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서론
Ⅱ·본론
1.지역감정은 왜 생겨났을까
2.조선시대의 당쟁
3.붕당정치란 무엇일까?
4.붕당정치의 방식
5.당쟁론과 사림정치론
6.당쟁과 관련된 글 이야기
7.당쟁은 왜 일어났는가? : 조선실학자들의 견해
8. 당쟁은 왜 일어났는가? : 광복이후 학자들의 견해
Ⅲ·결론
Ⅱ·본론
1.지역감정은 왜 생겨났을까
2.조선시대의 당쟁
3.붕당정치란 무엇일까?
4.붕당정치의 방식
5.당쟁론과 사림정치론
6.당쟁과 관련된 글 이야기
7.당쟁은 왜 일어났는가? : 조선실학자들의 견해
8. 당쟁은 왜 일어났는가? : 광복이후 학자들의 견해
Ⅲ·결론
본문내용
관례가 있었고 특히 대간을 비롯한 당하낭관을 추천하는 통청권이 있었다. 이는 대신들이 인사권을 독점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조선 전기부터 시행되어 오던 관행이었는데, 조선 중기 이후의 사림정치시대에는 널리 일반화되어 있었다. 동인과 서인의 갈림은 바로 이조전랑의 자대권 때문에 일어난 당쟁이었으며 영조17년에 이 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전후 300년간 전랑직 다툼이 계속되었다. 박제형은 서원 때문에 당쟁이 생겼다고 했다.
8. 당쟁은 왜 일어났는가? : 광복이후 학자들의 견해
이태진은 일제 학자들이 쓰기 시작한 당쟁이라는 용어는 한국인을 폄하하기 위한 오염된 용어이니 써서는 안 되고, 그 대신 붕당정치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당쟁이라면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여기는 일반의 인식을 바꾸어 놓기 위한 긍정론적인 입장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아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붕당정치라는 용어가 조선 후기 정치사를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태진의 붕당정치론에 대한 비판은 김용덕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는 당쟁사를 새롭게 긍정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는 수긍하지만 그렇다고 당쟁이 곧 붕당정치라는 주장에 찬성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붕당정치가 곧 정당정치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는 점과 아울러 무엇보다도 명확한 개념이 없다는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정만조도 붕당정치가 조선 후기의 정치 형태라고 보기는 어렵고 당쟁을 그대로 써도 무방하다는 입장이다.
Ⅲ.結論
조선의 역사에서 당쟁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은 조선사람들은 패를 나누기를 좋아하고 당쟁이 그 좋은 예라고 했다. 외부의 침략에는 전혀 준비조차 하지 않으면서 서로 내부에서 권력 투쟁을 하면서 다툰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드라마를 보면 왕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갈려서 서로 다른 색의 옷을 입은 할아버지, 아저씨들이 열을 맞춰 앉아서는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자주 보고는 했던 것 같다.
그와 더불어서 TV를 보면 양복입은 아저씨들이 서로 소리지르고 다투는 모습을 쭉 보고는 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뉴스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 왜 매일 저렇게 싸우기만 하고 비리로 문제가 많은 정치 소식을 뉴스의 앞부분에서 다루는 걸까? 하면서 의아하게 생각했던 적도 많았다.
지금은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주인은 국민인데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은 국민의 손으로 투표를 해서 뽑은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정치를 올바르게 하는지 아니면 어떤 잘못을 저지르는지 국민의 눈으로 확인을 해야 정치인들은 더 열심히 국민들을 위해 노력할 것이고 국민들 또한 안심하고 자신의 권리를 위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전공기초 과목인 법사상사 시간에 배운 내용이 생각난다. 국왕에게 나라를 다스릴 권리를 국민들이 넘겨줬기 때문에 더 이상 돌려받을 수 없고 국왕이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는 사상과 국왕에게 잠시 맡겨둔 것이며 언제든지 찾을 수 있다는 발상이 있는데 민주주의의 근원은 후자에서 온 것이다. 지금은 왕이 없으니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이 그 역할을 수행한다. 대통령도 말했다 시피 머슴처럼 일하겠다고 했다. 국민을 섬긴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의 정치인들은 양반이었다. 조선시대는 상민도 과거에 응시할 기회는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책도 구하기 어려웠고 생활에 쫓겨서 과거를 공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먹고 살기 바쁜 시점에서 글공부가 가능했겠는가.
그렇다면 그 당시 조선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조선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은 있었을까? 성리학으로 똘똘 뭉친 양반들이 그런 것 하나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 나름대로의 대의명분을 가지고 국가를 위해 힘썼을 것이다. 오히려 왕이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방지 했을 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한 방향으로 기울면 쓰러지는 법 아니겠는가. 조선시대의 당쟁은 그 어휘에서 풍겨오는 느낌이 부정적이기는 하지만 결코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관련된 자료들을 읽다 보면 그 당시 국가에서 관리들에게 공급해 주는 땅도 문제였다. 처음에 공신들에게 땅을 나눠주다 보니 나중에 관직에 진출하는 사람들은 받을 땅도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권력 투쟁으로만 볼 수 있다. 이기적인 소심한 사람들 일수도 있다. 지금의 국회의원들이 모두가 나라의 발전만을 생각할까? 대한민국의 미래만을 생각할까?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공무원들도 모두 자신들이 국민들의 머슴이라고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봉사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사람은 아무래도 성인이 아닌 이상에야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다. 내 배가 배불러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내가 있어야 남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조선시대나 대한민국이나 그리고 지구촌의 어떤 나라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인종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더라도 자기 배부터 채우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닐까? 한민족의 특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권력자 정치가들은 그렇다면 인간 존중의 투쟁하나 없는 역사를 이뤄냈는가? 라고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 기나긴 전국시대 만 해도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의 연속이었으며 천황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존중 받으며 살아왔던 것은 아니다. 역사의 일부분 특정 집단을 가지고 한 민족의 성격을 특정 지어버리는 것은 부분을 전체로 착각하는 것이리라. 국가를 위한 정치인들의 좋은 부분도 찾아서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나쁜 부분만 부각시키는 것보다는 좋은 점도 같이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 정권, 이명박 대통령 정권 모두 잘하는 부분도 있었고 있을 텐데도 언론에서는 못하는 부분만 부각시킨다.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싸우고 다투는 것도 잘 못된 것이 아니라 당연히 그렇게 싸우는 것이 밥값은 하는 거라고 본다. 이 글을 쓰면서 자료들을 보면서 느낀 점은 결국 조선시대의 당쟁이 부정적이었으며 그것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글을 마치려고 한다.
참고문헌
이근호, 조선4
8. 당쟁은 왜 일어났는가? : 광복이후 학자들의 견해
이태진은 일제 학자들이 쓰기 시작한 당쟁이라는 용어는 한국인을 폄하하기 위한 오염된 용어이니 써서는 안 되고, 그 대신 붕당정치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당쟁이라면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여기는 일반의 인식을 바꾸어 놓기 위한 긍정론적인 입장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아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붕당정치라는 용어가 조선 후기 정치사를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태진의 붕당정치론에 대한 비판은 김용덕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는 당쟁사를 새롭게 긍정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는 수긍하지만 그렇다고 당쟁이 곧 붕당정치라는 주장에 찬성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붕당정치가 곧 정당정치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는 점과 아울러 무엇보다도 명확한 개념이 없다는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정만조도 붕당정치가 조선 후기의 정치 형태라고 보기는 어렵고 당쟁을 그대로 써도 무방하다는 입장이다.
Ⅲ.結論
조선의 역사에서 당쟁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은 조선사람들은 패를 나누기를 좋아하고 당쟁이 그 좋은 예라고 했다. 외부의 침략에는 전혀 준비조차 하지 않으면서 서로 내부에서 권력 투쟁을 하면서 다툰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드라마를 보면 왕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갈려서 서로 다른 색의 옷을 입은 할아버지, 아저씨들이 열을 맞춰 앉아서는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자주 보고는 했던 것 같다.
그와 더불어서 TV를 보면 양복입은 아저씨들이 서로 소리지르고 다투는 모습을 쭉 보고는 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뉴스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 왜 매일 저렇게 싸우기만 하고 비리로 문제가 많은 정치 소식을 뉴스의 앞부분에서 다루는 걸까? 하면서 의아하게 생각했던 적도 많았다.
지금은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주인은 국민인데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은 국민의 손으로 투표를 해서 뽑은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정치를 올바르게 하는지 아니면 어떤 잘못을 저지르는지 국민의 눈으로 확인을 해야 정치인들은 더 열심히 국민들을 위해 노력할 것이고 국민들 또한 안심하고 자신의 권리를 위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전공기초 과목인 법사상사 시간에 배운 내용이 생각난다. 국왕에게 나라를 다스릴 권리를 국민들이 넘겨줬기 때문에 더 이상 돌려받을 수 없고 국왕이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는 사상과 국왕에게 잠시 맡겨둔 것이며 언제든지 찾을 수 있다는 발상이 있는데 민주주의의 근원은 후자에서 온 것이다. 지금은 왕이 없으니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이 그 역할을 수행한다. 대통령도 말했다 시피 머슴처럼 일하겠다고 했다. 국민을 섬긴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의 정치인들은 양반이었다. 조선시대는 상민도 과거에 응시할 기회는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책도 구하기 어려웠고 생활에 쫓겨서 과거를 공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먹고 살기 바쁜 시점에서 글공부가 가능했겠는가.
그렇다면 그 당시 조선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조선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은 있었을까? 성리학으로 똘똘 뭉친 양반들이 그런 것 하나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 나름대로의 대의명분을 가지고 국가를 위해 힘썼을 것이다. 오히려 왕이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방지 했을 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한 방향으로 기울면 쓰러지는 법 아니겠는가. 조선시대의 당쟁은 그 어휘에서 풍겨오는 느낌이 부정적이기는 하지만 결코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관련된 자료들을 읽다 보면 그 당시 국가에서 관리들에게 공급해 주는 땅도 문제였다. 처음에 공신들에게 땅을 나눠주다 보니 나중에 관직에 진출하는 사람들은 받을 땅도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권력 투쟁으로만 볼 수 있다. 이기적인 소심한 사람들 일수도 있다. 지금의 국회의원들이 모두가 나라의 발전만을 생각할까? 대한민국의 미래만을 생각할까?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공무원들도 모두 자신들이 국민들의 머슴이라고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봉사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사람은 아무래도 성인이 아닌 이상에야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다. 내 배가 배불러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내가 있어야 남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조선시대나 대한민국이나 그리고 지구촌의 어떤 나라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인종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더라도 자기 배부터 채우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닐까? 한민족의 특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권력자 정치가들은 그렇다면 인간 존중의 투쟁하나 없는 역사를 이뤄냈는가? 라고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 기나긴 전국시대 만 해도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의 연속이었으며 천황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존중 받으며 살아왔던 것은 아니다. 역사의 일부분 특정 집단을 가지고 한 민족의 성격을 특정 지어버리는 것은 부분을 전체로 착각하는 것이리라. 국가를 위한 정치인들의 좋은 부분도 찾아서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나쁜 부분만 부각시키는 것보다는 좋은 점도 같이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 정권, 이명박 대통령 정권 모두 잘하는 부분도 있었고 있을 텐데도 언론에서는 못하는 부분만 부각시킨다.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싸우고 다투는 것도 잘 못된 것이 아니라 당연히 그렇게 싸우는 것이 밥값은 하는 거라고 본다. 이 글을 쓰면서 자료들을 보면서 느낀 점은 결국 조선시대의 당쟁이 부정적이었으며 그것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글을 마치려고 한다.
참고문헌
이근호, 조선4
,청아출판사,2008
이민희, 조선을 훔친 위험한 冊들,(주)문학동네,2008
이성무, 조선시대 당쟁사1 , 아름다운날,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