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당쟁사(1권) 요약,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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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당쟁사(1권) 요약, 비평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당쟁에 관한 논리
2. 문치주의 소산
3. 사림의 도학정치
4. 시대구분과 사림정치
5. 사림정치의 권력구조
6. 사림정치기의 당쟁사
6.1. 당쟁의 서막 - 선조대와 광해군조
6.2. 명분론과 현실론 - 인조, 효종대
6.3. 이론논쟁을 통한 권력투쟁 - 현종대
7. 당쟁의 허와 실

본문내용

서인인 송시열 일파와 남인의 정치적 투쟁의 성격이 다분하였다. 이로부터 서인과 남인은 완전히 원수지간이 되었고 당쟁은 치열해지기만 하였다.
7. 당쟁의 허와 실
숙종조에 격렬한 정쟁으로 인한 정권교체와 무관용의 정국을 다루지는 못했지만, 사림정치기의 당쟁으로 인한 갈등의 양상을 어느 정도는 살펴볼 수 있었다. 서론에서 제기한 일제에 의해 주장되고 아직까지 한국인의 관념으로 자리하고 있는 당쟁망국론과 파당성론 등은 분명 우리 스스로가 역사를 주체적으로 대함으로써 벗어나야 한다. 일제가 망국론의 근거로 내세운 조선 후기 200년간의 당쟁만 보더라도 그것은 엄밀한 의미의 당쟁이 아니라, 몇몇 노론 척신 가문의 일당 독재와 세도정치가 시행된 것이었다. 이미 붕당정치의 틀이 무너진 상황에서의 역사를 가지고 우리 민족과 조선의 흥망을 평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치주의와 사림정치의 산물인 당쟁이 지니는 부정적 측면은 냉정하게 짚어보아야 한다. 광해군조에 대북이 보여주었던 반인륜적 행위나 그로 인한 인조반정과 서인의 보복 등은 붕당간의 정쟁이 아니라 정치권력을 향한 투쟁일 뿐이었다. 또한 인조조에 있었던 주화파와 척화파의 대립은 명분과 실리 앞에서 분당과 대립으로 소모적인 정쟁만이 있었을 뿐, 어느 쪽으로도 결단하지 못한 채 병자호란으로 나라의 운명만 위태롭게 되었던 것이다. 사림과 선비의 정신이 명분과 의리에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이라면, 명분론자들은 명분을 지키면서도 국익을 위한 실제적 조치들을 취했어야 했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비판과 스스로 명분에 따른 지조를 지키기에 급급했다. 예송논쟁을 통해서는 예와 법도에 대한 이념논쟁에 그치지 않고 그것으로 인해 권력쟁탈의 도구가 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예법에 관한 이론적 논쟁에서 나아가 좀 더 실제적인 부국과 백성을 위한 논의가 붕당정치를 통해서 생산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쉬움으로 남는다. 덧붙여 조선의 패망과 일제강점기와 관련하여서는 대중국 사대주의와 성리학 제일주의로 인한 사상적 폐쇄성과 경직성이 국제적 정세에 둔감하게 하였고, 당쟁적 요소로 인해 대외적인 문제에 관한 대처가 늦을 수밖에 없었음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선비와 그 정치세력이 견지해왔던 명분과 지조의 태도, 그로 인한 높은 도덕성과 절의를 숭상했던 사림정치적 기조는 붕당정치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 시대에 던져주는 시사점이 크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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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5.06
  • 저작시기2008.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07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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