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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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르네상스란 ?
(1) 르네상스의 뜻
(2) 르네상스 미술의 기원
(3)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 - 회화기법
2. 초기 르네상스
(1) 초기 르네상스의 성격
(2) 후원자들과 미술가들
3. 북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1) 베네치아 르네상스
(2) 조반니 벨리니
4. 전성기 르네상스
(1) 레오나르도 다 빈치
(2) 미켈란젤로
(3) 라파엘로
5. 북유럽 르네상스
1)플랑드르 르네상스
(1) 반 아이크 형제
(2) 보쉬
(3) 브뤼겔
2) 독일의 르네상스
(1) 뒤러
(2) 홀바인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 예경, 2002. 103쪽 부분 발췌
2) 독일의 르네상스
네덜란드 화가들의 독창성에 한걸음 뒤쳐져 있었던 독일의 화가들은 16세기 초반부터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업적에 비견할 만한 회화적 발전을 이루어 내면서, 북유럽 유파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다. 이탈리아 예술의 최전성기와 거의 동시에 독일도 전성기 르네상스를 구가했는데 그뤼네발트(Grunewald)의 경건한 종교화, 뒤러(Durer)의 기술적으로 완벽한 판화, 홀바인(Holbein)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확한 초상화가 그러하다.
(1) 뒤러
르네상스 인간이라 불리울 만한 첫 번째 북유럽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1471-1528)는 사실주의라는 북유럽 미술의 특성과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혁신적인 요소들을 결합시킨 화가이다. 그는 독일의 일반적인 화풍인 정밀 묘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한편 이탈리아를 동경한 그는 베네치아에 가서 이탈리아 미술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는 다양한 관심사 때문에 ‘북유럽의 레오나르도’라 불리던 뒤러는 자연과 식물에 대한 연구에 매료되어 있었다. 미술은 정확한 관찰을 통해 그려져야 한다고 믿었던 뒤러는 “예술이란 자연을 기본으로 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을 찾아다니는 자만이 진정한 예술가이다”라고 쓰고 있다. 불행히도 이와 같은 호기심이 그에게 치명타를 입혔다. 고래의 몸체를 직접 보려고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찾아 헤매던 뒤러는 그 때문에 열병을 얻어 급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뒤러는 남부의 획기적인 발견들을 북유럽의 동료 화가들에게 전파시키는데 힘썼으며 원근법과 이상적인 비례에 대한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또한 화가란 교양 있는 신사이지 학자여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예술가의 위치를 장인에서 왕족과 같은 지위로까지 격상시켰다. 그는 또한 자신의 이미지에 매료된 첫 번째 화가로서 수많은 자화상을 남겼다. (가장 초기의 것이 13세에 그려진 것이다.) 1500년도에 그려진 <여우 코트를 입고 있는 자화상>은 자신을 그리스도와 같은 자세로 그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화가의 상승된 지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뒤러가 북유럽 르네상스의 가장 위대한 화가로서 명성을 날린 원인은 그의 판화 작품에 있다. 뒤러 이전의 판화는 흑백의 대조를 위주로 한 단순한 하급 미술 장르에 불과했다. 그는 동판화의 해칭 기법(소묘를 할 때 명암을 주기 위해 사용하는 섬세한 평행선)을 목판화에 적용하여 놀라운 명암 변화를 보여주었다. 빽빽한 선을 사용하여 유화 못지않게 세밀한 질감과 색조를 묘사해 낸 것이다. 뒤러는 판화를 미술의 주요 표현 수단으로 사용한 첫 번째 화가이다.
그는 인물화, 곧 초상화를 철두철미한 자연 관찰을 통해서 정밀하면서도 엄숙하게 표현하였고 겉으로 보이는 자연의 사실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인간 정신까지도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점에서 뒤러는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라고 할 수 있다.
(2) 홀바인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1497~1543)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초상화가로 알려져 있다. 뒤러와 마찬가지로 그도 북부의 장점과 남부의 장점을 모두 취하였는데, 정확한 사실주의와 선을 주로 사용하는 네덜란드적인 방법과 이탈리아의 균형적인 구성, 명암 대조법, 조각적인 형태, 원근법을 결합하였다.
홀바인은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화가로서 일한 곳은 바젤이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으로 인해 교회의 장식이 금지되면서 화가들의 일거리가 끊어지자 홀바인은 영국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일자리를 알아보기로 작정한다. 그의 후원자인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Erasmus)는 그를 영국의 토마스 무어경에게 추천하게 되고, 홀바인은 그 놀라운 재능 덕분에 곧 헨리 8세의 궁정 화가가 되었는데 거기서 왕과 네명의 왕비들의 초상을 그렸다.
<프랑스 대사들>을 보면 동양풍의 양탄자와 다마스커스 산 커튼의 선적인 문양, 정확한 모피와 천들의 질감 묘사, 대리석 바닥의 정확한 원근법, 에나멜칠이 된 탁월한 색채, 세부묘사가 정확한 사실주의적 기법 등 홀바인의 놀라운 테크닉을 엿볼 수 있다. 전면에 잇는 실쭉하게 늘어지게 그린 해골과 학문적인 도구들은 사물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북구인 특유의 기호를 알 수 있다. 홀바인도 뒤러와 같이 정확도를 가해 인물의 얼굴을 묘사하고 있으나, 뒤러 작품의 긴장감 넘치는 모습과는 달리 이탈리아적인 표정없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홀바인은 이후 3세기에 걸쳐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미술의 장르인 초상화의 기준을 정립한 화가로 유명하다.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예경, 1997. 342~357쪽 부분 발췌
케롤 스트릭랜드 <<클릭, 서양미술사>> 예경, 2002. 104~105쪽 부분 발췌
Ⅲ. 결론
르네상스. 그 화려한 문명 속의 미술은 15세기 초부터 세계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영향을 주고 받으며 퍼져나갔다. 세계를 지배하려는 것이 합리적이고 법칙적이라는 확신을 가졌고 합리성에 의해 모든 것을 사고하려는 세계관이 생겨났고, 화가들은 ‘회화적’인 것과 대립되는 개념의 조형성 예술을 입체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사물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던 시기인 것이다. 르네상스에 관한 조사와 정리를 수행하면서 그 흐름과 르네상스의 특징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는데 관련서적을 여러 권 보는 과정에서 몰랐던 그림들도 많이 접했기에 힘들었지만 보람 있는 과제였다. 워낙 자료들이 방대해서 르네상스라는 짧은 단어로 표현되는 이 시기가 바야흐로 2세기라는 긴 시간동안 세계 여러 곳곳에서 일어난 운동이었다는 사실은 이제야 실감이 된다. 르네상스에 관한 한 이제는 어느 정도 알 것 같고 다른 시대 또한 이처럼 조사하고 머릿속에 담아두어야 하겠다고 다짐하며 리포트를 마친다.
참고문헌
-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서양 미술사>> 예경, 1997
- 수잔나 파르취 <<당신의 미술관2>> 현암사, 1999
- W.K퍼거슨 <<르네상스>> 1984
- 케롤 스트릭랜드 <<클릭, 서양미술사>> 예경, 2002
- 인터넷자료 : http://iartedu.com/history/west/h1-1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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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1.29
  • 저작시기2009.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17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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