792년(56세) 안의에 부임
1793년(57세) 열녀 함양 박씨전 병서烈女咸陽朴氏傳幷序 지음.
1796년(60세) 안의현감 임기가 끝나 서울로 돌아옴. 제용감주부에 임명되었다가 의금부도 사로 전보됨.
1797년(61세) 7월, 면천군수에 임명. 정조의 명령으로 ‘서이방익사書李邦翼事’ 지음.
1799년(63세) 농서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지음.
1800년(64세) 8월에 양양부사로 승진.
1801년(65세) 봄에 양양부사를 사직.
1805년(69세) 노환으로 별세.
Ⅶ. 참고문헌
고미숙외, 한국고전문학 작가론, 소명출판, 1998.
김혈조, 박지원의 산문문학, 성균관대출판부, 2002.
박기석, 연암소설의 심층적이해,집문당, 2008.
박종채, 나의 아버지 박지원, 돌베게, 1998.
이현식, 박지원 산문의 논리와 미학, 이회, 2002.

키워드

연암,   박지원,   생애,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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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0.12
  • 저작시기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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