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1. 김정한 탐구의 계기와 주안점
2. 연구사적 개관
Ⅱ. 본론
1. 작가 김정한
1.1 연보
1.2 작가 의식 형성의 배경
1.3 시기별 작품 경향
2. 김정한의 작품세계 - 투영된 리얼리즘의 형상을 중심으로
2.1 일제의 압제에 저항하는 서민들
2.2 시대적 모순을 이겨나가는 자율적 존재
2.3 인간소외를 고발
Ⅲ. 결론
1. 김정한 탐구의 계기와 주안점
2. 연구사적 개관
Ⅱ. 본론
1. 작가 김정한
1.1 연보
1.2 작가 의식 형성의 배경
1.3 시기별 작품 경향
2. 김정한의 작품세계 - 투영된 리얼리즘의 형상을 중심으로
2.1 일제의 압제에 저항하는 서민들
2.2 시대적 모순을 이겨나가는 자율적 존재
2.3 인간소외를 고발
Ⅲ. 결론
본문내용
02면, 재인용.
인간단지 줄거리>>
반인간적이며 반사회적·반민족적인 상황에 대한 문학적 저항의 압권이라 할 이 작품은 나환자 수용소를 무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우중신 노인은 일찍 결혼을 했는데, 우노인이 일본에서 공부하는 동안 우노인의 아내 복돌이는 문둥병에 걸린 시할아버지를 지극히 간호한다. 그러나 문둥병을 돌보는 복돌이가 끝내 문둥병에 걸리게 되자 시집에서는 복돌이를 내쫓고, 수소문한 끝에 우노인은 아내를 문둥병 수용소에서 찾게 된다. 아내와 오두막을 세우고 살아가다가 아내는 죽고, 우노인 자신도 문둥병에 걸려 해방 조국을 위해 싸우던 그가 한 병자로써 문둥병 수용소에 들게 된다. 자유원(自由園) 원장 박성일의 비행을 보다 못해 우중신 노인을 비롯한 나환자 2백여 명이 박원장의 부정 사실을 낱낱이 폭로한 진정서를 당국에 내어 그의 처벌을 호소함으로써 문제는 야기된다. 부랑아 수양소인 희망원 청년들의 격분을 산 것은 물론이지만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우중신 노인은 자칭 애국 사업가를 용납할 수 없어 끝까지 버틴다.
그러나 우노인 일행은 국립나환자 수용소에 감금되는 몸이 된다. 박원장의 비인도적인 처사에서 가까스로 풀려난 우노인은 정치지배를 받지 않는 새로운 공화국 '인간단지'를 창설하기에 이른다. 필생의 소원을 성취한 듯했으나 문둥이와는 같이 살 수 없다는 이웃 부락민들의 습격에 결국 우노인은 죽고, 더러는 정처 없이 달아나 결국 인간단지는 파탄 나고 마는 결말을 맞이한다.
『인간단지』에서는 억압과 수탈, 저항과 인간 해방이라는 주제는 다시 한번 처절하게 형상화된다. 이 소설에서 “5년이란 세월에 걸려서……자유원의 2백여 음성 나환자들의 손바닥과 건너편 희망원에 수용돼 있는 4백여 명의 부랑아들의 노력에 의해서” 메워진 개컬(일등 옥토)이 박원장의 사유 재산으로 둔갑하는가 하면 박원장은 “시청에서 주는 썩은 좁쌀이나 보리쌀만을 원생들에게” 준다. 이것은 자유당시대 이래 우리의 ‘불우이웃들’이 무수히 겪은 참상이다. 죄없는 피고들이 살 세계를 찾기 위해, 인간단지를 창안한 우중신 노인의 계획은 순간적인 충동의 소산물이 아니다. “가끔 우시게 삼아 이야기는 했지만, 죽기 전에 인간단지를 꼭 한번 맨들어 보고 싶었다.” 판단과 각오는 벌써부터 그의 마음속에 깃들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의지 및 행위가 어떤 한 점을 향하여지고, 의식이 이 한 점 위에 긴장 집중함으로써 이 한 점은 성숙되어 계획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노인 일행은 사회사업을 빙자한 모리배 박성일 원장과 그를 비호하는 권력의 박해와 착취를 당하고 몰인정한 ‘건강한 사람들’에게 끝내 난도질을 당하고, 우노인은 결국 죽었다. 그러나 『인간단지』의 비극적 종말은 결코 패배일 수가 없다. 『인간단지』는 체제의 질곡에서 벗어나 복지사회를 모색해본 민중의지의 항장(抗章)이다. 늙고 병든 몸을 이끌고 ‘문둥이’도 인간답게 살게 하기 위해 싸우다 희생당하는 우노인의 장엄한 최후, 거기서 번뜩이는 그의 저항 의지는 보다 높은 인간적 차원, 인간 해방의 길목을 환히 밝히고 있다.
<김정한 소설에 있어서는 반드시 민중=약자인가?>
『인간단지』의 대립 구조가 자유원 원장의 부정한 권력과 나환자들의 대립에서 마을 주민들의 이기적인 태도와 나환자들의 대립으로 바뀌면서 심각한 결함을 내포한다고 평가되기도 했다. 그것은 나환자들의 저항을 ‘민중의 저항’이라는 관점에서 이 상황을 민중과 민중의 대립으로 보았기 때문에 나온 결론이다. 김정한 소설에서 나타나는 대립을 반드시 ‘민중’과 ‘지배계급’ 간의 대립이라고 볼 수는 없다. 엄밀히 살펴보면 김정한 소설의 대립은 계급간의 대립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모래톱 이야기」와 『인간단지』에서는 모두 나환자들과 그들의 이주를 막으려는 주민들간의 분쟁이 벌어진다. 그런데, 전자에서의 경우 서술자의 입장이 주민 편에 있는 반면, 후자에서는 서술자의 입장이 나환자 편에 있다. 왜냐하면 「모래톱 이야기」에서는 나환자들이 권력, 혹은 강자의 편에 있고, 『인간단지』에서는 주민들이 권력, 혹은 강자의 편에 있기 때문이다. 김정한의 소설에서는 누구라도 강자가 되었을 때 권력을 이용하여 약자를 핍박할 수 있는 것이다. 대립의 쟁점이 어느 소설에서나 같은 것이 아니라, 소설의 상황마다 바뀌기 때문에 김정한 소설의 대립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구체적인 면이 있다. 계급을 확정하는 추상적 도식성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김정한이 비소설 텍스트에서 드러낸 그의 작과의식과도 일치한다. 그는 “인류의 적은 권력”이라고 단정하면서 문학이 “이에 맞서 약자의 입장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고 확대하는 무기가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 면담, 「약자의 설움은 무엇인가?」, 『문학사상』, 1973. 10. 214면, 재인용
한다.
Ⅲ. 결론
김정한은 자신의 삶과 문학을 일치시킨 드문 작가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끊임없이 사회적 모순, 어두운 권력에 작품으로써 항거하고, 일상적 삶으로써 항거했다. 부왜(附倭) 작품이 소개되기도 했지만, 그의 막힘없는 해방ㆍ자유의지는 낙동강 줄기처럼 우리 문학계에서 커다란 물줄기를 형성하여 저항의 생명력을 공급하고 있다. 그가 일제, 정부로부터 자주 낙인찍혔음에도 불구하고 꼿꼿이 양심, 신념을 유지하는 것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그리고 살아가면서 뼛속 깊이 체험한 사회적 모순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의리와 휴머니즘적 사고가 바탕이 되어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한의 소설을 알아보면서 그가 많은 고초를 당하면서도 작품에 저항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다. 그 저항의식이 비극적인 결말으로 치닫는 작품이 몇 몇 있지만, 그것은 답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의 반영, 또 하나의 리얼리즘의 표출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나도 신념을 지키고 현실에 대한 모순에 맞서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긴 하지만, 적어도 득세하는 부조리를 피하는 사람을 되지 말아야겠다고, 일상생활에서부터 실천해야겠다고 다시금 생각했다. 김정한의 생애가 나에게 용기를 준다. 김정한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 그의 삶을 되새기면서 모순에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지식인이 되고 싶다.
인간단지 줄거리>>
반인간적이며 반사회적·반민족적인 상황에 대한 문학적 저항의 압권이라 할 이 작품은 나환자 수용소를 무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우중신 노인은 일찍 결혼을 했는데, 우노인이 일본에서 공부하는 동안 우노인의 아내 복돌이는 문둥병에 걸린 시할아버지를 지극히 간호한다. 그러나 문둥병을 돌보는 복돌이가 끝내 문둥병에 걸리게 되자 시집에서는 복돌이를 내쫓고, 수소문한 끝에 우노인은 아내를 문둥병 수용소에서 찾게 된다. 아내와 오두막을 세우고 살아가다가 아내는 죽고, 우노인 자신도 문둥병에 걸려 해방 조국을 위해 싸우던 그가 한 병자로써 문둥병 수용소에 들게 된다. 자유원(自由園) 원장 박성일의 비행을 보다 못해 우중신 노인을 비롯한 나환자 2백여 명이 박원장의 부정 사실을 낱낱이 폭로한 진정서를 당국에 내어 그의 처벌을 호소함으로써 문제는 야기된다. 부랑아 수양소인 희망원 청년들의 격분을 산 것은 물론이지만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우중신 노인은 자칭 애국 사업가를 용납할 수 없어 끝까지 버틴다.
그러나 우노인 일행은 국립나환자 수용소에 감금되는 몸이 된다. 박원장의 비인도적인 처사에서 가까스로 풀려난 우노인은 정치지배를 받지 않는 새로운 공화국 '인간단지'를 창설하기에 이른다. 필생의 소원을 성취한 듯했으나 문둥이와는 같이 살 수 없다는 이웃 부락민들의 습격에 결국 우노인은 죽고, 더러는 정처 없이 달아나 결국 인간단지는 파탄 나고 마는 결말을 맞이한다.
『인간단지』에서는 억압과 수탈, 저항과 인간 해방이라는 주제는 다시 한번 처절하게 형상화된다. 이 소설에서 “5년이란 세월에 걸려서……자유원의 2백여 음성 나환자들의 손바닥과 건너편 희망원에 수용돼 있는 4백여 명의 부랑아들의 노력에 의해서” 메워진 개컬(일등 옥토)이 박원장의 사유 재산으로 둔갑하는가 하면 박원장은 “시청에서 주는 썩은 좁쌀이나 보리쌀만을 원생들에게” 준다. 이것은 자유당시대 이래 우리의 ‘불우이웃들’이 무수히 겪은 참상이다. 죄없는 피고들이 살 세계를 찾기 위해, 인간단지를 창안한 우중신 노인의 계획은 순간적인 충동의 소산물이 아니다. “가끔 우시게 삼아 이야기는 했지만, 죽기 전에 인간단지를 꼭 한번 맨들어 보고 싶었다.” 판단과 각오는 벌써부터 그의 마음속에 깃들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의지 및 행위가 어떤 한 점을 향하여지고, 의식이 이 한 점 위에 긴장 집중함으로써 이 한 점은 성숙되어 계획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노인 일행은 사회사업을 빙자한 모리배 박성일 원장과 그를 비호하는 권력의 박해와 착취를 당하고 몰인정한 ‘건강한 사람들’에게 끝내 난도질을 당하고, 우노인은 결국 죽었다. 그러나 『인간단지』의 비극적 종말은 결코 패배일 수가 없다. 『인간단지』는 체제의 질곡에서 벗어나 복지사회를 모색해본 민중의지의 항장(抗章)이다. 늙고 병든 몸을 이끌고 ‘문둥이’도 인간답게 살게 하기 위해 싸우다 희생당하는 우노인의 장엄한 최후, 거기서 번뜩이는 그의 저항 의지는 보다 높은 인간적 차원, 인간 해방의 길목을 환히 밝히고 있다.
<김정한 소설에 있어서는 반드시 민중=약자인가?>
『인간단지』의 대립 구조가 자유원 원장의 부정한 권력과 나환자들의 대립에서 마을 주민들의 이기적인 태도와 나환자들의 대립으로 바뀌면서 심각한 결함을 내포한다고 평가되기도 했다. 그것은 나환자들의 저항을 ‘민중의 저항’이라는 관점에서 이 상황을 민중과 민중의 대립으로 보았기 때문에 나온 결론이다. 김정한 소설에서 나타나는 대립을 반드시 ‘민중’과 ‘지배계급’ 간의 대립이라고 볼 수는 없다. 엄밀히 살펴보면 김정한 소설의 대립은 계급간의 대립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모래톱 이야기」와 『인간단지』에서는 모두 나환자들과 그들의 이주를 막으려는 주민들간의 분쟁이 벌어진다. 그런데, 전자에서의 경우 서술자의 입장이 주민 편에 있는 반면, 후자에서는 서술자의 입장이 나환자 편에 있다. 왜냐하면 「모래톱 이야기」에서는 나환자들이 권력, 혹은 강자의 편에 있고, 『인간단지』에서는 주민들이 권력, 혹은 강자의 편에 있기 때문이다. 김정한의 소설에서는 누구라도 강자가 되었을 때 권력을 이용하여 약자를 핍박할 수 있는 것이다. 대립의 쟁점이 어느 소설에서나 같은 것이 아니라, 소설의 상황마다 바뀌기 때문에 김정한 소설의 대립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구체적인 면이 있다. 계급을 확정하는 추상적 도식성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김정한이 비소설 텍스트에서 드러낸 그의 작과의식과도 일치한다. 그는 “인류의 적은 권력”이라고 단정하면서 문학이 “이에 맞서 약자의 입장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고 확대하는 무기가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 면담, 「약자의 설움은 무엇인가?」, 『문학사상』, 1973. 10. 214면, 재인용
한다.
Ⅲ. 결론
김정한은 자신의 삶과 문학을 일치시킨 드문 작가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끊임없이 사회적 모순, 어두운 권력에 작품으로써 항거하고, 일상적 삶으로써 항거했다. 부왜(附倭) 작품이 소개되기도 했지만, 그의 막힘없는 해방ㆍ자유의지는 낙동강 줄기처럼 우리 문학계에서 커다란 물줄기를 형성하여 저항의 생명력을 공급하고 있다. 그가 일제, 정부로부터 자주 낙인찍혔음에도 불구하고 꼿꼿이 양심, 신념을 유지하는 것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그리고 살아가면서 뼛속 깊이 체험한 사회적 모순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의리와 휴머니즘적 사고가 바탕이 되어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한의 소설을 알아보면서 그가 많은 고초를 당하면서도 작품에 저항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다. 그 저항의식이 비극적인 결말으로 치닫는 작품이 몇 몇 있지만, 그것은 답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의 반영, 또 하나의 리얼리즘의 표출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나도 신념을 지키고 현실에 대한 모순에 맞서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긴 하지만, 적어도 득세하는 부조리를 피하는 사람을 되지 말아야겠다고, 일상생활에서부터 실천해야겠다고 다시금 생각했다. 김정한의 생애가 나에게 용기를 준다. 김정한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 그의 삶을 되새기면서 모순에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지식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